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48
상남자의 중간고사, 세션 (4)
나는 녹음실에서 기타와 장비를 가지고 나왔다.
집에 갈 시간이다.
“혹시··· 같이 사진 찍어주실 수 있나요?”
“네? 사진이요?”
셋중 가장 키가 작은 여자애가 대뜸 물었다.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이름 ··· 뭐였지.
아이리즈 곡은 많이 들어봤는데 이름을 못 외웠네.
“전 ‘송아린’이라고 해요!”
“아 ··· 팬이에요 송아린씨.”
“진짜요?! 저도 팬이에요!”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팬··· 이라고? 연예인이 내 팬이라고?
보통 연예 업계에서는 처음 만났을 때 ‘팬이에요’라는 겉치레를 자주 한다.
외모나 작품을 칭찬하는 것보다는 덜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는, 왠지 모를 진심이 담겨 있었다.
“뭐야? 아는 사이야?”
“유튜브에서 봤어요 그 ··· 풉.”
송아린은 콧숨을 뿜으며 입을 꼭 다물었다.
“예고 공연 보셨어요?”
“네 ··· 흐흡.”
“뭐야? 뭔데?”
“유튜브? 왜 혼자만 좋은 거 보고 있어~”
나머지 멤버 둘은 얼굴에 의문을 띄울 뿐이었다.
“그 ··· 제 친구가 링크 보내줘서 봤는데 ···되게 재밌었어요. ”
“아 ··· 감사합니다.”
송아린은 셀카 모드로 핸드폰 카메라를 켜더니 내 앞에 섰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을 불렀다.
“빨리와~!”
“그래~”
나는 얼떨결에 미래의 1티어 아이돌 셋과 같이 사진을 찍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넵!”
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박작곡가나 황프로듀서에게도.
“들어가 보겠습니다! 고생하십시오!”
“어 그래~ 수고했다.”
“안녕히가세요!”
송아린은 멤버들 앞에서 자신의 핸드폰 가로로 돌렸다.
Give it to me baby~
스튜디오에, 예술고 영상의 맛깔난 사운드가 울려 퍼졌다.
나머지 둘도 내 팬이 됐으면 좋겠네.
소소한 바람이다.
나는 회사 건물에서 나왔다.
곡의 운명은 이제 박작곡가의 손에 달려있다.
노가다 엄청나게 하겠구만.
그래도 뭐, 미래에 뜰 그룹이니 고생한 만큼 벌겠지.
부럽긴 부럽다.
“흠흠흠~”
발걸음이 가볍다.
50만 원으로 뭘 할까?
나중을 대비해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다만 ···
머릿속에, 회사 스튜디오에 있던 장비들이 아른거렸다.
가지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장비들.
내방에 있는 컴퓨터는 대체 언제 산 거지? 초딩때였나?
롤 최하옵 간신히 돌아갈 정도의 사양.
구형 중의 구형이었다.
“흠 ···”
아무래도 새 컴퓨터를 사야 하긴 할 것 같다.
나는 핸드폰을 켜서 맥북을 검색했다.
존나비싸다.
돈 다 끌어모으면 못 살 정도는 아니지만 ··· 그래도 좀 아깝네.
로직프로 하나만 있어도 내장 가상악기로 웬만한 곡은 다 만질 수 있다.
세션 일을 받을 때도 좋다.
로직 프로젝트 파일을 그대로 보내주면 뮤지션도 편하고 나도 편하니까.
그리고 ··· 작곡.
‘자작곡’까지 안가더라도, 백킹트랙 같은 걸 만들기 위해서라면 역시나 장비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나중에 차근차근 알아보자.
타타타탓-
저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회사 입구부터 냅다 달려온 하민서는 숨을 헐떡이며 말을 토했다.
“어떻게 한 거야···?”
“어떻게 세션일을 맡았냐고?”
“어.”
나는 하민서가 대충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 이미 예상 하고 있었다.
내가 세션일을 맡을 수 있었던 건, 단순히 우연때문이다.
슈퍼와 악기점을 같이 운영하는 정신 나간 가게에 들렸다가 박작곡가와 만나고, 오케스트라에서 또 우연히 만나고.
하지만 얘한테 일련의 과정을 설명할 의리는 없다.
나는 반문했다.
“넌 왜 연예인 되려고 하냐?”
“뭐?”
“궁금해서. 말해주면 나도 말해줌.”
“··· 그냥 되고 싶은 거지. 이유가 있어?”
찌릿-
얘는 꼭 나를 쳐다볼 때만 눈매가 고양이 같이 바뀐다.
평소에는 서글서글 잘 웃던데.
