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38
비오는 날의 기타리스트 (1)
나는 한순간이지만 학교에서 ‘영웅’이 되었다.
신입생 음악회 최초로 예고원정 1등 달성.
누가 퍼트렸는지 모를 우리의 화려한 무대영상에 매료된 선배들은, 교문부터 환호를 질러댔다.
기분이 한층 업된 선생님은 통큰 아량으로 우리반 애들에게 피자를 돌리셨다.
물론 당연히 피자스쿨이다.
당당하고 멋진 걸음걸이를 하시던 채미현 선생님이 아직도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피자회식을 끝나친 다음에 반 애들과 2차를 간 것은 덤.
다들 성장기라 아주 잘 먹더라.
아주.
4월 9일 토요일 오전 9시 10분.
오랜만에 늦잠을 자서 그런가, 머리가 엄청 아프다.
오지게 아프다.
“으으으윽악.”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왜 이러지.
나는 이불 속에서 몸서리쳤다.
고통의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침대에서 자지 않았으니까]이불과 같이 침대에서 미끄러진 모습이 지금 내 꼴이었다.
“아으 ···”
나는 목을 부여잡고 일어났다.
스트레칭을 하니 통증은 금세 가셨다.
곧바로 냉장고로 달려가 콜라 한 잔을 원샷 한다.
역시 갈증 날 때 들이켜는 콜라는 꿀맛이다.
세연이는 오늘도 tv 를 켜 놓은 채 핸드폰질을 하고 있었다.
쟨 대체 왜 ‘소파’에 앉질 않고 등받이용으로만 쓰는 거지?
한국인 종특인가.
“오빠 아침 먹을 거야?”
“몰라.”
“맨날 모른대.”
“엄마아빠는?”
“모임 나가셨는데?”
아 ··· 차려 먹어야 되네.
순간적으로 귀찮음이 몰려왔다.
회귀하기 전에는 혼자 차려먹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자취계의 마스터셰프급 솜씨를 당당히 뽐냈었는데.
나는 냉장고를 뒤지며 막장 요리를 시작했다.
김치 넣고 밥 넣고 간장 넣고 표면이 말라비틀어진 햄 쪼가리도 넣고.
마법의 가루도 좀 넣고.
볶는다.
“··· 오빠 왜 그래?”
세연이가 나를 수상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뭐야. 요리하는 거 처음 보나 ···
“오빠 요리하는 거 처음 봐.”
“···”
그러네.
회귀하고 나서 처음 요리하는 것 같다.
피니쉬는 계란 후라이와 김 가루였다.
나는 tv앞 테이블로 후라이팬을 가져와서 동생이랑 같이 떠먹었다.
“마싯땅~”
“입 벌리고 먹지 마라 진짜 개 때리고 싶게.”
“싫은데~”
쭈왑쭈왑짭쨥-
나는 쩝쩝대는 세연이의 머리통을 숟가락으로 한 대 때린 뒤, 볶음밥을 퍼먹었다.
내가 만들었지만 맛있긴 하네.
찰칵-
세연이는 먹다말고 핸드폰으로 볶음밥을 찍더니, 친구들 단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 오빠가 만들어줌 ㅋㅋㅋ
– 밥도 해줘? 세연이 오빠 너무 착하다 ㄷㄷㄷㄷ
– 잘생김?
– https://www.youtube.com/watch?v=asdfjsldkfjlkasjdlkasd 세연이 오라버니 얼굴
동생 단톡방에서 내 얼굴이 공유되고 있었다. 진짜 충격과 공포다.
세연이는 곧바로 링크를 눌러 동영상을 확인했다.
우리학교 신입생 음악회에서 소이와 듀오 연주를 했던 영상이었다.
유튜버 양반 ··· 보정 진짜 잘했네.
– 세연아 이제부터 새언니라고 불러.
– 미친 ㅋㅋㅋㅋㅋ
나는 동생의 카톡을 훔쳐보며 피식, 실소를 뿜었다.
어제 예고에서 공연했던 거 유튜브에 올라갔으려나?
“···올라왔네.”
분명 유튜버 양반은 안 왔었는데.
영상은 채널에 똑똑히 올라가 있었다.
조회수는 ··· 하룻밤 사이에 5만 5천을 찍었다.
– 예술고 신입생음악회 대참사 –
화질은 평소 영상에 비해 좀 안좋았다.
