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98
폭한과 극열의 사인회 (1)
시그니쳐 발매 기획은 성공적이었다.
‘나숙호’라는 이름은 알게 모르게 널리 퍼져 있으니까.
‘좋은 기타 곡’을 검색하면, 첫 페이지에 나오는 곡이 나숙호의 것이니까.
기술이 집약된 최신식 통기타와, 노장의 콜라보.
팔렸다.
많이 팔렸다.
‘시그니쳐’ 기타뿐만 아니라, 사인이 적히지 않은 일반 모델까지도.
– 냉기, 습기, 열기,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기타!
– 넥이 휘지 않는 기타!
– F코드를 잡다가 방치해 두어도 한 달 뒤에 그대로 칠 수 있는 기타!
이런 기타는, 귀찮음의 대가인 당신의 손에 들려 있어야 합니다.
“···.”
광고 이미지 카드에 온갖 미사여구란 미사여구는 다 붙었다.
초기 수량이 적지 않았음에도, 인터넷 매장, 오프라인 매장 모두 재고가 남아나질 않았다.
기타계의 초신성의 사인과, 그의 스승인 나숙호의 사인이 같이 들어간 ‘일부’ 기타는 특히 더 했다.
사람들은 희소성에 이끌려 아주 자연스럽게 열광했다.
– 왕복 15시간으로 빨기좌 시그네쳐 겟함 ㅋㅋ
– 뭐가 다른 거임?
ㄴ 빨기좌 사인들어감.
ㄴ 개꿀이네 ㄹㅇ
– 빨기좌 사인이 ㄹㅇ 레어템 아니냐 누구 받은 사람 있기는 함?
ㄴ없을듯?
– 존나 당연한 건데 급 소름 돋음. 지금까지 빨기좌한테 사인받았다는 사람 한 번도 본 적 없음
ㄴ공포 ㄷㄷㄷㄷ
– 빨기좌나숙호 시그니쳐 팝니다. 한번 쳐봤고요 300만입니다.
ㄴ 되팔이 죽어
ㄴ 뒤져라 걍
ㄴ 삽니다 666-6660-0324
ㄴ 되팔이라도 지금 사는 게 나을 거 같은데 50대 한정이라···
“허어 ···”
레인악기뮤직 본사 접객실의 한구석.
에이트라는 조용히 태블릿을 만지며 유튜브 커뮤니티란에 달린 댓글들을 확인했다.
시그니쳐를 발매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며칠 전이였지만, 이 정도까지 반응이 뜨거우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대기업’을 모체로 둔 악기 회사의 전력.
‘빨기좌’와 나숙호의 이름을 내세운 마케팅.
다르다.
확실히 다르다.
역시, 대기업은 다르다.
에이트라는 딱히 대기업을 찬양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저돌적인 행보는 자본력이 충분히 받쳐주는 상태에서만 가능했다.
빨기좌와 나숙호의 사인이 동시에 들어간 기타가 149만 원.
149만 원 곱하기 50은 7450만 원.
직접적인 이득을 취하고자 한정판 모델을 만든 건 아닐 것이다.
이건, 화제를 모으기 위해서이다.
마케팅을 위해서이다.
주인이 바뀐 회사의 브랜드 리메이킹.
에이트라는 연신 감탄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대단했다.
“아 ··· 일만 아니었으면 나도 ···”
검은색 바디에 빨간 줄이 하나 들어간 심플한 디자인이 머릿속에 계속 아른거린다.
에이트라는 태블릿에 고개를 처박으며 입맛을 다셨다.
일만 아니었으면 사러 가는 건데.
돈은 충분한데.
괜히 중고나라를 뒤져본다.
‘되팔이’매물들은 이미 동이 나버린 상태였다.
“하아.”
드르륵-
기다림 끝에 접객실의 문이 열렸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무테안경의 남자와, 조금 얼떨떨해 보이는 여자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마케팅팀장 김은우입니다. 이쪽은 이유림 대리이고요.”
“아~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유튜버가 면식 없는 회사에 찾아가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광고 때문이다.
