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23
환상적이며 환상인 기타 (2)
니까짓게라니.
700 원주고 메로나 산 손님한테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난 손님이다 손님. 그리고 손님은 왕이다.
나는 왕이다!
난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나가기로 했다.
“진짭니다. 거짓말이면 백만 원 드릴게요.”
“하아 ···”
인상을 찌푸리며 크게 한숨을 내쉬는 주인장.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걸까?
“꼬마야, 네가 어떻게 나숙호 기타리스트를 아는지는 모르겠는데, 함부로 남의 이름 대고 그러면 안 돼. 기타 가방 메고 있는 거 보니까 기타 치는 모양인데 ···”
수염아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담배를 까서 입에 찔러넣었다.
성장기 학생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니. 가위로 돗대 잘라도 무죄다.
나는 카운터에서 가위를 뽑아들었다.
“어우. 뭐야.”
“담배 끊으시져 ···”
수염아재의 얼굴은 말 그대로 미친놈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여기가 악기점이란 건 어떻게 안 거야? 지도에도 안 올라가 있을 텐데?”
나는 지갑을 뒤져서 나선생님에게 받은 명함을 꺼냈다.
“이건 ···.”
진짜 대충 만들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명함.
명함집 기본 탬플릿도 이것보다는 훨씬 낫겠다.
“··· 왜 네가 이걸 가지고 있어.”
“그러니까 나숙호 선생님께 받았다니까요. 우리 학교에서 기타 가르치고 계세요.”
“허어 ···”
수염아재는 담배를 한 번 깊숙히 빨더니 고뇌하듯이 턱을 괴었다.
실내에서 담배 피면 물건에 냄새 다 밸텐데
진짜 장사할 생각이 1도 없어 보이는 아저씨다.
“··· 내 명함 맞긴 한데··· 나숙호 선생님이 강사를 하신다고? 대학생이야?”
“고등학생인데요.”
“예술고?”
“유산고요.”
“···.”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도 이해한다.
‘나숙호’ 기타리스트가 왜 고등학교까지 가서 강의를 할까. 모셔가려는 대학들이 번호표 뽑고 줄까지 서 있는 상황인데.
회귀 전에 지인들에게 말했을 때도 대부분 믿질 않았다.
“아 ··· 애들 가르친다고 들은 적은 있는데, 부잣집 도련님 과외 같은 거 하시는 줄 알았지··· 근데 이런···”
아저씨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산고라고?. 수업은 몇 번 들어가시나?”
“주 2회 들어오시는데요?”
“흐음 ···”
나는 멀뚱히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기다렸다.
그 어떤 회사도 따라 할 수 없는 독특한 멜론 맛이 입에 감돌았다.
먹으니까 하나 더 먹고 싶네.
난 쓰레기통에 막대기를 던졌다.
그리고 냉동고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더 꺼내어 멋대로 입에 넣었다.
담배냄새의 복수다.
“악기 본다고 했지. 기다려봐.”
수염 아재는 드르륵 서랍을 열더니 열쇠 꾸러미를 하나 꺼냈다.
“고등학생이 살만한 게 ···”
중얼중얼거리며 그는 슈퍼 구석에 있는 낡은 문으로 향했다.
저 안에 악기가 있는 건가?
근데 이런 데서 악기점을 차려도 장사가 되긴 하는 건가?
사려고 마음먹은 사람도 계단 올라오다가 토하겠다.
“펜더 오리지널 빈티지가 있다는 게 사실인가요?”
수염 아재는 내 말을 듣자마자 멈칫했다.
“··· 나선생님께서 이야기해주셨니?”
“예.”
“선생님이 그걸 말씀하시다니··· 따라 와라.”
덜컹-!
문이 열렸다.
녹슨 경첩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가 공간을 메웠다.
“어 ···”
뭐야. 밖에는 진짜 완전 다 쓰러져 가는 외견인데.
안쪽은 좀 괜찮잖아?
담배냄새 가득 배 있는 저 슈퍼마켙은 페이크고, 사실 이게 메인이라는 느낌이네.
은은한 원목 인테리어의 실내와 오렌지색 조명. 좁은데다 물건도 몇 개 없었지만 그래도 악기 파는 곳 특유의 냄새가 났다.
“후, 습도계가 ···”
제습기와 가습기가 비치되어 습도가 맞춰져 있었다. 웬만한 대형 악기점보다는 훨씬 나은데.
대형 악기점 같은 경우는 습도 온도 이런 거 신경 안 쓰고 방치하는 게 대부분이니까.
“기타는 일렉기타?”
“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펜더 오리지널 빈티지가 어디 있는지 찾기 위해서였다.
“없네 ···”
펜더, 깁슨. 고가 악기들이 즐비했지만
오리지널 빈티지는 보이지 않았다.