학생들이 찍은 걸 여차저차 해서 받은 건가?
촬영 허가가 떨어지지 않은 모양이다.
하룻밤에 5만 5천이라니 ··· 상승세가 엄청나다.
댓글 반응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 공연 개 재밌게 하네
– 상의 탈의 간지 ㅇㅈ
– 이게 기타리스트지.
– 아 진짜 밥 먹으면서 보다가 눈 다버림 ㅡㅡ
그러니까 누가 남자 젖꼭지를 밥먹으면서 보래.
“아, 이건 좀 극혐이다.”
세연이가 예고 영상을 보더니 그리 말했다.
“너 친구들도 이거 봤냐?”
“응. 웃기다고 난리야. 빨리 소개시켜달래.”
역시 저나이대 애들은 다 웃음귀신이라니까.
“오빠 이제 유명인 되는 거야?”
유명하긴.
펜더에서 내 시그니쳐 기타 만들어준다고 해야 좀 유명한 거지.
“내가 좀 비싼 몸이잖냐.”
“안 씻어서 더럽잖아.”
“응 꺼져. 설거지 네가 해라.”
나는 밥을 다 먹고 세연이를 가볍게 발로 찬 다음 방으로 돌아가 기타를 잡았다.
토요일의 아침.
오늘은 부모님도 안 계시고, 동생은 줄곧 거실에 있을 거다.
기타치기 딱 적당한 환경이라는 소리다.
나는 피크를 내려놓고 핑거링 크로매틱을 시작했다.
부족한 오른손 테크닉 향상을 위해 항상 하던 짓이었다.
점점 빨라지는 크로매틱 템포, 기타줄을 튕기고 뜯는 내 오른손가락들.
아르페지오 활용성은 B- 까지 올라왔다.
이대로 꾸준히 연습을 계속하면 나는 최소 A 급의 기타연주력을 갖게 될 것이다.
A급.
A 급이면 어떻게 되고 S급이면 어떻게 되는 지 모르겠지만,
회귀전의 내가 도저히 닿을 수 없었던 경지인 것은 분명하다.
계단의 끝에는, 내가 동경하는 지미 페이지가 있을 것이다.
“치킨인더 콘~”
나는 외줄 기타리스트에 빙의해서 노래를 불렀다.
밖에는 어느덧 비가 주륵주륵 내리고 있었다.
분위기참 좋구만.
티잉-!
하지만 그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기타 줄이, 끊어졌다.
“아 ··· 씁.”
절묘하게 끊어진 1번 줄.
기타줄이 없으면 연습을 할 수 없다. 책상을 뒤져도 여분이 없다.
다 써버렸나 보다.
콜트에 감긴 기타줄은 ···
“이건 못쓰겠네.”
녹이 제대로 슬어 있었다.
나는 곧바로 옷을 갈아 입었다.
아무래도 기타줄을 좀 많이 사 놔야 할 것 같다.
“나갔다 올게~”
“기타는 왜 가져가?”
“학원 연습실 쓰려고.”
예전에 확인해 본 결과, 기타가방에 방수력이 어느정도 있었다.
우산 큰 걸로 쓰면 괜찮겠지 뭐.
나는 기타를 들쳐 멘 채 보슬보슬 비가 내리는 거리를 걸었다.
집에서 학원 까지의 거리는 가깝다.
실용음악 학원들이 몰려있는 상가 근처에는, 꼭 악기점들이 몇 있다.
낙원 상가 같은 곳보다는 규모가 작을 지언정, 기타 줄은 팔 것이다.
악기점 앞에 익숙한 형태의 뒤통수가 보인다.
나는 살금살금 다가가 목청을 높였다.
“웍!”
“꺄악!”
최유진이었다.
“으으으으으.”
최유진은 어깨를 부여잡으며 차도에 튀어나온 야생동물처럼 떨었다.
“아 진짜!”
“키키킥.”
“뭐하러 온 건데?”
“기타줄 사러.”
“너도?”
같은날 한 시에 기타줄이 끊어지다니. 엄청난 우연이다.
“너 학교에서 되게 유명해졌더라. 선배들이 막 찾아갔잖아.”
“혹시 그 영상 봤냐?”
“이거?”
최유진은 핸드폰을 내밀었다.
병신 셋의 혼이 담긴 pretty fly가 저질 핸드폰 스피커로 빵빵 흘러나오고 있었다.
