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2
실용음악학원 (1)
나는 여섯 시간 째 망가진 태엽인형처럼 가만히 있었다.
그리운 풍경이다.
잠들었던 침대, 젊어진 어머니, 그리고 방 한켠에 있는 입문자용 기타와 앰프.
“···”
나는 옷걸이에 걸려 있는 교복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서 책상에 올려져 있던 접히지도 않는 핸드폰을 켜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꽤나 작은 화면에, 당시에는 힙스터 기질이 있던 애들이 사용하던 아이폰.
아이폰 6s.
최신형이다.
훗날 ‘추억의 명기’라고 불리던 이것이, 지금은 나온지 몇 달 되지도 않은 따끈따끈한 물건이란 말이다.
현재 시각은 2016년 2월 29일 월요일. 입학 이틀 전이자, 내가 고1이 되기 직전이었다.
“와우.”
이런 일이 나한테 일어나다니.
대체 이 세상은 어떻게 되어 먹은 거지?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거지?
나는 우주관에 기반을 둔 현학적인 물음을 나 자신에게 던져 보았다.
“기타창···”
파앗-!
이름 : 김수재
나이 : 17
체력 : b
지능 : b
기타 연주력 : b
작곡능력 : b-
외모 : b
인지도 : f
기타창은 내가 즉석에서 붙여준 이름이다. 사실 상태창이라 불러도 이 메시지가 뜨긴 하는데, 그냥 붙였다.
붕태창도 있는데 기타창쯤이야.
물론 왜 갑자기 이게 눈앞에 떠오르는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근데 왜 죄다 b지?
난 b급 인간이라는 건가?
외모가 b급인 것도, 체력이 b급인 것도 인정하는데 작곡능력이 b-라니.
되게 거슬렸다. 14년전에 인디밴드 리드기타로 잠시 활동할 때에도 곡은 죄다 내가 썼는데. 기타리프 뿐만 아니라 베이스라인, 드럼비트도 다 내가 끼워 맞췄는데.
나는 투덜투덜 거리며 침대에 다이브했다. 그리고서, 가장 먼저 내가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그렸다.
“···비트코인.”
나는 핸드폰을 들어 올려 비트코인 시세를 검색했다. 이후로는 거래소가 우후죽순 생길 테지만, 아직은 몇 개 없었다.
“··· 420달러?”
가만있어보자.
1비트코인은 나중에 1만 5천달러 선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지금은 420달러 즈음밖에 안 한다.
“게임 끝났네.”
지금 이거 사면 그냥 끝이다. 난 인생을 놀고먹을 수 있을 거다.
당장 한 1천만 원만 박아 두면 상류층 생활까지는 아니더라도, 유유적적 살기에는 문제없을 금액이 손에 떨어진다. ‘군대에 다시 가야 한다’라는 점 또한 아무런 걱정거리가 되지 않을 터.
“수재야~ 과일 가져가라~”
“··· 네.”
휴대폰을 들고 거실로 나갔다.
거실에는 소파를 두고 기대앉아 있는 연년생 여동생 1과, 과일을 깎고 계시는 어머니가 보였다.
둘다 적응이 안 될 정도로 젊은 모습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쇼파에 다가가 여동생을 발로 찼다.
“아 또 지랄이야!”
“오랜만이네.”
“뭐래. 짜증나.”
나는 실실 웃으며 동생을 지나쳤다. 지금은 몰라도, 회귀하기 전의 자신은 동생과 그리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둘 다 결혼을 못해서 어머니는 시도때도없이 한숨을 쉬시곤 했다.
“어휴. 너희는 다 컸는데 언제까지 그렇게 싸움만 하고 살래?”
“제가 뭘 다 커요. 앤데요 아직.”
“어쭈?”
나는 과일을 들고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돌아갔다.
돌아왔다 ···
돌아왔다.
“허억 ···!”
아무렇지 않도록 붙들고 있던 정신에, 폭풍이 몰아쳤다.
내가 왜 여기에? 난 죽었을 텐데?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거지? 난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간신히 붙들고 있던 정신이 순식간에 붕괴되려 했다.
비트코인. 좋아. 이걸로 인생을 날로 먹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난··· 난···
도저히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갈피를 못 잡고 몽롱하기만 하던 머릿속에 ‘현실감’이 들이닥쳤다.
