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42
오케스트라의 난입자 (1)
소이 어머니와의 협연은 은근 합이 잘 맞았다.
정기연주회 이벤트공연 캐논 락.
메인 연주자는 소이 어머니다.
나는 수요일에 소이와 같이 ‘보조 악단’으로서 오케스트라에 참가하기로 했다.
주말동안 협연을 하면서 소이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언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이 어머니는 또다시 은은한 웃음을 지으셨다.
“···.”
4월 10일 일요일 오후 9시.
나는 묵혀두었던 상자를 다시 개봉했다.
내용물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머리가 띵 해지는 느낌이다.
··· 이걸 내가 써도 될까?
내가 이걸 소유할 자격이 있을까?
소이 어머니에게 물어도, 그냥 가져가라고 말씀하시기만 할 뿐.
결국 나는 얼떨결에 ‘이것’을 집에 가져왔다.
··· 초록색 이펙터 페달이었다.
색은 바래고 플라스틱 노브는 갈라졌지만, 흠집은 하나도 없었다.
상자도 미세한 주름 외에는 멀쩡했다.
아이바네즈의 ts808.
···
“아··· 아··· 앗.”
난 내 방에서 바보 같은 소리를 연신 내뱉었다.
열이 오르고, 시야가 울렁이는 것 같았다.
초록색 이펙터를 올려놓은 오른손이, 달달달달 떨린다.
상자 옆에 꽂혀 있는 작은 종이를 확인한다.
중국어는 아닌 거 같은데.
대만,홍콩,일본어 중 하나인 거 같다.
나는 재빨리 한자를 찾아가며 번역을 했다.
아무래도 이건, 전문가가 검사한 ‘후기 보증서’인것 같다.
-보증서-
확정생산일 1980년
예측작동회수 5회 미만
변경부품 없음
손질흔적 없음
외관 최상급
내부기판상태 최상급
··· 난 이런 물건을 본 적이 없다.
아예 없다.
내 기억 속 오리지널 이펙터란, 죄다 고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거 가격이 얼마나 할까?
핸드폰으로 [ts 808 오리지널] 판매게시물을 검색해 본다.
중고나라나 뮬을 한참 뒤져봐도 매물이 없다.
나는 이베이로 검색창을 돌렸다.
‘완전 누더기’상태의 ts808이 1000달러다.
1000달러. 약 120만원.
외관이 괜찮고 박스가 남아있는 물건들은 3000달러가 넘어갔다.
미사용 급 제품은 ··· 없다.
“헤엑!”
이 이펙터의 값어치는 대체 어느 정도일까?
애초에, ‘구할 수가’ 있는 물건이긴 할까?
나는 고민에 잠겼다.
··· 이걸 팔 수는 없다.
소이 아버지가 나에게 선물해주신 거니까.
그렇다고 쓰기에는 ··· 너무 무섭다.
“으그으으으윽.”
신줏단지 모시듯 보관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거 같다.
나중에 가격이 더 오를 텐데.
1980년에 생산됐으니 나이로 따지면 36세다.
거의 삼촌뻘이란 소리다.
“아니야, 좋은 거니까 더더욱 써야 돼.”
일반 ts808을 선물로 주셨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사용했을 텐데.
부담스럽다. 너무 부담스럽다.
투둑-
땅바닥에 내려놓고, 어댑터를 연결하고, 케이블을 꼽고.
힘차게 기타를 후렸다.
좌아아아아아앙-
“아···.”
개쩌네.
이래서 이게 비싼 거구나.
나는 전생에 리이슈된 ts9, ts808을 써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소리가 나지는 않았다.
다르구나.
오리지널은 다르구나.
보들보들하고, 부드럽고, 빈티지하다.
카피품은 절대로 따라갈 수 없는 그시대의 소리가 난다.
이거랑 sd-1이랑 같이 쓰면 ··· 굳이 ‘앰프 드라이브’에 집착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
“히햐하핫!”
나는 들뜬 마음에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동생도 같이 내 방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른다.
“아 시끄러워!”
“으하하핫!”
나는 에이트라가 줬던 계약서를 훑어본 다음, 일찍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주말내내 비가 와서 그런지 하늘이 아주 청명하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맑은 하늘.
기온도 적당하고, 바람도 적당하고, 햇빛도 따듯하다.
평생 이런 날씨였으면 좋겠다.
“무슨 좋은 일 있었냐?”
등굣길에 도현이가 물었다.
“레어템 득했다.”
“뭔데?”
“지리는 이펙터.”
“올. 보여줘 보여줘.”
난 ts808을 꺼내 도현이에게 자랑했다.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뭐, 기타리스트랑 베이시스트가 쓰는 이펙터는 완전히 다르니까.
“손에 든 건 뭐임?”
“이거?”
내 손에는 정체불명의 판때기가 들려 있었다.
아파트 단지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거다.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되게 가볍다.
“페달 보드.”
“오우야 ··· 냄새 오진다 진짜. 푸세식 화장실에서 뜯어온 줄 알았네.”
“그렇게 심한가?”
쓰레기장 특유의 구린내가 나긴 한다.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회귀해서 모은 페달만 4개.
이제는 건전지나 멀티 어댑터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페달 보드’를 꾸리고, ‘파워 서플라이’로 안정적인 전원공급을 해야만 노이즈 없이 사용할 수 있을 터.
제작은 내가 하면 된다.
맡기면 그게 다 돈이지.
파워는 어제 낙원에서 사왔기에, 판때기에 페달을 붙이기만 하면 된다.
철판을 10만원 주고 사기에는 돈이 아까워서 그냥 왔었는데.
쓰레기장이 나를 살렸다.
나는 학교화장실에서 정체 모를 판때기를 야무지게 씻었다.
내 옆에는 ··· 볼일을 끝마친 김태현이 손을 씻고 있었다.
얜 언제나 싱글벙글 밝은 얼굴이다.