유튜버는 광고로 먹고사니까.
사람들이 광고를 봐주기에 살아남고,
회사들이 광고를 의뢰해 주기에 살아남는다.
“저희가 이번에 ···”
에이트라는 여느 때처럼 대화와 협상에 임했다.
익숙하기 그지없는 패턴이리라 생각했지만, 오늘만큼은 ···
뭔가 달랐다.
“기본적으론, ‘빨기좌’님의 연주가 들어가야 하며, 내구성을 입증시킬 수 있을만한 파트를 구성해 주시십시오. 이후 평가는 자유롭게 하셔도 됩니다.”
“··· 자유롭게요?”
“욕을 하셔도 되고, 단점을 꼬집으셔도 됩니다.”
“···.”
에이트라는 눈을 크게 떴다.
자유롭게라 ···
사실 많이들 하는 소리다.
하지만, 진심으로 ‘자유로운’ 평가를 허용하는 회사는 없었다.
다 돈이니까.
돈을 허투루 쓸 수는 없으니까.
안 하는 것만 못하느니, 안 하는 게 나으니까.
“··· 정말 ‘자유롭게’ 평가해도 되는 건지···”
“자유롭게 평가해 주십시오, 아, 그리고 ···”
스윽-
a4용지 한 장을 내미는 마케팅 팀장.
에이트라는··· 연달아 펀치를 얻어맞은 듯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무슨 ···”
“저희의 진심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
“약 3개월 정도 만에 김수재 군의 채널 지분이 상당히 높아졌지 않습니까?
“아··· 네.”
“두 사람 모두에게 득이 될 만한 일입니다. 이건 광고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을 시에 한한 추가 권유이니, 이해해주십시오.”
에이트라는 넘겨받은 용지를 꽉 쥐었다.
회사의 우두머리가 바뀌는 것만으로.
이렇게 되다니···
리더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하는 날이었다.
***
원재선 독주회라던가 시그니쳐 발매라던가 앨범 발표라던가.
굵직굵직한 일들이 하나둘씩 지나갔다.
원래 일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올 때는 진짜 개빡세게 오는데 한가할 때는 엄청 한가하다.
나눠서 오질 않는다.
얼마 전까지 내 상태가 그랬다.
이게 우주의 균형인가 뭔가 그런 건가?
내가 편히 쉬고 만큼, 누군가는 빡세게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 우주의 균형이 맞지.
암.
“···”
평화롭기 그지없게 이주일이 흘렀다.
학교에서 수업 듣고, 학원에서 연습하고.
유튜브랑 인스타 염탐 좀 하고.
에이트라의 조언대로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사진 업로드 좀 해주고.
참 큰일이다.
이렇게 사진 찍는 거 말이야.
원채 사진을 안 찍던 몸이라 더더욱 적응이 안 된다.
“흐으으으읍.”
나는 카메라 각도를 이리저리 돌리며 입을 앙 다물었다.
윤수빈은 이렇게 하던데.
잘 나온 사진인지 아닌지를 모르겠네.
“진짜 개 씹 극혐이네.”
“리얼.”
6월 24일 금요일 오후.
우리는, 찜질방에 왔다.
오랜만에 축구 좀 하다가 땀 흘려서 목욕탕 가려다 그럴 바엔 찜질방에 가자는 ···
평범하기 그지없는 의식의 흐름으로 왔다.
시원하게 이 닦고 머리도 감고 몸도 담그고.
전기세 걱정 없이 신나게 드라이기 틀고.
그리고 목욕 후의 ··· 셀카.
“··· 스읍 ··· 조명이 안 좋나?”
“얼굴 개 꼬집고 싶네.”
“거울을 안 닦아서 그런가?”
“코털 한 가닥 나옴.”
“야 나 좀 찍어주셈. 잘생기게.”
서로가 한 마디씩 말을 내뱉고 있지만, 대화가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른바 집단적 독백이라는 것이다.
서로에게 닿지 않는 말과 마음.
나는 내 옆에서 쫑알대는 도현이와 혁오를 이 악물고 무시하며, 셀카를 연신 찍어댔다.
