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46
상남자의 중간고사, 세션 (2)
얘 얼굴은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다.
“···.”
심장에 안 좋다.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꼬투리 잡고 시비 걸고.
솔직히 맞짱 한 번 제대로 까고 싶다.
“알아서 뭐하려고?”
“··· 너 좋아하는 아이돌이라도 있어?”
하민서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리 말했다.
“아니?”
“근데 왜 서성거려? 여기 아무나 못 들어가.”
내가 좋아하는 건 레드재플린이다.
이 건물에 지미페이지가 있으면 아마 서성거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없잖아?
하민서는 나를 찌를 듯이 노려보았다.
나도 질세랴, 힘껏 하민서를 째려보았다.
눈 되게 크다.
힘만 빼면 예쁠 텐데.
띠리리링-
전화가 울렸다
박작곡가네. 사람 성격 참 급하구만.
“여보세요?”
– 어디야?
“회사 바로 앞인데요. 들어가도 돼요?”
– 가만있어봐. 내려갈게.
건물의 불은 단 한 층도 꺼져있지 않았다.
연예 기획사는 야근이 기본인가 보다.
“넌 여기 왜 왔냐?”
“내가 내 소속사에 온다는 데 무슨 문제 있어?”
“흠 ··· 소속사라···”
얘 소속사가 여기였구나.
다운 엔터테인먼트.
현재 시점에서 업계 탑 급 회사는 아니지만, 인기 그룹 몇 개를 보유한 나름 규모 있는 곳이다.
“대답했으니까 이번엔 네 차례지?”
“일하러 왔다.”
“··· 뭐?”
“일.”
하민서는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녀의 신경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어이!”
하민서와의 눈싸움을 재시작하려 할 때, 저 멀리서 박작곡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나를 향해 손을 세차게 흔들고 있었다.
“앗, 박현석 작곡가님!”
하민서는 꾸벅 – 고개를 숙였다. 얼굴에 떠올라 있던 적대감은 순식간에 지워졌다.
“빨리와 빨리! 급해! 이펙터는?”
“잘 챙겨 왔습니다~”
나는 느릿느릿 회사 입구를 향해 걸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하민서의 얼굴을 확인한다.
마치 간장이라도 들이킨 듯 얼굴이 찌그러졌다.
저 표정은 좀 못생겼네.
“빨리 오라니까.”
박작곡가는 내 팔을 잡고 이끌었다.
교복 입은 학생이 들어왔음에도, 회사 입구에서는 아무런 제지가 없었다.
“··· 와우.”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회사 건물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나름 돈 잘 버는 연예 기획사라 그런지 건물 내부가 드라마 배경처럼 세련됐다.
팅-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단번에 쏠린다.
··· 연예인이다.
이름은 모르겠지만 다들 연예인 냄새가 풀풀 풍긴다.
나는 귀중한 구경을 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코드 보고 리프 만들 수 있지?”
“물론이죠. 솔로도 들어가요?”
“아니, 솔로는 안 들어가.”
그냥 물어본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돌 곡이나 대중가요에는 기타 솔로가 들어가지 않는다.
“피아노 라인 하나를 기타로 대체하신다고 그러셨죠?”
“어. 피아노를 세션 불러서 쓴게 아니라 내가 직접 찍은 거거든? 소리가 나름 괜찮긴 한데 두 트랙 있으니까 좀 물리더라.”
“그래요?”
가상악기.
다듬어서 위화감을 억제할 수 있는 악기가 있는 반면,
아무리 해도 기계냄새를 지울 수 없는 악기가 있다.
기타는 압도적으로 기계냄새를 지우기 힘든 악기였다.
띠링-
엘리베이터는 4층에서 멈췄다.
문이 열리자마자 벽에 큼지막하게 적힌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음악 제작부’
4층 전체가 음악 제작을 하는 부서인 듯 했다.
유리창 너머 보이는 스튜디오에는, 오늘도 직원들이 야근을 하고 있다.
“오우 ···”
뭔가 과거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 같다.
세션입장에서는 대면 녹음보다 비대면 녹음이 편하다.
집에서 작업할 수 있으니까.
녹음한 로직 트랙을 통째로 보내주면 끝이다.
후처리까지 맡기는 정신 나간 인간들만 안 만나면 된다.
하지만 뮤지션 입장에서는 부르나 안 부르나 귀찮음은 거기서 거기인 듯하다.
그렇기에, 이런 곳에 꽤 자주 불려왔었다.
“기한은 언제까지래요?”
“화요일.”