저런 성격에 저 정도 잘생김을 갖추다니, 인기가 많은 게 납득이 간다.
그러고보니 ···
“야.”
“응?”
“너 그 기타 있잖아.”
“기타?”
“텔레캐스터.”
“아아~”
김태현은 젖은 손을 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누구한테 받은 거냐?”
“음 ··· 기타리스트인데, 유명하진 않은 사람이야. 먼 친척이고.”
“그렇구만 ··· 혹시 그 사람 이름 좀 알려줄 수 있나?”
“김서임··· 인데 왜?”
김태현의 기타가 어떻게 외국까지 흘러갔는지는 모른다.
어쩌다 수천만분의 확률을 뚫고 번개를 맞았는지도 모른다.
김서임이라 ···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다.
“그냥 ··· 특이해서 그래.”
“그치? 좀 특이하긴 해. 소리도 특이하고.”
번개맞은 기타 그 특유의 소리.
좋지.
엄청 좋지.
나는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유명인들이 사용하면서 거래가가 천정부지로 솟고, 악기 전문가도 잡아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던 기타.
그로울 텔레캐스터.
멋들어진 이름답게 얽힌 얘기가 참 많았다.
사용하는 사람마다 팔이 부러지고, 다리가 부러지고.
“조심해라.”
하지만, 이걸 김태현에게 설명할 수는 없다.
기운이 안 좋다느니, 저주받았다느니 말해봤자 개소리 취급 받을 게 뻔하니까.
난 교실에 돌아가 정체불명의 판때기를 창문에 널어놓고 수업을 들었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전공 지원 수업 시간이 다가왔다.
뭔가 ··· 복도를 지날 때마다 선배들이 불쑥 말을 건다.
관심 받아서 좋긴 한데 자꾸 그러니까 귀찮다.
“저녁 7시라고 했지?”
“응.”
아주 다행히도, 오늘은 윤대혁 선배가 학원에 안 나온다.
저번처럼 학원 쨌다고 한소리들을 일은 없을 것이다.
“합주는 어디서 한대?”
“구로구라고 하셨어.”
“그렇구만. 준비는 잘 했어?”
“응!”
메인 연주는 소이 어머니가 하시고, 나와 소이를 포함한 모든 연주자들은 ‘백킹’이다.
오늘은 잠깐 들려서 서로 합만 맞추는 거라고 한다.
“오케스트라 악단 같은 건 강남이나 송파 쪽이 많지 않나?”
“움··· 사실 나도 잘 몰라.”
소이 어머니는 어떤 악단에 계시는 걸까?
경력이 경력이니만큼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서 연주하시지 않을까.
나는 가만히 앉아 나선생님을 기다렸다.
“반가워요~”
오늘도 인자하신 얼굴로 교실에 들어오시는 나선생님.
나는 그의 변화를 바로 알아차렸다.
이성친구 머리카락 자른 건 못 알아봐도, 저건 알아볼 수 있다.
“오늘은 어쿠스틱 수업인가요?”
“하하, 수재학생 기타 가방만 보고 알아맞히네요.”
나선생님의 가방에서 테일러 기타가 나왔다.
“다들 피크 내려놓을까요?”
··· 핑거스타일 수업이었다.
나는 기타와 미니앰프를 연결하고, 나선생님의 수업을 따라갔다.
일렉기타리스트는 핑거스타일과 친하지 않다.
못 치는 건 아니지만, 클래식이나 어쿠스틱 잡던 사람들보다는 부족하다.
나는 나선생님 앞에서 ‘핑거스타일’ 연주를 보여 드린 적이 있었다.
불과 몇 주 전 일이다. 반응은 그저 그러셨다.
나선생님은 간단한 코드 아르페지오 연주를 우리에게 시키셨다.
“기타는 옛날에 오케스트라에도 속했어요. 소리가 작아서 밀려나긴 했지만. 그럼에도 기타의 선율은 아주 아름다워서, 수많은 작곡가들이 찬사를 보냈죠. 당시에 음량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면, 오늘날까지 오케스트라에 ‘기타’의 자리가 남아있었을 거예요.”
··· 기타와 오케스트라라.
나는 나선생님의 배경 설명을 곱씹었다.
“흐음 ···”
무난히 메이저 코드를 짚어 나간다.
기타줄을 뜯고, 때리고, 튕기는 나의 오른손가락들.
소이는 내 손을 지긋이 쳐다봤다.
“수재는 클래식도 잘하는구나 ···”
“에이 뭘.”
하다보니까 되는 것뿐이지.
‘클래식’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하민서가 파블로프의 개마냥 나를 째려본다.
뭐.
째려봐서 어쩔건데.
“수재학생, 연습 열심히 했네요. 저번보다 훨씬 깔끔해요.”
“감사합니다!”
나선생님은 고개를 살살 저으셨다.
아리송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다른 애들도, 나선생님과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와 김수재 핑거 스타일도 잘 쳐.”
“쟨 못하는 게 뭐야?”
“··· 우리반에서 핑거 제일 잘하는 건 민서 아냐?”
“민서 인정?”
“아 ··· 응. 고마워.”
하민서는 되게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내 실력이 갑자기 늘어서 그런가.
수업은 무난히 진행되었다.
항상 하던 연습이지만,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건 천지차이였다.
80분의 수업을 끝마치고 복도로 나서려는 순간,
“수재학생, 하루에 연습 얼마나 해?”
나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그 ··· 시간을 재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 하하하. 재보지 않았다라··· 재볼 필요도 없이 많이 한다는 소리지?”
머쓱하게 웃으시는 나선생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세야. 그대로 계속 연습하면 돼. 훨씬 듣기 좋다.”
“··· 감사합니다!”
나선생님은 나의 변화를 알아차리신 것 같다.
오른손의 감각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실력이 복원되고,
‘성장’ 하고 있다.
··· 성장.
한동안 정체되었던 나의 연주력이 연습을 통해 성장세에 접어들었다.
나는 나선생님의 등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같이 연습할래?”