한장은 건진 거 같긴 한데 ···
“김수재 인스타 몇 명임?”
“오 1k 됐는데?.”
“그게 말이 됨?”
“말이 안 되네.”
“인정.”
나도 동의한다.
볼 것도 없는 내 인스타를 왜 팔로우 하는 거지?
연주를 올리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의무적으로 셀카만 몇 장 찍어 올리는 곳인데.
나는 인스타에 셀카를 올렸다.
“와 씹 ···!”
새로고침을 하던 혁오가 비명을 질렀다.
옆에 있던 도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인스타는 왜 싫어요가 없냐.”
“너희 진짜 개새끼들이네.”
“키키키키키킥.”
둘의 격렬한 반응과는 다르게,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은 나름 꾸준히 있다.
좋아요를 누르는 ··· ‘여자 사람’도 있다!
감격스럽기 그지없다.
우리는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바나나 우유를 한 손에 든 채 찜질방을 걸었다.
금요일 오후임에도,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이유야 뭐 이 근처에 최신식 시설이 새로 생겨서다.
사실 우리도 새로 생긴 찜질방 가려다가 사람이 많아서 도망쳐 왔다.
뭔가 그런 느낌이 있다.
목욕탕에 사람이 꽉 차 있으면 뭔가 몸 담그기가 싫어지지 않는가.
둥둥 떠다니는 땟국물을 보고 있자면 밥맛이 뚝 떨어진다.
그리고 ···
“우리 아그들 계란 묵으라.”
“감사합니다!”
기가막힌 우연의 일치로,
이곳은 ‘지인’의 지인 운영하는 곳이란 걸 알게 되었다.
에이트라의 고모라고 하던가.
영상 잘 봤다고 얼마나 반갑게 대해 주시던지.
원래는 목욕만 하려 했지만, 저녁까지 여기서 간단히 먹기로 했다.
우리는 베개 하나씩을 주운 다음, tv 앞에 멍하니 누웠다.
“아 ···”
“아아아아아아.”
“으어어어어어.”
“시발.”
“왜 욕해.”
“담주 시험임.”
“···.”
정적이 몰아닥쳤다.
2주간의 평화.
조금씩 조금씩 교실에 들이닥치던 불길한 기운.
또다시, 시험기간이 찾아왔다.
“공부 했냐?”
“아니.”
“기타는?”
“쳤지.”
“으히히히히흫.”
나는 실없이 웃으며 계란을 깠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 몸이 근질근질하다.
공부는 내다 버렸으니까 뭔가를 좀 하긴 해야 하는데.
일도 있어야 하는 거지 없다.
이상하리만치 없다.
나는 핸드폰을 뒤적였다.
시그니쳐 기타가 발매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고.
그리고 ···
“김수재 시그니쳐 개멋있네. 빨간 줄 들어가 있음.”
“이거 원래 있던 디자인인데?”
“아 그렇네.”
“그럼 뭐가 다른 거임?”
“사인.”
“···.”
내 ‘사인’이 의외로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렸다.
나는 커뮤니티를 둘러보다가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 했다.
운좋게 내 이름이 들어간 나선생님의 시그니쳐를 구입한 사람들은 모두 기타 헤드 뒷면을 찍어 올리기 바빠 보였다.
“이야, 사인 멋있네.”
“그러게. 이건 인정한다.”
“··· 뭔가 이상해.”
“뭐가?”
“뭔가 ··· 뭔가···”
“몬가 일어나고 있음?”
분위기가 이상하다.
내 사인이 들어간 기타가 희귀템 취급받는 건 이해를 한다.
50대밖에 생산을 안 했으니까.
다만,
“왜 내 ‘사인’까지 희귀템 취급을 받는 거냐?”
“···.”
“··· 뭐?”
해준적이 얼마 없긴 하지만, 난 사인에 인색한 사람은 아니다.
그냥 사람들이 사인해달라고 안 해서 ‘못’ 해준 것뿐이다.
그런데 정작 인터넷에서는 은근~하게 내가 사인을 안 해준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 빨기좌 사인이 ㄹㅇ 레어템임. 존나 복잡해서 따라 하지도 못함.