가게 위치도 이상한데 좁아터진 공간에 중고차가격 악기들이 막 굴러다니는구만.
“이거 찾나?”
수염 아재는 벽에 달린 손잡이를 드르륵- 하고 열었다.
벽 안에 꽁꽁 감추어져 있는 기타에, 내 시선이 고정됐다.
“와 ···”
선버스트 색상의 스트라토캐스터.
기타 이곳 저곳에 있는 흠집은 과하지 않고 아주 적당하다.
애초에 오래된 기타라고 해서 무조건 걸레짝 모습을 한 것은 아니다.
수천시간의 연주와 더불어 기타를 차 트렁크에 대충 처박아 두는 관대함이 있어야만 헤비레릭 기타가 완성된다.
눈앞에 ‘이것’은 레릭이지만 과하지 않은 레릭이었다.
정말, 아름다운 기타다.
넥은 완전히 누렇게 익어서 황금빛을 띠었다. ‘시간’이 가져다주는 특유의 분위기가, 나의 시력을 마비시키는 것만 같았다.
“와···!”
나는 기타를 향해 달려갔다. 나무 벽 안에 또 유리장이 있었기에, 직접 만질 수는 없었다.
“펜더 스트라토 캐스터 57년산. 리이슈가 아니라 ‘진짜’ 57년에 생산된 기타다.”
“···.”
“어때?”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50,60년대 펜더 기타는 전설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몸통이 비어있지 않은 ‘솔리드 기타’는 펜더로부터 시작된다.
그전에도 몇몇 모델들이 있기는 했지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그 모습, 그 형태는 레오 펜더에 의해서 정립되었다.
‘전성기’ 시절의 5,60년대 펜더기타.
그것이 눈앞에 있다.
“방탄유리라 오함마로 내리쳐도 안 깨져. 습도 온도 유지도 아주 잘 되고 있지.”
대단하다.
이런 기타가 한국에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한국에도 오리지널 몇대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상태가 좋은 건 찾기 힘들 거다.
“이, 이거 얼마에요?”
“하하, 사려고? 음 그래 ··· 한 5000만 원만 받지.”
오천만원이면 얼마지?
그랜저 하나 뽑고 깁슨이랑 펜더 사고 앰프까지 맞춰도 돈이 남는다.
“이상하냐? 이런 낡은 기타가 5000만 원이라니.”
“아니, 이해해요.”
“오호··· ”
수염 아재는 고개를 까딱했다.
“50,60년대의 펜더는 유실되었으니까요.”
“··· 그렇지. 정확해.”
“수많은 음악들이 그 시대를 거치며 탄생했고, 뮤지션들은 그때의 펜더기타를 사용했죠.”
“공부도 좀 한 모양이구나.”
수염 아재는 의자를 두 개를 끌고 오더니 풀썩, 자리에 앉았다.
“기타리스트들은 참 이상해. 수많은 종류의 기타가 나오고, 새로운 페러다임이 계속 생기는데 5,60년대 기타소리만 찾지.”
“···”
“그러니까 이건 환상이야. 기타리스트들의 환상.”
수염아재는, 나선생님과 똑같은 말을 했다.
··· 기타리스트들의 환상.
지나가 버린 시대와 유물에 대한 환상.
나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런 의미였던 걸까.
환상적이다. 라고 말할 때의 환상이 아니라,
환각에 가까운 의미의 ‘환상.’
“참 세상이 얄궂지? 승승장구하던 회사가 70년대에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그냥 폴싹 주저앉아버렸어. 시간이 지나서 회사를 되찾으니, 소리가 사라져 버렸어. 그 소리를 찾으려고 돈을 한없이 쏟아붓는데 막상 사람들은 만족을 못해.”
수염 아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타에 걸린 봉인을 풀기 시작했다.
대체 몇 단계 잠금인지 모르겠다.
5천만 원짜리 기타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한번 쳐 봐라. 나선생님이 소개해주셨으니, 실력은 믿을만하겠지.”
그는 기타를 내밀었다.
5천만원 짜리 기타를 말이다.
“···네.”
난 기타를 받아들었다.
펜더 오리지널 빈티지 스트라토 캐스터.
의자에 조심스레 앉아 넥을 쓱 훑어본다.
오돌토돌 튀어나온 느낌은 하나도 없다.
60년이 지난 기타임에도 프렛은 녹 하나 없이 관리되고 있었다.
다른 파츠에는 녹이 무성하지만, 연주에 필요한 프렛만은 멀쩡했다.
나는 풀려있던 기타줄을 감아서 튜닝을 끝마쳤다.
그리고 구석에 놓여 있던 ···
“트윈리버브 ··· 와.”
회귀하고 나서는 한 번도 못 봤네.
