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3
실용음악학원 (2)
“아 수강신청 하러 오셨구나~”
직원은 내 차림을 눈으로 간지럽게 훑었다.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부드러운 인상의 여성이었다.
보통 실용음악학원의 한 달 비용은 싼 데는 20, 비싼 데는 50이 넘어갔다.
이곳은 ··· 딱 봐도 비싸보이는구만.
“우선 서류 작성해야 하는데 잠깐 따라올래?”
직원은 말을 까면서 동시에 영업용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런데 방금 저 힐끗거리는 태도.
내가 지금 메고 있는 기타케이스 마크를 본 거겠지.
내가 짊어지고 있는 것은 약 20만 원 정도의, 국산 입문용 기타였다. 소리가 나긴 하는데 게인은 안먹고, 그렇다고 톤이 청명하지도 않고, 노이즈가 적지도 않다.
딱 20만원짜리다.
장점은 없는데 단점은 두루두루 갖춘 그런 물건.
나는 직원을 따라갔다.
“신입인가?”
“어려 보이는데 ··· 예고 신입생 아냐?”
“그냥 취미겠지. 봐.”
“아, 콜트네.”
“저거 안 좋잖아.”
콜트도 비싼 건 잘 만들어. 내건 그냥 싸서 안 좋은 거야.
참 식견이 좁은 놈년들이다.
내 또래와 비슷한 남녀 학생들의 시선이 내리꽂혔다. 그들에게서는 뭔가 알 수 없는 부티 비슷한 냄새가 났다.
‘여기 시설 꽤 좋네 ···’
인디시절.
기타와 술, 담배에 절어 있던 시절.
빌린 연습실에는 케케묵은 담배냄새와 연기에 찌든 앰프, 아무렇게 나 방치된 싸구려 케이블이 즐비했다.
거기서 어떻게든 더 좋은 소리를 뽑아보겠다고 톤노브를 만지작거리던 과거 기억이 스물스물 떠올랐다.
“흠흠~”
자연스레 콧노래가 나왔다. 좋은 시설에 온 뮤지션은 당연히 기분이 좋아진다.
평소에 못 만지는 비싼 장비들을 잔뜩 만질 수 있으니까.
“딱 보니까 이제 중학교 졸업한 거 같네!”
“어떻게 아셨어요?”
“이맘때 쯤에 예비 고1들이 많이 찾아오거든~”
“아하.”
“학교는 어디?”
“유산고등학교요.”
“아~ 유산고~”
직원은 뭔가 잘 알겠다는 듯이 멋대로 서류를 작성해 내려갔다.
“거기도 실용음악 하는 애들 많지 않아? 기타 치면 친구 사귀기 좋겠네~ 부럽다~”
“아··· 그렇죠.”
예고 입시에서 떨어진 애들.
그럼에도 여기 근처가 좋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애들이 많았다.
예고 급으로 등록금이 비싸지도, 예고급으로 빡세지도 않지만 어느 정도 음악 하는 애들을 위한 최저한의 기반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곳.
그곳이 내가 다니던 학교였다.
물론, 난 그냥 가까워서 갔다.
“기타는 ··· 취미로 하는 거야? 시작한지 얼마나 됐어?”
“한 ··· 1년쯤이요.”
20년이요.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나이가 마이너스 되어 버리는데 아무리 사실이라도 이건 좀 아니다.
“음음. 그렇구나. 우선 2주 동안은 아무래도 무료수강이라 ··· 개인레슨은 못 하고 그룹 레슨인데 괜찮지?”
“네.”
“그래? 그럼 기타실력 한 번 볼까?”
그녀는 나에게 자기가 작성한 서류를 내밀었다. 내가 쓸 것은 이름과 주소뿐.
“김···수재? 이름 참 특이하네~”
고등학생 때 이름 때문에 좀 튀었지. 네가 ‘기타 수재’냐고.
밥만 먹고 기타만 치던 시절이라 정말 수재급으로 실력이 늘긴 했다. 내가 예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다른 입시생과는 다른 연주법과 자작곡 덕이었으니까.
“난 유선희야. 드럼 보조강사고.”
“아 ···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오래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상담실에서 나갔다. 복도에는 각자 수다를 떨거나, 연습실 자리가 언제 비나 기다리고 있는 애들이 보였다.
“얘들아 합주실 쓸 거야~ 좀 시끄러울 수도 있어.”
“왜요?! 평소에는 못 쓰게 하시면서!”
“신입 기타 좀 보려고. 1년 쳤다는데?”
유선희는 괜한 어그로를 끌었다. 하지만 ‘대충 내일부터 나오면 돼요~’ 라며 성의 없는 모습보다는 나았다.
‘회귀 후 즉석 무대인가.’
과거에 이때 난 개 털렸었다.
보통 학원에 다니는 학생이나 선생들의 기대치는 일반인들보다는 높았다.