“양아치들 아니에요?”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하하핫!”
박작곡가는 호쾌하게 웃어 재꼈다.
“원래 이번달 말까지라 했는데 말이야. 기한 좀 줄여달라고 사정사정을하는데 ···. 아오 머리아파 죽겠다야.”
“다른 세션 부르셔도 됐을 텐데.”
“너한테 가장 먼저 전화 돌렸어.”
“네?”
“원래는 나선생님께 부탁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안 되시잖냐. 당연히 다음 순번으로 그 제자가 와야지.”
“···”
··· 배고픈 세션들은 많다.
일감을 따오기 위해 스튜디오에 명절마다 상품권을 돌리거나, 근처 지나갈 때 선물 같은 걸 조공하거나.
하지만 박작곡가는 주저 없이 나를 불렀다.
의아함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나숙호선생님이 ··· 직접 나를 ‘제자’로 인정하신 건가 ···?
둘 사이에서 무슨 대화가 오고 갔을까?
너무 궁금하다.
벌컥, 스튜디오의 문이 열렸다.
나뭇결이 잘 살아 있는 벽면 디자인과, 색온도가 낮은 조명.
누리끼리하면서도 따듯해 보이는 풍경이었다.
스튜디오 장비 앞에는 장발의 남성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시선은 손에 든 태블릿에 고정되어 있다.
··· 누군지 모르겠네.
“민현씨 기타세션 왔어.”
“아, 네 안녕하 ···”
그는 나에게 손을 내밀려다 순간 멈칫, 했다.
“··· 세션이에요?”
“맞아.”
“교복 입고 있는데요?”
“고등학교 1학년.”
민현이라 불린 남자는 나와 박작곡가를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상황파악을 못 하겠다는 얼굴이다.
“그 ··· 나숙호 기타리스트 부르신다고 ···”
“스케쥴 상 못 모셨어. 다음 곡은 꼭 도와주시겠다네. 그러니까 일정을 좀 제대로 잡···”
“어휴, 제가 뭔 힘이 있어요. 다 까라니까 까는 거지.”
아이돌 곡 하나 때문에 피해 보는 사람이 이만저만이 아니구만.
“아저씨 코드구성 좀 주세요.”
“어.”
박작곡가는 나에게 A4용지 다섯 장을 턱 건네주었다.
“노래 틀어줄까?”
“옙.”
구성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회귀 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곡이다.
따단 , 따단!
밝은 분위기의 곡이 모니터링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보컬 라인 꺼주세요.”
“어 ···그래.”
보컬 음계를 알려주는 트랙이 꺼졌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곡을 분석했다.
“··· 쟤 누구예요?”
“천재.”
“천재 ··· 요? 이름이 천재예요?”
“아니, 이름은 수재인데 재능은 천재야.”
“그건 또 무슨 ···”
“잠자코 봐봐.”
둘은 캔커피를 따며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 기억 상으론, 이 곡에 기타는 없었다.’
회귀 전의 이맘때 쯤.
박작곡가는 똑같은 상황을 겪었을 것이다.
납기 일정이 좁혀지고, 궁지에 몰렸을 것이다.
당시의 박 작곡가는 노래에 기타 트랙을 넣지 않았다.
왜일까.
빡쳐서 그랬나?
‘나쁘진 않네.’
살붙이기가 덜 돼서 조금 어색하긴 했다.
화요일 까지라고 했으니 하루에 3시간씩 자면서 노가다 하면 충분히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
“흠 ···”
‘작곡가’ 라는 직업은 선망의 대상이 되곤 한다.
오선지를 책상에 올려두고 고뇌하는, 흔히 떠오르는 ‘작곡가’의 모습.
옛날이면 모를까, 요즘 시대에는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다.
작곡은 노가다다.
어마 무시한 노가다.
번뜩 떠오른 음계를 찍고, 악기를 구성하고, 여러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이용해서 음악을 만든다.
빠지려고 하는 눈알에 힘을 주고, 모니터링 헤드폰을 쓴 채 같은 걸 듣고 또 듣고를 반복하는 ··· 고통의 작업.
‘창작의 고통’같이 뭔가 고상한 의미가 아니라
어깨가 아프고 목이 아프고 귀가 쓰라리고 눈알이 빠질 것 같은,
물리적인 고통에 시달린다.
“어때?”
“진짜 좋아요. 대단하세요.”
“하핫.”
물론, 작곡가라 해도 다 같은 작곡가가 아니다.
재능의 차이가 있다.
