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41
캐논 키드를 위하여 (2)
소이의 아버지는 내 기타를 눈으로 훑으셨다.
시선이 헤드에 고정됐다.
헤드!
세간에 일렉기타의 소리는 브랜드 데칼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데칼만 바꿔도 뭔가 소리가 좋아지는 것 같고, 고급스러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타회사’의 브랜드파워는 생각보다 영향력이 아주 막강했다.
“··· 스콰이어?”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넵.”
“전공생 맞지?”
“옙.”
소이아버지는 곧바로 의아하다는 표정을 띄웠다.
전공생들은 대개 ‘비싼 기타’를 사용한다.
혁오도, 도현이도, 소이도. 200은 거뜬히 넘는 기타를 가지고 있다.
아마 우리학교 애들의 악기 중에 내가 가진 기타가 가장 싸지 않을까 싶다.
스콰이어니까.
중고로 15에 사온 놈이니까.
“특이하네. 전공생 중에 스콰이어 쓰는 애는 못 봤는데.”
“기타 예쁘기만 하구만~”
소이 엄마는 나를 감싸듯이 말했다.
“소이 거랑 모양도 똑같고~ 혹시 깔맞춤 하려고 샀니?”
“아 그게 ··· 저도 이 모양을 좋아해서요.”
“아하~”
소이 아버지는 계속 내 기타를 살피셨다.
평범한 사람이 스콰이어라는 브랜드를 알고 있을 리는 없다.
소이 아버지는 일렉기타에 대한 지식이 있고, 잡아본 사람이다.
뮬저씨가 맞는 듯하다.
“이리 오렴~”
연주를 위해 향한 곳은 소이네 집 서재였다.
책장에 잔뜩 꽂혀 있는 갖가지 서적들과, 벽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계란판 모양 흡음재.
집에 이런 환경이 있는 건 진짜 부러워 죽겠다.
소이는 힐끔 내 손을 쳐다보았다.
그리고서 내 앞에, 조심스레 자기 페달 보드를 펼쳐 주었다.
“고마워.”
“응···”
집에서 나올 때 페달보드를 안 가져왔으니까.
솔로 연주하는데 딜레이가 없는 건 좀 에바지.
맛이 안 살잖아 맛이.
소이 아버지는 넓디 넓은 집 어딘가에서 기타를 들고오셨다.
··· 딱 봐도 되게 비싸 보이는 기타다.
“당신도 치게요?”
“그냥 가져와 봤어.”
기타 헤드에는 shecter 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내가 모르는 형태의 기타. 아마 커스텀이겠지.
역시 부자는 부자다.
“곡은 뭘로 하려고?”
“연주회에서 캐논락 켜신다고 그러셨죠?”
“응. 소이가 말해줬구나?”
캐논이라 ···
분명 저번에 왔을 때, 소이 엄마한테 ‘캐논 락 들어보라’ 라고 말하긴 했다.
내가 캐논락을 권한 이유는 간단하다.
좋으니까.
엄청 좋으니까.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 멜로디를 가져와서, 락스타일로 구성을 완전히 바꾸고, 화려한 테크닉과 ‘신남’을 집어넣은 곡.
곡이 신난다.
어깨가 들썩거리고, 나도 저렇게 연주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마구마구 솟는다.
‘캐논 변주곡’은 곡은 클래식을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도 몇 번이고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하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흥미를 돋우는 건 당연했다.
“저도 캐논 치려고요.”
“아하~ 잘됐네! 직접 눈앞에서 연주하는 건 못 들어 봤거든. 기대된다.”
“하하 ···”
“캐논락이 원래 캐논이랑은 많이 다르더라. 어렵기도 어렵고.”
“···.”
어려운 곡이다.
지금으로부터 3년쯤 지나면 ‘쉽게’ 편곡된 드라마 삽입 버전이 나오기도 하지만, jerry c 가 편곡한 곡은 원래 어렵다.
“정말 오케스트라에서 그걸 켜려고?”