‘1년 기타 쳤다’ 라고 말하면 어느정도 속주 좀 하고, 음박도 크게 안 벗어나는 그런 수준을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1년?”
“들을 것도 없어. 취미라잖아~”
“그치? 배운 애들은 못 따라가지~”
여자애들의 조잘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 바늘처럼 박혔다.
그렇다.
1년 취미로 가끔 타브악보 보면서 곡 따라 하는 수준으로는, 기대받은 만큼의 실력을 낼 수는 없다.
기타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같은 클래식 현악기와는 다르다.
뒤에 나열된 저것들은 독학이 거의 불가능하다. 당장 바이올린만 따져봐도 입문 시 누가 봐주지 않으면 활 잡는 법, 제대로 된 소리 내는 법을 터득할 수 없다.
하지만 기타는 어떤가?
코드 잡고 대충 후리면 소리가 난다!
Tab라는 프렛 하나하나를 짚어주는 악보도 있어서 연습하기도 쉽다.
피크 쥐는 법, 크로매틱 연습하는 법 등등 인터넷에 검색만 하면 좌르륵 나온다.
기타는 입문이 쉽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기타에 도전한다.
그리고 곡 몇 개 정도를 칠 수 있게 된 후 흥미를 잃는다.
“기타는 그걸로 칠 거야?”
“네. 이걸로 할게요.”
“풋.”
“너희 비웃을 거면 절로 가!”
“아니에요~ 궁금해서 그래요~”
합주실에는 대여용 기타 몇 개가 있었다.
펜더 스탠다드 스트라토 캐스터 ··· 에피폰 레스폴 스탠다드.
깁슨은 없었다. 비싸서 그런가.
난 사실 레스폴과 스트랫 둘 다 좋아한다.
성향이 크게 다른 두 기타이지만, 둘 다 독특한 매력이 있다.
내 손에, 20만원짜리 콜트 입문용 기타가 쥐어졌다.
선버스트 색상의 바디와 둥근 픽가드. 빼빼 마른 로즈우드 지판. 관리를 전혀 안 했는지 프렛을 짚어 보니 녹도 느껴졌다.
‘줄도 안 갈았네 망할.’
“곡은 뭘로 할래?”
학원등록을 최대한 꾀어내기 위해서인지, bgm까지 깔아주는 서비스까지.
그녀는 스피커를 자신의 핸드폰과 연결했다.
‘이때는 아직 핸드폰 이어폰 잭이 살아 있었구나 ···’
살기 좋은 시대다.
“The off sprring의 the kids aren’t alright 이요.”
“그래. 잠깐만~”
기타 솔로곡은 아니지만, 유명한 곡이다.
The offspring이라는 밴드의 이름값뿐만 아니라, bgm등으로도 자주 쓰여서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법하다.
“자, 준비되면 얘기해.”
앰프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펜더와 마샬.
나는 기타를 마샬앰프에 연결했다.
케이블도 내가 집에서 쓰던 싸구려와는 다른, 10미터에 10만원은 호가하는 케이블이다.
“역시 앰프는 마샬이지~”
“클린톤은 펜더가 더 나아.”
“마샬은 클린톤도 좋거든?”
지켜보고 있던 남학생 둘이 앰프를 가지고 열띤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앰프에 답은 없단다 얘들아.
앰프는 마샬 jvm410h 풀진공관 앰프. 거기에 한 방짜리 스피커가 밑에 찰떡처럼 붙어 있다.
보통 공연장에는 두 방짜리를 쓰지만, 여긴 그냥 합주실이니 큰 의미가 없을 터.
나는 전원을 켜서 앰프를 예열시켰다.
“바로 안 쳐?”
“열 오를 때까지 기다려야죠. 오늘 한 번도 안 쳤잖아요?”
차갑던데.
“풉, 그냥 치지 뭔.”
멋드러진 염색에 펌까지 한 여학생이 피식 거렸다.
진공관 앰프는 열이 오르며 소리가 달라진다.
보통은 십 수분은 기다려야 하는데 나는 눈살에 못 이겨 그냥 마스터 볼륨을 조절했다.
트레블 적게, 미들 중간, 베이스 좀 많이.
원래라면 톤 메이킹에 더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 지금은 이펙터도 없고 공간계는 앰프 리버브 뿐이다.
난 리버브를 아주 미약하게 넣었다.
-좌아아아아아앙!
나는 파워코드를 잡고 줄을 튕겼다. 튜닝은 다행히 크게 틀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저거 락 아니야?”
“백킹위주. 취미 맞네.”
맞다.
보컬이 있는 밴드인 이상, 리드기타가 멜로디 연주로 날뛰는 일은 잘 없다.
클라이막스, 솔로에서만 리드기타가 앞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이 곡은 초반과 중반의 묵직한 멜로디라인과, 후반부의 기타솔로가 있다.
그리 어렵진 않지만 밴딩에서 고수와 초보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곡이다.