박현석 작곡가는, 하늘이 내린 재능과 체력을 가진 ‘괴물’이었다.
“오케이. 이해했어요.”
“ ··· 벌써?”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아무리 경력자라고 해도, 처음 들어보는 곡의 리프를 후두둑 만들어 줄 수는 없다.
아니, 만들 수는 있어도 ‘판매용’ 퀄리티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곡은 괜찮다.
알고 있는 곡이니까.
회귀 전에 여러 번 들어 봤으니까.
··· 기타로 몇 번 쳐보기도 했으니까.
“들어가서 치면 돼요?”
“어 그래. 우선 한 번 해봐.”
나는 가방에서 기타를 꺼냈다.
손에 들고 있던 페달 보드 가방도 풀어헤친다.
영롱한 ts808 오리지널.
너만 믿는다.
“··· 레코딩은 앰프로 해요?”
“마이킹 말고 앰프 헤드만으로. 아웃풋을 오인페로 뽑아야지.”
“에이, 앰프마이킹이 더 좋은데.”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벌컥- 녹음실의 문을 열었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곳인데 내 집인 양 마음이 편안하다.
··· 세션 경력이 꽤 되니까.
이걸로 밥 벌어 먹고살았으니까.
“아 ···”
나는 탄식을 내뱉었다.
어둠침침한 조명과 등받이도 없는 동그란 의자.
나무바닥, 나무 방음 벽.
밖이 보이는 투명한 유리창.
기타, 피아노, 스피커, 보컬용 마이크.
··· 회귀하고 한달 반 만에 다시 이곳에 서다니.
나도 참 징하다 징해.
“자, 잠깐만요!”
닫아둔 녹음실의 문이 다시 열렸다.
“··· 스콰이어로 녹음을 한다고요? 고등학생이? 박작곡가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아닌···”
“뭐 어때?”
“아니··· 저거 100만 원도 안 하는 거잖아요. 세션 녹음이에요. 이거 스트리밍도 돌리고 앨범 판매도 해야 되는 거라고요.”
“알아.”
“···.”
박작곡가는 어깨를 으쓱였다.
“민현아. 너 업계 몇 년 됐냐.”
“··· 7년이요.”
“그래 7년. 경력 좀 됐네. 여기 부장이 왜 계속 나한테 곡을 맡기는 줄 알아? 소속 프로듀서들도 많은데.”
“그건 ··· 박작곡가님이 잘하시니까···”
“말고.”
‘민현’ 이라고 불린 남자는 머리를 긁적였다.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박작곡가는 나에게 다가와 턱턱, 기타 세팅을 도왔다.
“노이즈 어때?”
“괜찮네요.”
“그 기타가 잡음이 적긴 해. 아메리칸 스탠다드는 왜 그렇게 노이즈가 심하냐. 그거 들고오면 아주 귀찮아 죽겠어 아주 그냥.”
“하하···”
아메리칸 스탠다드가 복불복이 좀 심하긴 하지.
어떤 놈은 소리가 깔끔한데, 어떤 놈은 노이즈가 심하다.
스콰이어 클래식 바이브는 가격이 60만 원 밖에 안 함에도 노이즈가 크게 억제되어 있다.
그야말로 스콰이어의 자존심이다.
오리지널리티는 떨어질지언정, 스튜디오에 안 어울리는 기타는 아니었다.
“민현아, 답은 나왔냐?”
“아뇨 ···”
“나는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아는’ 사람이야. 곡은 말이야. 좋아야 돼.”
“··· 네?”
“좋아야 된다고. ‘듣는 사람’이.”
“···.”
10만원짜리 장작 기타로 녹음을 하면 어떨까.
기타 소리는 나겠지.
근데 좋은 소리는 안 날거다.
30만원 짜리로 녹음하면 훨씬 더 나을 거다.
60만원 짜리, 100만원 짜리.
비쌀수록 기타의 소리는 좋아진다. 다만 ···
“좋은 기타 소리는 어디서 나오냐?”
“그야 ··· 기타에서 나오죠.”
“아니, 연주자에서 나온다. 기타 백날 갈아치워 봤자 연주자가 같으면 소리도 똑같아. 본질이 아니라는 거지. 쟤 소리 좋다. 들어봐라.”
박작곡가는 지긋이 나를 응시했다.
그는, 음악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듯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 뭐, 아메리칸 디럭스가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
근데 없잖아?
다라라랑-
나는 기타를 튕겼다.
녹음실 스피커에서 잔잔한 반주가 흘러나왔다.
못 믿겠으면, 보여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