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209
216화. 기타의 제왕 (3)
“…”
적막이 흘렀다.
숨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이른바, 집단적 패닉이라는 놈이다.
그리고 그 집단적 패닉은, 약 3분 동안 이어졌다.
가장 먼저 말문을 튼 것은 금발 백인의 여자였다.
“[역시나.]”
“….”
“[예상대로 괴악한 짓을 하려는 모양이군요.]”
“[예상대로라 ….]”
그녀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당황감이 떠올라 있었다.
‘예상대로’라는 표현을 하기에는 조금 그래 보였지만 뭐.
원래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게 대화의 기술이란 거잖아.
그래서 나는 긍정했다.
“[괴악한 짓 맞아.]”
“[퍼포먼스를 위해 50000달러를 쓰다니. 돈이 아깝지는 않던가요?]”
“[… 아이작한테 들었나?]”
“[글쎄요?]”
능청을 피우는구만.
“….”
나는 옆에 있는 아이작의 얼굴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의 ‘포부’가 사라진 아이작에게 말이다.
“[사실 약간 더 초과했어. 부족한 것보다는 넉넉한 게 나으니까.]”
“….”
“[원래 이놈한테 감명을 받아서 냅다 지른 건데 말이야, 중간에 마음이 바뀌더라고.]”
“[바뀌었다고요…?]”
아이작은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 돈을 ‘퍼포먼스용만’으로 쓰기에는 좀 그렇다고나 할까…. 아니, 절대로 아까운 건 아닌데.]”
“…!”
“[분명 다른 사용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 그래서, 찾아낸 겁니까?]”
“[응.]”
“[저 위에 있는 거대한 것을… ‘연주’에도 사용할 겁니까!?]”
“[당연하지!]”
웅성웅성-!
웅성웅성웅성-!
웅성임이 증폭되었다.
동요는, 더더욱 커져만 갔다.
“[무슨 ….]”
이놈들은, 저 위에 매달린 것의 정체를 모른다.
뭔가 거대하고 이상한 것이리라 어림짐작할 수는 있어도, 정확히 추측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불안할 것이다.
공포스러울 것이다.
철근 구조물에 덮인 검은 천이 젖혀지는 순간이 말이다.
전부 내가 바라던 바였다.
티링-!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이곳에 있는 ‘모두’의 핸드폰이, 일제히 울리기 시작했다.
“… 수재씨! 시간이 됐어요!”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20.’
메시지 앱을 열자, 두 자리 숫자가 떡하니 나를 반겼다.
아까 전 안내요원한테 들었던 우리의 ‘진행 순번’이었다.
“[왔다… 왔어!]”
동요하고 있었던 ‘세력’이 일제히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가 무슨 짓을 하던, 원하는 그림은 절대로 안 나올 거야.]”
백인 여자가 등을 돌렸다.
“[그렇고말고!]”
다른 이들 또한 동조했다.
“[그럼, 기대하겠습니다.]”
“[작전타임인가?]”
“[후후, 그렇겠죠 아마.]”
아이작도 그들과 행동을 같이했다.
“….”
덩그러니 남은 것은 우리 팀과 ‘세력’에 가담하지 않은 참가자들뿐.
“… 수재 몇 번이야?”
“20번.”
“난 18번 ….”
“가깝네.”
“그러게 ….”
아주 초반은 아니다.
다만, 끄트머리 순번 또한 아니다.
적당히 중간.
눈에 띄기 적당한 순번.
“좀 앉아 있자.”
“응!”
나와 소이는 마지막으로 기타 점검 좀 할 겸, 대기실에 가서 쉬기로 했다.
“[시작까지 40분 남았습니다!]”
시작이, 정말 머지않았다.
***
“[입장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
정장으로 깔맞춤한 직원들이 건물 밖에서 소리치자, 환호성이 밀어닥쳤다.
물론 환호성이 비명으로 변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규모가 규모인 만큼의 입장 시간은 여유로웠지만, 죽치고 있던 관객들의 기분은 전혀 여유롭지 못했다.
“[지, 진정해 주십시오!]”
진행요원의 외침에서, 급박함이 진득하게 묻어나왔다.
거대한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세이프 라인이 끊어지자마자 사람들이 흥분해서 밀어닥치기 시작한 것이다.
“갸아아아아악!”
“[밀지마아아아악]!”
텐트를 치고 존버의 대장정을 펼친 존버맨부터, 새치기를 시도하려는 양심리스를 거쳐, 입장권도 없이 그저 발이라도 담가보려 들이미는 미친놈까지.
밖의 풍경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비명은 사람들을 흥분시켰고, 눈에 핏대를 세우게 했다.
다만.
그중에서도.
유독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자랑하는 남자가 있었다.