“나도 이유는 없어. 우연이야 우연.”
“우연 ··· 이라고?”
아이리즈의 곡은, 나의 회귀로 인해 바뀌었다.
소이는, 나의 회귀로 인해 기타를 다시 잡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하민서는 어떨까.
나는 뮤지션 하민서에 대해 모른다.
아예 모른다.
대충 봐서는 아이리즈랑 나름 친분도 있고 두루두루 잘 지내는 것 같은데.
정작 얘는 데뷔하지도, 뜨지도 못한다.
“나 싫어하는 건 알겠는데, 너무 감정낭비 하지는 마라.”
난 하민서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러므로, 방금 내가 내뱉은 말은 충고가 아니었다.
이건 그냥 확인이다.
나는 하민서와 다시 눈싸움을 했다.
재능이 있다.
하지만 재능이 있다고 무조건 성공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천재 기타키드들이 성인이 되어 가라앉는다.
‘열정’ 이라는 부력을 잃으며 말이다.
나는 하민서의 연주를 떠올렸다.
신입생음악회에서 선보였던 depapepe의 One.
확실히 잘 치더라.
잘 치긴 하는데 ···
위화감이 들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위화감의 정체를 곰곰이 추리했다.
이 기분, 이 감정은.
알고 있는 것이었다.
“너 ··· 기타를 좋아하긴 하냐?”
“뭐?”
나는 하민서가 껄끄럽다.
하지만 만약, 나한테 독설을 내뱉는 게 ‘하민서’가 아니었다면.
다른 애가 나한테 대뜸 시비를 걸었다면.
실컷 입씨름하고 맞짱도 깠을 거다.
하지만 하민서는 다르다.
나는 미래를 알고 있기에, 하민서를 피한다.
이 아이는 지금, 가라앉는 중이니까.
내가 굳이 나서서 싸움을 하지 않더라도, 엿먹일 방법을 강구하지 않더라도.
몰락하니까.
“말 그대로의 질문이야. 클래식기타 전공이잖아. 넌 기타치는 게 재밌냐?”
“···.”
그녀는 멍한 눈빛을 땅바닥으로 돌렸다.
“너 잘 치는 것도 알겠고, 가수 하고 싶은 것도 알겠어.”
하민서는 왜 이렇게 나를 싫어할까?
관심을 빼앗겨서?
그렇다면, 왜 그리 관심을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걸까?
나의 머릿속에, 하민서의 댓글이 스쳐 지나갔다.
수재 너무 잘 친다 (하트)
진심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동급생을 칭찬하면서 관심을 얻었다.
200개가 넘게 박힌 ‘좋아요’의 숫자가, 마음을 들뜨게 했을 것이다.
관심.
나도 참 좋아하는 놈이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연주와 공연에 대한 관심이다.
사람들이 내 연주를 더 들었으면 좋겠다.
더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나와 내 음악이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기저의 욕망 중 하나였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기타리스트와 뮤지션의 욕망이었다.
하지만 하민서의 연주에서는 ···
그런 욕망이 느껴지지 않았다.
위화감의 정체를 알 것 같다.
그래, 자주 봤었지.
기타는 손에 쥐고 있지만, 더 이상 재밌어하지 않는 사람들.
인기는 얻었지만, 음악이 생계의 수단이 되어버린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알고 있다.
하민서는, 그 사람들과 똑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재미 ···.”
하민서는 입을 오물거렸다.
“내가 네 인생 살아 줄건 아니니까 함부로 충고는 못하겠는데, 음악에 대해 똑바로 생각해라. 말조심도 하고. 네 생각만큼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야.”
“···.”
그녀는 입을 꼭 다물었다.
더 할 말은 없는 모양이다.
이걸로 좀 조용해지길.
만약 하민서가 나한테 친절하게 대해 줬으면 어땠을까.
그런 하민서가, 도움을 청했으면 어땠을까.
나는 머릿속에 괜한 망상을 그렸다.
네온사인이 내리쬐는 밤거리를 걷는다.
이제 중간고사다.
***
“아~ 얘요~? 얘기는 많이 들었죠. 반 애들이 맨날 떠들어서 모를 수가 없어요~.”
30대 중반 여성의 목소리가 고요한 학교 계단에 울려퍼졌다.
“3학년 애들도요?”
“학교 전체가 아주 난리 법석이에요.”
여성의 뒤를 중년 남성이 따르고 있었다.
유산고등학교 3학년 ‘작곡’ 전공지원 강사 류혜진.
‘베이스’ 전공지원 보조 강사 문명래.
둘은 양손에 한가득 비품을 들고 계단을 내려가는 중이었다.
“근데 얘는 갑자기 왜요?”