“잠깐만. 교실 좀 들렸다 가자.”
본관으로 돌아간 나는, 창문에 널어놓은 정체불명의 판떼기를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서 가방에 넣어 두었던 찍찍이를 꺼내어 이펙터 들을 붙였다.
“구멍은 집에 가서 뚫으면 되겠네.”
파워 서플라이는 벨크로 테이프랑 청테이프 발라서 붙이고···
전원선 연결하고.
선은 꽉 모아서 청테이프로 감아버리고.
완성.
“간단하지?”
“어 ··· 응.”
소이는 놀람 반 씁쓸 반 섞인 표정을 띄웠다.
외관이 영 별로니까.
보기엔 좀 누더기 같은데, 사용성은 괜찮을 거다.
페달 보드에 당당히 배치된 소이 아버지의 ts808.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랩이라도 싸두고 쓸까···
“크 ···”
나는 여느 월요일과 같이 소이와 연습을 하며 학교를 마쳤다.
“···.”
뚜벅 뚜벅-
지하철을 타고 가나 싶었지만 아니다.
소이는 역과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한 블럭 떨어진 골목에는, 리무진이 대기 중이었다.
매우 건장한 체격의 노년 남성이 우리를 향해 작게 고개를 숙였다.
친구가 금수저라 리무진까지 타보네···
이런 상황은 만화에서나 봤었는데.
우리는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구로구로 이동했다.
“··· 여긴가.”
넓디넓은 건물 앞이었다.
소이네 운전기사님은 다시 차를 몰고 가셨다.
나는 당당히, 건물에 발을 내디뎠다.
공연장은 아니다.
여긴, 오케스트라 ‘연습장’이다.
건물 1층에 단 하나 있는 문을 잡아당긴다.
하지만 곧바로 제지가 들어왔다.
“여기 학원 아니야~”
··· 이제 막 학부 졸업한 것처럼 보이는,
작은 악기 케이스를 손에 쥔 양복 차림의 여성이 우리에게 가시 돋힌 목소리로 말했다.
“기타 학원은 맞은편이야. 돌아가~”
“저희 여기 온 거 맞는데요.”
“뭐? 거짓말도 말이 되게 해야···”
나는 무시하고 문을 열었다.
후끈한 열기가 얼굴을 덮쳐온다.
수 십 명의,
관현악기를 든 수 십명의 사람들의 시선이.
나와 소이에게 내리꽂혔다.
오케스트라의 난입자 (2) – 무료 마지막화 입니다.
나는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호랑이 굴에 들어왔구나.
일렉기타리스트가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밴드공연 경험은 많았지만 ‘오케스트라’ 경험은 전무했다.
시에서 하는 거 구경 가보기만 했지.
“누구야?”
“여기 함부로 들어오면 안 돼~”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적게는 20대, 많게는 50대.
인원은 ··· 50이 약간 안 되어 보인다.
시선이 아주아주 따갑다.
적대감은 서려 있지 않았지만, 연습을 방해받은 것에 미미한 짜증이 난 듯한 얼굴들이었다.
내 등 뒤에 폭 숨는 소이.
엄마 직장에는 와 본 적이 없는 건가?
“흠 ···”
“야, 빨리 안 나가?”
“그러지 말고 구경 좀 합시다.”
“··· 뭐?”
거 사람 참 성격 급하네.
17살 꼬맹이들한테 좀 친절하게 대해 주면 안 되나?
대학도 졸업했고, 오케스트라에 들어왔고, 연봉도 따박따박 나오고.
자신감 만땅 상태라는 건가?
“··· 어때 소이야.”
“뭐가?”
“앰프가 없어.”
“··· 정말이네 ···.”
어이가 없었다.
일렉기타는 앰프가 있어야 한다.
둘이서 하나, 하나이면서 둘.
그게 일렉기타다.
하지만 넓적한 연습실 내에는, 아무리 살펴봐도 기타 앰프가 없었다.
“저걸로는 안 돼?”
“음··· ”
시스템 스피커가 있긴 했다. 파워앰프에 케이블을 직결하면 소리가 나오긴 할 거다.
‘나오긴’ 한다는 거다.
“제대로 된 소리는 안 날 거야. 우리 둘 다 페달 보드라서.”
“아 ···”
멀티이펙터가 있다면 앰프 시뮬과 캐비넷 시뮬 기능을 이용해 시스템 스피커로 직접 기타 앰프 소리를 뽑을 수 있다.
페달 보드에 ‘프리앰프’가 있다면 마찬가지로 가능하다.
하지만 없는 걸 어떡하겠는가.
앰프가 어디서 솟아날 리도 없으니 그냥 쳐야지.
“뭘 그렇게 속닥거려? 자, 빨리 나가.”
이름 모를 젊은 음악인은 소이의 팔을 콱 잡았다.
나도 동시에, 이름모를 음악녀의 팔을 콱 잡았다.
“···?”
“강강술래~”
“···.”
인상 써봤자 주름밖에 안 생기는데.
나의 돌발 행동에 소이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것들이 ···”
이름 모를 여단원은 목소리를 한껏 깔으며 으르렁댔다.
“이것들이 뭐?”
문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부악장님 ···! 안녕하···”
“미소씨 뭐해?”
“··· 네?”
소이 어머니는 웃고 계셨다.
얼굴만.
뭔가 ···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나는 소이와 같이 몇 걸음 물러났다.
“아직 애들이잖아 애들. 설령 잘못 찾아왔다고 해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
“미소씨 우리도 우리 악단 단원이고, 우리 악단의 얼굴이야. 행동 하나하나가 사람들한테 평가받는 거야.”
“··· 네.”
꾸벅 고개를 숙이는 미소라는 여자.
이름이 미소인가.
그럼 미소 좀 짓지 왜 그렇게 미간을 찌푸려댄대.
그나저나 ··· 소이 어머니 부악장이셨구나.
지휘자, 악장, 부악장 순서 아닌가?