“펜더에는 트윈 리버브지. 요즘 거지만.”
앰프까지 빈티지는 아니지만, 상관없다.
나는 C코드를 잡고 튕겨보았다.
기타리스트들의 ‘환상’이, 잔잔하게 뿜어져 나왔다.
클린톤임에도 미세하게 걸리는 노이즈. 고음이 부각되는 펜더 기타 특유의 소리.
챵- 챵챵-
나는 신나게 기타줄을 튕겼다.
소리는 정갈하지도, 깨끗하지도 않다.
하지만 기타 본연의 소리다.
일렉기타가 본격적으로 태동하던, 50년대의 소리이다.
··· 좋다.
이런 오리지널 펜더를 쳐 보는 것은 처음인데, 너무 좋다.
“사람들은 빈티지 기타를 참 많이 찾아. 근데 이게 진짜 빈티지야. 나무도, 픽업도, 회로도. 전부다.”
“··· 그렇죠. 나중에 나온 빈티지 기타는 이걸 카피한 것 뿐이니까···”
“생각보다 잘 아네. 기타 얼마나 쳤어?”
“꽤 오래 쳤어요. 거의 반평생.”
“쬐끄만게 은근 까부네~”
나는 멋대로 연주를 시작했다.
코드를 짚고, 스케일을 후리고, 어차피 살 것도 아닌데 밴딩도 마음대로 했다.
손에 착착 감기는 야구빠따같이 두꺼운 넥.
오버드라이브를 걸고 제대로 된 곡의 멜로디를 짚는다.
기타의 ‘신’ 지미 헨드릭스의 Red House.
지미 헨드릭스의 첫 앨범에 수록된 이 곡을, 나는 정말 좋아한다.
모든 일렉기타리스트들은 지미 헨드릭스의 영향 아래 있다.
무명 기타리스트도, 내가 좋아하는 지미 페이지도, 잉베이 말름스틴도.
누구 하나 빠짐없이 전부 다 말이다.
“선곡 괜찮네 ···”
수염 아재는 눈을 감더니 조용히 내 연주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도드라지는 뉘앙스의 밴딩과 중간중간 섞여있는 속주.
60년대 풍취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곡이 바로 레드하우스다.
레오 펜더가 일렉기타의 ‘형태’을 정립한 사람이라면
지미 헨드릭스는 일렉기타의 ‘소리’와 ‘연주’를 정립한 사람이다.
나는 곡을 진행해나감에 따라, 내 특기인 해머링과 풀링으로 최대한 본래 느낌을 흉내 내려 애썼다.
5,60년대의 사운드.
새로운 음악이 탄생하던, 태동기의 소리.
그것이 나를 감쌌다.
“···너무 좋다.”
나는 곡을 마무리하며 숨을 토해냈다.
수염 아재는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눈빛이 똘망똘망하다.
“··· 예고생이 아니라고?”
내 연주를 들은 아저씨의 첫 질문이었다.
“예.”
“··· 아니, 이게 뭔 말이 ···”
수염 아재는 고개를 계속 저었다.
“말이 안 되는데? 아니, 이게 ··· 어떻게···”
줄곧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어투를 쓰던 수염아재는 갑작스레 말을 더듬었다.
“나이. 나이는? 고3이겠지?”
“고1인데요.”
“··· 고1이라고? 아니 고1이 이걸 어떻게 연주해?”
···.
연주는 할 수 있겠지.
느낌을 살리는 게 힘들 뿐이다.
“··· 네 기타 한번 보자.”
난 놓아둔 기타가방에서 기타를 꺼냈다.
“콜트 ··· 입문자용에다가 ···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네. 근데 실력이 이렇다고?”
“예.”
20년 쳤다고 드립 칠 분위기가 아니네.
드립이 아니긴 한데.
“내가 살다살다, 17살에 이 정도 연주하는 애는 처음 본다. 과장이 아니라 ···”
긴가민가한 표정의 수염아재는 나에게 곡 몇 개를 더 부탁했다.
다 아는 것들이라 나는 신청곡을 계속해서 쳤다.
사실, 조금이라도 더 5천만원짜리 기타를 잡아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좋구만 진짜. 훔쳐가고 싶을 정도다.
수염아재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갑자기 지갑을 뒤적거렸다.
“자.”
명함 한 장.
“자.”
명함 또 한 장.
“하나는 내가 아는 악기점 사장이고, 하나는 공장 사장이다.”
“··· 이건?”
“나숙호 선생님 이름 팔길래 뭐하는 놈인가 했더니만, 그 양반 진짜 호랑이 같아. 이걸 대체 어떻게 찾은 거야?”
수염아재는 내 얼굴을 훑듯이 들여다봤다.
“이름은?”
“김수재입니다.”
“그래 김수재. 난 박현석이다.”
