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96
하꼬의 이상한 시그니쳐 (2)
“··· 시그니쳐 모델이요?”
“네!”
“···.”
‘시그니쳐’ 모델이 가지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뮤지션에 대한 존경.
다져온 길을 향한 찬사.
음악계에 행사한 막대한 영향력의 증명.
자신의 사인이 기타에 적히고, 이름이 모델명에 적히는 ···
‘영광’ 그 자체.
사실 의미를 따질 필요도 없었다.
시그니쳐 모델이 제작된 기타리스트는, 그야말로 ‘일류’ 기타리스트뿐이다.
감히 나 같은 하꼬따리가 범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란 말이다.
“제가요?”
“네···!”
“시그니쳐요?”
“네!”
“왜요?”
“네?”
짧은 대화였지만,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에는 충분했다.
잉베이 말름스틴 지미 페이지 제프 벡 짐 루트 에릭 클랩튼.
‘전설’이라는 단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기타리스트들.
나는 그들의 기타를 떠올렸다.
왼손잡이용도 오른손잡이용도 아니게 되어 버린 지미 헨드릭스의 시그니쳐 부터, 펜더의 특색을 싹 지워버린 짐 루트의 시그니쳐 까지.
전부 가지각색의 소리가 있었다.
근데··· 근데.
‘내가’ 시그니쳐를 만든다는 건 ··· 좀···
이상하다.
이상하다 못해 괴상하다.
“그, 그야 요즘 유명하시니까 ···”
“유명하다고 시그니쳐를 만들어 줘요? 말이 안 되는데.”
말이 안 된다.
애초에, 앨범이 나온지 하루 채 지나지 않은 상태다.
반짝 6위까지 찍고 추락하긴 했지만,
주변인들에게 축하 메시지 좀 받고,
에이트라 채널의 구독자가 70만에 달하기도 했지만 ···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저기요, 일을 해서 돈을 버세요.”
나는 직감을 발휘했다.
이거, 사기다.
도를 아십니까의 강화판 그런 건가?
성공에 가까워지면 사기꾼이 몰린다는 말이 있다.
성공해본 적이 없어서 실감이 잘 안 가긴 했는데 ···.
뭐, 나한테 사기꾼도 다 꼬이고.
잘 하고 있다는 증거겠지.
“접근 방식 보니까 초짜 같은데 ··· 세상 어느 미친 회사가 17살짜리한테 시그니쳐 만들어 준다고 그래요?”
지미 페이지도, 에릭 클랩튼도 17살에는 개하꼬였다.
지금 이 상황은, 미쳤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저희 회사에서 ···”
“회사 어디요?”
“아 ··· 아 ··· 그게···”
지갑을 뒤적거리는 20대 후반의 여성.
지갑에서 동전들이 왕창 쏟아져 나온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뒤, 떨어진 물건들을 주웠다.
“··· 명함이··· 어디 갔지?! 아···”
“여기요. 착하게 사세요.”
“감사합니다 ···. 아, 아니 이게 아닌데!”
나는 그녀를 뒤로하고 등굣길을 걸어 올라갔다.
점점 우리 학교 교복을 입은 애들이 많아진다.
“오~ 빨기좌~”
“빨기좌 멋있다~!”
2,3학년 형누나들은 실실 웃으며 내 별칭을 열창한다.
이것도 얼마 안 갈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개기분좋네.
으쓱으쓱
으쓱으쓱으쓱.
어깨춤이 절로 춰진다.
“김수재!”
“김수재이새끼···”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우두두두두두-!
교문 앞에서 대기 타고 있던 혁오와 도현이는,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멧돼지처럼 나를 향해 돌진했다.
“스탑! 스탑!”
“스탑은 개뿔!”
이거···
박히면 최소 중상 감이겠는데?
나는 뒤로 메고 있던 기타를 앞으로 했다.
하지만.
“잡아라!”
“잡아라!”
하체로 파고들어 내 다리를 붙잡는 혁오.
상체를 끌어안는 도현이
두 사람은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왕이 행차하신다!”
“길을 비켜라!”
아
안돼
이러지마!!
등교중인 전교생의 시선이 나에게 날아와 박혔다.
따갑다.
시선이 아주 따갑다.
그냥 의기양양한 표정 지으면서 복도 워킹이나 할 생각이었는데 ···
그래 시발.
이런 놈들이었지.
이놈들은 ···
“와~ 김수재다!”
“이따 3층으로 놀러 와.”
“아 표정 봐~”
“왕이다아아!”
엿먹이기의 달인들이다.
축하할 게 있으면 반드시 엿도 같이 먹이는 그런 ···
우주의 균형자들.
너무 쪽팔리다···
개쪽팔리다 ···!
“내, 내려주면 안 될까?”
“어림도 없지.”
“아아아암!”
두 사람은 젖먹던 힘을 짜내어 나를 들고 ‘걸었다’
힘이 장사네.
몸무게랑 레스폴 무게랑 합치면 꽤 될 텐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도현이와 혁오가 땀을 뻘뻘 흘리며 위태위태하게 계단을 오른다.