··· 세계적인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3위 한 사람이 ‘부악장’으로 있는 건가 ···
수준이 상당히 높은 악단인 것 같다.
과거의 난 대체 누구한테 싸움을 건 걸까?
“내가 말했잖아. 보조 연주자 둘 올 거라고. 미소씨도 재밌겠다고 했으면서 왜 그래?”
“··· 네?
하지만 그녀는 그만 반문을 토하고 말았다.
“왜? 무슨 표정이야?”
“보조 연주자가 ··· 얘네에요?”
“응~ 춘기 콩쿠르 압도적 1등 수재랑, 우리 딸.”
“···.”
소이 어머니는 자랑스러운 듯한 얼굴을 띄웠다.
“우리 딸도 잘 치고, 수재도 잘 치고~”
“··· 이벤트 보조 연주잡니다~ 잘부탁드려요!”
나는 큰 목소리로 단원들에게 인사했다.
전생에서도 마주친 적 없는 얼굴들 뿐이었다.
내가 뭔 오케스트라에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 보조 연주자가 학생이었어?”
“대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
“··· 아, 맞다 맞아. 부악장님 딸이네. 소이!”
“어머어머.”
분위기가 확 반전되었다.
연배 좀 있으신 분들은 후다닥 우리에게 달려왔다.
“많이 컸다~ 저번에 봤을 때는 이마~안 했는데. 아줌마 기억나니?”
“ ··· 죄송해요 ···”
“아냐아냐~ 괜찮아. 오늘 봤으면 됐지.”
“둘이서 기타로 보조한다고?”
소이 어머니와 유독 친해 보이는 중년 남녀 넷.
그들은 거리낌 없이 우리를 받아들여 주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있었다.
··· 대개, 젊은 사람들이었다.
난 이 악단에 대해 잘 모른다.
다만, 소이 엄마가 있을 정도라면 수준 높은 악단인 건 확실하다.
“괜찮죠 미소씨?”
“···네.”
수준 높은 악단에, 젊은 나이로 들어올 수 있을 만한 능력.
그런 능력을 쌓아올린 노력 ···
근데 시발 어쩌라고!
살면서 나랑 마주칠 일도 없을 거 같은데.
내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써야 하나?
나는 그냥 당당하게 나가기로 했다.
젊은 단원들은 직접 불만을 토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소이 엄마 입김이 상당히 강한 모양이다.
“엄마 ··· 앰프가 없어.”
“스피커는 저기 있잖아?”
기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우리 소이 어머니.
“기타 앰프가 없으면 소리가 제대로 안 나 ···.”
“어머, 그런 거니?”
“소이 말이 맞아요. 그렇다고 지금 어디서 가져올 순 없으니 ··· 최대한 다듬어 볼게요.”
“그래~? 수재만 믿을게~”
소이 어머니는 활짝 웃으시며 내 머리를 살살 두들겼다.
남의집 귀한 자식 머리를 만져주시니 아주 기분이 좋구만.
“자~자~ 각자 위치로! 이벤트공연부터 시작해도 되죠?”
“진짜 고등학생 둘이 보조해요?”
“우리 소이랑 수재가 얼마나 잘 치는데~”
“뭐, 이벤트 공연이니까 괜찮지 않아요? 고등학생 둘이 보조자니까 신선할 거 같은데.”
“그런가?”
“전공생 애들이니까 박자 틀리진 않겠죠. 대회도 나갔대잖아요?”
난 말꼬리 늘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실력으로 증명하면 되니까.
우리는 넓디 넓은 연습실을 뒤지며 5.5파이 케이블을 찾았다.
그리고서, 메인 믹서에 기타를 연결했다.
··· 이거 내가 만져도 되는 건가?
여기서 스피커 쓸 사람은 우리밖에 없는데.
뭐, 해도 되겠지.
나는 믹서를 켜고, 스피커를 켜고, 파워 레벨을 조절했다.
이퀄라이저 중립. 톤 레벨 중립··· 을 하면 안 되겠다.
베이스를 빼야 기타다운 소리가 나온다.
게인은 좀 많이 주고, 파워레벨은 떨구고.
나머지는 딱히 건드릴 게 없었다.
어차피 채널 두 세 개만 사용할 것이기에.
“··· 와~ 저런 것도 할 줄 알아?”
“신기하네.”
공연장좀 다니다 보면 다 하게 됩니다.
소이는 신기한 듯 스피커 믹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건 대회 같은 데서는 만질 수 없는 물건이다.
전문가들이 척척 세팅을 해주니까.
“지휘자님 오시면 합주 들어갈게요~”
“바이올린 주세요. 마이크 달아 드릴게요.”
“어머, 고맙다.”
나는 소이 어머니의 바이올린을 받아들고 악기용 마이크를 붙였다.
바이올린 혼자서 오케스트라의 음량을 이길 수는 없다.
‘협연’ 이긴 하지만 사실상 바이올린 솔로다.
“··· 뭐, 말보단 듣는 게 빠르겠죠.”
첼로를 잡고 있는 중년 남성은 그리 말했다.
다들 그의 말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역시 프로다.
새파란 애송이 하나 외에는 말꼬리가 긴 사람이 없구나.
오케스트라 퍼커션 중 한 명이 드럼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역시, 캐논 락에 드럼이 빠질 수는 없지.
끼이익-
원래 주인공의 등장은 가장 늦는다고 하지 않았나.
하나 밖에 없는 넓적한 문이 열렸다.
“···.”
백발의 노년 외국인이었다.
··· 키가 되게 크다.
한 190쯤 될까.
호리호리한 풍채에, 주름진 피부.
하지만 눈매만큼은 아주 날카로웠다.
“Guten abend”
독일어인가?
그는 소이 엄마와 악수를 나눈 뒤, 일정 설명을 듣는 듯 했다.
소이 엄마 독일어도 잘하네. 대단하다.
백발의 외국인 할아버지는 곧바로 지휘봉을 들고서 나에게 다가왔다.