···박현석.
익숙한 이름이었다.
너무많이 들어서 익숙한 그 이름 ···
“어··· 어? 설마 그 작곡가··· 그 아이돌이랑 가수 작곡하시는···”
이번엔 내가 말을 더듬었다.
“작곡가지. 슈퍼도 하고, 작곡도 하고, 악기도 팔고.”
진짜 문어발이네. 작곡도 문어발로 하던데.
어이가 없어서 머리가 터져버릴 지경이었다.
난 이 사람을 안다.
회귀전 민수의 도움으로, ‘세션기타’일을 받은 적이 있었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했지만, 나름 유명한 사람이라그런지 보수가 꽤 괜찮았다.
전화상으론 되게 쿨한 성격이던데 ···
“와 진짜 나숙호 선생님은 대단하다 대단해. 어떻게 어딜 갈 때마다 사건에 엮이냐. 요즘 뭐하시나 했더니, 하··· 여전히 행동을 알 수가 없어.”
“···”
“갑자기 학생 가르치신다길래 은퇴하나 싶었지. 인재 발굴하러 간 거였네. 이야 진짜.”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선생님께 오랜만에 연락이나 해 봐야겠다. 악기 사러 왔다고 했지? 아무거나 골라. 선생님 얼굴 봐서 매입가로 그냥 줄게.”
매입가로 가져가라고?
그래도 되는 건가?
아니 잠깐만 매입가라 ··· 쳐도.
여기 있는거 죄다 비싸 보이는데.
나는 재빨리 기타가 놓인 거치대를 둘러보았다.
“이건 얼마예요?”
“한 100주고 매입했었나?”
역시 아메리칸 펜더는 비싸네.
멕시코 펜더는 놓여 있지도 않고.
나는 계속해서 기타들을 살폈다.
그리고 문뜩, 시선을 강탈하는 놈을 찾아냈다.
피에스타 레드 색상의 상큼한 ··· 스트라토 캐스터.
“이건요?”
“아 그거? 어디 보자 ···기억이 안 나네. 한 15만 주고 가져가.”
“이게요!?”
나는 무심코 소리를 질렀다.
“몰라 기억이 안 나. 그거 전주인이 얼마 치지도 않았을걸? 구성이 좀 특이하지?”
이걸 15에 살 수 있다고? 내 기타보다 넘사벽 소리를 내주는 이걸?
나는 기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미들 픽업 높이가 상당히 낮은데, 기본 픽업이 아니었다.
던컨 싱글형 험버커. 꽤 비싼 놈이다.
이 손가락만한게 내 콜트기타랑 가격이 맞먹는다.
“··· 피크가 미들픽업에 걸렸는지 팍 내려놨네요. 험버커 박은건 낮아진 높이를 만회하려 그런 거 같고 ···”
“아니, 어떻게 그리 잘 알아?”
“짬밥이죠 짬밥. 되게 괜찮은데요?”
기타 값이랑 픽업값만 해도 80은 족히 나올 거다.
이걸 15에 가져갈 수 있다니 ··· 횡재잖아.
“근데 의외네. 펜더 가져갈 줄 알았더만.”
“펜더는 너무 비싸요. 그리고 이것도 펜더긴 펜더죠.”
“펜더긴 펜더지.”
넥감이 너무 좋다.
색깔도 예쁘다.
“그, 어딨어요 atm.”
“저어기. 계단 올라가면 나와.”
“셋업 해주세요! 줄 갈아주시고요. 퓨어니켈로.”
“허참, 까다롭네. 기다려봐. 프렛 녹도 좀 지워줄게.”
나는 곧바로 뛰쳐나가서 atm을 향해 달렸다.
상금이 들어와 있어야 하는데 ···
다행히 돈이 찍혀 있다.
난 곧바로 15만원을 아저씨에게 넘겼다.
턱-
“끝났나요?”
“좀 기다려. 급하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펜더 기타는 아니다.
하지만 좋은 기타이다.
모르는 사람은 메이커 마크를 보며 얕보고,
쳐 본 사람은 ‘단점’ 지적을 아예 안 하는 기타.
난 셋업이 끝난 기타를 손에 쥐었다.
50년대를 소리를 모티브로 하였지만 모던한 성향까지 잡은, 은근히 범용성이 넘치는 이놈.
스콰이어 바이 펜더 클래식바이브 스트라토캐스터 50s
“그냥 새건데요 ···?”
“새거라니까. 잘 써. 좋은 기타야. 펜더 스티커도 붙여줄까?”
“아뇨 됐어요.”
나는 기타를 받아들고서 꼼꼼히 살펴보았다.
일부 파츠에 녹이 났지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다.
깨끗하다.