– 와 기타모양 저거 어떻게 그렸냐 ㅋㅋㅋㅋㅋ 현대미술 급이네
– 공연을 따로 안 해서 그런 거 같은데. 무대에는 자주 서긴 하는데 ···
– 빨기좌 공연 언제함.
– 언제함?
– 제발 홍대 클럽 사장들 제발
– 제발 빨기좌 세우라고!!!!!
···
분위기가 어째 이상했다.
“와서 좀 받아가지 제발”
“나 사인 좀.”
“왜.”
“중고나라에 팔게.”
“···.”
우리는 한마음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만히 있으니까 등이 배겼기 때문이다.
바닥 진짜 존나딱딱하네.
고온으로 좀 지져줘야 고통이 가실 것 같았다.
우리는 섭씨 70도를 자랑하는 불가마를 향해 뚜벅뚜벅 걸었다.
걷던 도중, 익숙하기 그지없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 어?”
“어?”
에이트라다.
“어! 수재씨!”
“에이트라님!”
우리는 이산가족 상봉한 듯이 격하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쉬려 좀 들렸습니다!”
“이야~ 보는 눈이 있으시네! 여기 물이 거의 1급수거든요.”
이런 우연이 생길 줄이야.
“고모~! 좀 더 챙겨주시지 그러셨어요!”
“계란 줬는데?”
“순대도 줘요.”
“아, 지금 불가마 들어갈 거라 ···”
“그럼 나온 다음에 먹죠!”
에이트라는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불가마에 들어갔다.
기쁜 일이라도 있는 건가?
도현이와 혁오는 이야기를 엿들을 생각에 흥미진진한 표정을 띄웠다.
덮쳐오는 열기.
의외로 높지 않은 습도.
불가마는 생각보다는 뜨겁지 않았다.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근황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가한 나와는 달리, 에이트라는 촬영하러 돌아다니느라 바빴던 모양이다.
하긴 뭐 이 사람이 안 바쁠 때가 있을까.
이야기가 무르익어가고, 슬슬 얼음방이 마려워질 즈음,
에이트라는 툭, 떡밥을 던졌다.
“광고 잡혔습니다!”
“오오오 ! 광고!”
대형 떡밥이었다.
“대박 광고입니다!”
“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
우리는 열광했다.
광고 싫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
돈 준다는데.
나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내용이 아주 간단했다.
레인악기뮤직에서 광고 모델로 나와 에이트라를 선정한 모양이다.
이거 진짜 개이득인···
“수재씨는 연주만 해주세요! 아무거나!”
“옙!”
통기타 광고니까 역시 통기타 곡을 쳐야 하겠지?
곡 몇 개 찍은 다음에 괜찮은 걸 추리면 ···
“내구성 테스트는 제가 할 테니 걱정 마시고요.”
“내구성 테스트요?”
“네! 그것까지 직접 하시려면 부담스러우실 테니까··· 그냥 오븐에 넣는 거 보여주면 될 거 같아요”
“오븐 ···”
나는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내구성 테스트라 ···
좀 특이한 항목이긴 하다.
뭐, 물에 담가도 불로 지져도 어느 정도 버티는 기타니까.
내구성이 특출난 기타니까.
저런 요구를 하는 게 이해가 간다.
나도 기타를 받고 나서 별 짓을 다 한 참이다.
저번주 토요일에 비가 왔었는데, 호기심을 못 참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비 맞으며 친 적도 있다.
동생이랑 동생 친구들이랑 만나서 재회귀가 마려워지긴 했지만.
멀쩡하더라.
성능은 확실하다.
투욱.
땀이 계속 허벅지로 떨어졌다.
덥다.
아주 덥다.
슬슬 일어나야 겠···
···
순간,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 에이트라님.”
“네?”
“여기 어떠세요?”
“··· 네?”
나는 붉은 조명이 내리쬐는 불가마의 내부를 스윽 둘러보았다.
마치, 지옥의 대장간을 연상시키는 듯한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