“@!#!!%”
뭐라는 거야?
독일어를 내가 어떻게 알아.
그는 큼큼, 목을 가다듬었더니 영어로 말했다.
“I don’t know who you are. However, you must obey my conduct.”
“Don’t worry sir.”
까불지 말고 지휘나 따르라는 말이었다.
“you have any experience in orchestras?
“Never, ever.”
그는 나에게 오케스트라 경험이 있냐 물었다.
당연히 없지!
호리호리한 노년의 지휘자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사람들의 앞에 섰다.
스피커 세팅을 마친 나와 소이도 오케스트라 단원들 옆에 섰다.
피아노와 제1바이올린 근처였다.
기타를 살살 튕기며, 최대한 ‘어우러질 만한’톤을 만든다.
소이도 내가 노브를 돌리는 걸 보면서 따라 했다.
소이의 기타 톤이 나와 거의 같아졌다.
“그럼 시작할게요~ 맘 편히 해요 다들.”
우우우우웅-
첼로의 묵직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단 한 명의 첼로 도입부.
처음 네 마디가 끝나자, 곧바로 모든 찰현악기들이 현을 켰다.
‘대단하네.’
웅장하다.
클래식 음악과는 연이 얕지만, 딱히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나는 밴드 음악을 가장 좋아한다.
다만, 이 광경을 보면,
이 음량을 마주하게 되면,
꼭 자기 분야가 아니더라도,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래서 10만 원씩 주고 a급 자리에 앉는 거구나.
-시이이이이잉!
바이올린의 날카로운 고음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졌다.
나는 소이 엄마의 손을 넋놓고 바라봤다.
비브라토를 넣는 왼손이, 지진이라도 난 듯 떨리고 있었다.
나는 소이 어머니에게 ‘캐논 락’에 대하여 가르쳤다.
많이 쳤으니까. 곡을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신나게, 깔끔하게, 날카롭게.
캐논 락의 커버는 정말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모두’가 느낌을 잘 살렸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내 기준으로, 소이 어머니는 충분히 느낌을 잘 살릴 정도로 곡을 연마하셨다.
“하나, 둘, 셋.”
나는 소이에게 숫자를 세어주며 기타백킹에 들어갔다.
둥- 두둥!
이름모를 독일인 지휘자 지휘.
오케스트라에 문외한인 내가 지휘자의 세세한 제스쳐를 알 리가 없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감이다.
조화의 감.
수 없이 무대에 오르고, 밴드 사람들과 같이 합을 맞출 때의 감.
나는 드럼 박자에 맞춰 곡조의 리듬을 이끌었다.
힐끗, 지휘자 할아버지가 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지휘 모른다니까.
손을 휘적이는데··· 알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주말동안 가르침을 받은 소이 어머니의 연주는 아주 대단했다.
‘신남’이 뿜어져 나온다.
바이올린에서 나오리라 생각할 수 없는 경쾌한 선율이, 괜히 어깨를 들썩하게 만든다.
··· 내 감정이 잘 전해졌구나.
잘 이해하셨구나.
파악-!
파악-!
나는 소이와 같은 타이밍에 페달을 밟았다.
캐논락은 백킹조차 어렵다.
뭔 백킹에 스윕이랑 속주가 같이 들어가 있냐.
하모닉스 기술이 불안정한 소이 대신, 내가 초 고음을 이끌었다.
관현악단 중에 가장 음이 높은 바이올린,
그리고 그 위를 훨훨 날아다니는 일렉기타의 하모닉스.
오케스트라에 서는 것은 처음인데.
그냥 머릿수 많은 밴드라고 생각하니까 적응하기 쉬웠다.
첫 합주가 끝났다.
누가 누군지도, 지휘자 이름이 뭔지도 모른 상태에서 이루어진 ‘합주’
나는 단원들의 시선을 살폈다.
다들, ‘이놈 뭐지?’ 라는 말을 입이 아닌 얼굴로 하고 있었다.
“··· 좋다~ 너무 좋아.”
소이 어머니가 고개를 돌리며 말하셨다.
제1 바이올린이라 바로 옆이다.
“둘 다 실수를 전혀 안 하네? 떨릴 만도 한데.”
소이 어머니는 소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와 ··· 기대 이상인데요? 하나도 안 어색해요.”
“일렉기타랑 협연하는 건 오랜만이네~”
곡을 마친 단원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 사람들은 일렉기타에 대해 잘 모를 것이다.
다만, ‘공연’에 대해서는 잘 알 것이다.
이곳에 있는 사람은 소이를 제외하곤 다 프로다.
나도 프로긴 프로다.
그리고 소이는, 프로인 나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기타가 있으니까 맛깔나네.”
“멜로디에 화음을 되게 잘 넣네요. 따로 연습해 두신 거예요?”
“물론이지~”
“실력이 보통이 아닌데··· 비브라토 타이밍은 대체 어떻게 맞추셨어요?”
“응? 내가 안 맞췄어.”
단원들의 시선은 전부 내게 쏠렸다.
··· 나는 소이 어머니를 ‘보조’했다.
음이 풍성해지게, 자칫 이질적이게 들릴 수 있는 일렉기타의 화음이 어색해지지 않게.
“··· 쟤들이 맞췄어요?”
“세상에···”
소이 어머니와 친분이 있어 보이는 아줌마는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아까 우리를 제지한 젊은 여자 단원도,
같이 눈을 크게 떴다.
“이거면 ··· 본연 전에 이목을 확 끌 수 있겠는데요?”
소이어머니는 활짝 웃으며 단원들과 대화를 나누셨다.
독일인 지휘자는, 소이엄마에게 다가가 뭔가를 속삭였다.
“수재야, 밀란씨가 정말 오케스트라 경험 없냐시는데?”
“아예 없어요.”
“근데 ··· 어떻게 지휘를 이해했어?”
··· 이해한 건가?
이해하고 자시고도 없다.
