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91
폭발하는 광기 (2)
등골이 싸늘하다.
비수가 날아와 가슴에 꽂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쫙 돋는다.
음침한 고음.
물에 젖은 듯한 목소리.
나는 천천히 거리를 둘러보았다.
음침한 목소리를 낼 것 같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로 사람을 구별할 순 없지만, 그래도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증발해버린 듯한 느낌이다.
“왜?”
“··· 누가 저 부르지 않았어요?”
“누가 불렀어? 못 들었는데?”
서병훈은 어깨를 으쓱했다.
나만 들은 건가?
일류 급으로 귀가 좋은 사람이 못 들을 정도의 음량이었나?
나는 백윤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 왜?”
“아니, 그냥.”
“···?”
백윤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얘도 아니다.
딱히 목소리에서 ‘음침함’이 묻어나오지는 않았다.
여름특집 공포물이야 뭐야.
여자애들 넷이 쪼르르 달려와 서병훈 피아니스트에게 인사를 박는다.
나는 기타를 고쳐 멨다.
“들어가자!”
“응.”
우리는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뭔가 권위적이면서도 웅장해 보이는 와관.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기둥은 꼭 아테네 신전을 떠올리게 한다.
“우와 ···”
몇 번의 리모델링을 거친 내부도 나름 세련되었다.
로비에는 공연 홍보 포스터가 잔뜩 붙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눈에 띄는 위치에 자리 잡은,
-원재선 리사이틀 6.11 / 2:30 pm –
아주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대형 포스터.
“우와 ···”
최유진이 멍하니 포스터를 응시했다. 옆에 있던 윤수빈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분야가 같지 않더라도, 음악 하는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피아니스트.
이번 리사이틀은, s급 좌석의 푯값만 20만 원에 달했다.
배짱장사를 해도, 가격을 올려도, 보러 올 사람은 다 온다.
그게 원재선이다.
“김수재 이름 써 있어…”
“여기도!?”
“멋있다 ···”
메인 연주자 : 원재선, 김수재
정말 놀랍게도, 원재선과 내 이름이 포스터에 나란히 박혀 있었다.
의리가 대단한 사람이다.
즉흥적인 제안을 받아준 것만으로 이런 대접을 해주다니.
감사의 뜻을 담아 일백 배를 해도 모자라지 않다.
“피아노 독주회로 3000석이라 ···”
“진짜 많네요.”
거의 국내 최대 규모이지 않을까.
솔직히 난 피아노 독주회에 가본 적이 없다.
행사 초청 연주나 구경해 봤지, 주말에 돈과 시간을 써서 보러 갈 만큼 피아노에 열정은 없었다.
“이, 이 표 s급이야 ···?”
“흐어어어어···”
윤수빈과 최유진이 목소리를 떤다.
원재선 피아니스트가 나에게 건네준 티켓은, ’S급’ 좌석이었다.
소리 잘 들리고, 연주자도 또렷이 보이는,
좌우 음향 편차도 거의 안 생기는.
앞자리.
원재선은 백 수십만 원의 이득을 그냥 나에게 넘겨버린 것이다.
“여기 뒷좌석은 소리가 제대로 들리긴 할까요?”
“당연히 마이킹 해야지.”
그랜드 피아노는 소리가 크다.
존나 크다.
이곳은, 그런 ‘그랜드 피아노’가 커버하지 못 할 만큼 큰 무대였다.
“대기실 들리자. 너희도 따라올래?”
“가도 돼요!?”
“와아!”
서병훈은 아기 오리들을 데리고 다니는 어미 오리처럼 앞장섰다.
“어! 서병훈!”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로비를 걷기 시작하자마자 그에게 무수한 악수의 요청이 쏟아진다.
다들 뭔가 ··· 부티 나는 듯한 얼굴이다.
건강에 좋은 걸 잘 챙겨 먹어서 그런가 기름기가 좔좔 흐른다.
평소에는 되게 친근한 느낌인데 이럴 때는 꼭 다른 별에서 온 사람 같단 말이야.
“어? 빨기좌 아니야?”
“진짜 왔네!?”
“기대할게요!”
“…!”
··· 서병훈뿐만이 아니었다.
꽤 많은 사람이 나를 알아보았다.
라디오의 힘인가?
아니면 기사의 힘인가?
나는 실실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제할 수가 없었다.
“김수재 표정 봐.”
“기분 좋아?”
“좋아?”
“응 개좋아~”
나는 깝죽거리는 윤수빈과 최유진에게 적당히 대답했다.
“언니, 수재오빠가 그렇게 유명해?”
“음 ···”
사실 별로 안 유명해.
번화가 걸어 다녀봤자 알아보는 사람 거의 없더라.