류혜진은 들고 있던 핸드폰을 문명래에게 돌려주었다.
“작곡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서요.”
문명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재능이 있다.
작곡에.
문명래는 확신했다.
예술고등학교 원정공연에서 흘러나오던 드럼 비트. 아주 예사롭지 않았다.
“작곡 ··· 이요? 얘 작곡도 해요?”
“예고 공연에서 bgm을 썼는데, 직접 만든 것 같더라고요.”
“음 ··· 그래요?”
류혜진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문명래는 이유를 바로 알아챘다.
아무리 기타 전공이라 해도, 음악 프로그램을 다룰 줄 모른다면 말짱 꽝이다.
‘실용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비트 찍는 것쯤이야 딱히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 퀄리티가 대단했어요. 강약이 아주 절묘해서 위화감이 없었죠. 그 나이에 그 정도 퀄리티를 만들어 낸다라··· 저는 본 적 없습니다.”
“··· 그렇게까지 얘기하실 정도예요?”
“예.”
다만, ‘어색하지 않게’ 찍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BGM제작이란, 툭툭 음계만 입력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노력과 센스가 없다면, 가상악기 드럼은 싸구려 드럼머신과 다를 바 없는 소리가 난다.
문명래가 들었던 드럼 소리는, 최대한 연주자와 잘 어우러 질 수 있도록 세팅된 소리였다.
“··· 모든 음에 강약 조절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드럼을 못 구하니까, 가상악기로 때운 거예요.”
“음 ··· 1학년에는 작곡 수업이 없을 텐데.”
“그래서 아쉽더라고요.”
무언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을까.
한 명의 음악인으로서, 선생님으로서.
문명래는 한 달 전의 자신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김수재라는 아이를 몰랐기에, 기필코 특별반에 넣으려 하는 채미현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이제는 잘 알 것 같았다.
도와줘야 한다.
재능이 꽃필 수 있도록.
“걔 한 번 만나보는 건 어떠세요? 작곡 전공이시니까 ···”
“ ··· 그럴게요. 듣다보니 저도 흥미가 생기네요.”
“그리고 혹시 ··· 마음에 드시면 장학 추천서도 좀···”
“네!?”
류혜진은 눈을 크게 떴다.
“베이스 보조강사시잖아요?”
“네. 근데 걔 추천하려고요.”
“··· 살다 살다. 문쌤 그러시는 거 처음 봐요. 자기 전공생들만 지독하게 아끼시면서.”
“하하 ···”
문명래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처음이었다.
* * *
“끄아아아앗!”
“끝났다!”
해방감 섞인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나도 같이 환호를 지르며 기지개를 켰다.
컨닝 방지차 반 이동을 했기에 이곳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갔다.
“좆됐군.”
고뇌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나는 좆됐다.
그저께도 좆됐고, 어제도 좆됐으며, 오늘도 좆됐다.
시험을 그냥 조져버렸다.
“후우 ···”
“수재야 어땠어···? 답 맞춰볼래?”
시험지를 끌어안고 있던 소이가 물었다. 소이는 나랑 이동 반이 같았다.
“음 ··· 아마 의미가 없을 거야.”
“의미?”
“나 시험 개망했거든.”
괜히 어깨를 으쓱거려 본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전혀 정신적 데미지가 없다는 듯이.
하지만 나라고 충격을 안 받는 건 아니다.
이젠 ··· 이젠 진짜 기타밖에 없어 ···!
“그, 그렇구나 ··· 힘내.”
“넌 어땠는데?”
“나도 많이 틀렸어···”
역시, 악기 실력과 학교 성적을 같이 향상시킬 수는 없는 건가.
나는 소이와 같이 급식실을 향해 걸었다.
저 멀리서 최유진이 다가온다.
얼굴이 나라 잃은 사람처럼 지독한 울상이다.
“으아아아앙! 소이야 나 시험 완전히 망했어! 소이 너는? 너는 잘 봤어!?”
“아··· 아니 나도 잘 ···”
“으아앙!”
최유진은 시끄럽게 울어댔다.
꿀밤 한대 먹이고 싶네.
“···”
뭐, 지금은 그럴 힘도 없다.
나는 한숨을 토했다.
“하아아아아아 ···”
“힘내 수재야··· 장학 대회도 남았잖아···”
“아··· 장학대회.”
“맞다! 너희 대회 나간다고 했었지?”
잊고 있었네.
좆망한 성적을 만회할 기회가, 아직 남아 있었다.
전국 장학경연대회라는 커다란 판이 말이다.
그래, 이렇게 된 거 제대로 씹어먹어주마···.
잘근잘근. 뼈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