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97
하꼬의 이상한 시그니쳐 (3)
···.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오갔다.
소이 아버님께서 힘을 써주신 건가?
그런 건가?
설마 앨범 발매를 축하기념 삼아서 이런 혜택을···.
머리가 아찔해졌다.
받으면 돌려주기도 해야 하는데.
내가 마땅히 돌려줄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소이 설마 ··· 알고 있었어?”
“숨기려던 건 아닌데 ···”
소이는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화났어?”
“아니아니아니”
“수재는 눈치가 참 빠른 거 같아···”
“고, 고마워.”
칭찬 맞겠지.
그렇겠지.
“···실화?”
“김수재 시그니쳐라고?”
“리얼?”
“선생님 시그니쳐에 이벤트로 내 이름 몇 개 넣는다는 거잖아.”
“아 ···!”
“그래도 부럽네 ···”
나는 도현이와 혁오의 바보 같은 대화를 정정했다.
여자애들은 이미 상황 파악을 마친 뒤, 질문 공세를 내뱉고 있었다.
“와! 선생님 시그니쳐 내세요?! 어떤 거예요!?”
“보여주시면 안 돼요?”
나선생님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셨다.
“가능하지요?”
“아, 네! 신제품 디자인 공개는 이미 된 거라 ···”
“신제품이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레인악기뮤직.
악기도 유통하고, 해외 실물 앨범도 유통하고. 저작권 돈놀이도 하고.
근데 자체 브랜드 악기는 피아노 외에는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에 회사 내부 방침이 바뀌면서 ··· 자체 브랜드 강화를 목표로···”
이유림 대리는 장대한 회사설명을 하며 자기 차를 향해 걸어갔다.
우리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K3의 뒷좌석에는 하드케이스 세 대가 실려 있었다.
“··· 오~”
“디어?”
“처음 들어보네.”
“통기타 브랜드 아니야?”
중고나라 같은 데에서 매물을 뒤지다 보면 진짜 듣도보도 못한 브랜드의 통기타를 발견하곤 한다.
볼때마다 내가 모르는 장작 유토피아라도 있나 싶을 정도다.
‘Dear’ 기타는, 그런 기타들 중에서도 상위 포지션 같은 느낌이었다.
콜트, 데임 급에는 미치지 못한다.
나선생님이라면 적어도 스콰이어 급 회사에서 시그니쳐를 만들어 줘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한국인 중에선 스콰이어 시그니쳐를 제의를 받은 사람이 없지만 서도.
왜 굳이 인지도가 없는 디어 기타를 선택하셨을까?
“원래 저희가 가지고 있던 자체 브랜드를 분화하여 하이엔드 ···”
지루한 표정을 짓는 다섯.
이유림 대리는 땀을 삐질, 흘렸다.
“아, 기타 먼저 보여 드릴게요!”
마침내 하드 케이스가 열렸다.
뭐, 이러쿵저러쿵 해도 나선생님의 시그니쳐다.
내 이름도 들어간다고도 하니까 안 좋게 볼 필요는 없다.
소이 아버지네 회사니까 더더욱 ···
“···?”
가장 앞에 있던 최유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소이를 제외한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소이는 뭔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고,
나는 흡, 숨을 삼켰다.
“이게 ··· 벌써?”
그녀의 손에, 새까맣게 타버린 듯한 통기타가 쥐어졌다.
에보니보다 더욱 검은 지판과, 칠흑 같은 바디.
빤딱빤딱하게 빛나는 스테인리스 헤드머신.
‘자연미’ 라고는 단 1%도 느껴지지 않는 기타였다.
“··· 이게 뭐예요?”
최유진이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당연하다.
지금 시기에는 당연한 반응이다.
이런 기타가 한국에서 입소문을 타는 건 적어도 3년 뒤니까.
“네! 저희 ‘디어’ 기타의 신제품 풀 카본 섬유 통기타입니다!”
이유림 대리는 아주 당당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내 기억 상으론, 지금 디어에서 카본 통기타를 내놓는 건 말이 안 된다.
부랴부랴, 저품질로 3년 뒤에 내놓으니까.
소이 아버지가 악기회사를 인수한 것도, 내가 아는 미래랑은 달랐다.
내가 아는 미래에는, 나선생님의 시그니쳐도 없었다.
뭐 나비 효과 그런 건가?
나선생님은 기타를 건네 받아 스트랩을 매셨다.
디리리리링-!
반딱반딱한 줄에서 아주 또렷하고 정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와 ···”
“우와 ···”
애들이 탄성을 내뱉는다.
현악기는 보통 ‘나무’로 만드는 게 상식이다.
다만, 새로운 시도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소리 진짜 또렷하다 ···”
“뭐예요?! 카본? 진짜 탄소로 만든 거예요?”
“네!”
카본 통기타는 살아남는다.
특유의 소리 덕분에.