지금 괜히 어그로가 끌리는 건, 원재선이랑 같이 기사가 나서 그렇겠지.
“응. 유명해.”
“우와 ···.”
“엣헴.”
유명세는 인터넷 유명세가 있어요.
“그럼 사인 받아갈래.”
“··· 엥? 김수재한테?”
“진심이야?”
백윤서의 발언에 화들짝 놀라는 윤수빈과 최유진.
뭐.
왜.
왜 눈깔을 그렇게 떠.
“나중에 더 더 유명해 질 수도 있잖아요!”
“윤서가 사인 수집하는 거 좋아해 ···”
옆에서 소이가 거들었다.
사인 수집가라···.
수집의 취미는 넓으니까 뭐.
윤수빈은 장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어 내게 내밀었다.
명함 사이즈의 종이와 미니 펜.
“사인좀.”
“··· 준비가 참 철저하네.”
“칭찬 고마워!”
여자애들 한테는 존댓말 쓰면서 나한테는 반말 잘 까기도하고.
나는 빳빳한 종이에 날림으로 사인을 했다.
“오 ··· 뭐야 이거? 추상화야?”
“기탄데.”
“이게 기타야?”
“응.”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남에게 사인을 해주는 건 처음이다.
이럴때를 대비해서 사인 참 고심해서 만들어 놨다.
“쫌 유니크하네.”
여자애들이 보기에도 딱히 나쁘진 않은 듯했다.
나는 코를 스윽 닦으며 다시 걸음을 옮···
-나도 ··· 사인받고 싶다. 나도 ··· 기타 사인 ···
기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방금 여자 목소리 들렸지.”
“어?”
“여자 목소리? 여기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
“아니 그게 아니라.”
난 답답한 마음에 모퉁이 너머까지 냅다 달렸다.
“··· 뭐냐 진짜.”
사람이 너무 많다.
음침한 목소리의 주인은, 찾을 수가 없었다.
누가 내 스토킹을 하는 건가?
내 인기가 거기까지 올라간 건가?
살다살다 스토킹 당하는 날이 올 줄이야.
역시 인생은 오래 살아봐야 한다.
“···.”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경찰에 신고?
직원에게 토로?
글쎄다.
적을 상대하려면, 적을 알아야 한다.
“사인 받고 싶으면 직접 와서 말해!”
나는 큰 소리로, 군중에 대고 외쳤다.
“김수재 왜 저래?”
“몰라?”
“빨리 와~”
우리는 세이프 라인이 처져 있는 곳을 폴짝 뛰어넘어, 대기실로 향했다.
화려한 로비 풍경과는 달리, 대기실은 수수하고 조용했다.
헤어젤로 머리를 전부 넘겨버린 원재선은 묵묵히 태블릿 pc를 들고 악보를 체크하고 있었다.
“잘 돼 가?”
“아, 선생님···.”
3000명 앞에서 공연을 하는데.
진짜 긴장을 하나도 안 한 얼굴이다.
청심환 먹은 건가?
나라면 손이 벌벌 떨릴 것 같은데.
페스티벌이 아니라 자신만을 위한 ‘독주회’잖아.
“수재도 왔구나. 너희는 ···”
“수재 친구들이래.”
“아~ 그렇군요. 들어오렴.”
우리는 대기실로 들어가 빈자리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사인수집가 백윤서가 눈을 빛낸다.
메고 있던 크로스백을 괜히 뒤적거리는 게, 이 사람 사인은 없는 모양이다.
나는 핸드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했다.
시작까지, 한 시간 채 남지 않았다.
“진짜 괜찮아요?”
“뭐가?”
“일 너무 크게 벌인 거 아니에요?”
“크게 벌이긴 했지.”
“와···”
다시 생각해 봐도 어이가 없네.
난 별로 상관없다.
예행 없이 공연하는 건 익숙하니까.
손만 조금 풀면 될 거다.
하지만,
하지만.
이 사람은 다르다.
“어이가 없네요.”
“둘이 잘 어울리네 뭐. 또라이들이야 아주.”
“···.”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네 사람.
나와 원재선, 서병훈만이 알고 있는 이번 공연의 비밀.
난.
이 사람과.
연주를 맞춘 적이 없다.
“네가 만든 거 들어보니까 괜찮더라. 충분해.”
“···.”
“네가 안 되면 나숙호 선생님급 기타리스트는 데려와야 할 거야.”
“칭찬 감사합니다.”
왜, 연주회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귀를 호강시키기 위해서.
혹은, 팬심으로.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시간을 사용하여 굳이 보러오는 것이다.
근데 합을 맞춰보지도 않은 연주를 관객들에게 들려준다라,
이게 말인가 방구인가?
