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40
캐논 키드를 위하여 (1)
나는 인스타 홍보를 자주 때리던 퓨전 음식점에 가서 최유진이랑 점심을 때웠다.
맛집 ··· 이라곤 하는데 솔직히 집 앞 중국집 볶음 짬뽕이랑 맛 차이가 거의 안 났다.
커피 마시고, 밥 먹고, 다시 또 뭘 먹으러 가는 괴상한 루트.
초코 파우더와 브라우니가 잔뜩 뿌려진 빙수 그릇을 숟가락으로 두드린다.
음 이 맛이야.
한 입 먹으니까 단맛이 확 올라오면서 진짜 개질리네.
뭔 빙수가 9천 원이나 하냐.
“아~ 서울예대 가고 싶다.”
“가고 싶으면 연습 열심히 해야지.”
“역시 그래야겠지? 기타 줄도 갈았으니까 다 먹고 학원 가야겠다···”
음악 입시생들은 시간이 없다.
하루 대부분을 연습하는 데 쓰니까.
그래도 뭐, 연애할 놈은 잘하고 놀 놈은 잘 놀더라.
“아까 카톡 온 거 소이였지?”
“그새 그걸 봤냐. 반응속도 진짜 빠르네.”
“저번에 소이네 집 갔을 때 무슨 일 있었어?”
“흐음 ··· 일이 있었긴 있었는데 ···”
본인도 말하지 않는 걸 내가 떠들 자격은 없지.
“비밀이야.”
“그때부터 소이 표정 갑자기 좋아졌는데 ··· 뭐야뭐야 나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둘이 사겨?”
“그런 건 아니고.”
“흠 ···”
최유진은 턱을 괴며 빙수를 한 움큼 퍼서 입에 넣었다.
상당히 잘 먹네.
먹는것에 비해 살이 안 찌는 체질인 거 같다.
“소이랑 사귀면 좋겠다~ 맨날 집에 놀러 가고~ 기타도 만지고~”
“네가 사귀면 되겠다야.”
“미쳤어?”
“키킥.”
나는 낄낄 웃으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니글거려서 도저히 못 먹겠다.
단 걸 안 좋아하는 건 아닌데, 많이 먹는 건 싫어한다.
이빨이 썩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더 안 먹어? 맛있는뎅.”
“민트초코 시켰으면 상쾌했을 텐데. 이거 계속 먹으니까 니글거린다.”
“아 극혐. 치약 왜 먹냐?”
얘 민트초코 싫어하나?
민트초코가 얼마나 좋은데.
민트초코를 먹으면 이를 안 닦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개이득이다.
최유진은 빙수를 독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쁜지,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터벅 터벅-
우리에게 다가오는 가벼운 발걸음 소리.
나는 고개를 돌려 얼굴을 확인했다.
··· 누구지.
“저번에 버스킹 했던 분 아니세요?”
“버스킹이요? 아까 하긴 했는데.”
“어? 오늘도 하셨어요?”
편한 차림의 여학생 셋이었다.
차림은 간편한데 화장은 했네.
되게 예쁘다.
이게 홍대인가.
“저기 테라스카페 앞에서 했어요.”
“아 진짜요? 못 봐서 아쉽다 ···”
뭐지.
마치 날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한다.
“저 기억 안 나세요? 한강공원에서.”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한강공원이라면 분명 ··· 라비다 밴드에 난입했던 때다.
“아! 안녕하세요.”
공연 끝나고 같이 ‘사진 찍었던’ 여자애.
이름은 모른다. 진짜 그냥 사진만 찍어가더라.
내 사진을 어디다 썼는지가 궁금하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저 어제 올라온 영상 봤어요! 풉···”
여학생 셋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웃음을 참았다.
그래, 우리의 모습을 봤구나.
그 강렬한 모습을 봤구나.
“그래서 말인데요, 인스타 아이디 알려주시면 안 돼요?”
“인스타요?”
“페북도 괜찮아요.”
··· 둘 다 없는데.
내 핸드폰에 깔려 있는 건 잡다한 게임 몇 개랑 악보 툴, 카톡이 전부다.
“아이디가 없어요.”
“헐~”
이름모를 여자애는 자기친구들와 속닥속닥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셋의 시선이, 초코가루를 퍼먹고 있던 최유진에게 향했다.
“아 혹시 여자친구 계셔서 ···”
“여자친구 아닌데요.”
숟가락을 물고 있던 최유진이 그리 말했다.
정말 산뜻하게 부정하는 구만.
“그럼 제 아이디 알려 드릴게요! 전화번호 주세요.”
나는 거리낌 없이 여자애의 핸드폰에 전화번호를 찍었다.
“감사합니다! 인스타 아이디 만들고 친추 걸어주세요! 팬이에요!”
