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45
상남자의 중간고사, 세션 (1)
요 며칠 새 들떠있던 기분은, 이틀이 지나자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신입생 음악회, 예고 원정, 오케스트라 난입.
적어도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신나기 짝이 없는 이벤트였다.
다만, 예정된 미래는 반드시 다가온다.
중간고사 말이다.
“···.”
“어차피 대학 실기로 갈 건데~ 중간고사 잘 칠 필요가 있나?”
“맞다. 그게 펙트다.”
4월 15일 금요일.
도현이와 혁오는 현실 부정을 넘어 이내 정신 승리를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뭐, 혁오는 머리가 좋으니까 괜찮다 치자.
도현이도 베이스 실력이 썩 좋으니 연습만 제대로 한다면 입시에서 떨어지진 않을 것이다.
나는 ···
“너도 어차피 실기로 대학 가는 거 아니냐? 공부 왜 함?”
혁오는 점심도 안 먹고 학교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있던 나에게 의문을 표했다.
“··· 듣고 보니 존나 일리 있는 말인데?”
“그치?”
“근데 꼴등 하기는 싫어.”
나는 과거의 기억을 더듬었다.
중학교 때의 나.
성적이 썩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중간에서 약간 위 정도였다.
가끔 삘 받고 열심히 해서 50위권까지 찍어 본 적도 있다.
··· 그런데 그런 내가 갑자기 꼴등을 한다면.
부모님도 충격이 여간 크시겠지.
“고 1수준이야 다 거기서 거기구만.”
“또 개소리 하네. 안 어렵냐?”
“존나 어려운데?”
내 머리가 나쁜 게 아니야.
한국이 어려운 거야 한국이 ···!
미국 캐나다 프랑스 사우디 아라비아를 봐도 고1때 이런 걸 배우진 않아 ···!
나 또한 두 사람과 같이 정신승리를 했다.
그리고서 책상을 텅,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그게 상남자지.”
“맞아.”
우리는 매점 앞에 놓인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 남자답게 들이켰다.
“케헥!”
도현이가 코코팜을 뱉었다.
알갱이가 걸렸나 보다.
븅신.
“괜찮냐?”
“아 ··· 콧구멍으로 넘어갈 뻔. 근데 맛있다.”
“개드럽네 진짜.”
우리는 커피 자판기 앞 직장인 아재들처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5월에 전국 장학경연대회 열리잖아. 그거 지금부터 준비해야 되지 않냐.”
“··· 어?”
“아 맞다. 너희 장학대회 나가지. 부럽다.”
춘기 콩쿠르 수상자들만 나가는 대회였다.
도현이는 핸드폰으로 일정을 살피며 말했다.
“28일까지 1차 예선, 5월 3일 날 서울 예선, 그다음에 본선이라는데.”
“와 ··· 개 복잡하네.”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저번에 참가했던 춘기 콩쿠르는 그냥 예선, 본선으로 깔끔하게 진행됐는데.
“귀찮다. 중간고사 끝나고 생각하자.”
“그래.”
계속해서 음료를 들이킨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갔다.
“···.”
나는 순간적으로 도현이처럼 코에서 코코팜을 뿜을 뻔했다.
하민서가 벽을 돌아 불쑥 튀어나왔다.
처음 봤을 때는 엄청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런 감상마저 안 드네.
덜컹-!
탄산음료가 하나도 놓여있지 않은 저세상 학교자판기에서 하민서는 감귤쌕쌕을 뽑았다.
“너희 인기 많더라.”
“···.”
하민서는 대뜸 그리 말했다.
“그치?”
“근데 왜 계속 에이트라님 채널에 네 영상이 올라가는 거야?”
얘는 모르는 건가 ···
애초에 에이트라 채널에 하민서 영상이 올라간 건 ‘홍보목적’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에이트라가 먼저 제안을 했다.
자신의 채널에 올리고 싶다고 말이다.
··· 이 사실을 말해주면 얘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저번처럼 빼액 짜증을 내지르지 않을까.
“나와 그 에이트라님은 그 뭐냐, 피를 나눈 형제 사이라고 할 수 있지.”
“맞아 맞아.”
“···”
하민서는 인상을 한껏 찌푸리더니 빈 캔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재수 없어.”
“넌 공부 안 하냐?”
“내가 왜?”