소이 아버지가 물었다.
“왜 그렇잖아요. 이벤트성 공연이니까 색다른 걸 해야죠.”
“사람들 관심 끄는 건 아주 중요하죠.”
“그치?”
“제가 제대로 보여 드릴게요.”
소이엄마는 활짝 웃었다.
이 사람도 관종 끼가 있구나.
소이 성격이 조용한 건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 거 같다.
소이 아버지는 여전히 나와 내 기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별로 마음에 안 든다는 듯한 눈빛이다.
··· 스콰이어를 싫어하는 건가?
아니면, ‘싼’ 기타니까 소리가 안 좋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나는 묵묵히 소이의 페달 보드로 톤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타와 미니 ts9, 와우페달을 앰프에 연결하고, 여분의 케이블로 딜레이와 리버브를 샌드리턴으로 빼버린다.
그냥 페달 디스토션을 사용할까 생각도 했지만, 앰프 사운드가 더 낫겠다는 게 내 결론이다.
“Aux 케이블 있어?”
“여기.”
소이는 페달보드 밑에서 케이블을 꺼내어 나에게 건넸다.
나는 핸드폰과 앰프를 연결해서 BGM을 흘렸다.
“도입부 들어봐요 여보. 첼로로 시작하죠?”
“··· 그렇네.”
“오케스트라로 묶을 수 있다니까요. 이미 재미삼아 몇 번 해보기도 했고.”
오케스트라 캐논락이라 ···
바이올린도 멜로디 악기다.
켜려면 켤 수는 있을 텐데 ··· 일렉기타의 본래 테크닉을 구사하긴 힘들 것 같다.
나는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첼로 도입부를 감상했다.
그리고, 2번 줄 하이프렛을 누르며 아주 옅게 피크를 튕겼다.
동시에 와우페달을 밟는다.
지이이이이잉-
기름을 잔뜩 바른 듯한 매끄러운 기타음이 서재에 울려 퍼졌다.
캐논 변주곡 락버전은 인기가 많다.
기타좀 친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끝없이 연주를 부탁받기도 한다.
다만, 잠깐 깔짝 잡아 봤다고 해서 칠 수 있을만한 난이도는 아니다.
즁- 챠착!
나는 도입부를 지나 파워코드파트에 들어갔다.
‘캐논 락’이라는 곡을 관통하여 지나가는 말이 있다.
전투력 측정기.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캐논 락을 칠 수 있으면, 웬만한 곡은 전부 다 칠 수 있다.
곡 하나에 일렉기타의 근본이 되는 기술들이 ‘전부’ 들어가 있다.
다만, 그만큼 어렵다.
수많은 소년들이 캐논락에 홀려서 일렉기타의 세계에 발을 들였지만, 캐논락을 완주할 수 있던 이들은 소수뿐이었다.
그리 안 어려울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6개월만 연습하면 충분히 칠 수 있다고 했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소이 어머니는 뚫어져라 나의 왼손을 쳐다보고 있었다.
소이 아버지는 나무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나는 힘차게 현을 튕겼다.
“···.”
신난다.
원래의 ‘희망찬’ 느낌 위에 새로운 감정이 덧씌워졌다.
선선한 금요일 밤에, 일을 끝마치고 도시를 걷는 분위기라고 할까.
9월 초. 낮에는 덥고, 밤에는 쌀쌀 시원한 그런 날.
나는 그런 분위기를 머릿속에 그렸다.
일은 힘들었지만, 무사히 하루를 끝마쳤을 때.
내일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들었을 때.
집에가서 뭘 먹을지, 어떻게 놀아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할 때.
그런 ‘기분 좋고 신나는’ 밤의 퇴근길.
기억을 더듬어 연주에 감정을 담았다.
소이 어머니는 캐논 락을 접한지 얼마 안 되셨다.
음악인으로서의 경력과 경지는 존경받아 마땅하긴 하지만, 캐논락만큼은 나보다 초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연주는, 캐논 키드를 위한 가이드라인이었다.