“….”
천하장사급으로 힘이 세서 버티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그를 둘러싼 네 명의 장정들이, 필사적으로 인파를 막아내고 있었다.
“[그냥 왔으면 큰일 날 뻔했어. 들어가지.]”
“[네!]”
중년 남성의 한마디에, 보디가드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서,
“끄아아아아아악!”
다 같이 인파를 갈랐다.
회색 후드티, 선글라스, 초 고광택 레자바지로 무장한 ‘그’가 곧장 향한 곳은 화장실이었다.
“[한국에 있었을 때가 생각나는군.]”
“[그때도 사람이 정말 많지 않습니까?]”
“[맞아. 여기만큼 질서 없지는 않았지만.]”
불과 몇 달 전의 추억.
꽤나 재미있었기도 하고, 곤욕스럽기도 했던 추억.
이곳의 분위기는, 그때와 비슷했다.
동시에, 달랐다.
이번에 ‘그’는 무대 위의 연주자가 아닌, 수만의 관객 중 한 명이 될 생각이었으니까.
“[중간에 아는 사람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좀 그러니, 꾸물대지 말고 곧장…]”
그는 볼일을 끝마치고서 화장실에서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
“….”
일이 그리 쉽게 풀리지는 않으려는 모양이었다.
“[어?]”
남자 화장실에, 진행 요원이 들어왔다.
하필이면 후드를 벗고 있는 상태에서.
썬글라스를 쓰고 있다고는 해도, 도저히 아우라를 감출 수가 없는 상태에서!
“[이. 잉… 이이이.. 잉!]”
이름 모를 젊은 남성은, 언어 회로가 고장 나기라도 한 듯이 이잉ㅇ이라며 알 수 없는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는,
“쉿.”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댐으로써,
스태프를 진정시켰다.
“[바, 바 반갑습니다! 여긴 어떤 일로… 아, 혹시 그분들을 만나실 생각이시라면 지금 바로 …!]”
“[아니.]”
그는 눈치가 더럽게 빠른 스태프의 말을 아주 단호하게 잘랐다.
“[그럴 필요는 없어. 나는 관객이야. 다른 관객과 똑같이 대해주면 좋겠어.]”
“[…아. 넵!]”
“[그나저나 ‘그분들’이라….]”
“[왜 그러십니까?]”
그는 한쪽 눈썹을 올리며 아주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사실 그렇다.
그는 이번 대회가 젊은 기타리스트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대회라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업계에 매우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기타리스트가 초빙되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난 비브라토 피치가 어긋나는 게 정말 싫거든.]”
“[… 예?]”
“[뭐랄까, 그에겐 미안하지만. 그는 정말 좋은 친구지만 … 마음은 그래.]”
스태프는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냥 개인적인 푸념이자, 약간의 불만 사항이었으니까.
자신과 정반대의 성향의,
와우 페달과 험버커 픽업과 플로이드로즈 브릿지를 지극히 사랑하는 남자가 직접 참가자들과 마주하다니.
이해는 가는데, 마음 한구석이 좀 그랬다.
“[그래, 둘이 직접 심사를 한다나?]”
“[그들은 조언가입니다. 심사위원은 아닙니다.]”
“[가린다고 가려질까 모르겠군. 그 외에 특별 사항은 없나?]”
“[아, 그 ….]”
스태프는 말을 잡아 늘였다.
뭔가, 할 말이 더 남아있다는 듯이.
“[… 다른 분들도 … 오셨습니다.]”
“[…?]”
“[많이 … 오셨습니다.]”
많이 왔다라 …
누가, 얼마나 많이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 그렇군.]”
그는 일부러 질문을 피했다.
오늘만큼은, 관객으로서 이곳에 있기로 했으니까.
“[수고하라고.]”
그는 손을 털고, 후드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인파에 섞여, 관객석으로 향했다.
세계 최고의 영 기타리스트가 탄생하는 과정을, 눈에 새기러 말이다.
근데…
“[허.]”
“[허허허허허!]”
“[흐흐흐흐흐흐!]”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아니면 진짜 누군가 고의로 장난을 친 걸까?
자기들 딴에 ‘배려’라고 생각해서 이딴 짓을 한 건가?!
“[오, 자네도 왔구만.]”
“[여기 자리 비었네.]”
그곳은,
‘대가’들의 자리였다.
그와 같이, 최대한 눈에 안 띄도록 얼굴을 가린.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오히려 엄청나게 눈에 띄는.
이른바 노인 배려석.
“….”
“[하아….]”
“[좋은 날에 한숨을 쉬면 안 되지!]”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뵙습니다.]”
정중히 인사를 했다.
***
퍼포먼스 준비 모두 ok
기타 상태 ok
내 상태 ok
소이 상태 ok… 처럼 보임.