“··· 고마워요.”
셋은 서로 꺄악대며 자리를 벗어났다.
이거 뭔가 ··· 기분이 이상하다.
“내 1호 팬인가···.”
“팬이 아니라 관심 있어서 번호 따간 거 아니야?”
“날?”
“어.”
···.
“에반데.”
“음 ··· 좀 그런 거 같다. 미안.”
지가 말해놓고 지가 부정하네 진짜 개때리고 싶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유진은 학원에 가려는 모양이다.
“눈앞에서 번호따이는 거 보니까 기분이 너무 이상해.”
“뭐야 갑자기.”
“아니야. 월요일에 보자~”
“그래 잘 가.”
나는 삼성동으로 향했다.
솔직히 기분이 아주 좋다.
아주아주아주 좋다.
회귀 전에 나한테 ‘번호 달라’고 하던 사람들은 죄다 종교 전도사들이었는데.
방금 건 내 연주를 듣고 관심이 생긴 거잖아.
아마, 연심이 있었으면 인스타나 페북 아이디가 아니라 번호를 먼저 물었겠지.
그 아이는, 나한테 ‘팬’ 이라고 했다.
··· 팬.
나한테 팬이 생기다니.
아직 영상도 몇 개 안 올라갔는데.
나는 괜스레 콧노래를 흥얼였다.
홍대에서 삼성동까지는 거리가 꽤 된다.
나는 카톡을 켜서 소이와 나눈 대화를 확인했다.
-오늘 우리집 올래?
-그래.
-기다릴게!
-(이모티콘)
소이는 카톡에서 이모티콘을 곧잘 사용하는 편이다.
역시 부잣집 애라 그런지 유료 이모티콘을 다수 보유 중인 거 같다.
이모티콘에서도 빈부격차가 느껴지다니.
나는 지하철을 몇 번 갈아타며 봉은사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고급 주택가를 걸었다.
여긴 올 때마다 놀랍네.
골목에 불법주차 된 차들이 죄다 외제다.
우리 아빤 10년 된 소나타 끌고 다니시는데.
성공하면 꼭 외제차 사드려야겠다.
걷다보니 익숙한 풍경이 보인다.
비 맞은 고급스런 담벼락과, 담벼락 위에 덮여 있는 조경용 풀떼기들.
떨어져 내린 벚꽃들은 젖은 도로 위를 덮었다.
꽤 괜찮은 풍경이다.
나는 소이네 현관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소이 친군데요.”
수화기 너머로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재야 금방 나갈게!
그냥 열어주면 되는 거 아닌가.
입구 못 찾을 정도로 바보는 아닌데.
스으윽-
버터처럼 부드러운 문이 열렸다.
문 너머에는 흰 티에 아디다스 츄리닝 차림의 소이가 있었다.
부자라도 집에서는 다 이렇게 입고 있는구나.
“아, 안녕!”
소이는 오늘도 앞머리가 반듯했다.
동생은 쉬는 날에는 머리를 안 감는다.
소이는 매일 감는 모양이다.
“그래 안녕. 들어가도 돼?”
“그, 그게 ···”
소이는 대답을 머뭇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사실 ··· 집에 나랑 아주머니밖에 없었거든.”
“응.”
“아빠 오셨어.”
“···.”
이건 좀 아찔하네.
전생에 이런 집에 살 정도의 재력가를 만난 적은 없는데.
자기 딸내미가 친구를 데려왔는데 남자애다?
100% 귀찮은 상황에 놓일 게 분명하다.
“나 오는 건 알고 계셔?”
“오시자마자 말씀드리긴 했어. 근데 ··· 친구 온다고만 했어.”
나는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아주 짧은 고민을 했다.
저번에 ··· 나한테 와우페달 주셨었지.
감사 인사부터 드리면 되겠구만.
15만 원 짜리를 덜컥 내어주신 거니까.
대화는 처음 트기가 어려운 거다.
하지만 튼 다음에 대화를 잇기는 쉽다.
“그래서··· 네가 불편할 까봐.”
“괜찮아 임마.”
난 그냥 들어갔다.
정면 돌파다.
소이네집은 오늘도 깨끗하고 좋은 냄새가 났다.
거실에는 여느 아버지들처럼 편안한 차림을 한 중년 남성이 누워있었다.
우리 아빠랑 다른 점은 최소 바지는 입고 있다는 것이다.
소이 아버지는 다부진 체격에 인상이 약간 거칠고, 탈모가 없는 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난 적당히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소파에 누워있던 소이 아버지가 일어났다.
“어 그래, 소이 친구 온다고 했지? 저번에 걔구나.”
나를 위에서 아래로 스윽 훑어보는 소이 아버지.
그는 목소리 조차 무서운 사장님 같았다.