“허억··· 허억···”
숨을 고르려 해도 잘되지 않았다. 과호흡과 함께 시야에 가림막이 쳐지는 듯한 이상증세가 몸을 휘감았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몇 분? 아니 지금 대체 ···
“···”
붕괴되려 하던 정신이 간신히 현실에 붙잡혔다.
그래, 이건 현실이다.
비트코인 좋다.
젊어진 엄마, 동생···. 너무 반갑다. 하지만 ···
시야의 구석에, 선버스트 색 기타가 걸쳤다.
텁-
나는 간신히 걸음을 옮겨, 거치대에 놓인 입문자용 기타를 집었다.
“네가 더 반갑다.”
내꿈이자, 모든 것의 원동력.
기타.
나는 이번 생에도, 기타를 칠 거다.
–
나는 곧바로 기타와 엠프를 연결했다.
이펙터는 없다. 중3 당시의 내가 이펙터를 사용했던가? 학교 밴드부나 방과 후 ymca 지원자 수업 등에 있던 앰프가 상당히 좋은 편이라 별 욕구를 못 느꼈을 수도 있다.
‘거기 있는 건 대충 다 마샬 중하급은 되니까 ···’
Ymca 연습장에 있는 것은 트렌지스터 100w 짜리. 학교에 있는 것도 50w즈음은 될 것이다.
작은 연습실에도 기본적으로 마샬 앰프가 있지만, 가정에서 구비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15w 마샬 똘똘이가 입문용 기타앰프 가격 2.5배 즈음은 되니까.
지이이이이잉-
전원 잭도 잘 꼽고, 기타도 잘 연결 했는데도, 손바닥을 스트링에 걸쳤음에도 게인을 거니 노이즈가 쏟아져 나왔다.
나는 바로 오버드라이브 채널을 꺼버렸다.
“우선 클린톤 ···”
간단하게 코드를 쥐어 본다. 한평생 기타를 치면서 손에 익었던 감각. 그런데 무언가 이질적이었다.
“···?”
나는 내 왼손을 살펴보았다.
“··· 아.”
굳은살이 적다. 굳은살 아래 굳은살이 생기고, 그게 벗겨지고를 수백 번 반복한 강인한 손은 이제 없었다.
중2 가을에 기타를 처음 시작했다. 하지만 중2, 중3 시절에는 그다지 기타에 미쳐 있던 게 아니었다.
쳐 보기나 하자.
나는 f코드를 잡았다.
다라라랑-!
클린톤 특유의 맑은소리가 흘러나왔다.
f-g-a-e
자유자재로 움직여지는 나의 손가락들. 하지만 뭔가 나사 하나 빠진 듯한 이질적인 느낌.
기타줄에 살이 베이는 감각이 때문이 아니다. 그냥 뭔가 원초부터 잘못된 ···
“아···”
힘이 모자라다.
힘이 되게 모자라다.
피곤해도 철봉에 매달리고, 부상당한 오른손 캐어를 겸해서 악력기를 달고 살았던 35세 김수재는 이곳에 없다.
“와 큰일났네.”
일렉기타에 악력이 왜 필요한가 싶겠지만, 사실 남녀 가리지 않고 기타리스트라면 집에 악력기 몇 개는 있다.
손 힘이 좋아야, 손의 지구력이 좋아야 빡센연주에서 자유롭다. 원래부터 손힘이 강한 사람이라면 악력 단련은 별 필요가 없겠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었다.
나는 코드 연주를 반복했다. 연약해진 나의 손을 기타에 적응시키고, 다음에는 스케일 연주로 옮겨갔다.
스케일이란 기타 지판에서 ‘조화로운 음’을 모아둔 표라고 생각하면 쉬웠다.
그러니까 스케일 대로 지판을 짚고 아무 현이나 대충 갈겨도 꽤 괜찮은 소리가 난다.
딩,딩딩,딩딩!
“··· 좋은데?”
속도를 조금 올려보았다. 휴대폰 메트로놈을 켜서 박자를 맞춘 뒤, 아주 기본적인 스케일 크로매틱으로 줄을 튕겼다.
조화롭게 울리는 음.