“참 웃겨. 기타랑 기타리스트는 같은 길을 걸어가는데, 다들 펜더 잡으려고만 하지 이걸 쓰려고는 안 하거든.”
“··· 뭐 그렇죠.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이 펜더를 썼으니까.”
펜더기타와 같이 걸었던 기타리스트들의 인생.
그리고 그것을 동경하는 기타키드들.
펜더는 레퍼런스이자 스탠다드다. 하지만,
“제가 제 의지로 기타리스트의 길을 걷는 거지, 기타가 걸어주는 건 아니잖아요?”
나는 그리 말했다.
오리지널 펜더 ··· 너무 좋다. 너무 훌륭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질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기타는 결국, 기타리스트가 자신을 표현할 때 쓰는 도구일 뿐.
“넌, 환상에 빠져 있지 않구나.”
아저씨는 씨익 웃으며 그리 중얼거렸다.
나선생님이 말씀하신 ‘환상’이 어떤 것인지 이제 알 것 같았다.
그것은 기타리스트들이 마음속에 품는 ‘동경’이다.
내가 50년대 기타를 손에 쥔다고 해서, 지미 헨드릭스가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가지고 싶고, 손에 넣고 싶다.
열망하고, 동경한다.
이게 환상이 아니면 뭐가 환상일까.
‘나선생님 말씀 참 어렵게 하시네.’
나는 무료 기타가방에 기타를 넣고, 쌍기타를 매고서 가게를 나섰다.
“다음에 봬요~”
“필요한 장비 있으면 명함 준 데로 가 봐라~ 내 이름 대도 돼.”
아니 나선생님도 자기 이름 대도 된다고 그랬는데.
또 급발진 당하는 건 아닌지 좀 걱정된다.
“예~ 고맙습니다!”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기타 드럽게 무겁다.
나는 해가 거의 저물어버린 북정마을을 천천히 내려갔다.
띠링-
한참을 계단을 내려가던 도중, 핸드폰이 울렸다.
카톡을 보낸 것은 도현이었다.
-야, 같이 예술고 쳐들어가자
이게 뭔 소리야?
한밤중의 소동
예술고에 쳐들어가자니. 대체 뭔 의미지?
나는 카톡으로 답장 하기보다는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뭔 일이야?”
-우리 학원 예술고 놈들이 시비 걸더니 갑자기 도망감.
“도망갔다고?”
순간 패싸움에라도 말려든 게 아닌가 싶었다. 근데 도망갔다니 대체 무슨 일이지.
‘놈들’ 이라고 했으니까 1:다수 상황 아닌가?
난 도현이가 어떻게 대응했는지가 너무나 궁금했다.
“뭘 했길래 도망가냐?”
-바지벗고 쫓아갔는데?
진짜 미친새끼네.
나라도 도망가겠다.
“그래서 걔네 잡으러 예술고 쳐들어가자고?”
-그렇지.
“좋아 가자.”
여기선 내빼는 게 정답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인정머리가 없는 놈이 아니다.
친구가 시비걸리고, 모욕을 당했다는 데 가만히 있으면 그건 상남자가 아니다.
신발 끈은 안 묶어줘도 차에는 대신 치여줄 수 있는 게 남자의 우정 아닌가.
-빨리 와.
“어디로?”
-우리 학교. 혁오도 불렀어.
난 도현이가 대체 뭘 할 생각인지를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발을 움직였다.
살면서 시비 걸린 적이 참 많다. 그중에서 주먹다짐까지 간 적도 많다.
외국에서는 밴드들이 각자 라이브하우스를 거점으로 잡고, 서로의 영역을 조금씩 침범하며 싸우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경우가 참 적은 편이다.
인디 시장 자체가 아주 작으니까.
서로 한 다리만 건너도 다 아는 사이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끼리 부딪치다 보면 싸움이 난다.
“허억 ··· 허억.”
오늘 진짜 내 허파가 생고생을 하는구나.
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학교 정문을 향해 달렸다.
건방진 놈들한테 매콤한 맛을 보여줄 때다.
“김수재 왔냐? 갑자기 쌍검이네.”
“쌍검이지.”
기타를 두 개나 메고 있어서인지 어깨가 너무 아프다.
“혁오는?”
“저기 오네.”
쟤도 기타 메고 있네. 근데 손에 든게··· 뭐지?
“어우 무거워!”
혁오의 손에 미니 앰프 세 개가 들려 있었다.
“이게 다 뭐야?”
“얘네 학원에 미니 앰프 많다잖아. 그래서 빌려 오라고 했지.”
도현이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빌려··· 왔다고?”
“사실 뽀려옴.”
그렇겠지.
어떤 학원이 학생들한테 앰프를 마음대로 대여해 줘?
참 미래 걱정 없이 사는 놈들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어디 얻어맞진 않았냐?”