회사 사람들은 관객석에 착석 완료.
모든 것이 완벽하다.
그러므로, 적막하다.
대기실에 대기 중인 사람의 수가 결코 적지는 않음에도, 손목시계의 초침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우리는 의자에 앉아 적막함을 즐겼다.
눈을 감고, 초를 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덜컥-!
육중한 대기실의 문이 열리며, 진행 스태프가 들어왔다.
“[10분 전입니다. 준비해 주십시오.]”
“….”
벌떡-!
턱수염과 머리털이 모두 덥수룩한, 마른 남자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마도 ‘1번’인가 보다.
“[직접 관람하실 분들은 임시 대기실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단, 무대 자체는 이곳에 설치된 모니터로 보는 게 더 잘 보일 겁니다.]”
산적상의 남자는 하드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내었다.
외견과 깔맞춤이라도 한 것 같은, 해골이 잔뜩 그려져 있는 슈퍼 스트랫 기타를 말이다.
“[… 초반은 내가 맡게 됐군. 이참에 아주 정신을 못 차리게 해주지.]”
나는 그가 누군지 모른다.
근데, 세력 중 한 사람 같긴 하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피식, 웃음을 짓더니.
터벅터벅- 대기실에서 걸어 나갔다.
“… 우리도 가 있을까?”
“그러는 게 좋겠다.”
우리도 스태프를 따라 임시 대기실로 향했다.
과연 리허설조차 하지 않은 ‘무대’가, 제대로 진행이 될까?
중간에 뻑이라도 나는 게 아닐까?
뭐 걱정하기에는 너무 늦은 타이밍이긴 하다.
늦은 …
“… 늦네?”
“응?”
“김태현…!”
“어?!”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평소에도 얘기를 잘 안 나눠서 눈치를 못 챘다.
김태현.
아직 안 왔다.
“저, 전화…!”
“내가 걸게.”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켜서 김태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받지를 않았다.
몇 번을 걸어도 말이다.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
“어제 카톡을 하긴 했는데….”
혹시 임시 대기실에 있는 건가?
우리는 걷는 속도를 올렸다.
이내 뛰는 꼴이 됐다.
대기실에서 임시 대기실로 이어지는 간이 통로를 지나니, 곧바로 무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음은 들려왔지만, 아레나는 어두웠다.
하지만 이내,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스태프들이 장비를 세팅하는 달그락거리는 소음과 함께,
“[전 세계의 젊은 기타리스트를 한데 모아 펼치는, 앞으로 영원토록 기억될 W-legc! 곧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아까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형형색색에 화려한 조명이,
파앙-!
무대로,
쏟아졌다.
“[삼사위원 소개 따위는 연주를 듣고 나서 해도 늦지 않습니다! 저희는 관객 여러분들의 시간을 더 이상 빼앗을 생각이 없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2만이 넘어 보이는 관객들의 목에서, 우렁찬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귀가 아릴 정도였다.
“[첫 번째 참가자, 나와주세요!]”
하지만 김태현은 도통 보이질 않았다.
… 그렇게 생각했었다.
카아앙-!
날카로운 기타 소리가 고막을 흔들었다.
정말 개뜬금 없이 무대가 시작했다.
그리고 …
“….”
여기 있어서는 안 될, 털이 덥수룩한 남자가 간이 대기실에 들어왔다.
“[…당신이 1번 아니었습니까?]”
“[무슨 소리지? 난 2번이다만.]”
아니었어?
1번이 아니었다고?
그럼 … 1번은.
1번은 대체 누구야?
… 의문은 금세 풀렸다.
무대에 듬성듬성 놓여 있던 스택 앰프 중 하나가,
-퐁!
경쾌한 소리를 내며, 뚜껑이 따였으니까.
“김태현!?”
소년은, 앰프 속에서 솟아났다.
번개에 맞아 새까맣게 타버린 기타를 들고서,
알에서 깨어나듯이!
“저, 저거 퍼포먼스지 …?”
“그래 보이네.”
뭔가 날 피하는 느낌이 들긴 하던데.
이것 때문에 그렇구나.
이걸 준비하고 있었구나!
“짜식.”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리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 부, 부화했다아아아아아악!
– 앰프에서 기타리스트가 태어났다!
“[한국에는 정녕 미친놈들밖에 없는 건가 …!?]”
그리고 괴악한 표정을 짓기 시작하는 털이 덥수룩한 남자를 향해,
“[이제 막 걸음마 뗀 거야.]”
새하얀 이를 내비쳤다.
“[거, 걸음마!?]”
“[나라면 앰프 폭파 시키면서 나왔음.]”
“[…!]”
“[암.]”
대회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