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47
상남자의 중간고사, 세션 (3)
‘재능(才能)’은, 단 두 글자만으로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다.
누군가가 얻지 못해 안달이 난 것일 수도 있고,
날 때부터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며,
질투와 허망함의 대상일 수도 있다.
박현석은 살면서 수많은 음악천재들을 만나왔다.
어린 나이에 악기 재능을 뽐내며 각종 대회를 싹쓸이하는 자.
청명하고 맑은 목소리를 가진 자.
곡을 쓰면 쓰는 대로 찬사를 받는 자.
질릴 정도로 많이 봐 왔다.
하지만.
“···”
모니터 헤드폰을 눌러쓴 채 손을 모아 깍지를 낀다.
곡의 도입부.
‘아이돌 그룹의 초기 곡’은 대개 밝은 분위기다.
초기엔 무난하게. 나중에 인지도가 쌓이면 분위기 체인지 용 곡 몇 개.
이게 업계의 공식이었다.
– 너~ 에게 마음을 줄 수 있다면.
아직 보컬 녹음이 되지 않은 곡이었다.
하지만, 박현석의 머릿속에는 왠지 가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뭐지 ···?”
박현석의 옆에 있던 황민현은 그리 중얼거렸다.
뭐지··· 라.
그래, 그 반응이야.
김수재라는 인간을 처음 만났을 때의, 자신의 반응과 똑같았다.
치이잉-!
가벼운 크런치 톤이었다.
오버드라이브가 강하게 걸리지 않은, ‘자글자글’하면서도 기타 본연의 소리가 살아있는 소리.
어떻게 노브 몇 개를 툭툭 건드리는 것만으로 저런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전부 파악했다는 듯이.
저럴 수가 있을까.
챵-쟝 챵- !
기분 좋은 c 코드 스트로크가 헤드폰에서 흘러나왔다.
아이리즈의 신곡 ‘마음을 주고 싶어’ 에는 기타 트랙이 없었다.
기타 없이도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던 가상 악기 플러그인을 조합하고, 피아노 라인 두 개를 깔았다.
음이 ··· 풍성해지긴 했다.
하지만, 물리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박현석은 실수를 인정하고 곡의 변화를 꾀했다.
산뜻하면서도, 입가심을 한 듯한 기타의 소리를 바랐다.
··· 귀에 들려오는 이 소리는, 자신의 상상 속 그것과 같았다.
“··· 어떻게 만든거지.”
“내가 뭐라고 했어?”
“예? 아··· 천재라고 하셨어요···.”
“그렇지.”
천재다.
저건, 틀림없는 천재다.
다만 ··· 작은 위화감이 들었다.
박현석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음악 천재’들과 ‘김수재’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나이에 비해 엄청난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맞지만 ···
다라랑-!
피킹의 강약이 절묘하다 못해 무서울 정도다.
코드를 보고 치는 것이 아닌, ‘곡’을 보고 연주를 하는 듯한 날카로운 감각이 느껴진다.
천재들은 음악에 관한 이해도가 뛰어나다.
절대 음감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간다.
범인과 같은 시간을 수련해도, 실력 차가 확확 벌어진다.
“스탑! 스탑!”
박현석은 마이크에 대고 소리쳤다.
중지 신호를 들은 소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띄웠다.
“바로 녹음 들어가자. 그게 좋겠다.”
“벌써요?”
“들어가자.”
박현석은 레코딩 세팅을 했다.
기타의 아웃풋은 오디오 인터페이스를 통해 컴퓨터에 연결되고, 다시 하여금 모니터 스피커로 흘러나온다.
소리가 ··· 너무 좋다.
“··· 스콰이어에서도 이런 소리가 나네요···”
옆에 앉아 있던 황민현이 중얼거렸다.
“톤을 정말 잘 만들어. 머릿속에 프리셋을 넣고 다니는 것 같아.”
“무슨 걸어 다니는 멀티이펙터예요?”
“멀티이펙터 프리셋은 소리가 이상하잖아.”
“그건 그렇죠.”
천재들은 자신의 재능을 십분 활용한다.
테크닉을 발전시키다가, 삶을 살아가며 자신만의 소리를 찾는다.
하지만 저 소년은.
저 천재는.
이미 자신의 소리를 찾은 듯했다.
이게 ··· 말이 되는 건가?
“쟤가 과연 천재가 맞을까?”
“네?”
“아니, 천재라고 하면 너무 흔한 느낌이잖아.”
“천재가 흔해요?”
“내 말은 ···”
박현석은 머리를 흔들었다.
적당한 단어, 비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어휘력이 부족하단 말은 못 들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 아이’에 걸맞는 단어를 찾기가 힘들었다.
다라라랑-!
깨끗한 클린톤이 스튜디오에 울려 퍼졌다.
아무래도, 녹음은 그리 길어지지 않을 것 같다.
* * *
확실히 정해 둬야 할 게 있다.
