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39
비오는 날의 기타리스트 (2)
서울예대 박덕철 교수는 기인이었다.
나쁜 사람은 아닌데, 그냥 존나 이상한 사람이다.
강의도 성격도 말투도 입고 다니는 옷도 그냥 다 이상하다.
나는 그를 기억한다.
그가 초면에 툭 내뱉은 말을 기억한다.
-깁슨 사지?
한겨울에 Gibson 이라는 글자가 쓰여진 티셔츠를 입고, Gibson마크가 새겨진 하드케이스를 들고 있던 박덕철 교수는, 대뜸 나에게 그리 말했다.
그는 절대로 초면에 펜더를 까지 않는다.
일렉기타의 양대산맥인 펜더를 욕하면 개싸움이 벌어지니까.
이건 기타리스트들의 종특이다.
그는 은근슬쩍 깁슨이 울림이 좋다, 목재가 고급이다, 사실 그냥 만능 기타다. 라며 치켜세운다.
강의중에 세뇌당한 학생들이 쓰던 기타를 팔아치우고 깁슨을 사오는 해괴망측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실음과 애들 사이에서는, 박덕철 교수가 가진 깁슨 기타를 다 합치면 5억이 넘는다는 얘기도 잠시 돌았었다.
“이게 싸고 좋더라고요.”
“싼 건 맞는데 ··· ‘좋다’고?”
그는 고개를 까딱하며 한쪽 눈썹을 올렸다.
“네, 좋아요. 펜더가 아닌데, 펜더 소리가 나요.”
“···.”
난 대학 입시에서 ‘펜더’ 기타를 사용했다.
미국 펜더도 아니고 멕시코 펜더. 그것도 중고.
그때 당시에 한 50만 원 줬었나?
“흠 ··· 이상한 놈이네. 난 그걸 버리려고 거기다 가져다 놓은 거거든.”
“··· 버리려고요? 이걸요?”
“왜, 그렇잖아. 너 감동슈퍼에서 업어온 거 아니야? 거기 가는 사람이 스콰이어를 살 리가 없잖아. 대충 갖고 노느라 구성도 되게 이상한데.”
“···.”
스콰이어는 펜더의 서브 브랜드이다.
‘펜더’ 라는 이름을 달고 30만,40만 원짜리 기타를 팔면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니까 서브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이건 깁슨도 마찬가지였다.
“거기 갖다 놓으면 최소 5년은 창고에서 굴러다니겠지. 주인장도 귀찮으니까 방치할 테고.”
“···.”
확실히 거의 방치 상태긴 했지.
온, 습도 환경이 좋아서 망정이지 일반 가정집이었으면 상태가 훨씬 안 좋았을 거다.
“근데 꼬맹이가 거길 찾아가서 굳이 스콰이어를 사온다?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어. 누구 소개로 갔어?”
“··· 나숙호 선생님 소개로요.”
“네가 나숙호 기타리스트를 어떻게 알아?”
“우리학교 선생님이신데요.”
“흠 ··· 뭐 애들 가르친다는 말을 어디서 듣기는 들었는데.”
그는 쩝 입맛을 다시며 최유진을 쳐다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최유진의 ‘기타케이스’를 쳐다보았다.
“이거야. 이게 바로 기타리스트의 바른 자세야!”
그는 카페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로 말했다.
“깁슨 좋아하니?”
“아 ··· 네! 좋아해요···”
“그래, 그래야지. 너희 딱 보니까 전공생 같은데, 깁슨을 쳐야 일렉기타를 알 수 있다. 이말이야.”
··· 난 양쪽 다 좋아한다.
일렉기타의 역사를 나란히 써 온 두 회사이니까.
내가 동경하는 지미 페이지도 깁슨 기타를 썼다.
“기타 한번 보자.”
“여기요.”
최유진은 소프트케이스에서 하얀색 레스폴을 꺼냈다.
“스튜디오라 ··· 스튜디오도 특유의 소리가 있지. 아주 좋아.”
최유진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나 같으면 저 돈으로 국밥 100그릇 덜먹고 ···
“저기 ···”
돌발 상황에 벙쪄 있던 에이트라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연주 시작해도 될까요.”
“크흠. 실례했네.”
박덕철 교수님은 아메리카노를 한 잔 들고 내 근처에 자리를 잡으셨다.