그녀는 산뜻한 얼굴로 대답했다.
포기한 모양이다.
아니면 공부를 안 해도 될 정도로 머리가 좋은 건가?
깊은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교실로 돌아갔다.
특별반이라고 해서 중간고사를 안 치르는 건 아니다.
여긴 어디까지나 예술 전공을 지원해 주는 ‘일반고.’
악기 연주로 시험을 본다거나 하는 건 없었다.
“··· 흐음.”
반 애들 대부분은 교과서를 붙잡고 죽어라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소이나 윤수빈도 마찬가지였다.
김태현은 여유로워 보인다.
평소에 공부를 꾸준히 해둔 모양이다.
나는 오랜만에 수업에 집중했다.
중간고사까지의 진도는 이미 다 나간 상태였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재차 수학공식 설명을 해주셨다.
“너희가 아무리 대학을 수시로 간다고 해도, 공부해 두면 나중에 다 도움이 돼 다.”
“···.”
수학이라…
전생에 공부해 둔 게 있어서 그런지 아예 못 알아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우우웅-
다시 찾아온 쉬는 시간. 나는 단톡을 확인했다.
-야, 백소이랑 김수재 오케스트라 캐논 찍은 거 올라감.
https://www.youtube.com/watch?v=J0xe123osdoso2123
나는 유튜브 링크를 확인했다.
오 ··· 되게 잘 나왔네.
이벤트 공연이라 그런데 무대가 밝게 찍혔다.
반짝반짝 빛나는 소이의 기타와 ··· 내 기타.
나는 댓글창을 띄웠다.
올라온지 얼마 안 돼서 댓글은 몇 개 없었다.
– 오케스트라 캐논락 지린다 ···
– 이거 정규편성 곡이에요? 이번 화연 연주회 못 갔는데.
– 남자애 리듬 타는 거 ㅋㅋㅋ 박자랑 딱딱 맞음 메트로놈인줄.
긍정적인 반응을 보고 있자니 입꼬리가 슬슬 올라간다.
– 스콰이어눙물
– 빈부격차 ㅠㅠ
– 한 명은 장인이 만든 기타 쓰는데 다른 한 명은 다른 중국 공장에서 나온 기타를 쓰네.
ㄴ 클래식바이브도 스콰이어 공장 장인이 만든거 아님?
ㄴ 숙련 노동자가 만든거긴 하지.
ㄴ 스콰이어 무시하지 마라 솔직히데칼떼면블라인드ㅌ···
··· 괜히 기타헤드를 클로즈업 시켜가지고.
나는 어느새 불쌍하고 가난하지만 열정 넘치는 기타리스트가 되어 있었다.
울지마 ···
울지마!!!!
나는 코끝이 찡했다.
사랑해 스콰이어.
“야 이따 합주 콜?”
“합주 좋지.”
합주는 언제나 옳다.
오후 수업이 끝났다.
나는 소이와 인사를 나눈 뒤, 옆 동 건물로 향했다.
주말이 끝나면 곧바로 중간고사구나 ···
“··· 오늘은 못 들어가요?”
“응. 업체에서 싹 청소해주시고 갔거든. 아직 약품 냄새 날 거야.”
하지만 연습실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우리의 합주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야.”
“왜.”
“봐봐.”
도현이는 창 너머를 가리켰다.
약품 냄새를 빼기 위해 창이 전부 활짝 열려 있었다.
“야 어차피 안에 들어가도 못 치잖아. 바로 선생님 오실 텐데.”
“아니, 저거.”
“···”
도현이의 손끝.
그 방향에는, 미니앰프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올.”
“빌려 갔다가 월요일에 돌려주면 되지. 일일이 앰프 확인은 안 할걸?”
“천잰데?”
나는 곧바로 창문을 넘어 미니앰프를 챙겼다.
도현이도 다른 연습실에서 베이스 앰프 하나를 가져왔다.
“좋아 좋아. 아주 좋아. 어디서 칠래?”
“저기 역 앞 공원으로 가자.”
상가 쪽 공원이다.
주택가가 아니라서 소음공해 걱정은 없을 것이다.
“그래. 학교 근처에서 치면 앰프 들고온 거 들키겠다.”
우리는 기타를 들쳐 메고 공원으로 향했다.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공원이었다.