“나 존나쌤. 거의 금강불괴.”
저번에 몸 보니까 아니던데.
뭐, 이 미친놈 상대로 예고생들이 도망가는 게 머릿속에 그려지긴 한다.
“야 혁오야.”
“왜?”
“동료가 모욕을 당했다. 모욕을 당하면 갚아주는 게 ‘기사’다.”
“올. 김수재 좀 멋진데. 근데 우리가 왜 기사냐?”
“원래 옛날에는 옷 두껍게 입고 몽둥이 들고 다니면 다 기사였어.”
난 괜히 어깨를 으쓱이며 혁오가 빌려온 미니앰프 하나를 손에 쥐었다.
“이거 건전지 들어 있긴 하냐?”
“아마도? 충전지야. 매일 갈던데.”
“그럼 더 좋지.”
우리는 꾹 입을 다물고서 터벅터벅 예고방향을 향해 걸었다.
우리 학교도 부지가 좀 큰 편이지만, 예고는 더 크다.
특목고인 만큼 ‘기숙사’ 및 각종 용도의 건물들이 들어차 있어서 규모적으로 비교가 안 된다.
우리 학교가 예술학습을 ‘지원’을 하고, 독려하는 학교라면,
예고는 그야말로 ‘예술인’을 키워내는 학교다. 애초에 설립 목적이 딱 정해져 있는 곳이다.
“기숙사로 갔다 이말이지?”
“어.”
“그럼 가서 사과 받아내야지.”
“그렇지.”
나는 어렴풋이 혁오와 도현이가 하고 싶은 것을 이해했다. 아마 이놈들도,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해했겠지.
“설마 이도현 너 이새끼 ···”
“아 들킴?”
사실 시비 걸려서 화난 게 아니라
그냥 깽판치고 싶은 거 아니야?
깽판도 치고 기타도 치고.
난 예고 애들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학교 애들을 대하는 말투가 묘하게 기분 나쁘기 때문이다.
유산고 학생 대다수가 예고 입시에서 떨어져서 온 애들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치피 다 같은 고등학생이고, 프로 기준으로 보면 새싹일 뿐인데.
“그래서, 어떻게 들어가? 교문은 닫혀 있고.”
혁오가 물었다. 멍청하구만.
“넘으면 되잖아.”
“그러네?”
“그렇지?”
우리는 담을 타기 시작했다.
담 넘어보는 건 진짜 오랜만이네. 요즘은 등교 시간 지났다고 정문을 잠가 버리지는 않으니까.
“흡!”
매일 철봉을 조진 게 도움이 되긴 하나 보다.
기타 두 개랑 앰프 하나를 메고 있음에도 나는 손쉽게 담벼락에 올라가 두 사람을 끌어올렸다.
“저 건물이지?”
“어. 저기네.”
“··· 존나재밌겠는데?”
가슴이 막 쿵쾅거린다. 우리는 수상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도록 아주 자연스럽게 걸었다.
현재 시각은 7시 50분.
아직 애들이 잠들 시각은 아니다.
기숙사 저녁점호가 적어도 9시 반은 넘을 터.
그래, 공연하기 딱 적당한 시간이다.
“야, 우선 잭부터 꼽아.”
우리는 각자 들고 있는 앰프를 바닥에 내려놓고선 기타를 연결했다.
기숙사 앞.
아직 건물 대부분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야외공연인가 ···’
야외공연은 진짜 오랜만이네.
내 공연경험은 대부분 지하 클럽에 치중되어 있었다.
좌아아아앙-
나는 파워코드를 잡고 기타를 힘차게 후렸다.
“오 소리 개 찢어지는데?”
“여윽시.”
“뭐야, 기타 바꿨냐?”
“오늘 사온 따끈따끈한 거야. 어떠냐.”
“때깔 지리네”
“스콰이어네. 거기 베이스도 괜찮음.”
새 기타 데뷔식이다. 야밤에 남의 학교에서 소음공해를 일으키다니.
아주 락킹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기타리스트라면 누구나 한 번쯤, 남의 나와바리에 가서 신나게 기타를 치고 싶기 마련이다.
좌아아앙! 좌아아앙!
둥 둥둥-
싸구려 앰프 특유의 다 찢어지는 듯한 기타 소리.
해상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괜찮다.
지금은 밤이고, 주위는 한적하고 조용하다.
야밤에 핸드폰 풀 볼륨으로 틀고 지나다녀도 주변이 왕왕 울리는데
5w짜리 기타앰프라면 어떨까?
더군다나 도현이 베이스 앰프는 10w.
곡을 뽐내고 싶고, 버스킹을 하고 싶다면 부족할 수도 있다.
다만,
키이이이잉-!
나는 12프렛 하모닉스를 튕겼다.
건물에 반사된 특유의 기타고음이 왕왕 울려 퍼졌다.