아는 곡이니까.
난 지휘자의 지휘를 전부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사람들의 연주는 이해했다.
“지휘를 이해한 게 아니라, 연주를 이해한 거예요.”
소이 엄마는 내가 한 말을 독일어로 번역해주셨다.
독일인 지휘자, ‘밀란’이라는 사람은,
옅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방금 지휘자님 웃은 거야?”
“에이, 잘못 본 거 아니야?”
“아니에요 확실히 ···”
나는 그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와 소이는 단원들과 총 세 번 합을 맞췄다.
수 십개의 악기가 조화를 이루는 오케스트라.
가슴이 벅찼다.
만약 내가 ‘메인’ 연주자로서 관심을 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주제넘은 바람이란 건 잘 알지만 서도.
괜한 망상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가~ 소이는 밥 잘 챙겨 먹고! 반찬도 많은데 애가 왜 밥을 안먹… ”
“아, 알았어···”
나는 소이 어머니께 인사를 드린 다음 건물 밖으로 나섰다.
“누구 부를 거야?”
“음 ···”
소이 어머니는 내게 티켓 네 장을 주셨다.
B급 좌석 티켓이었다.
높은 등급의 좌석은 이미 다 팔렸다고 한다.
“글쎄 ···”
나는 카톡을 켰다.
부모님은 ··· 오실지 안 오실지 모르겠네.
누굴 부르지.
까톡-
메시지가 날아왔다. 혁오다.
– 야 이거 좀 봐봐.
단톡방에 띄워진 유튜브 링크.
나는 영상을 확인했다.
저번 그거네. 프리티 플라이.
근데 ··· 뭐지?
실시간 급상승 #95
뭔가… 이상한 태그가 붙어 있다.
급상승이라고?
나는 손을 덜덜 떨며 댓글란을 띄웠다.
“푸흡!”
내 핸드폰을 같이 보던 소이가 웃음을 터뜨린다.
Rkatkgkq 님의 댓글 :
연주력 10/10
퍼포먼스 10/10
관중반응 10/10
젖꼭지 6/6
“···.”
“흐흐흡!”
··· 좋아요는 또 왜 150개나 박혀 있어.
소이의 폭소는 10분이 지나서야 멈췄다.
진짜 누구 불러야 되냐.
오케스트라에 올 만한 사람이 ···
“어?”
나의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오케스트라의 난입자 (3) – 유료 시작입니다.
“오빠 진짜 진짜 난리 났어.”
“뭐?”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동생이 내민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페북이네.
페이스북 불펌러들이 영상을 퍼갔다.
요즘 애들이 참 인터넷 활용을 잘한다니까.
자기들끼리 ㅋㅋㅋㅋ 치고 난리가 났잖아.
-세연이 오빠 몸 은근 좋음.
-본인 등판 안 하나?
-본인 등판 해주세요 ㅠㅠㅠ
저작권 신고해야지~
이게 다 돈인데.
불펌된 영상으로는 돈을 못 번다.
한 30초 쯤 퍼가는 건 괜찮은데 동영상을 통째로 올려버리는 건 용서 못하겠다.
나는 ‘통짜’ 불펌러들만 골라서 에이트라에게 카톡을 보냈다.
– 여기 불펌 링크요
– 너무 많이 퍼가서 ㅠㅠ 대처 중입니다.
나는 에이트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원 히트 원더.
영상 하나가 떴다고 해서 구독자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까.
100만짜리 영상이 나와도 3만 정도의 구독자가 생길 뿐이다.
3만 ···
적은 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큰 수도 아니다.
수익은 기대만큼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에이트라의 채널에 기생하기로 했다.
충분히 유명세를 획득한 다음에, 한 번에 구독자를 확보한다.
유명세와 실력 향상. 내 장기적인 과제였다.
“55:45인가 ···”
“뭐가?”
“비율.”
에이트라가 편집부터 촬영까지 다 해주는데 45만 가져가겠단다. 하꼬도 아니고 나름 큰 채널인데.
응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저작권은 ‘공동 2차 저작권.’
계약된 법률사무소도 있다고 하니, 법 관련 문제도 한 시름 덜 수 있다.
뭐, 커버곡만 저작권을 나눠 갖고 자작곡은 음성 저작권이 아예 내 거다.
··· 독소조항은 없었다.
이 사람, 진심이다.
진심으로 날 띄우려고 하고 있다.
내 답변을 들은 전화 너머의 에이트라는, 아주 들뜬 듯 했다.
“흠흠~”
기분이 좋다.
부모님께 여쭤보니, 역시나 시간을 내실 수 없다고 한다.
맞벌이 부부의 슬픔이란.
일정이 갑자기 잡혔으니 어쩔 수 없지.
대신 나는 새로운 작전을 생각해 냈다.
“진짜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해? 진짜?”
“응. 너도 올래?”
“음 ··· “
동생은 고민하는 듯한 얼굴을 띄웠다.
“안 갈래. 지루할 거 같아.”
“난 널 그렇게 키우지 않았어! 하나밖에 없는 오빠 공연을 안 보러 오다니!”
나는 세연이의 볼을 꼬집었다.
사실 그냥 꼬집고 싶어졌다.
“아악!”
세연이도 내 볼을 같이 꼬집었다.
“갸아아아악!”
“나 중간고사 얼마 안 남았거든? 곡 하나만 한다며! 어차피 유튜브에 올라갈 거잖아!”
“음···”
유튜브에 올라갈지 안 올라갈지 모르겠네.
촬영 허가가 날지 안 날지도 모르고.
내일 소이 어머니께 물어봐야겠다.
나는 세연이의 볼을 놓고 방으로 돌아가 아르페지오 연습을 한 뒤 다음 잠들었다.
다음날 점심.
복불복 성향이 강했던 학교 점심이, 마침내 한계에 다다랐다.
메뉴판에 적힌 것은 ‘강된장 비빔밥’.