“이야 ···”
소이 어머니가 무심코 감탄사를 내뱉으셨다.
저번에 연주를 들려 드릴 때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더 경직되고, 말 한마디 하기 힘든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갈등은 이미 오래전에 해소된 상태.
소이 어머니는 자신의 감상을 말하는 데 주저가 없었다.
“봐봐요 여보, 엄청 잘 치죠?”
“···.”
소이 아버지는 여전히 눈을 감고 계셨다.
드르르르륵-!
최악의 난이도인 고속 스윕피킹.
나는 무사히 테크닉을 소화해냈다.
그리고 마침내, ‘캐논’ 하면 떠오르는 시그니쳐 적인 멜로디 도입부에 들어갔다.
직 지징-!
의도적으로 과하게 먹인 디스토션,
날카로운 톤과 잔음을 풍성하게 울려주는 홀 리버브.
즉석에서 만든 톤이었다.
평소 쓰던 페달 구성이 아니라서 세팅에 살짝 애를 먹긴 했다.
하지만 불만은 없었다.
나의 감정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던 ‘신남’이
멜로디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소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조금 들뜬 듯한 얼굴이다.
··· 생각해 보니, 소이와 처음 만났을 때도 이 곡을 쳤던 것 같다.
갑자기 윤대혁 선배가 난입해서 제대로 들려주지는 못했지만.
이번에는 끝까지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키익! 디링-!
흥을 더하려 멜로디 중간중간에 피킹 하모닉스를 욱여넣었다.
배음 조절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강하게, 무조건 신나게!
나는 계속해서 지판을 짚어나갔다.
이게 캐논 락이라고.
‘희망에 젖는 듯한’ 캐논 변주곡이 아니라,
어깨가 들썩거리는 캐논 락이라고.
나는 셋밖에 없는 청중들에게 강렬히 주장했다.
소이 아버지는 어느새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이이이잉-
9월 초의 밤 풍경.
힘껏 숨을 들이킨다.
역시나, 애매하게 차가운 여름 냄새가 났다.
곡이 화려하게 끝났다.
짝짝짝짝-
제일 먼저 소이가 손뼉을 쳐 주었다.
이내 소이 어머니와 아버지도 나에게 박수를 보내 주었다.
소이 어머니의 손에는 작은 수첩이 들려 있었는데, 메모를 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이런 거구나··· 이런 곡이었구나.”
“··· 엄마?”
소이 어머니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오리지널 캐논처럼 ‘밝은’ 분위기인 건 맞는데, 해석이 아예 다르네. 이제 잘 알겠다.”
일류 바이올리니스트가 고등학생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니.
이렇게 보기 힘든 광경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
소이 어머니는 ‘배움’에서 만큼은 앞뒤 꽉 막힌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오픈 마인드.
언제든 배울 수 있다는 마인드.
솔직히,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거기 드르르르르~ 하면서 지나가는 부분 있잖아. 다시 한 번 쳐줄래?”
“넵.”
나는 스윕피킹부분을 다시 연주했다.
소이 어머니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부분을 바이올린으로 재구성하려면 ···”
에어 바이올린으로 연습해 보시는 소이 어머니.
“끊지 않고 물 흐르듯이 지나가는 게 좋겠네. 음. 좋아.”
소이 어머니는 쿡, 소이 아버지의 옆구리를 찌르셨다.
“당신도 한 마디 해요.”
“···.”
소이 아버지는 눈을 크게 뜨셨다.
그리고서 후우, 숨을 크게 내뱉었다.
“참 이상하네··· 직접 들으니까 1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
“···.”
10년 전이라면.
캐논 락이 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아닌가?
소이 아버지는 벽에 기대어 놓은 쉑터 기타를 잡으시더니, 나랑 같은 곡을 아주 잠깐 연주하셨다.
손끝에 박여있던 굳은살.
역시 기타 연주자가 맞았구나.
다만, 프로급 실력은 아니었다.