저양반이 보고 있으니 좀 긴장되네.
“곡은 어떤 거 하실래요?”
“음 ··· 글쎄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이 날씨에 과연 뭘 쳐야 할까.
나는 머릿속에 저장된 악보들을 더듬었다.
피크를 내려놓고 클래식 기타 곡이나 칠까.
그것도 아니면 재즈?
문뜩.
정말 문뜩 내 머릿속에 떠오른 악보는,
그다지 유명한 곡이 아니었다.
나는 앰프에 달린 노브들을 조정했다.
딜레이 아주 많이. 톤은 ··· 11시 방향으로 잡자.
톤메이킹에 한계가 있는 앰프다.
트레블, 미드, 베이스로 eq가 나뉘어 있지 않고 그냥 ‘tone’ 노브 하나로 퉁쳐져 있었다.
프론트 픽업을 쓸 거니 게인을 좀 더 많이 넣고 ···
“It’s ok 시작할게요.”
나는 피크를 손바닥에 붙이고 기타 줄을 엄지로 튕겼다.
디링- 탁.
바디를 타고 전해지는 풍부한 진동과 함께, 비 오는 날에 어울릴 만한 잔잔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Funtwo의 it’s ok .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곡이다.
유명하지 않은 곡이다.
수 많은 소년들이 손에 일렉기타를 쥐여준 기타리스트, 임정현.
그의 자작곡이었다.
원 히트 원더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작품 하나가 엄청나게 성공했는데, 뒷심이 없어 잊혀지는 사람들.
funtwo는 잊혀지지 않았다.
그는 기타리스트로서 묵묵히 계속 활동했다.
캐논 커버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캐논의 장인.
스스로 편곡한 곡은 아니었지만, 그가 이 세상에 미친 영향력은 막대하다.
“··· 무슨 곡이야?”
“몰라.”
초반부를 넘기고, 재빨리 피크를 다시 잡는다.
잔잔하고, 빗소리와 어우러지며, 마음 한구석을 보듬어 주는 듯한 곡.
It’s ok
괜찮아.
기타의 소리는 전혀 날카롭지 않았다.
톤을 청량하게 만들려 노력했던 어제와는 다르게, 나는 곡을 부드럽게 다듬었다.
여릴 때는 여리게, 강할 때는 강하게.
피킹의 다이나믹 레인지를 조절했다.
“··· 되게 감성적이다.”
“그러게.”
빗소리와 섞여 울리는 3w 앰프의 소리.
부드럽게 걸린 드라이브 톤과, 풍성하게 메아리 쳐주는 딜레이.
감성이 어우러졌다.
투툭투툭-
시시각각 변하던 빗소리는 어느새 정체되었다.
길을 지나던 사람들이 내 앞에 멈춰 섰기 때문이다.
거리에 늘어선 우산이 내리는 비를 일정하게 튕겨냈다.
이 곡은, 이름이 곧 주제 그 자체였다.
‘괜찮아’
하던 일이 실패했을 때, 좋지 않은 상황이 닥쳤을 때.
괜찮다고 보듬어 주는 듯한 곡이다.
누군가가, 손을 내 잡고 이끌어 주는 듯한 곡이다.
나는 눈을 감고 부드럽게 지판을 짚었다.
평소에 자주 쓰는 ‘하모닉스’는 거의 넣지 않았다.
내가 해야할 것은 ‘과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충분하게’ 기본적인 테크닉을 구사하는 것뿐.
“··· 누구야?”
“유명한 앤가? 카메라로 찍고 있잖아.”
“진짜 잘친다 ···”
관중들이 하는 말이 영상에 담기지는 않을 것이다.
앰프에 마이킹이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분명히 보았다.
비오는 거리, 행인들의 얼굴.
그들은 연주를 듣고 흥분하지도, 고양되지도 않았다.
그저 편안한 표정을 띄웠다.
멜로디가 가져다주는 편안함.
확실히 전해졌을 것이다.
그런 곡이니까.
듣는 사람을 다독이는 곡이니까.
나는 계속해서 감정을 담아 줄을 튕겼다.
곡이 거의 끝나갈 즈음, 부드럽게 이어지는 멜로디에 아주 약간 더 힘을 주었다.
음악에 위로를 받은 사람은, 오늘도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짐을 짊어지고, 다시 발을 내딛는다.