아이돌 곡은, 기타가 주연이 아니다.
밴드곡 같은 경우에는 기타의 멜로디와 보컬의 목소리가 어우러지지만, 아이돌 곡은 다르다.
아이돌 곡은 아이돌이 춤추고, 부르고, 빛나기 위해 존재한다.
쉽게말해 내가 나대면 안 된다는 거다.
쟝- 쟝쟝.
회귀 전에는 커버, 어레인지 녹음을 많이 했다.
인기 가요나 추억의 곡, 클래식··· 아주 다양하게.
어그로를 위해서라면 애니메이션 오프닝, 엔딩도 마다하지 않았다.
쟝-쟝쟉- 쟝!
나는 이 곡을 이미 회귀전에 쳐본 적이 있다.
2017년에 아이리즈가 팍 뜸과 동시에 히트 전 곡들도 유명세를 얻었으니까.
나중에도 종종 회자됐으니까.
박현석 작곡가는 지금도 유명하지만, 앞으로 더더욱 유명해질 양반이다.
뮤비 조회수 천만이 넘어갈 곡에 내 흔적을 묻히다니.
너무 기분이 좋다.
곡은 산뜻하고 발랄했다.
수줍은 10대 소녀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리려 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은근 소녀 감성인 모양이다.
고개를 들어 유리창 밖을 확인한다.
두 사람의 눈빛은, 아주 진지했다.
챵- 챠챡- 챵!
이런 곡에는 락킹한 디스토션 사운드가 어울리지 않는다.
클린톤과 ts808의 오버드라이브 사운드를 번갈아 사용해서, 깔끔함을 연출해야 한다.
머릿속에, 산뜻한 민들레밭이 그려졌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은, 수줍음이었다.
··· 수줍음이라.
언제 느껴봤더라?
아, 나선생님을 만나뵈었을 때는 조금 수줍기는 했다.
평생, 정말 평생 뵐 수 없었던 분이니까.
이성한테는 느껴본 적은… 있었던 것 같은데, 잊어버렸다.
기억속에 없으면, 머릿속에 만들어 내면 된다.
인간은 상상의 동물이라 하지 않았나.
나는 흰 원피스를 입은 소녀의 뒤를 따라갔다.
-마음을 열어~
머릿속에 있던 가사가 자동으로 재생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뮤비는 분명 바다에서 찍었던 것 같은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꽃밭이었다.
나는 노란 색채로 덮인 밭에 단 한 송이 피어 있는 주황색 민들레를 꺾었다.
그리고, 소녀를 앞질러서 꽃을 건넸다.
··· 파나마 모자에 가려진 얼굴.
하지만 알 수 있다.
소녀는 웃고 있었다.
아주, 환한 미소였다.
“···.”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리프를 즉석에서 바꾼다.
회귀전에 만들어둔 리프는, 방금 떠오른 풍경에 어울리지 않았다.
우웅-!
와우페달을, 아주 살짝 밟는다.
동그란 소리로 멜로디에 변화를 준다.
나는 온 정신을 연주에 집중했다.
괜한 실수를 내서 시간을 잡아먹으면, 뮤지션들이 쿠사리를 주니까.
자연스레 몸에 익은 버릇이었다.
디이이이잉~
곡이 끝났다.
이걸로 첫 번째 리프가 완성됐다.
나는 케이블째로 스탠드에 기타를 세웠다.
실수는 없었다.
덜컥 –
녹음실 문을 열자마자,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박작곡가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말을 내뱉었다.
“··· 이거야.”
그의 목소리를 한껏 떨리고 있었다.
“이 톤이고, 이 소리야!”
그의 말투에서 ‘확신’이 묻어나왔다.
“화, 확실히 멜로디가 좋네요 ··· 오버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눈에 안 띄는 것도 아니고 ···”
“아니, 그게 아니야. 중요한 건 ··· ‘융화’야.”
“융화요?”
“피아노 트랙 두 개를 넣었을 때는 곡이 뭔가 어색했어. 위상을 바꿔봐도 애매했고.”
“···.”
민현이라 불린 남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 기타 멜로디가 적절히 들어가니까 트랙이 섞였어. 중심이 잡힌 거야.”
박작곡가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회귀 전 이맘때쯤.
박작곡가는 아마도, 노가다로 ‘어색함’을 지우려 했을 것이다.
발매후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았으니,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야, 수재야.”
“예.”
“고맙다.”
이번 생의 아이리즈의 곡은, 좀 다를 것 같다.
박작곡가는 로직에 녹음 파일을 불러와 세팅했다.
그리고 피아노 1번 트랙을 꺼버렸다.
아무런 후처리가 되지 않은, 생 기타 녹음파일이 멜로디에 섞였다.
디리링~
나는 묵묵히 곡을 감상했다.
··· 좋다.
확실히 좋다.
회귀전에 들었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원곡에 커버로 덮어씌우는 것과,
제작 단계에서 기타트랙이 들어가는 것.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 아직도 기타에 불만이 있냐?”