소이는 푸욱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아버지랑 사이가 그리 좋지는 않은 모양이다.
“페달 정말 유용하게 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그래.”
은은히 웃음을 짓는 소이 아버지.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를 놈이 감히 내 집에 발을 들여!’ 같은 상황은 없었다.
그런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나한테 선물을 내어줄 리도 없었을 터.
살짝 마음으로 놓으려는 순간,
“소이야, 잠깐만 올라가 있어라.”
“···네?”
“올라가 있으래도.”
“수재한테 ··· 하실 말 있으세요···?”
“그래.”
“··· 네.”
뭐지 ···
소이는 엄마한테는 반말하던데, 아빠한테는 존댓말을 쓰는구나.
나는 되게 얼떨떨했다.
소이는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며 2층으로 올라갔다.
넓디 넓은 부잣집 거실에, 나와 소이 아버지만이 남았다.
“이리 와서 앉아라.”
“···.”
만난지 1분도 안 된 사이인데 ···
나는 조심스레 소이 아버지 옆에 앉았다.
긴장감이 흐른다.
부잣집 이성 친구 아빠 옆에서 난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거지?
내가 여기 왜 왔더라.
분명 ··· 소이가 도와 달라고 해서 왔는데.
오케스트라 구경시켜 준다고 해서 왔는데 ···!
소이 아버지는 뚜벅뚜벅 부엌으로 걸어가 콜라 두 캔을 가지고 왔다.
“이름이 김수재라지?”
“아, 넵.”
“저번에 신세 참 많이 졌다. 고맙다. 부모님께도 안부 인사 전해드려라.”
“알겠습니다.”
난 코카콜라를 두 손으로 받아들고 마셨다.
긴장을 해서 코로 마시는지 입으로 마시는지 모르겠다.
맛도 잘 안 느껴진다.
소이 아버지도 다리를 꼬며, 콜라를 머금었다.
왜, 그런 상상 하지 않는가.
화려한 거실에서 흰 가운 만 입은 채 한 손에 샴페인 잔을 들고 유유히 여가를 보내는 성공한 중년남성의 모습.
그런 광경은 이곳에 없었다.
그냥, 무서운 아저씨만 있었다.
소이 아버지는 tv를 스포츠 채널로 돌리고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한 거냐?”
“··· 네?”
“애 엄마 고집이 보통 센 것도 아닌데. ‘딸내미 친구랑 얘기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 라며 둘러대기만 하고, 그 이상은 말을 안 해. 정말 말로 설득했나?”
“···.”
밥먹다가 싸움 걸고 연주배틀했어요···
난 이 말을 어떻게 가공해야 할지 고민했다.
애초에, 가공이 가능한 상황이긴 한가?
“반은 맞습니다.”
“반은 맞다라 ··· 나머지 반은?”
“··· 이거요.”
나는 고급스런 소파에 기대어 놓은 기타를 가리켰다.
“··· 기타라··· 그걸로 설득했다고.”
소이 아버지는 소파에 쭈욱 기대시더니 이후로 말이 없었다.
진짜 토할 거 같은 기분이다.
가슴이 조여온다.
소이 엄마는 그래도 친근하게 대해주셨지.
소이 아버지는 말도 별로 없고 목소리랑 인상도 무섭다.
소이야 살려줘 ···
소이야 구해줘 ···!
디리리링-!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탁탁탁탁 계단을 내려오는 소이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왔다~”
“엄마!”
숨막히는 정적이 깨졌다.
소이의 어머니는 오늘도 작은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계셨다.
“···.”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묘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눈물 콧물 다 보여준 사이니까.
아무래도 분위기가 좀 어색하진 않을까.
내 작은 걱정은 그냥 기우였다.
“수재 왔구나~ 안녕~”
“안녕하세요.”
오늘도 활짝 웃으시는 소이 어머니.
“당신은 애 데리고 뭐 해요?”
“아니 그냥.”
“친구 집에 놀러 왔는데 친구랑 놀아야지. 참.”
소이 엄마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머뭇머뭇 나에게 다가오는 소이.
“이번 정기연주회에서 이벤트공연 하잖아요? 그거 관련해서 좀 와달라고 했어요.”
“··· 이벤트 공연?”
“왜, 있잖아요. 본연 시작하기 전에 하는 거.”
소이의 아버지는 나를 또다시 위아래로 훑으셨다.
그리고서 피식, 웃음을 짓는다.
“얘가 그렇게 잘 쳐?”
“어머어머, 내가 말 안 했어요?”
“했었지. 그러니까 한 번 들어보고 싶네.”
소이 아버지가 일어나셨다.
나는 그의 왼손을 훑었다.
역시나,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
보고 싶다면야 뭐.
어쩔 수 없지.
나는 신나는 기분으로 기타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