프로 정신이 결여됐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앰프도 준비해 놨어. 꽤 비싼 거야.”
“비싼 거요?”
“아 ··· 비싼 게 아닌가? 600정도라던데.”
“아주 비쌉니다.”
무슨 앰프일까?
마샬로는 헤드랑 캐비넷이랑 해서 600을 못 채울 텐데.
“가 보자. 너 세팅 맞춰봐야 할 거 아니야.”
“아 ··· 네.”
“너희도 따라와.”
“···네!”
우리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뒷 통로를 이용해 무대로 이동했다.
관람객으로서는 도저히 서볼 수 없는 곳.
무대.
3000명이라 ···
야외 페스티벌보다는 인원수가 적다.
하지만.
“··· 헤엑!”
“어아···”
“와 ···”
애들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존나 넓다.
존나 크다.
“와 씨 ···”
나는,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서 본 실내 무대 중에 제일 큰 게 전국대회 본선이었으니까.
1000명 언저리의 규모였으니까.
이런 감상이 드는 건 당연하다.
이곳은, 실내임에도 ‘3000명’ 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스탠드가 아니라 좌석.
늘어서 있는, 무수히 많은 ‘좌석’.
나는 턱에 힘을 주어 간신히 입을 닫았다.
내가 여기서 연주를 하다니 ···
그냥 인터넷으로 ‘피아노 연주회’ 찾아보고 이정도겠구나~ 싶었는데.
서는 곳이 다르구나.
··· 좆됐다.
“여기 원래 수용인원 4000명이었다더라.”
“··· 진짜요?”
“여러번 리모델링 하면서 좌석이 줄어든 거지. 음악 하는 사람들이 꺼리는 곳이었으니까.”
“요즘은 좀 괜찮다지?”
“아직도 부족하긴 해요.”
3층까지 있는 좌석과 압도적인 크기.
무대 가운데에 놓은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
피아노를 감싸듯이 설치된 마이크들.
일류의 무대였다.
···.
나는 뚜벅뚜벅, 무대 한구석에 놓인 기타 앰프를 살폈다.
“메사부기 ···”
공연장에서 동네북처럼 쓰이는 앰프는 대부분 마샬이다.
유명하고, ‘스탠다드’니까.
그밖에는 오렌지, 펜더, 레이니 쯤이다.
메사부기는 잘 찾아볼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와 ··· 메, 메사부기 ···”
최유진이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나 이거 처음 봐 ··· 소이 넌 본 적 있어?”
“아 그 ··· 예전에 아빠가 ···”
“우와! 메사부기 써본 적 있어?!”
비싸다.
메사부기는 비싸다.
헤드 하나에 400가까이 하는 놈도 있고, 캐비넷도 다른 회사들의 두 배 값이다.
메사부기 dual rectfire
··· 이게 놓인 공연장은, 진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
‘마샬’이 표준 사운드이긴 하지만,
언젠가는 메사부기의 크리미한 사운드를 누려보리라 다짐했었는데.
이제야 써볼수 있겠네···.
“별로냐? 마샬? 인가 그것도 있던데.”
“아, 아뇨··· 충분해요.”
나는 곧바로 기타가방과 페달보드를 풀어헤쳤다.
직원이 저 멀리서 접지 콘센트를 끌고 온다.
“나, 나도 만져볼래 ···”
“이게 그렇게 좋은 거야?”
“엄청 좋은 거야!”
나는 곧바로 톤세팅에 들어갔다.
노브진짜 뒤지게 많네.
내가 칠 곡은 하이게인이 필요 없으니 클래식 게인으로 ···
앰프 게인은 꼭 사용해야 하니까 케이블도 네 개로.
쥬아아아앙-!
톤을 대충 잡아서 튕겨본다.
펜더기타에 메사부기라,
어울린다.
마샬의 땡땡거리는 고음에 구리스가 발려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돈값을 하냐 못하냐는 질문에는 쉽사리 대답 못하겠지만 ···
정말 좋긴 하다.
“존나좋군.”
“아아아! 나도! 나도!”
“다행이네. 그럼···”
텅-!
원재선은 그랜드 피아노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냉각되었다.
망치였다.
“올드보이 찍으세요?”
“피아노는 현악기지.”
“그렇죠.”
“현악기는 현으로 소리를 내는 악기지.”
“그렇 ··· 죠?”
“그럼 이걸로 현을 때려도 소리가 나겠지.”
원재선의 눈에, 광기가 감돌았다.
“이 피아노는 오늘 살아서 못 돌아간다.”
“···.”
나는 망치와 그랜드 피아노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넌, 어떻게 할 거냐?”
그리고 동시에, 앰프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