나는 관중들이 누군지 모른다.
그들이 어떤 고민을 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내 연주는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이건, 일방적인 ‘응원’ 이었다.
지이이이잉-
나는 왼손으로 옅게 비브라토를 넣으며, 피크를 내려놓았다.
비내리는 거리의 연주가 끝났다.
짝짝짝짝-
테라스 주위에 모인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울려 퍼졌다.
그냥저냥, 비오는 날에 버스킹 하는 것이 신기해서 모인 사람들.
그들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 몇은 ‘nice guitar’ 이라며 나에게 악수를 요청했다.
나는 손을 맞잡으며 간단한 회화를 나누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사람들은 하나 둘 씩 흩어졌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나의 음악이, 그들의 하루에 아주 조금 보탬이 되길.
“와 ··· 진짜 ···”
에이트라가 감탄사를 내뱉으며 다가왔다.
“소리 진짜 좋네요 ···. 엄청 감성적이에요.”
찰칵-
누군가의 카메라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던 대학생들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도 같이 고개를 숙였다.
사진 찍어도 된다는 암묵적인 인사였다.
뭔가, 자기들끼리 나를 가리키며 속닥속닥 이야기한다.
“죄송해요 ···”
에이트라는 마이크를 회수하면서 갑작스레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네?”
뭐야 왜 갑자기 사과를 해.
“이정도일 줄 알았으면 ··· 더 좋은 앰프를 준비하는 건데. 하아, 실수를 두 번이나 하다니.”
“에이, 아니에요. 이것도 충분히 괜찮죠 뭐.”
3w급 미니 앰프.
마이크 입력단자는 물론이거니와 멀티 이펙터도 내장되어 있고, 건전지로도 돌아가는 놈이다.
하지만 스피커의 직경이 작다.
앰프는 보통, 스피커의 직경이 커질수록 소리 표현이 좋아진다.
에이트라는 음질이 아쉬웠던 것이다.
“최대한, 정말 최대한 다듬어보겠습니다.”
“힘내십시오.”
그는 장비를 정리하고서 자리에 앉았다.
촬영본을 옮기는 모양이다.
아까부터 눈을 크게 뜬 채 나를 지켜보고 있던 박덕철 교수가 뚜벅뚜벅 다가온다.
이사람 표정은 언제봐도 신기하네.
“너 예고생이지?”
그는 대뜸 그리 물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닌데요.”
“그래? 뭐 그건 아무래도 좋고. 나 이런 사람인데, 졸업하고 우리 학교로 와.”
그가 내민 명함에는 자랑스러운 직함이 큼지막히 적혀 있었다.
서울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 박덕철 교수.
전생에 갔긴 갔어요. 자퇴했지만.
최유진은 내가 받은 명함을 훔쳐보다니 화들짝 놀랐다.
“교, 교수님이세요!?”
“어 그래, 너도 깁슨 좋아하면 꼭 내 수업 들어.”
“··· 제가요!? 여기 갈 수 있으려나 ···”
서울예대는 실음과가 있는 학교 중 거의 1티어 취급을 받는다.
경쟁이 아주 빡세긴 할 거다.
“둘이 같이 오면 되겠네. 넌 기타부터 바꾸고.”
박덕철 교수는 하얀 이를 내보이며 껄껄 웃었다.
“에이, 전 펜더 좋아해요. 깁슨도 좋고.”
“레스폴 있어?”
“아뇨 ···”
있으면 좋긴 한데 지금은 없다.
펜더는 지금 있는 돈으로 어떻게 구해보려면 구할 순 있지만, 깁슨은 힘들다.
스탠다드 레스폴 중고가 200이 훌쩍 넘으니까.
“에피폰도 괜찮아. 깁슨 가져오면 그냥 합격시켜 줄게.”
“어 ··· 네!?”
나는 화들짝 놀랐다. 부정입학 시킨다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진심이세요?”
“아니, 아무리 내가 깁슨을 좋아해도 깁슨 쓴다고 합격시키면 그냥 미친놈이지. 그냥, 너무 잘 치니까 하는 말이야. 아쉬우니까.”
박덕철 교수의 깁슨 사랑은 대체 어디서 부터 시작된 걸까.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깁슨을 쓰는 학생들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입시과정에서 차별을 할 만한 사람도 아니다.