“아··· 하하, 아니요. 불만 없어요. 많이 배웠습니다.”
민현이라는 남자는 꾸벅, 박작곡가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서 의자에서 일어나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프로듀서 황민현입니다.”
“김수재입니다.”
나는 그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음악인은 음악으로 말한다.
그의 눈을 덮고 있던 편견이라는 꺼풀은, 이제서야 벗겨진 모양이다.
“저도 펜더 기타 몇 대 가지고 있는데 ··· 이게 진짜 펜더 소리네요. 잘 알겠어요.”
“하하 ···”
“쟤 진짜 신기해~ 정작 펜더 기타는 갖고 있지도 않잖아?”
“돈 많이 벌면 사야죠.”
“그래, 사야지.”
박작곡가는 지갑에서 수표 다섯 장을 꺼냈다.
“자.”
“어 ··· 네?”
나는 머리가 띵했다.
··· 준다고?
아직 리프 하나 밖에 안 했는데.
나는 수정 요구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 좋네요~ 여기서 조금 더 이렇게 하면 안 될까요?
라며 무한 수정요구를 듣는 게 기타세션의 운명이다.
근데 ···
“일하러 온 거잖아. 그럼 보수를 받아야지.”
“그 ··· 수정사항 있을 줄 알았는데요 ···”
“없어.”
그는 아주 단호했다.
“끝 부분에 톤 변화 준 거는 좀 놀랐다. 네가 거기서 와우 안 밟았으면, 내가 요구했을 수도 있겠지. 근데 밟았잖아?”
“···.”
“독심술이라도 쓴 거냐? 빨리 받아. 팔 아프다.”
나는 수표를 받아들었다.
근데 왜 이거 다섯 장이야.
“어 ··· 제대로 주신 거 맞아요?”
수표는 10만 원짜리였다.
총 50만 원.
A급 기타 세션 정도는 돼야 받을 수 있는 돈이다.
“맞는데?”
“예···? 전화상으론 분명히 ···”
“시간 아껴줬으니 줄만 하지 뭐.”
나는 승천하려고 하는 입꼬리를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 50만원이 생겼다!
주먹을 꽉 쥐며 고개를 휙 돌린다.
헤실헤실 웃는 얼굴을 보여주기 싫기 때문이다.
“어유~ 좋~ 단다.”
근데 들켰네.
뒤통수에도 표정이 있는 건가?
나는 아이맥과 씨름을 하는 박작곡가를 멀찍이서 지켜보았다.
속도가 장난 아니다.
내 작곡 능력이 b-인데 ··· 이 사람은 최소 s-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스튜디오 구석에 놓여 있던 캔커피를 마음대로 까서 마셨다.
이제슬슬 돌아갈 ···
“응?”
복도 쪽 창끝에, 노란색 머리칼이 보인다.
벌컥-
나는 곧바로 문을 열었다.
“꺅!”
여자애들 넷이 복도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세 명은 체육복 차림, 한 명은 ··· 교복차림.
는 하민서네.
“와~ 연예인이다.”
나는 호르륵 커피를 들이켜며 말했다.
“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얘네였구나.
확실히 예쁘긴 하다.
아까 공원 버스킹에서 마주쳤을 때는 쌩얼이라 못 알아 봤는데.
하민서랑 친분이 있었구나.
“너희 거기서 뭐 해? 매니저는?”
어느새 내 등 뒤로 다가온 황민현 프로듀서가 말했다.
“아··· 그게···”
“지금 너희 신곡 제작 중이야. 들어볼래?”
“네?! 그래도 돼요?”
“완성은 아직 안 됐는데.”
우르르르- 여자애들 셋이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 아이리즈는 6인 그룹이다.
나는 나머지 셋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괜히 복도를 두리번거렸다.
보고 싶은 아이리즈는 안 보이고 하민서만 보이네.
하민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 되게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이다.
얜 내가 뭘 할 때마다 저런 표정을 짓는다.
콩쿠르에서 1등을 먹었을 때도,
신입생음악회, 예고 원정에서 1등을 먹었을 때도.
같은 표정이었다.
“와~ 기타 소리 너무 예쁘다.”
“이거 누가 한 거예요?”
“저기 쟤.”
박작곡가는 나를 가리켰다.
여자애 셋의 시선이, 나에게 내리꽂혔다.
셋 중에 가장 연장자처럼 보이는 애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돈 받고 한 건데요 뭘.
셋은 짜기라도 한 듯 꾸벅,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기타소리 너무 예뻐요!”
··· 살다 살다 미래의 1티어 아이돌한테 감사 인사까지 받을 줄은 몰랐네.
“민서야, 들어봐봐. 되게 좋지!?”
“어··· 어··· 응. 좋아.”
나는 승천하는 입꼬리를 당당히 드러냈다.
하민서 앞에서, 아주 맑고 깨끗하고 자신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