굴러 떨어지면 전치 200주는 나올 것 같다.
“곡 좋더라~”
“감사합니다!”
“쉬엄쉬엄해.”
선생님들이 우리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지나가신다.
적어도 우리학교에서 만큼은, 내 곡을 듣지 않은 사람은 없는 듯했다.
차곡차곡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앱이니까.
사용자는 충분히 많을 것이다.
나는 베즈 직원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 아! 페스티벌에 임원분이 참석하셨었는데, 수재씨한테 관심을 ··· –
베즈의 윗선에서 나를 좋게 보고 있다니.
몇 시간 동안 메인 화면에 내 앨범을 띄워 주다니.
정말 상당한 혜택을 입었다.
앞으로도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코 늘어져선 안 될 것이다.
계속 활동을 해야만 한다.
“김수재 진짜 개부럽네.”
“우리는 왜 안 유명 해지냐?”
“유명해지면 막 고백 편지 같은 거 받는 거 아니냐? 흐흐흐흫”
“와 진짜 개씹덕이네.”
나를 들고 있던 둘은, 소소한 바람을 말하기 시작했다.
“에이트라 채널에 같이 나온 동영상 역링크 해줄게. 너희도 팬이 아예 없진 않을걸?”
“오”
“오 ···!”
주변 사람도 잘 챙기고 그래야지 암.
이렇게 에어 마차 서비스까지 받는데.
나는 처음으로 헐떡임 없이 4층에 도착했다.
복도의 끝에 있는 우리 반 ···
8반.
나는 다리로 드르륵- 문을 열었다.
“김수재 대령이요!”
혁오의 쩌렁쩌랑한 외침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약 2초간의 정적,
그리고 ···
“와아아아아아!”
밀려오는 환호.
나는 터억- 멋들어지게 착지했다.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무대 위에서 3천 명의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았을 때랑
지금의 기분이랑 ···
놀랍게도 상당히 비슷하다.
짜릿하다!
“대박 ···”
“너 6위 찍었더라!”
“나 듣다가 완전 소름 돋았잖아 ···”
나는 의기양양하게 광배를 쫙 펼치며 무수히 많이 쏟아지는 질문들을 받아냈다.
남자는 자신감이다.
기쁜 일이 있을 때에는 당당히 자랑할 줄도 알아야 한다.
“쩔어 ··· 반에 앨범 안 돌려?”
“디지털이라 실물은 없어.”
“아 맞다! 너 그 기사 봤어?”
“기사? 아 원재선씨랑은 ···”
“아니 아니!”
인상이 옅던 남자애는 나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기사라 ···
아침에 기사가 또 났나?
어차피 연주회에 ‘직접’ 온 기자는 한 명밖에 없···
“··· 어?”
“왜 그래?”
“이거 봐봐.”
– 가수 설하, 아침 방송에서 ‘17세 기타리스트 소년’의 앨범 언급 ···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 ···
“뭔데?”
“뭐야?”
“와 ··· 설하가 직접 ···”
“민서 아직 안 왔나?”
···.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언급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희망사항이었는데.
희망사항이, 실제 상황으로 바뀌었다.
설하도 유튜브 하나?
댓글이라도 달까?
난 재빨리 핸드폰을 켜서 뒤적이다가 말았다.
“김수재 존나 부럽네.”
“이제 설하 만나는 거임?”
“설하 사인회 한다는데?”
“사인회?”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니··· 뭐.
예의상 하는 말일 것이다.
이성이 돌아왔다.
그냥 앨범을 들어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디이잉~
여럿의 손에 들린 핸드폰에서 내 곡이 흘러나온다.
“지금 몇 위야?”
“89위인데? 아직도 순위 안 떨어졌어 ···”
“흐흐흐흐.”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수업은 평소대로였지만, 쉬는 시간마다 2,3학년 형 누나들도 찾아오고.
선생님들도 한 번씩 언급해주시고.
괜히 공책에 볼펜 북북 그어가며 사인 연습도 해보고.
밥도 ··· 뭐.
“이 정도면 먹을만하네.”
“정신나갔냐?”
“김수재 혓바닥 뭐임 ··· 나랑 바꾸셈.”
“수재 어디 아파 ···?”
맛있는 거 같이 느껴진다.
‘좋은 기분’이, 미각까지도 미화시켰다.
“정신 나간거 같애.”
“점심 나가서 먹은거 같애.”
“김수재 부자 되면 한턱쏴라.”
“지금까지 얼마 벌었냐?”
“그게 이상하게 얼마 못벌음.”
“아 ··· 기타.”
“아 ···”
“···.”
힐끔힐끔, 눈치를 보는 소이와, 불쌍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다른 애들.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기타 쯤이야 뭐.
넥포켓 크랙쯤이야 뭐.
“뽄드 붙이면 되지 않을까?”
“···.”
내 기타는, 이틀째 소식이 묘연했다.
밥을 다 먹은 우리는 급식실에서 빠져나왔다.