··· 그사이 동영상 조회수가 6만이 됐다.
“멋지네.”
“와 ··· 철면피다 진짜. 어떻게 창피함을 하나도 못느끼냐.”
“엣햄.”
우리는 시답잖은 노가리를 까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졸려 보이는 주인아저씨에게 어니볼 퓨어 니켈 기타줄을 주문한다.
없을 줄 알았는데 ··· 있네.
“기타줄이 8천 원이나 해? 소리가 더 좋은가?”
“본디 기타의 소리는 기타줄에서 나오는 것을 모르다니, 무지하구나. 이게 소리가 좀 더 부드러워.”
“흠 ···”
“그리고 녹도 안 슬어.”
“··· 오!?”
드라이브가 한 단계 덜 먹는 느낌이 나지만, 괜찮다.
맨질맨질한게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기타줄 갈아줄까?”
“부탁드립니다.”
내가 가는 것보단 낫지.
난 주인 아저씨에게 기타를 맡기고 핸드폰을 켰다.
··· 유튜버 양반에게서 카톡이 와 있었다.
-잠시 통화 가능할까요?
나는 망설임 없이 에이트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아 안녕하세요! 혹시 어제 찍었던 영상 ···
“네. 업로드 하셔도 돼요. 이미 올리셨더만.”
– 감사합니다! 점점 인기가 많아지시는 것 같아요.
조회수 5만이면 ··· 광고료로 10-20만 원 정도 벌리는 건가.
짭짤해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채널 평균 조회수보단 낮던데.
굳이 내 영상을 올리는 이유가 뭘까?
나는 문뜩 궁금해졌다.
“근데 굳이 제 연주를 올리시는 이유가 있어요? 하민서 것만 올려도 될 텐데. 따로 찍는 것도 있으시고.”
-하하 ··· 그게 ···
에이트라는 뜸을 들였다.
– 사실 김수재씨 연주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요. 저도 일단 음악 쪽 전공자거든요. 뭐랄까··· 되게 맛깔나요.
“아하 ···”
음악 전공자 출신 유튜버라 ··· 흔한 조합이긴 했다.
지금 멀뚱히 통화를 엿듣는 최유진도 나중에는 유튜버를 하니까.
그런데 이사람도 나한테 맛깔난다고 그러네.
– 예고 공연은 엄청 놀랐어요. 퍼포먼스가 대단하시던데요. 촬영 허가만 받았으면 ··· 고화질로 담을 수 있었을 텐데.
에이트라는 아쉽다는 듯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에이, 다음 기회가 있겠죠.”
– g선상의 아리아 락버전은 지금 편집중인데 ··· 이것도 되게 좋아요. 사실 사운드는 예고생 한테 부탁해서 마이킹 따 놨거든요? 조회수가 상당할 거 같아요.
장난스럽게, 그리고 한 편으론 진지하게.
이른바 분위기 반전이란 것이다.
영상화 하기 좋은 요소는 다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오늘 시간 괜찮으세요?
“오늘요?”
-네, 제가 지금 홍대 카페에 있는데 거리공연 하시면 어떨까 해서.
“비 오는 데요?”
비오는 데 버스킹이라니.
기타 젖어서 다 망가지겠다.
– 아, 테라스가 있는 곳이라서요. 비 맞을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유동인구는요?”
– 적당히 많습니다. 촬영하기 좋아요. 당연히 보수금은 챙겨 드릴 거고요.
···.
사람들은 비 맞는 걸 싫어한다.
하지만, ‘안전한’ 장소에서 빗소리를 들으면 감성적이라 느낀다.
유동인구가 많은 홍대와, 테라스가 있는 카페.
좋은데?
“가죠. 위치 좀 찍어주세요.”
– 아 넵!
나는 새 줄이 장착된 기타를 받아들고 밖으로 나섰다.
최유진이 따라온다.
“홍대 간다고?”
“귀 진짜 밝네. 너도 따라오려고?”
“응.”
“그래라.”
말동무 있으면 안 심심하고 좋지 뭐.
우리는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투툭투툭 우산을 때리는 비와, 오늘따라 인적이 없는 집근처 거리의 풍경.
“···.”
그리고, 하민서.
창 하나를 둔 사이였다.
그녀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민서아냐?”
“그러게.”
··· 토요일이면 집에서 간단히 먹어도 될 텐데.
집에 밥이 없는 건가?
나는 도저히 말을 걸 기분이 들지 않았다.
