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90
폭발하는 광기 (1)
멋드러진 한강뷰가 비치는 거실에서, 머리를 빗어 넘긴 한 남자가 태블릿 pc를 조작한다.
한 대에 100만 원이 넘어가는 비싼 몸값이지만, 으레 그렇듯 태블릿 pc의 역할은 정해져 있다.
만화 셔틀, 인터넷 기사 셔틀, 유튜브 셔틀.
음악하는 사람이 쓴다고 해봤자 악보 셔틀 역할이 추가될 뿐이다.
“이야, 라디오를 그냥 씹어먹는구나.”
마트에서 대량 구매한 슬라이스 치즈를 쭈욱 찢어서 입에 밀어 넣는다.
팔천원 짜리 마트산 와인도 대충 유리잔에 담아 머금어본다.
맛있었다.
그냥 맛있었다.
10만원짜리던 100만원 짜리던.
내 입에 맛있으면 그만이다.
평생 송아지 스테이크만 먹기 vs 부대찌개만 먹기라는 어이없는 스승의 질문에, 원재선은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후자를 선택했다.
사람의 감각이란 게 원래 그렇다.
주관적이다.
맛으로 느끼는 것이던, 귀로 듣는 것이던.
모든 것은 취향에 의해 좌우된다.
무조건 비싼 게 좋고, 무조건 고급진 게 좋다.
무조건 역사 깊은 게 좋고, 무조건 클래식이 좋다.
좋은 것을 규정지어 버리는 것.
음악인들은, 알게 모르게 속박되고 있었다.
“음~”
원재선은 또다시 벌크 치즈를 쭉쭉 찢었다.
이번주 토요일의 연주회.
판매개시 세 시간 만에 매진되어버린 자신의 연주회.
자신은, 일방적으로 곡 변경을 통보했다.
모짜르트 곡을 베토벤 곡으로 바꾸는 것쯤이야 크게 반향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모짜르트의 곡을,
외국 ‘기타리스트’의 곡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국내 피아니스트의 곡도 편성에 추가했다.
당연하게도 반발이 일어났다.
일부 티켓 구매자가 sns에 직접 불만을 토하기도 했다.
그냥 전부 씹었다.
꼭 하고 싶었으니까.
자신은 ‘연주’를 하는 사람이지, 클래식 명곡 재생기가 아니니까.
‘일류’라는 라는 자리에 올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소년을 보며, 깨달은 게 있었다.
폭풍우가 내리치는 무대 위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기타를 연주하는 그 모습.
환경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자세.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상식이나 관습 따위는 벗어던지는 행위.
마땅히 예술가다운 모습이었다.
그러니 결정했다.
내가 치고 싶은 곡을 치자고.
작곡할 때 쓰인 악기가 달라도, 관객들이 잘 모르는 곡이어도.
그냥 치자고.
어차피 설득하는 것은 자신이니까.
원재선은 창문으로 다가가 커튼을 쳤다.
채광량 좋고, 뷰 좋고, 뭔가 좋긴 좋은데.
다 좋은 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요소가 그렇다.
파면 팔 수록 매력이 있는 클래식도, 누군가에겐 따분하기 그지없는 화장실 배경음악일 수가 있다.
자신은, 자신의 색을 추구하면 된다.
“아 눈부셔.”
한강 부근 아파트는 ‘뷰’와 광해가 같이 따라온다는 것을, 이사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이래서 다 경험을 해봐야 제대로 아는 거라니까.
원재선은 곧바로 익숙하기 그지없는 인물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어, 수재야. 너 표 안 받았지?”
-표요? 아 그··· 연주회 여신다는 거 들었어요. 기사에 저 나왔던데요? 뭐예요 대체?!
“사소한 거에 신경 쓰지 말고, 자리 따로 빼놨으니까 토요일에 연주 들으러 와. 친구들이랑 같이. 오후 두 시 반부터야.
-지금 표 가지러 갈까요?
“종이 표가 아니라 디지털 푠데.”
-아하.
원재선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카톡으로 디지털티켓을 보냈다.
영감을 준 아이인데, 제대로 대접을 해줘야지.
연주회가 끝나면 앨범 홍보도 같이 ···
순간,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아, ··· 너 혹시 ···”
“가능은··· 한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
아이디어는 묵혀두면 안 된다.
떠오르는 순간 질러야 한다.
원재선은 전화를 끊은 다음, 평소처럼 TV를 켰다.
어째,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 * *
– 와 원재선이 빨기좌 언급함.
– 둘이 무슨 관계임?
– 블루 퍼플 바 mr에 피아노 나오던데 설마 ···
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에바지. 빨기좌가 유명하긴해도 어떻게 원재선을 섭외함.
ㄴㄴ 터치스타일이 닥 원재선이던데.
ㄴㄴㄴ 이런애들 특 : 블라인드 테스트 하면 누군지 못맞춤.
– 속보 : 빨기좌 신곡 원재선이 도와줌
ㄴ 개소리 ㄴ
ㄴㄴ 진짜 유언비어 작살나네 ㅋㅋㅋ
6월 10일 금요일.