기타 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이거야. 이 맛이야.
나는 기타를 사랑했다.
원래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
돈은 비트코인, 주식으로 벌면 된다. 만약 내가 투자를 한다면, 미래를 보는 천재 투자자가 되겠지. 하지만,
‘··· 큰 무대에 서고 싶다.’
꿈이 있었다.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커다란 공연장에서, 내가 주역이 되어 솔로 곡을 연주하는 것.
나의 자작곡이 바람을 타고 수 많은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는 것.
난 다시 스테이지에 서고 싶었다.
“중3짜리가 뭘 하겠냐.”
나는 기타를 거치대에 되돌려 놓았다. 그 순간, 타이밍 좋게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수재 기타 치니? 실력 좋아졌네~”
제대로 된 곡은 치지도 않았는데. 어머니의 칭찬에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집은 딱 서민이었다. 집은 전셋집에, 밥 굶을 걱정은 없지만, 딱히 예술에 전폭적인 지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금전상황이 좋지도 않았다.
“저번에 너 학원 다닌다고 했지?”
“학원이요?”
19년전의 기억. 나는 그것을 최대한 더듬었다.
“왜, 있잖아. 친구가 다니던 데 간다고.”
“그 ···”
중학교때 기타를 시작한 이유, 인터넷에서 멋진 솔로연주곡을 듣고 나서부터였다.
중2 가을에 기타를 사서, 중학교 밴드부에 들어가려 했지만 상상하던 밴드부 생활은 보낼 수 없었다.
사실상 밴드부는 무서운 3학년 형들의 피난처와 비슷했다.
그리고 지금은 ··· 사실상 거의 시체 상태의 동아리다.
그냥 집에 기타 있는 애들이 방과후에 모여서 같이 연주하는 수준.
“그 실용음악학원이랬나? 2주 무료 수강권 받았다고 했잖아~”
“아 ···”
실용음악학원.
분명 중학교 시절, 그곳에 다니던 동창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책상을 뒤졌다. 꽤나 인쇄상태가 좋은, 2주 무료 수강권이 눈에 들어왔다.
“호호, 실용음악학원에서도 무료 수강권을 주네~”
“그러게요.”
종이를 살펴보니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 최상의 강사진 총집합 ··· 이라며
호객행위를 위한 문구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분명 이 근처에 예고가 있었는데 ··· 걔들을 위해서인가?
근데 예고는 애초에 강사진 자체가 빵빵한데 ···
“아.”
잠들어 있던 기억.
아파트 주변에 포진된 실용음악학원들.
예술 고등학교.
난 예고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기타에 미쳐버렸다.
내가 앞으로 다닐 고등학교, 그곳은 ···
‘예고’에 들어가지 못한, 그럼에도 음악 입시를 노리는 애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는,
이른바 일반고이면서도 예술 2군 학교였다.
“갈 거야?”
“가 볼게요. 공짠데.”
머릿속에서 옛 기억이 플래시백 되었다.
난 분명 이맘때 실용음악 학원에 찾아간다.
가벼운 마음으로, 친구가 다녔다길래 나도 한 번 다녀볼까 하는 마음으로.
“그래? 그러면 옷 갈아입어.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무료 수강권으로 들어갔더니 나를 맞아주는 것은, 연주실 자리싸움, 텃새, 자칭 예술인 꼬맹이들의 조소 섞인 표정뿐.
좋지 않은 기억이 머릿속에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
‘이젠 아니다···’
내 연주력이 b급이랬나?
앞으로 죽도록 연습하고 또 연습해도 b급으로 남을까?
기타 연주는 인생과 함께 익어간다.
그리고 이론으로, 정확도 등으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뉘앙스를 만들어 낸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다른 사람들보다 많았다.
“가자.”
난 바로 옷을 갈아입고, 무료 수강권에 적힌 주소로 찾아갔다.
상가 2층 절반을 통째로 대여한, 꽤 큰 규모의 ‘낙성실용음악학원’
이곳은 갖가지 악기를 들쳐 멘, 수많은 입시생들의 전쟁터였다.
“저 ··· 무료 수강 신청 하러 왔는데요.”
직원의 시선이, 내가 들쳐메고 있는 기타 가방의 메이커 마크에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