취미로서 오랫동안 연주해온 수준.
“확실히 잘 친다, 고등학생 수준은 절대로 아니야. 긴장할 법도 한데.”
“내가 말했잖아요. 당장 무대에 세워도 될 정도라고. 국내 예대는 마음대로 골라서 갈 수 있을걸요?”
··· 팩트긴 팩트다.
“소이는?”
“소이는 앞으로 더 연습해야죠. 서로서로 알려주고 하면 서울예대는 가지 않겠어요?”
“서울예대라 ··· 괜찮지.”
소이아버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입생 음악회에서 소이랑 같이 1등 했다고 했지? 듀오 곡으로.”
“··· 네.”
“취미가 수집이랑 기타다 보니, 참 사들이기도 많이 사들였는데 ···. 역시 기타는 치길 잘 쳐야 돼. 60만 원짜리도 ··· 저런 소리가 나네.”
소이 아버지는 내 기타의 신품가격을 정확히 꿰뚫고 계셨다.
“에이, 당신도 잘 치잖아요 갑자기 뭘 그래요. 어릴 때부터 쳤다면서.”
“너 이거 쓸래?”
소이 아버지는 내게 쉑터 기타를 내미셨다.
··· 무슨 의미지.
준다는 건가?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손익 계산이 오갔다.
내 뇌는 절대 받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괜찮습니다 아저씨. 감사히 마음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그래.”
아무리 부자라 그래도 농담 참 살벌하게 하는 것 같다.
“소이랑 잘 지내고, 자주 놀러 오고. 오케스트라 무대 잘 마치고.”
소이 아버지는 이제··· 내 기타 헤드를 쳐다보지 않으셨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의 서랍을 뒤적였다.
그리고, 작은 상자 하나를 나에게 내밀었다.
“이거 가져가고.”
“아, 감사합···”
상자 크기가 작았기에 나는 안심하고 받아들었다.
기타줄이나 스트랩 같은 게 들어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자의 무게는 아주 묵직했다.
“뮤지션만 잘 붙여주면 ··· 외벌이로도 ‘둘이’ 먹고 살 수준은 될 것 같구나.”
“···.”
그는, 의미심장한 말만을 남긴 채 서재에서 나갔다.
···나는 순간 말의 뜻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 엄마?”
“너희 아빠도 참, 김칫국은 잘 들이키셔~ ”
“응…?”
“어? 설마 진짜 그래?”
뜻을 이해한 나는 뒷목을 잡았다.
아무래도, 대단히 큰 오해를 하시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랬어~”
배실배실 웃음을 짓는 소이 어머니.
나는 소이와 힘을 합쳐 필사적으로 반론을 내놓았다.
하지만 소이어머니는 알았어 알았어~ 라며 말을 흘리실 뿐이었다.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웃음기는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속 터져 죽을 거 같아!
게다가 또 상자에든 물건은, 나에게 엄청난 부담감을 가져다 줄만한 놈이었다.
이걸 준다고?
··· 부담스러워서 기타는 안 받았는데, 웃으면서 이걸 준다고?
나는 헛숨을 토했다.
돈 문제가 아니다.
장난하나? 이거 대체 어디서 가져온 거야?
이게 ··· ‘남아 있기’ 는 했었나?
내가 써도 되는 건가?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자, 자. 이번엔 셋이 연주해 볼까? 너희 백킹 트랙 칠 수 있지?”
소이는 내 안색을 살폈다.
힘을 짜내 표정을 되돌리며 스윽, 식은땀을 닦는다.
그래도 계속 땀이 난다.
나는, 소이 엄마의 캐논을 신나게 지적하면서 합주를 했다.
“아줌마 거긴 악센트를 좀 더 강하게 줘야 돼요!”
“그래그래~”
일정을 들어보니, 정기 연주회는 5일 채 남지 않은 듯 하다.
소이는 은은한 미소를 띄우며 기타를 쳤다.
엄마와 같이 합주하는 것이 기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