화장실도 있고, 식수대도 있고.
다른 학교 애들이 몇 보이긴 한다.
예고 교복도 있네. 시험공부 안 하고 여기서 뭐 하는 거지?
한창 뛰어놀 나이인 유치원생 초등학생들은 안 보이고, 고딩과 마실나온 어른들이 공원을 점령하고 있다.
요즘 애들은 다 핸드폰만 가지고 놀고, 밖에 나가질 않는다니까.
“경찰과 도둑 하고 싶다.”
“지랄노.”
“저기 앉자.”
우리는 공원 안에 들어가기보단, 바깥쪽에 있는 나무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지하철 계단입구와 마주 보는 곳이다.
“관종쉑들.”
“네가 제일 관종이잖아.”
“그건 맞지.”
오후 6시.
이미 하늘은 불그스름했다.
점점 해가 길어지는 느낌이다.
즁즁- 즁즁-
나는 미니앰프에 기타를 연결하고 아무렇게나 현을 때렸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확, 우리에게 쏠린다.
“뭐 치냐?”
“슈퍼그랑죠.”
지이잉 지이잉~
우리 나이대에서 ‘슈퍼 그랑죠’는 그리 유명하지 않다.
하지만 ost는 다들 어디서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뭔가 단전에서 힘이 솟아오르는 듯한 곡이다.
난이도도 그리 어렵지도 않고, 어그로 끌기에는 딱이지.
“아 나도 이거 들어봤어.”
도현이가 베이스를 둥둥 튕기기 시작했다.
역시 미니앰프. 저음이 제대로 안 나온다.
“이번엔 내가 솔로 할래.”
“그래라~”
나는 선심 쓰듯 기타백킹으로 들어갔다.
노을로 물든 하늘과 고딩 셋.
직장인들의 머릿속 한구석을 자극하는 멜로디가, 지하철 역앞에 울려 퍼졌다.
멈칫-
취향, 차림, 직업에 관계없이, 남자라면 우리들의 연주에 시선이 이끌릴 수밖에 없다.
발걸음을 아예 멈춘 사람도 있었다.
장장장~ 장장~ 장장장 장~
이게 그랑죠의 힘인가 ···?
점점 아저씨들이 몰리기 시작한다.
난 슈퍼 그랑죠를 본 적이 있다.
다만 어릴 때 tv에서 방영하는 것을 본 건 아니다.
피식.
아저씨들이 우리를 보며 실없는 웃음을 흘리고 계셨다.
아마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이겠지.
길다란 브라운관 tv, 찢어지는 음질, 그럼에도 재밌어서 오줌 꾹 참고 보던 어린 시절의 마음.
나도 일단은 tv 애니메이션을 보며 자란 세대다.
서로 보았던 것은 달라도, 그 특유의 감성은 공유될 것이다.
아저씨들의 얼굴에는 부끄럼 섞인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나 또한 누군가가 디지몬 곡을 연주한다면 비슷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좌아아아앙-!
슈퍼 그랑죠의 ost가 끝났다.
아저씨들은 인심 좋게 손뼉을 쳐 주셨다.
미니 앰프라 음질은 별로였을 텐데.
뭐, 관객이 만족하면 그걸로 됐지.
나는 스무 명 정도 되는 관객들의 얼굴을 살폈다.
대부분 아저씨였다.
그외에는 ··· 여고생 네 명이 있네.
여고생들도 슈퍼 그랑죠를 아는 건가?
넷 다 하민서처럼 엄청 예쁘장하다.
“··· 어?”
하민서 같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하민서가 있었다.
뭐야 씨발.
속닥속닥.
하민서는 날 가리키며 자기 친구들에게 뭐라뭐라 속삭였다.
아무래도 뒷담하는 거 같다.
“갑자기 튀어나오네.”
“윽 ···”
우리 셋은 격한 거부반응을 느꼈다.
왜 여깄어 ···
지나가는 건 상관없는데 왜 굳이 우리 공연을 보려고 해···
부담스럽다.
이대로 끝내기에는 아저씨들의 눈에 기대가 가득 차 보인다.
“이번엔 뭐 칠거냐 ···”
“그린데이 가자.”
“그린데이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우리는 생목으로 노래를 불렀다.
오버드라이브를 꺼버리고 클린톤으로 기타를 튕긴다.