“패달은 ··· 없고.”
“패달까지 쓰려고?”
“솔로에서 톤이 바뀌거든요. 좋은 앰프인데 채널변환도 쓰면 좋죠.”
“수재는 꼼꼼한 성격이구나?”
“그냥 칠게요.”
난 자리에 앉았다.
유선희가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어 주고, 타이밍에 맞춰 곡을 틀었다.
시작됐다.
쟉쟉쟉쟉 쟈앙-
초반의 뮤트백킹으로 시작으로, 잠깐의 짧은 멜로디 연주가 이어진다.
그 다음은 백킹이 잘 받쳐줘야 한다.
이 곡은 베이스라인이 깔아주기만 하고, 기타백킹이 다 해먹는 곡이다.
곡의 템포가 상당히 빠르고, 전체적으로 신나지만 어두운 분위기.
가사를 요악하자면 이랬다.
– 어릴 때의 내 주변 애들은 희망에 차 보였는데 결국은 다 좆돼버렸네~ –
난 흘러나오는 보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피식, 실소를 했다.
그 주변 애들이 꼭 나 같잖아?
“백킹 좀 하는데 ···? 박자 틀어짐이 없어.”
“취, 취미 치곤?”
여자애들의 목소리가 bgm과 기타소리를 뚫고 나에게 전해졌다.
하나같이 독한 소리를 내뱉었잖아 너희들은.
입시 스트레스를 괜히 나한테 풀었잖아.
오른손이 조금 시큰거렸다. 기타에 적응되지 않은 몸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까.
빠른 탬포의 백킹곡은 상당한 피로를 유발한다. ‘락은 그냥 파워코드만 갈기면 되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름의 고충이 있다.
하지만 ··· 그래도 좋았다.
오른손에는 이제 전기 흐르는 듯한 느낌이 나지 않았다.
스물둘 즈음 났던 사고를, 지금의 나는 당하지 않았다.
“이제 솔로 ···”
솔로 파트에서는 기타 줄을 옆으로 밀어서 음을 높이는 ‘밴딩’ 이 도드라진다.
그와 동시에 밑의 현을 치고 화음을 내며 비브라토를 넣어야 한다.
속주가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기술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건 기본기다.
하지만,
카이잉-!
합주실 내에, 오버드라이브를 잔뜩 먹은 화음이 울려 퍼졌다.
이 부분은, 기타 연주자의 뉘앙스가 묻어 나온다.
하이프렛 밴딩으로 인한 기타의 비명. 외침. 그것을 얼마나 자기 방식대로 표현하느냐.
서른 다섯에 다른 뮤지션들을 도와주는 세션직을 하면서도 나는 자작곡과 커버곡을 유튜브에 올리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E급이라도 기타 세션이다. 스펙이 모자라고, 사고 때문에 오른손에 신경장애가 생겼음에도 나는 기타 세션이었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카아아아앙-!
솔로가 끝나고, 다시 보컬이 돌아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백킹.
나는 흐트러짐 없이 파워코드를 갈겼다.
기타는 재밌다. 짜릿하다.
싸구려 험버커 픽업이 분수에 못 이겨 먹다 토해내는 오버드라이브 사운드도, 기타 현을 일부러 떨 때 생기는 이 파장도.
너무나 좋다.
내 경험과 감정을, 기타에 담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곡이 끝났다.
“···”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간단한 밴드곡을 연주했음에도, 아이들의 표정은 내가 기억하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기타 전공처럼 보이는 여자애들은 눈을 크게 뜨고 있었고, 딱히 전공이 아닌 다른 입시생들도 나름 풀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짝 –
약간 소심해 보이는, 무리에 끼어 있으면서 한마디도 안 하던 여자아이.
그녀는 소심하게 몇 번 손뼉을 치다가 말았다.
찌릿,
난 눈에 힘을 준 채 그들을 노려보았다.
할 말 있으면 해 봐라.
“어 ··· 어. 잘 들었어. 되게 잘 치는데?”
“뭐야, 전공생이야?”
“예고 맞는 거 같은데? 저건 서브기타고.”
“아, 원래 쓰던 기타 고장 나서 가져온 건가?”
“듣다 보니 소리도 좀 괜찮은 거 같아.”
전생에 얘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었나.
나에게는 명확히 들리는 소리로, 그러면서도 작은 소리로.
‘개못쳐,’
‘취미가 그렇지 뭐.’
‘귀만 버렸네.’
‘기타소리 구려.’
입시 스트레스를 한껏 발산하지 않았었나.
하지만 지금은 ···
“다른 곡! 다른 곡 쳐줘!”
“캐논 칠 줄 알아? 락버전.”
“너도 예고생이야?”
나한테 다가왔다.
웃는 얼굴로, 이들은 나에게 다가왔다.
좀 역겹네.
실소가 터져나올 것만 같다.
“곡 하나만 받을게.”
“캐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