하지만, 정작 나온 것은 ‘묽은 쌈장’ 비빔밥이었다.
“이게 말이 되냐?”
“이게 학교냐?”
도현이와 혁오는 말을 잇지 못했다.
코다리 튀김을 묵묵히 씹어먹던 소이조차, 윤수빈이랑 같이 매점으로 도망쳤다.
소이가 도망칠 정도의 점심.
우리는 학교 담을 넘어 후문 바로 앞 짜장면집으로 향했다.
짜장면집 아저씨는 갑작스런 호황에 중식의 프로다운 모습을 연신 뽐내셨다.
“이야, 쥑이네.”
“이게 학교지.”
“여기가 왜 학교야.”
“학교 앞이잖아.”
개 쓸데 없는 대화를 주고받네.
나는 지갑에서 관람권 두 개를 꺼내어 두 사람에게 내밀었다.
“이거 뭐임?”
“나 여기서 공연한다.”
“개소리 하지 말고 ··· 어?”
예술의 전당 챔버홀.
콘서트홀은 아니지만, 예술의 전당이다.
600석 규모라곤 하지만 그래도 예술의 전당이다.
“리얼? 여기서 연주함?”
“난 그냥 이벤트 공연 잠깐 도와주는 거야.”
맞다. 잠깐 도와주는 것뿐.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캐논 락 예술의 전당 공연,’
어그로가 엄청 끌리지 않을까?
유튜브는 조회수가 명성이자 수입이다.
촬영 허가만 받을 수 있다면 ···.
‘이벤트 공연’만이라도 촬영할 수 있다면.
엄청난 관심이 몰릴 것이다.
캐논 락은 그 정도의 파괴력을 갖춘 곡이다.
“우리 구경 오라고?”
“그렇지. 인터뷰도 하고.”
“인터뷰? 저번에 그 유튜버도 온대?”
“응.”
“우리 영상 조회수 오지던데. 얼마 벌었을까.”
“기다려봐.”
나는 지갑에서 16만 원을 꺼내어 도현이랑 혁오에게 반반씩 건넸다.
“앞으로 같이 나올 영상은 엔빵 콜? 나 그 유튜버랑 수입 나눠 가짐.”
“콜.”
“콜! 여윽시 김수재. 손해는 절대 안 보는구나.”
“사장님 여기 깐풍기 빨리해주세요!”
돈이 생기자마자 음식을 시키네.
정말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놈들이다.
우리는 짜장면과 깐풍기를 흡입하고서 무사히 오후 수업을 마쳤다.
에이트라는 나의 계획을 듣고서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오케스트라 캐논 락이요? 이건 무조건 뜰 거예요. 근데 촬영 허가가···
-제가 한 번 받아보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에이트라는 차를 몰고 와서 계약서 한 부를 가져갔다.
나머지 한 부는 내 것이다.
채널이 이 기세로 성장하면 ··· 구독자 100만도 먼 미래는 아닐 터.
나는 회귀하기 전에 ‘에이트라’라는 채널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다.
뭐, 채널 이름쯤이야 자주 바뀌니까.
지금도 버스킹, 음악 채널이 몇 개는 되는데 회귀하기 전에는 그 숫자가 수십으로 불어 있었다.
기억을 못 하는 것은 당연했다.
@ 한 때 미쳤던 소년의 반전ㄷㄷㄷㄷ @
토요일에 홍대에서 찍은 영상도 순항 중이었다.
조회수는 약 9만.
나는 재빨리 댓글창을 띄웠다.
– 오늘은 상의 탈의 안 하네.
– 개무서움 ㄷㄷ 혼자 있으니까 잘 침.
– 노래 원곡 뭐에요?
– 이사람 이중인격자임?
– 와 영상 분위기 봐 ㅠㅠㅠ 잘 듣고 갑니다.
나의 커버 영상은 원작자의 채널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작은 유입이지만, 분명 도움이 되고 있었다.
너무 감동스럽다.
“흐음 ···”
나는 학원 레슨을 끝마치고 집을 향해 걸었다.
도현이와 혁오, 그리고 에이트라.
티켓 한 장이 남았다.
“···.”
얘랑은 진짜 자주 마주치는 것 같다.
같은 반도, 같은 학원도 아닌데.
밥도 거의 같이 안 먹는데.
“웍!”
“끼야악!”
한밤중이었다.
요 며칠 동안 비가 내려서 그런지 밤하늘이 맑다.
도시의 불빛이 무성한데도, 밝은 별들은 하늘에서 당당히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다.
최유진은 불 꺼진 악기점 앞에서 서성였다.
“아후 ··· 심장 떨어질 뻔 했잖아!”
“뭐하냐?”
“그냥~”
학원근처 악기점의 창가에는 기타 몇 대가 진열되어 있었다.
“기타 사게?”
“알바해서 돈 모아놨거든. 아직 좀 부족하지만.”
“너 알바도 해?”
“응. 방학에만.”
··· 되게 열심히 산다.
내가 최유진을 존경할만 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그녀는 진심으로 음악을 사랑하고, 늪에 빠져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최유진이 보고 있던 건 텔레캐스터였다.
“넌 싱글 픽업 달린 건 안 쓰냐?”
“소리가 너무 까랑까랑하잖아~”
“그럼 왜 쳐다보고 있어.”
“예쁘잖아.”
나는 노란색 텔래캐스터를 가리켰다.
“기타는 자기 눈에 예쁜 게 최고야. 괜히 다른 사람이 추천하는 거 샀다가 죽도 밥도 안 돼.”
입문자들이 자주 하는 실수다.
저게 예쁜 거 같은데. 저게 멋있는 거 같은데.
하지만 사람들이 추천을 안 하는데?
입문용으로 많이 찾는 거 사야겠다.
실수다. 명확한 실수다.
엄청 괴상하게 생긴 놈이 아닌 이상, 자기 눈에 예쁜 기타를 사는 게 맞다.
플로이드로즈 달린 거 빼고.