까랑까랑한 톤이 만들어 내는, 서정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음율.
··· 이런 곡을 큰 무대에서 쳐보고 싶다.
길거리 공연도 괜찮긴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원래 끝이 없는 법 아니겠는가.
우리는 그린데이 곡을 몇 개 더 한 후, 자리를 정리했다.
“잘들었어~”
길을 가다 잠깐 멈춰 섰던 아저씨들이 우리의 어깨를 두드렸다.
시간은 약 40분이 지나 있었다.
그냥 합주하고 싶은 마음에 길바닥에서 즉흥적으로 친 건데.
좋은 반응을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우리는 꾸벅, 아저씨들께 고개를 숙였다.
“아우. 배고프다.”
“밥 먹고 갈래?”
“엄마가 빨리 들어오란다. 공부 안 하고 어딜 싸돌아다니녜 ···”
혁오는 축 늘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엄크는 어쩔 수 없지. 곧 중간고산데.
“들어가라~”
우리는 손을 흔들며 갈라졌다. 집 방향이 셋 다 따로따로다.
하민서는 즉흥 공연 중간에 친구들이랑 어딘가로 가버렸다.
우릴 보고 멈춰 선 게 오히려 의외다.
천하의 클래식기타 매니아 하민서라도 슈퍼 그랑죠는 참을 수 없었구나.
나는 실실 웃으며 핸드폰을 켰다.
여느때처럼 내 영상의 조회수를 체크한다.
성장세가 꽤 괜찮다.
밀어주고, 끌어주고, 당겨주고.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인지도 작업을 실제로 당해보니 느낌이 아주 색달랐다.
집에가서 적당히 기타 연습하다가 참고서도 보고 그래야겠다.
딩, 딩딩딩.
핸드폰 화면이 검게 물들었다.
전화 ··· 가 왔다.
박작곡가네.
“여보세요?”
-어 지금 통화 괜찮지?
“네.”
-한 프로 20쯤에 해 줄 수 있냐? 근데 직접 와야 돼. 아, 한프로라는건 ···”
박작곡가의 말투는 아주 다급해 보였다.
“네 시간 정도죠?”
-어? 어어··· 맞아. 이거 좀 급하거든? 바로 와 줘야 할 거 같은데.
“그래요 그럼.”
-말귀 참 잘 알아듣네. 이해한 거 맞아?”
박작곡가는 회식 자리에서 세션을 해보지 않겠냐고 나에게 물었었다.
나는 급박해 보이는 박작곡가를 달래며 자초지종을 물었다.
– 납기일을 최대한 줄여달라네. 바로 연습해서 써야 한다고.
“바로 쓴다고요? 아이돌 곡을요?”
곡을 받으면 외우고, 춤도 연습하고.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할 텐데 ···
바로 쓴다는 게 가능하긴 한 건가?
– 이거 구성은 이미 한참 전에 나온 거라서 대충 찍어 놓은 건 보냈었거든? 오케이도 바로 났고.
“살붙이기 하고 계셨던 거네요.”
– 어 ··· 어. 너 왜 이렇게 잘아냐?
세션도 하고 작곡도 해봤으니까 잘 알죠.
“위치 불러 주세요~”
나는 박작곡가가 말한 주소를 휴대폰 메모장에 받아적었다.
다행히 저번에 갔던 슈퍼마’켙’은 아니었다.
머릿속에 끝없는 언덕이 아른거린다.
거긴 진짜 폐가 아파서 가기가 싫다.
“흠흠~”
나는 바로 지하철에 올랐다.
4시간 일하고 20만 원을 벌 수 있다니.
여러모로 참 개꿀이다.
여러모로 ···
개꿀··· 인건가?
지하철을 갈아타며 도착한 곳.
나는 높디높이 솟아오른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일개 세션이 이런 곳에 올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세션까지 가지 않더라도 고등학생들이 여기에 올 기회가 있을까?
아이돌 팬이 회사 근처에서 서성이는 경우가 있기는 하겠지.
하지만 출입은 못 할 거다.
내가 도착한 곳은, 연예 기획사 건물이었다.
“네가 왜 여깄어?”
“어우 씨발 깜짝이야!”
나는 하민서의 부드러우면서도 가시 돋친 목소리에 꽥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 너야말로 왜 여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