“…”
그리고,
반나절동안 좋았던 기분이, 서서히 추락할 기미를 보였다.
아침에 액땜했다고 생각했는데,
액땜이 아닌 모양이다.
진짜 끈질기다.
급식실 바로 앞쪽으로 보이는 손님용 주차장.
평소에는 텅 빈 곳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익숙한 형태의 자동차와 정장 차림의 여성이 서 있었다.
“아 ···”
“왜?”
“저 사람 진짜 끈질기네.”
“누군데?”
“아침에 저 사람이 내 시그니쳐 기타 만들어 준다고 하더라.”
“네가?”
“네가? 네가?”
윤수빈이 피식, 실소를 짓는다.
최유진도 마찬가지였다.
그 옆에서 배를 잡고 박장대소를 하는 도현이와 혁오까지.
“흐히히히히히히힣!”
“으흐흐흐흐흐흫!”
아주 그냥 지랄이 났구만.
그래 뭐, 이런 반응이 정상이긴 하지.
인터넷상으로 이름이 퍼지고, 일반인 소수에게 내 곡이 알려지긴 했지만.
‘지속 가능한’ 뮤지션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가파른 길을 빠르게 올라왔지만, 아직 오르막의 끝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다.
시그니쳐 모델이란, 그런 가파른 길의 정상에 달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이었다.
예를 들어 ···
“나숙호 선생님 시그니쳐면 이해하겠다.”
매 주 뵈는 분이시고,
Tv에는 잘 안 나오는 분이시지만,
‘나숙호’ 라는 인간이 한국 기타 계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컸다.
무대에도 서시고, 음반도 내시고.
가끔 세션 일도 맡긴 하시지만, 절대로 ‘을’ 입장에서의 세션이 아니시고.
“시그니쳐?”
“어. 나숙호선생님 시그니쳐 나오면 무조건 산다.”
“오호~ 그래?”
뭐지. 도현이 목소리가 이렇게 컬컬하진 않았···
나는 위화감에 고개를 휙 돌렸다.
··· 도현이가 있던 자리에는, 나숙호 선생님이 계셨다.
“아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래, 잘 지냈니?”
나숙호 선생님은 오늘도 인자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건 그렇고 나선생님께 반말을 해버리다니 ···
정신좀 차리자.
너무 들떴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곡 잘 들었어. 아주 좋더라.”
“아, 감사합니다!”
“술집 ··· 분위기던데 진짜 술집에 간 건 아니지?”
나선생님의 눈빛이, 살짝 날카로워졌다.
“아, 아니에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역시 수재야. 가보지도 않은 곳 묘사를 그렇게 생생하게 하니까··· 허허, 숙취 때문에 아직도 속이 쓰리네.”
“···!”
밀려오는 감동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있는 힘껏 미간을 눌러 나약한 눈물샘을 고문했다.
“그건 그렇고 ··· 내 시그니쳐 갖고 싶어?”
“시그니쳐요? 갖고 싶습니다!”
있다면 말이다.
있다면, 무조건 살 거다.
하지만 나선생님의 시그니쳐는 내가 아는 한으론 없었 ···
“그래?”
저 멀리서, 아침에 봤던 정장 차림의 여성이 우리에게 달려온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
‘나선생님’께··· 다가온다.
“그럼 제일 먼저 쓰게 줄게.”
“···어?”
그녀의 손에는, 명함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레인 뮤직 악기 마케팅부서 이유림 대리입니다! 나숙호 선생님 시그니쳐 제작과 김수재 기타리스트의 협력 요청을 위해 찾아왔습니다!”
“하하, 반가워요.”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이 사람,
도를 아십니까가 아니었구나 ···.
“아침에는 죄송했습니다! 저도 새벽에 연락을 받은 사항이라 ···”
“아 ··· 저도 죄송했습니다.”
“아닙니다!”
나는 머릿속에서 필사적으로 상황을 정리해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정리해도, 아침에 받았던 제안은 선뜻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저, 저도 만드나요? 시그니쳐를?”
“그게 사실은 ···!”
이유림대리는 뒤적뒤적,
자신의 가방에서 파일 철 하나를 꺼내어 내밀었다.
종이에는 새까만 통기타의 사진 한 장과,
기획 – 스승과 제자.
큼지막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이게 ··· 뭐예요?”
“나숙호 기타리스트 시그니쳐의 ‘한정수량’모델 기획입니다!”
“··· 네?”
나숙호 선생님은 나에게 척, 손을 올리셨다.
“딱 몇 대만이지만, 네 이름도 같이 넣으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저도 전달만 해드린 건데··· 갑자기 승인이 떨어져서 ··· 이럴 줄은 몰랐는데 ···”
내 이름이 ··· 소량의 기타에 들어간다는 소리인가?
나는 고개를 돌렸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레인악기뮤직···
레인악기뮤직 ···?
···?
그거 먹혔는데?
소이 아버지한테 먹혔는데?
머릿속에 퍼즐이 척척, 맞춰지기 시작했다.
소이는, 나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수재··· 잘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