그래야 한 번이라도 더 기타를 잡고, 취미로 굳힐 수 있다.
예쁜걸 사서 열심히 치다 보면 다른 기타도 눈에 들어오고, 그때부터 기타에 대해 알아가는 거지.
“그런가?”
“그래 임마. 레스폴만 쓰면 안 돼. 여러 개 써봐야지.”
“으음 ··· 펜더인게 조금 ···”
나는 지갑을 뒤적였다.
단 한 장 남은 공연 티켓을, 최유진의 눈앞에 내민다.
“시간 있으면 보러 와.”
“오케스트라?”
“나 여기서 이벤트 공연 도와주기로 했음.”
“진짜? 오케스트라에 선다고?!”
최유진은 눈을 반짝이며 내가 내민 티켓을 받아 들었다.
“소이도 같이 해.”
“우와~”
환한 미소를 띄우는 최유진.
참 멋진 놈이다.
* * *
적적한 분위기의 카페.
그곳에서 권은정은 친분 있는 단원 몇과 작은 다과 모임을 가지는 중이었다.
오케스트라에서의 권위는 보통 지휘자, 악장, 부악장 순이었지만 권은정이 속한 곳은 달랐다.
악장은 대학 교수직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악단에 얼굴을 자주 내비치지 않는다.
사실상 오케스트라의 중축이 되어 이끄는 사람은 부악장 권은정이었다.
“촬영 허가요? 부악장님이 괜찮으시다면야 ··· 어차피 이벤트 공연만 찍는 거잖아요?”
“맞아요. 단원들 얼굴은 안 나올 거예요 아마.”
“흠 ··· 아직 고등학교 1학년이랬죠? 촬영도 하러 오고. 대단하네요.”
“그러게요~”
권은정은 따뜻한 커피를 머금었다.
실력 있는 바리스타가 고급 원두를 사용하여 내린 더블샷 아메리카노.
쓴 맛이 느껴질 법하지만, 감칠맛이 먼저 혀를 덮는다.
아주 감미로웠다.
“근데 걔가 그렇게 잘 쳐요? 전문 백밴드 세워도 될 텐데.”
“악장님도 참 잘 모르셔~ 백밴드를 사서 세우면 ‘이벤트’ 같지가 않잖아요.”
“하하, 그렇죠··· 근데 그래도···”
“잘 쳐요. 아주.”
화연 교향악단.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입단 테스트가 까다롭고, 연봉이 세고, 연력은 20년 정도인 화연악단은, 세계 어느 무대에 서도 기립 박수를 받을 만한 실력자들이 모인 곳이었다.
화연악단의 악장 정종찬은 말을 이었다.
“··· 부악장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다니 ··· 기타에 관심 없으셨잖아요?”
“기타 소리는 원래 좋아했어요. 관심은 얼마 전에 생겼고.”
“우리 부악장님 좀 변한 거 같아요~ 봐봐요, 맨날 웃고 계시잖아요.”
“어머, 그런가?”
권은정은 괜스레 미소를 감추려 티슈로 입을 닦았다.
“게다가, 그 김수재라는 애 실력이 보통이 아니에요. 박자를 ‘리드’했다니까요?”
“··· 악단의 박자를 리드한다고?”
“네~”
“부악장님이 괜히 데려온 게 아니에요~”
당시 연습실에 없었던 악장 정종찬은, 믿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살살 저었다.
권은정은 은은한 미소를 띄웠다.
딸과 같이 서는 무대 ···
지금까지 없었던 무대.
이러면 안 되지만, 본연보다 더욱 기대되는 것 같았다.
“아, 이번 연주회에 기자분들 오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 그런가?”
권은정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쩌면, 딸이 신문에 나올 수도 있겠다.
오려서 액자에 넣어둬야겠다.
* * *
“진짜 이걸로 될까?”
“괜찮겠지 뭐.”
“아 존나 무겁네.”
“바닥에 떨어뜨리면 100만 원 날아감.”
“남자애들이 왜 이렇게 힘이 없어?”
4월 13일 수요일 저녁.
나는 소이, 최유진, 혁오, 도현이와 같이 예술의 전당 ibk 챔버 홀로 향했다.
“유진아~ 소이야~”
윤수빈도 와 있었네.
소이가 부른 건가.
소이와 최유진, 윤수빈은 자기들끼리 신나게 수다를 떨며 걸었다.
나는 혁오와 도현이를 짐꾼으로 부려 먹었다.
“후우!”
1w급 앰프를 무대 구석에 놓는다. 소이네 집에서 가져온 물건이다.
1w 급이라 해도, ‘진공관’ 1w다.
볼륨을 다 키우면 트렌지스터 30w 급 음량 정도는 나온다.
여기에 앰프마이킹을 하면, 꽤 괜찮은 사운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스택앰프나 2방짜리 콤보 진공관에 미치지는 못한다.
그래도 시스템 스피커가 최상급이니 김빠진 소리는 안 나겠지.
“수고해라~”
“그래~”
“우리 인터뷰 언제 하냐?”
“공연 끝나고 한대.”
“아 긴장되네.”
무대에는 이미 수 십개의 접이식 의자가 놓여 있었다.
척척, 공연 준비를 하는 단원들.
나도 직원에게 마이크와 멀티탭을 부탁하여 세팅하기 시작했다.
문뜩, 고개를 올려 관객석을 확인한다.
“··· 넓구나.”
2층까지 있네.
저곳에 사람이 꽉 차게 되는 건가?
왠지 콩쿠르 본선이 생각난다. 다른 점이라면 ···
그래,
그게 다르구나.
저곳에 앉는 사람들은, ‘돈’을 주고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다.
유료 무대.
프로들의 무대.
나는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땀을 슥슥 닦았다.
긴장이 되지만, 관심 받을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한다.
한 두명씩, 관객석에 사람이 차기 시작했다.
“…어?”
입구 쪽을 바라보던 나는,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버렸다.
예상치 못했던 사람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