기척을 느낀 하민서도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을 피했다.
뭔가, 되게 찜찜한 느낌이다.
우리는 지하철을 갈아타며 홍대로 향했다. 어째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유동인구가 많은 홍대 거리 한 켠에 자리 잡은 세련된 카페.
임대료 진짜 많이 나갈 거 같다.
테라스 위에는 나무지붕이 있어서 햇빛이나 비를 막아주는 듯 했다.
기타를 들쳐멘 남녀가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시선이 쏠렸다.
저 멀리, 에이트라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든다.
책상 위에 펼쳐진 맥북과 매우 두꺼운 외장 하드.
카페에서 영상 편집을 하나보다.
“여기에요!”
나는 에이트라 앞자리에 앉았다.
뭔가 신난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최유진.
50만유튜버를 볼 기회가 흔하진 않으니까.
“와주셔서 감사해요 ··· 아, 지금 영상 편집 중이거든요? 잠시만요.”
그는 재빨리 효과 랜더링을 걸어놓더니 카운터에 가서 카라멜 마끼아또 두 잔을 받아왔다.
“드세요. 친구분이랑 같이 오셨네요? 혹시 여자친구?”
행복한 얼굴로 단맛을 음미하던 최유진 손사레를 쳤다.
“아니에요!”
“하하, 그냥 친구분이시구나.”
분위기 서먹할까봐 장난도 쳐 주네.
사회성 좋은 사람이다.
“근데 ··· 여기서 공연해도 되는 거에요?”
“여기 사장이 제 친구라서요. 가끔 음악업계 사람들이 들리곤 해요. 연주도 하고요”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카메라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
··· 이 사람 감이 되게 좋네.
지금으로부터 2년 정도 후.
‘감성적인 배경’으로 기타 커버를 하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나며 인기를 끌게 된다.
단색의 벽돌, 바다를 배경 삼은 푸른색 텔레캐스터.
그들의 영상은 센세이션한 바람을 일으켰다.
현재의 악기연주 영상이란 대개 연습실이나 방구석, 혹은 ‘무대’ 쪽에 치우쳐 있었다.
“구도 이렇게 잡을게요!”
카메라는 단 한 대 뿐이었다.
비가 떨어지는 처마와 내 연주 영상이 같이 찍히도록 세팅되었다.
영상 공부도 빡세게 한 모양이다.
“뭐야, 버스킹이야?”
“되게 어려보이는데?”
카페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이 하나 둘 씩 모이기 시작했다.
나는 기타를 꺼냈다.
“크 ··· 기타 색도 좋고~ 앰프는 이거 쓰시면 돼요.”
학원 갈 생각으로 메고 나왔던 거라 이펙터는 따로 안 가져왔는데.
멀티 이펙터가 내장된 로랜드 마이크로 큐브.
나는 에이트라의 철저한 준비성에 감탄했다.
케이블을 들고 카페의 테라스로 나갔다.
비는 여전히 내린다.
사람들은 형형색색의 우산을 든 채 거리를 서성였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이었다.
“그럼 준비되시는 대로 ···”
“어!?”
에이트라의 말을, 더 큰 목소리가 끊었다.
나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 눈을 땡그렇게 뜨고 있는, 40대 후반의 남성.
“그거 내 기타잖아?”
어안이 벙벙했다.
동시에, 나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머릿속에 플래시백 됐다.
-그 사람이랑 마주치게 된다면, 말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 사람은···-
-펜더기타를 싫어하거든.-
··· 이름을 안 알려주시길래 뭔가 싶었는데.
볼드모트 아닌가 싶었는데.
이사람이었구나.
역시 이 업계는 좁다.
진짜, 숨이 막힐 정도로 좁다.
“와~ 그걸 사오는 애가 있네.”
이름을 말씀하지 않으신 이유가 있다.
이 사람은 괴팍하다.
나쁜 사람은 아닌데, 존나 이상한 사람이다.
그리고 자기 이름이 남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걸 격렬히 싫어한다.
미들 픽업을 팍 내려버린 이유는, 아마 ‘적응’의 문제였을 것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깁슨 빠돌이니까.
평생 미들픽업이 없는 기타를 사용했으니까.
“에잉 쯧쯧, 깁슨을 사야지. 그걸 사 오면 어떡해!”
다라라랑-
나는 기타 현을 튕기며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민수의 스승님.
그리고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