둥, 둥둥-
도현이 또한 볼륨 노브를 끝까지 올린 채 신나게 베이스를 후리고 있었다.
베이스는 더하다. 저음은 벽을 쉽게 뚫기 때문에, 소음 공해하기 딱이다.
“시비 걸어놓고 도망간 놈들 튀어나와!”
난 크게 외쳤다.
“안나오면 너희 오늘 못 잔다!”
혁오는 도현이가 튕겨주는 베이스라인에 맞춰서 파워코드를 후리기 시작했다.
카아아아앙-!
나는 일부러 펜타토닉 스케일에 왕창 하모닉스를 넣으며 튕겼다.
한밤중에 미친 여자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음이, 예술고에 왕왕 울려 퍼졌다.
“밤새도록 친다!”
혁오도 분위기에 취해서인 한껏 소리를 질렀다.
뭘로 할까.
무슨 곡을 쳐야 할까.
기숙사 창문이 하나 둘 열리더니 무고한 아이들이 고개를 쑥 내밀었다.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띄운 채, 미친놈 보듯이 우리를 쳐다볼 뿐이다.
“음 ··· 존나좋아.”
난 약간 관종끼가 있다.
아니, 꼭 나만이 아니더라도 무대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관종끼가 있다.
예네 둘도 마찬가지겠지.
좋은 표정이구만.
“Sum 41 still waiting가자!”
“오케이!”
나는 도현이의 둥! 하는 도입부에 맞춰 기타 리프에 들어갔다. 리듬기타는 혁오가 맡아주나 보다.
쟉쟉쟉쟉쟉-
둥둥둥둥-
백킹기타 특유의 자글자글한 소리와, 한계까지 몰아붙여진 싸구려 기타앰프가 내뿜는 오버드라이브.
좌아아아앙- 좌아아아앙!
드럼만 있으면 완벽할 텐데.
누가 드럼 좀 갖다주지 않을까?
둥둥둥둥둥-!
“아··· 기타소리 뭐야?”
“실음과 애들이야?”
“우리 학교 교복 아닌데···?”
학교에 가면 어떻게 될까?
징계 먹는 거 아닌가?
뭐, 상관없다.
난 지금 공연을 하고 있다.
그저 청중들이 우리를 받아들일 마음가짐이 좀 부족할 뿐.
“왜 잘쳐 …?”
“몰라, 근데 빨간기타 되게 예쁘다.”
“야! 신청곡도 받아?”
근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소음을 내서 시끄럽게 만들 생각이었는데, 진심을 다해 연주를 하니까 반응이 좀 괜찮다.
뭔 일인가 싶어 창문을 열었던 예술고 학생들은, 이미 특별한 이벤트의 관중이 되어 있었다.
‘이게 아닌데?’
난 큰 소리로 외쳤다.
“신청곡 딱 하나만 받습니다!”
“질풍ㄱ”
“벚꽃ㅇㅁㄴ”
“뭐라는 건지 알 수가 없네.”
“노브레인!”
“오케이 노브레인 넌 내게 반했어.”
아주 유명한 곡이지.
나는 두 사람에게 곡을 아는지 물었다.
얼떨떨한 상황이지만, 도현이랑 혁오도 곡을 외우고 있긴 하나보다.
나는 곧바로 기타리프에 들어갔다.
노브레인의 넌 네게 반했어.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노래다.
보컬도, 마이크도 없지만 어느새인가 우리의 반주를 듣고서 흥얼거리는 관중들이 있었다.
기분 좋으라고 친 기타가 아닌데도 좋아해 주네.
뭐지?
“어?”
기숙사 입구 즈음에서 평범한 인상의 남학생 셋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난 직감적으로 툭, 도현이를 발로 찼다.
도현이는 왼손으로 베이스를 치면서, 오른손으론 앰프를 들고 그 셋에게 다가갔다.
“이, 이도현!?”
“드루와.”
“아니 그 ··· 아까 그건···”
나도 도현이를 따라했다.
개 미친놈 처럼 왼손으로 헤머링을 하며, 오른손으론 앰프를 들었다.
“드루와 이새끼들아.”
“미, 미친놈들이야···”
“야. 또 도망가면 밤새도록 못 자게 해줄게. 좋게좋게 사과하고 끝내라.”
나랑 혁오는 왜소하지 않다. 도현이는 말 할 것도 없다. 키가 우리 셋 중에 제일 크다.
야밤에 앰프들고 와서 소음공해 일으키는 미친놈 셋.
나는 계속해서 기타를 연주했다.
“··· 여, 여기까지 어떻게 왔···”
“고개 숙이고 ‘미안하다’라고 해라.”
난 기타 스트랩을 풀으며 말했다.
“미, 미안해!”