무지막지한 내구성 덕분에.
나무 기타에 비해 적은 잔향과, 매우 정확하기 그지없는 음.
레코딩에 최적화된 통기타란 칭송을 받기도 한다.
게다가 관리 편의성도 매우매우매우 뛰어나다.
통기타는 일렉기타에 비해 제대로 관리하기가 매우 어렵다.
말린 나무를 통째로 깎아서 그 위에 두꺼운 피니쉬를 올려버린 일렉기타와는 달리,
통기타는 나무도, 피니쉬도 얇으니까.
여름에는 부풀고, 겨울에는 수축하니까.
장력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브릿지 핀이 터지고 상판이 들린다.
그쯤되면 사실상 사망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우와 ···”
“연성이 있는 카본을 주물에 올려 얇게 만들었습니다! 바디가 얇아 연주하기도 편하고, 딱히 관리를 해주지 않아도 됩니다!”
“··· 관리를 안 해도 돼요?”
“네! 프렛도 스테인레스라 녹도 안 슬고 안 갈려요. 찜질방에서도 연주할 수 있어요!”
“세상에···”
나는 확신했다.
소이아버지는, ‘진심으로’ 일을 벌이실 생각이다.
기타 덕후가 간섭하는, 기타 덕후의 회사.
자본력이 충분한, 덕후의 회사.
이거 성공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미래에 반드시.
시장을 선점해 놓는다면 ··· 성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디이잉~
선생님은 기타를 슥슥, 닦으시고서 간단한 연주를 시작하셨다.
Aerial Boundaries.
나선생님이 치니까 간단하지 않은 곡이 간단하게 들리는 마법에 걸리는 것만 같았다.
좋다.
상당히 좋다.
연주도, 기타의 소리도.
“기타가 좋으니까, 브랜드는 아무래도 상관 없지. 수재한테 줄 거 있으시죠?”
“아, 네!”
이유림 대리는 나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계약서였다.
“저 그 ··· 돈은 조금밖에 못 드리는데 ··· 기타는 드릴 수 있어요.”
“넵 당장 하죠!”
“고, 고민도 안 하세요?”
뭐, 내 시그니쳐가 아니니까.
소유권이나 수익 배분을 요구할 수는 없다.
이 기타를 ‘공짜’로 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우와 ··· 이게 계약서야?”
“김수재 이걸 어케다읽음?”
내가 유명해지면 기타의 값도 오르지 않을까?
팔지는 않을 거지만. 그래도.
나선생님과 콜라보의 시그니쳐라니 ···
감격스럽다.
감격스럽기 그지없다.
나는 곧바로 계약서 한 장을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사인은 아까 받은 걸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이벤트 시그니쳐는 수량 50대 한정으로 전국에 뿌려질 예정이에요!”
“아 ···”
내 사인이 나선생님의 사인이 적힌 기타가
전국의 악기점에서 진열 되다니···
나는 고개를 획 돌렸다.
나약한 눈물샘이 말썽을 부렸기 때문이다.
“우냐?”
“안 울어.”
“우네···”
“야 김수재 운다.”
“안 울어.”
“아뉘러~”
나는 지압으로 눈물샘을 멈춘 후, 이유림 대리로부터 통기타 한 대를 남겨 받았다.
이벤트 시그니쳐 기타는 따로 보내준다고 한다.
“나도 사고 싶다 ···”
“이거 얼마예요?”
“가, 가격도 저렴해요! 149만 원이에요!”
“헤엑!”
가격하고 싶어지는 가격이다.
나는 오늘
300만원을 그냥 벌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네!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시간은 어느새 점심의 끝에 걸쳤다.
“김수재 이따 떡볶이나 사셈.”
“오케이.”
“아싸~”
나와 소이를 제외한 네 명은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우린 뭐, 선생님이 옆에 계시니까 괜찮다.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계시는 나선생님을 보며, 얕은 고뇌에 빠졌다.
한정 수량으로 내 이름이 박힌 기타가 팔려나가는 것.
좋다.
아주 좋다.
다만, 내 이름과 선생님 이름이 ‘같이 적혀 팔린다’ 라는 기획은, 소이 아버지께서 하신 게 아니다.
제안은 나선생님께서 먼저 하셨을 것이다.
“선생님 그런데 ··· 왜 저랑 같이 ···”
“···.”
나는 고민 끝에 질문을 내뱉었다.
“네 이름을 왜 넣었냐고?”
“아, 네···”
“그게 말이야 ···”
나숙호 선생님은 애매하게 웃으셨다.
그리고 아주 약간, 말머리를 흘리셨다.
“이런 거 해보고 싶었거든. 스승과 제자 ··· 이런 거.”
“···.”
“아, 소이야 미안하다. 딱히 차별하는 건 아닌데.”
“아니에요. 저도 이해해요.”