그저께부터 지금까지 에이트라의 유튜브가 두 번 터졌다.
뭐, 유튜브 서버가 터졌다는 건 아니고,
사람들의 분노 덕에 에이트라 채널의 댓글창이 쓸데없는 말로 도배된 것뿐이다.
나는 상의 끝에 앨범이 발매되기 전까지 영상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괜히 어그로가 다른 데로 쏠리면 안 되니까.
그건 그렇고 사람들 눈치 진짜 빠르네.
직접 언급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어떻게?
어떻게 안 거지?
유튜브 댓글란은 ‘원재선이 mr제작을 도와줬다’라는 주제로 어제부터 개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흐으 ···”
방과후.
나는 교복 상의의 단추를 다 풀어헤친 채로 거리를 걸었다.
덥다.
아주 덥다.
신명나게 덥다.
그제 까지만 해도 낮에 적당히 따끈한 날씨였는데. 갑자기 태양이 강렬해졌다.
한국이 4계절 국가라는 건 진짜 개뻥인 거 같다.
뭔 날씨가 이틀 만에 이렇게 돼.
티리링~
편의점에 들린다.
라면도 사고 핫바도 사고, 뭔가 맛있어 보이는 건 잔뜩 고른다.
돈이 좋긴 좋구만.
회귀 전 이 시절에는 이렇게 못 했던 거 같은데.
핫바를 네 개나 먹을 수 있다니.
이보다 더 행복 한 게 있을까?
나는 봉투에 한가득 담긴 군것질거리를 들고 종합병원에 들어갔다.
몸 어디가 고장 난 건 아니고,
면회다. 면회.
“304호 2인실이에요.”
“감사합니다!”
나는 계단을 뚜벅뚜벅 올랐다.
3층의 끄트머리.
2인실 문패에 익숙한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드르륵-
평소와는 다른 병원복 차림.
한 1초간 불쌍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냥 자동으로 웃음이 나온다.
얼굴이 웃음벨이다.
진짜 존나 웃기게 생겼네.
“으흐흐흐흐.”
“흐흐흐흐.”
“흐흫흫”
나를 확인한 두 사람도 똑같이 웃음을 지었다.
“김수재 진짜 존나 웃기게 생김.”
“인정.”
뭘봐 병신들아.
나는 터벅터벅 다가가 1인용 침대를 향해 다이빙했다.
팡-!
“으악!”
“악! 배 또 아파.”
“뭐냐 뭐 하러 왔냐.”
“나?”
우르르-
나는 봉투에 담아둔 음식들을 전부 쏟아내었다.
“이열 ··· 은 개뿔 우리 음식 못 먹는데.”
“조금은 괜찮지 않나?”
“먹으면 안 되지. 장염 걸렸는데.”
두 사람은 장염에 걸려서 학교를 쉬었다.
없으니까 너무 심심하더라.
“뭘 먹었길래 그러냐?”
“아 그··· 닭갈비 ···”
“닭갈비?”
“우리 3월에 갔던 데 있잖아.”
“··· 아 거기?”
기억 난다.
닭갈비를 실컷 뱃속에 때려 부은 다음 날, 한날한시에 화장실에서 만났던 기적··· 도 기억이 난다.
“거길 또 갔다고 왜? 대체 왜?”
“맛은 있었잖아.”
“맞아. 맛은 있었어.”
“나 빼고?”
“같이 안 간 댔으면서 와 김수재 몰아가는 거 봐.”
“그렇네?”
에이트라와의 미팅 때문에 못 갔다.
닭갈비라.
확실히, 매력있는 맛이긴 했지.
근데 가도 하필 거길 가다니.
대단한 새끼들이다.
“이번에는 좀 괜찮지 않을까 싶었는데···”
“거기 진짜 폐업해야 됨. 장사를 어떻게 하는 거냐 대체?”
하지만 결과를 보아라.
이 꼴이다.
불타오르는 항문과 음식을 앞에 두고 침을 흘릴 수밖에 없는 절망감.
나는 새우탕면을 뜯은 다음에 복도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왔다.
전자레인지에서 데운 핫바에서 기름과 육즙이 흐른다.
“츄읍!”
감미로운 냄새가 펄펄 풍기는 핫바를 이로 뜯은 다음,
“후르르릅!”
라면 국물도 시원하게 들이킨다.
“크어어어어어.”
죽인다.
이맛이다.
이 맛에 산다.
“미친새끼인가 진짜?”
“왜 왔어 왜!”
배게로 내 등을 오지게 두들기는 두 사람.
나는 어김없이 음식을 흡입했다.
왜 왔긴, 이거 하려고 왔지.
“으어어어어!”
“아··· 아, 그냥 한입만 먹을까?”
“김수재 한입만.”
“한입이 두 입이 되고 그러는 거야. 참아.”
보통 장염 걸리면 입맛도 같이 없어지던데.
참 먹성 좋은 놈들이다.
“이걸 다 먹는다고?”
“이거 1인분임.”
“아 잠깐만 ···”
나는 어김없이 핫바와 라면을 먹어치우려 했지만 ···
아주 잠시, 중단됐다.
도현이가 화장실로 달려갔다.