“ ‘미안합니다.’ ”
“미안합니다!”
“ ‘나는 고자입니다.’ ”
“나는 고자입 ··· 응?”
머릿수가 같아지니까 이제서야 이성을 찾은 건가.
뭐 이런 놈들이야 살면서 꽤 많이 볼 수 있는 부류다.
도현이를 때린 것도 아니고 나한테 손 댄 것도 아니다. 여기서 주먹질해봤자 손해만 생길 뿐.
“실력 차이가 느껴지나?”
도현이는 아주 멋들어진 표정으로 그리 말했다.
“어··· 어! 느껴져!”
“그래? 그럼 꺼져.”
“연습 열심히 해라~ 다음에 또 그러면 기타로 대가리 찍는다.”
난 휘적휘적 손을 저었다. 괴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세 명은 그대로 개미처럼 흩어지며 기숙사로 들어갔다.
“이밤중에 무슨 소란이야!”
어이쿠.
경비아저씨다.
우린 재빨리 주변을 정리하며 부리나케 뛰었다.
한 밤중의 아주 짧은 야외 공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야, 근데 넌 뭔 소릴 들었길래 싸움 직전까지 갔냐?”
“나 콩쿠르에서 3등 했다고 괜히 지랄하던데?”
“어휴.”
시비 걸 시간에 곡 하나라도 더 연습하지.
나약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다.
“아 존나재밌다.”
“리얼루다가.”
“찢어지자. 앰프 내일 학교에 가져와. 꼭!”
우린 혁오의 말을 마지막으로 해산했다.
다음 날 아침 담임시간.
“장학금 신청한 애들 바로 따라오면 돼~”
선생님 시선이 나와 도현이에게 유독 오래 머물렀다.
뭐, 그런 거지. 난리를 쳤으면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난 내 행동을 후회 하지 않는다.
“10만 원 상품권 네 장이야. 확인 꼼꼼히 해. 40만 원은 서류에 기입한 통장으로 입금될 거야.”
“왜 절반은 상품권으로 줘요?”
“그러게~”
선생님은 다른 애들을 내보내고서 우리 둘만을 남겼다.
“어제··· 예고에 간 거 너희들이지?”
“윽.”
역시 이렇게 되는구만.
장학금 못 받는 건 아닌가 걱정됐지만, 무사히 잘 받았다.
나에게 걱정거리는 단 하나도 남지 않았다.
“어휴. 아무리 연주를 하고 싶어도 남의 학교까지 가서 그러면 어떻게 해···”
“죄송합니다.”
나는 도현이를 두들기며 빠른 사과를 박았다.
“다음부턴 그러지 말고. 왜 그런 거야?”
“친구 보러 갔는데 걔가 안 나와서요.”
진짜 변명 참 잘 한다 이도현. 그게 통할 거라고 ···
“주의해달라고 예고 측에서 전화가 오긴 했는데 ···. 뭐 큰일은 아닌 것 같아.”
예고에서는 원래 자기들끼리 저런 짓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뭐, 기숙사 앞에서는 안 하겠지만.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현이랑 같은 학원의 예고생들.
선생님에게 이를 만한 깡은 없어 보였다.
이른다 쳐도, 미친놈의 뒷감당을 받아낼 자신이 있을까?
“그래도,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니까 일주일 동안 화장실 청소해. 너희 둘이.”
“윽···”
나는 몰려오는 절망감에 그만 고개를 푹 쳐박을 수밖에 없었다.
“채선생님 이거.”
“아, 감사합니다!”
나는 괜시리 채선생님이 든 종이가 궁금해서 훔쳐보았다.
-예술 고등학교 신입생 음악회 참가 협조 요청서-
“이번 년도에는 이거 하는구나. 저번 년도에는 안 하지 않았어요?”
“어디 보자··· 작년에는 아예 외부 인원을 안 불렀을걸요?”
“흐음 ···”
나랑 도현이는 대놓고 서류를 쳐다보았다.
“이게 뭐예요?”
“옆 예술고에서는 음악회 같은 걸 자주 한단 말이야?”
“네.”
“가끔 이런 공문이 와. 우리도 4월에 신입생음악회 하는데, 학교에서 세 팀씩 서로 행사에 보내는 거야.”
“···그러니까 ··· 우리학교 학생이, 예고생들 앞에서 공연한다는 건가요?”
“그렇지? 그 반대도 되고.”
직감했다.
이거 ··· 개재밌을 거 같다.
나는 도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표정을 보니 이놈도 생각하는 게 똑같구만.
“너희 설마 ···나가게?”
“나가도 돼요?”
“···보통 안 나가려고 하는데?”
“나가도 돼요?
“어··· 응. 신청자 명단에 올려볼게.”
공연이라.
관종의 피가 끓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