“그래 음 ···”
나선생님의 얼굴에, 10대 소년처럼 장난기 넘치는 표정이 잠시 떠올랐다.
“미래의 유명 기타리스트랑 미리 엮어 놓는 거라고 하자.”
장난스런 얼굴에서 살벌한 농담이 튀어나왔다.
“아, 아니 제가 어떻게 ···”
나는 휘적휘적, 손사레를 쳤다.
“하하, 이놈참. 자신감을 가져. 처음 봤을 때 오른손이 좀 부족하긴 했지만, 3개월 만에 많이 나아졌어. 이제 불편하진 않지?”
“아 네···”
“그래도 숙련은 더 돼야 돼. 통기타 못 치는 기타리스트는 거의 없으니까.”
“··· 네.”
연습은 꾸준히 해야 한다.
기타쟁이는 천재든 둔재든 죽어라 연습을 하니까.
아주 당연한 명제였다.
“처음부터 테크닉 좋은 사람은 없어. 내가 왜 네 앞에서 이런 말을 하냐면 ···”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어지는 말씀에, 입도 꾸욱 다물 수밖에 없었다.
“네 곡이 그려준 그림이 아주 선명했으니까.”
··· 베즈 랭킹의 6위.
잠깐의 푸쉬를 끝에 하위권으로 추락.
첫 앨범 치고는 성공적이다.
물론 중박에는 못 미친다.
다만,
내 자작곡과 연주곡이 가지는 의미는,
지금 이 순간, 배 이상으로 뛰었다.
“선명했으니, 더욱 갈고 닦아야지. 누구나 머릿속에 그림을 그릴수 있도록.”
“··· 열심히 하겠습니다!”
“자, 수업 들어가자.”
나는 고개를 치켜들며 아주 천천히 나선생님의 뒤를 따라갔다.
“··· 흥 할래?”
소이가 빼꼼, 내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괜찮아.”
“치.”
소이는, 아쉽다는 듯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누가 운다고 그래.
* * *
“으 ···”
다운 엔터테인먼트 휴게실의 한구석,
똥머리의 여성이 관자놀이를 누르며 벽에 기댄다.
손에는 언제나 마시던 블랙커피가 들려 있었다.
휘핑크림이 잔뜩 올라간 달달한 카페모카 ··· 따위는 꿈도 꾸지 못하는 저세상의 물건이었다.
아이돌 만큼은 아니더라도, 체중 관리가 필요하니까.
하지만 ···
아이돌이 ···
저렇게 먹어도 되는 걸까?
“맛있다아아!”
테이블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지극히 마음이 심란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부럽다 ···”
“부럽다아아아!”
한 명의 행복 섞인 외침과, 다섯 명의 곡소리.
아니, 자신까지 여섯.
설하는 테블에 놓인 허니브레드를 노려보며 쓰디쓴 커피를 한 번에 들이켰다.
“···”
여섯의 시선이, 설하의 안면에 날아와 꽂혔다.
“어, 언니 한입 드실래요?”
“아니야 밥을 많이 먹어서··· 배 터지려고 그래”
“아하···!”
설하는 분위기가 냉랭해지지 않도록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
은근슬쩍, 핸드폰에 베즈의 하위권 랭킹을 띄워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눈치도 좋고 말도 많은 송아린은 화제를 덥썩 물었다.
“아, 언니 그거 들어 보셨어요?”
“수재씨 곡?”
“네! 저 그거 듣다가 진짜 술 마신 줄 알았잖아요!”
“아~ 맞아맞아.”
“ 앨범 다 사버렸다니까요! 평소엔 기타 곡 별로 안 듣는데 ···”
“언니 거도?”
“아, 아뇨 많이 들었어요!”
설하는 순수하기 그지없는 10대 소녀들을 놀려먹었다.
참 재밌었다.
“빨기좌 ··· 다음에는 뭐 할까?”
“이벤트 한다던데?”
“이벤트?”
“이번에 기타 새로 샀다잖아”
“산게 아니라 협찬 받은 거라던데?”
“헤엑! 협찬도 받아?”
여섯명의 조잘거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깔아두고, 설하는 핸드폰을 조작했다.
“그게 어디 나와 있어?”
“인스타요!”
“인스타?”
설하는 재빨리 김수재의 인스타를 띄웠다.
팔로워가 또 늘어 있었다.
그건 그렇고 ···
“되게 예쁘다 ···”
그녀의 눈에, 처음 보는 형태의 통기타가 들어왔다.
매혹적인 레드 색상과 ‘한정판’ 이라는 문구.
갖고 싶다.
갖고 싶지만 ··· 그 아래에···
무언가.
더욱 눈길을 끄는 문구가 있었다.
“빨기좌 사인연주회 합니··· 다?”
인스타에 적힌 위치는,
자신의 사인회장의 바로 ‘앞’ 건물이었다.
“··· 여기 사우나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