곧바로 벽 쪽에서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맛있는데 ··· 맛있었는데.
“아~잇 씹.”
“키키키키키킥.”
“진짜 개 같은 화장실이네.”
나는 먹던 음식을 내려놓았다.
“음료수 없냐?”
“미쳤다 진짜.”
“어우 시원하다.”
혼돈 그 자체인 병실.
나는 대충 앉아서 노가리를 까다가, 카톡으로 두 사람에게 표를 보냈다.
“나 내일 여기감.”
“왜감?”
“나 여기서 연주함.”
“···.”
두 사람이 눈을 아주 크게 뜬다.
뭐, 이미 몇 번 경험했던 반응이었다.
최유진이 뭐뭐뭐뭐뭐머머? 라며 목소리를 마구 떨더라.
현재 시점에도, 원재선은 아주 유명하다.
뉴스에도 자주 나오고, 예능에도 나오고.
음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다 안다.
실력도 출중하고 인기도 좋은 피아니스트의 ‘개인연주회’.
나는, 원재선 피아니스트의 ‘즉흥적인 제안’을 받아들여 합주를 하게 됐다.
“왜 …?”
“왜냐니. 불렀으니까 가지.”
“응 구라.”
“먼저 전화 왔는데?”
일요일까지 좀 쉬나 싶었는데.
앨범 어그로도 거의 다 끌었다 싶었는데.
막상 제안하니까 못 참겠더라.
“돈도 줌?”
“그건 모름.”
“유명해졌는데 돈은 왜 못 버냐?”
“… 그러게?”
뭐, 편의점에서 핫바 실컷 살 정도는 벌었지만 서도.
버는족족 비트코인 지갑으로 들어가고 있으니 체감이 잘 안 된다.
“많이 벌면 기타 한 대씩 사줄게.”
“열~”
“열~”
두 사람도 오면 좋겠지만 ··· 연주 듣다가 싸버리는 것보다는 쉬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다.
“몸 괜찮아지면 와.”
“이거 비싼 거 아냐? 못 가면 어떡함.”
“몰라 한 장에 20만 원 하던데?”
“팔까?”
“팔자.”
미친놈들인가 진짜.
“표 우리한테만 줬냐?”
“아 그 ··· 소이랑 윤수빈이랑 최유진한테도 줌.”
“여자애들한테만 주네.”
친구가 없어서 그래.
“여자애들이랑만 가는 거 아냐?”
“에이 설마, 내일까지는 다 낫겠지.”
“설마 삼일이나 가겠냐.”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한다.
소이랑 둘이 있으면 괜찮다. 대충 노가리 까면 되니까.
최유진이랑 소이랑 셋이 있어도 괜찮다.
근데, 거기까지가 한계다.
여자애들이 많아질수록 뻘쭘해진다.
다 그렇지 않은가.
유독 이성 친화적인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다음날 오후 1시,
나는 적당히 밥을 먹고 종로로 향했다.
약 38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종 문화회관 대극장’
일류 피아니스트는 공연부터 차원이 다르다.
대관료만 해도 대체 얼마지?
시간대도 진짜 황금 같은 시간대인데 ···
“와 ···”
관객들이 몰린다.
많이 몰린다.
우리나라에 피아노 연주회 보러 오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주차장 쪽으로 들어가는 자동차의 열 대중 한 대는 고급 승용차였다.
나는 문화회관의 계단 앞에서 멍하니 친구들을 기다렸다.
“어? 빨기좌다.”
“안녕하세요~”
“공연 보러 오셨어요?”
가끔가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길 걸어 다녀도 알아보는 사람 하나 없던데 ···
여기선 다르구나.
연주회 주인공이랑 기사가 같이 나서 그런 거 같다.
“··· 진짜네.”
“왜 진짜야?”
“진짜 기타 메고 왔어 ···”
나는 고개를 돌렸다.
네 명.
윤수빈, 최유진, 소이, 그리고 ···
피아노 전공생인 소이 사촌 백윤서.
네 사람은, 도저히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멀찍이서 걸음을 멈췄다.
“쳐야 되니까 메고 왔지~”
툭-
내 머리 위로 거대한 손이 올려진다.
서병훈 피아니스트였다.
“준비는 잘했지?”
“준비할 ··· 시간이 없었는데요.”
“하하하, 뭐 어떻게든 되겠지.”
문화회관에 들어가는 ‘모든’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
“아, 참. 너 까메오가 아니라 정규편성이야.”
“예···!?”
“그렇다던데?”
서병훈은 디지털 표와 교환한 ‘종이 표’를 나에게 내밀었다.
연주일정의 끄트머리에 적혀 있는 내 이름.
– 정규 연주곡 : 초신성과의 무대 by 김수재
“··· 어?”
이게 가능한 건가?
딱 한 곡 하는데.
보조 연주자가 아니라 정규 연주자라고?
나는 그자리에서 10초 정도 뇌정지 상태로 있었다.
뇌정지가 풀린 건,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다.
“와 ··· 빨기좌다.”
음침하고 높은 목소리.
나는 재빨리 뒤를 돌았다.
하지만 정작 ‘나’를 부른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