“내가 애들 가르치길 십 수년 했는데, 너만큼 잘 치는 애는 못 봤다. 우리학교 애들이 다 어릴때부터 영재니 신동이니 소리 들으면서 자라던 애들이야.”
“···.”
“근데, 애들이 감정 표현을 못 해. 가르쳐도 어려워해. 너무 편하게 살고 편하게 악기를 잡아서 그래.”
박덕철 교수님은 갑자기 주절주절 말을 이었다.
나는 그의 푸념에 피식, 웃음을 뿜을 뻔했다.
애들이 감정표현을 못 한다고.
그게 무슨 소리인지도 모른다고.
수업 중에 딴 길로 새서 항상 하시던 말이었다.
회귀전의 그가 민수의 ‘스승’ 을 자처한 것은, 감정 표현 때문이었다.
민수는 박덕철 교수의 영향으로 줄곧 깁슨 레스폴을 사용했다.
“그러니까, 깁슨을 쓰라고. 감정표현 할 줄 알면.”
“깁슨 쓸 겁니다. 펜더랑 같이.”
박덕철 교수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뭐, 맘대로 해라. 어차피 또 만날 거 같으니까. 설마 외국대학 갈 생각은 아니지?”
“생각 없어요.”
대학에 갈지 안 갈지도 안 정했는데 뭘.
“그럼 다행이고. 아, 너 감동슈퍼 갔을 때 주인이 명함 안 주던?”
나는 지갑을 뒤져 슈퍼에서 받았던 명함을 꺼냈다.
“그래, 거기 가서 좀 살펴 봐. 스탁제품 많으니까.”
박덕철 교수는 최유진에게 척, 엄지를 올린 다음에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며 카페에서 나갔다.
“저, 수재씨.”
유튜버 양반이 가방에서 갑자기 뭘 꺼낸다.
“제가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지금 말해야 할 것 같아서요.”
“아··· 네.”
“예고 영상 상승세도 좋고, 덩달아 저번 콩쿠르 영상 조회수도 같이 오르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는 나에게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읽어보시고 연락 주세요.”
안에 들어 있는 것은 계약서와 돈이었다.
··· 37만 원.
지금까지 내 영상으로 얻은 수익금인 것 같다.
이걸 다 돌려준다고?
“그럼, 전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에이트라는 꾸벅 고개를 숙인 다음에 급히 밖으로 나섰다.
··· 그냥 빨아먹으려는 건 줄 알았는데.
그래서 나도 같이 빨아먹자 싶어서 협조했던 건데.
“···그게 뭐야? 읽어봐도 돼?”
봉투의 내용물이 궁금한지, 최유진이 고개를 내민다.
“보고싶다고 볼 수 있는 게 아니야. 오늘 일은 입 다물고 있어.”
“어 ··· 응. 알았어.”
계약서는 집에 가서 읽어보자.
나는 기타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점심때도 넘었고 한데 ··· 얘랑 같이 밥이나 먹을까?
“야, 뭐 먹을래?”
“점심? 글쎄…”
최유진은 땅바닥을 쳐다보며 일생일대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홍대라 선택지가 너무 많은 게 탈이다.
우우웅 -!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곧바로 카톡을 확인했다.
소이네.
-수재야 저번에 우리 엄마한테 캐논 들어보라고 그랬잖아.
··· 그랬었나?
기억이 난다. 확실히 그리 말했던 거 같다.
근데 캐논이 뭐 어쨌다는 거지.
– 그렇지.
– 그 이후로 엄마가 캐논락만 켜고 계셔 ···
··· 바이올린으로?
바이올린 커버가 없진 않던데, 본인이 하고싶다면야···
– 그러더니 갑자기 어제저녁에, 정기 연주회에서 캐논락 켜보고 싶으시대. 그래서 말인데 ···
좀 도와줄 수 있어?
소이는 나에게 그리 물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햄스터 이모티콘과 함께.
도와달라고? 어떻게?
아니 그것보다 ··· 정기연주회면 오케스트라 말하는 거 아니야.
백킹 기타라도 해달라는 건가?
-무대에 서는 거야?
-응. 나랑 같이.
나는 짧은 고민 끝에 답장을 보냈다.
-쌉가능.
오케스트라라···
재밌을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