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interpreter RAW novel - Chapter (163)
덕분에 파벨은 이미 편안해진 기분으로 인터뷰에 임할 준비가 되었으나.
곧바로 뮤지컬 얘기가 나오리라 예상한 것과는 달리, 찬은 그의 고향 이야기로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J’ai entendu que vous étiez né en Besançon. C’est une ville de l’horloge et de la fromagerie.(파벨 당신은 브장송 출신이라고 들었는데요. 브장송은 시계와 치즈의 도시로 유명하잖습니까.)」
그리고 브장송에서 태어나 대학 시절까지 보낸 파벨에게 이는 안성맞춤인 접근법이었다.
「맞습니다, 잘 아시네요. 한국의 인터뷰어에게 ‘브장송’ 얘기를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걸요.」
반가운 마음으로 대꾸하자 찬이 싱긋 웃어 보였다.
「제가 프랑스에서 지낼 때 브장송에 견학 갔던 게 기억에 오래 남았거든요. 거기서 사온 캉쿠와요트가 얼마나 맛있던지, 빵에 발라 먹으니 입 안에서 살살 녹던 게···.」
캉쿠와요트.
브장송을 비롯한 프랑슈콩테 지방의 특산품이자, 어릴 적부터 수없이 먹어온 치즈의 이름에 파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와, 캉쿠와요트를 알고 계시다니. 이거 너무 반갑네요, 하하.」
그렇게 그는 초면의 한국인과 고향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다.
이미 뿌끼 피규어로 활짝 열린 마음이 제멋대로 말랑말랑해진 그때, 박찬영이 쐐기를 박았다.
「제가 알아본 바 원래는 스포츠를 전공하셨다고 들었는데요. 그것도 태권도를 말이죠.」
이제 파벨 브뤼스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통역사 겸 리포터라는 ‘찬’은 지금껏 만나본 그 어떠한 인터뷰어보다도 자신에 관해 가장 많은 조사를 했다는 것을.
「아, 네. 어릴 때부터 했고, 지금은 검은띠에 유단자입니다. 당시만 해도 제가 음악인의 길을 걷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죠.」
그렇게 파벨 본인에 관한 이야기를 한동안 나눈 후에야 찬영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파벨 브뤼스 본인의 음악적 커리어로 시작해 화제는 자연스럽게 뮤지컬로 옮겨갔고.
이 작품이 얼마나 대단한 성과를 세웠는지, 프랑스 뮤지컬 역사에 어떠한 족적을 남겼는지 간략하게 설명한 뒤.
몇 가지 진지한 질문을 던졌다.
「뮤지컬 와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의 차이점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는 대사 없이 노래로만 진행하는, 일명 ‘성스루 뮤지컬’에 속하는 작품인데요. 이 성스루 뮤지컬만의 매력을 어떻게 꼽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이 작품에서 본인이 맡은 캐릭터인 음유시인 그랭구아르가 어떤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하시는지···.」
파벨은 차분하게 대답하며 생각했다.
···사람들이 곧잘 간과하는 점이 있는데, 인터뷰에서 흔히 얘기하는 ‘좋은 대답’이 나오려면 일단 ‘좋은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지금 나온 질문들이야말로 깊은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는 좋은 질문들이지.’
그렇게 시작된 인터뷰는 약 30분 남짓 진행되었다.
다른 매체와 했던 것에 비하면 꽤 긴 시간이었지만, 파벨은 지쳐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박찬영과의 대화에 푹 빠져들었다.
‘친구를 만나 얘기하는 느낌이랄까.’
그것도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고자 하는, 진심이 느껴지는 대화.
형식적인 인터뷰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만남’ 같다는 생각에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마지막으로 연예TV 매거진 시청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느새 인터뷰가 막바지에 이른 터.
마지막 질문에 대답하고 나자, 이 시간이 끝났다는 것 자체가 아쉽게 느껴졌고.
카메라가 꺼지기 전, 파벨은 저도 모르게 찬을 향해 그 속마음을 드러내 보였다.
「찬.」
「네?」
「오늘 인터뷰 정말 좋았습니다.」
「···.」
찬은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느껴지셨다면 다행인걸요.」
「진심입니다. 사실 제가 좀 피곤한 상태로 인터뷰에 임한지라 집중할 수 있을지 어떨지 걱정이 됐는데···.」
파벨은 미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당신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는 피로조차 날아가는 기분이었어요. 간만에 고향 친구를 만나 회포를 푸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하하.」
그렇게 말하고 나니 문득 머쓱해졌지만, 박찬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고.
「저도 사실은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전에 힘들 때 의 노래를 들으며 많은 위안을 얻었던 터라.」
「아···.」
「그런 의미에서.」
···이내 CD와 사인펜을 건네온 덕에, 그런 머쓱함은 사라지고 말았다.
「사인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요, 얼마든지.」
파벨은 몹시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CD 자켓에 사인을 했다.
그의 머릿속에 한국의 인상이 꽤 근사하게 남을 것 같았다.
마침내 촬영이 완전히 끝난 뒤.
파벨은 자신을 기다리는 매니저에게 잠시만, 이라고 손짓을 해 보이고는 찬에게 다가갔다.
「혹시 페북그램 하나요?」
「그럼요.」
선팔을 하고 그의 계정을 클릭한 순간, 파벨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팔로워 수가··· 엄청나잖아?’
박찬영 본인은 모르는 사이에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숫자를 보며 파벨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팔로워 수가 나보다 많네요. 근데···.」
팔로워 목록에 프랑스 셀러브리티의 이름이 여럿 있는 것에 뒤늦게 깜짝 놀랐다.
조르디에, 레아 데주라니.
「···어? 레아 데주와도 친구군요!」
「아, 그게.」
멋쩍어하는 찬에게, 파벨 브뤼스는 두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당신, 한국의 셀러브리티였군요!」
「···!」
*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밤 시간에 방영될 의 본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숙사 방에서 노트북으로 실시간 TV 스트리밍 사이트에 접속한 채 대기하던 중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온 터였다.
-찬영이 니 이름으로 검색하면 기사도 잔뜩 나오는 거 알고 있었니? 우리 단톡방 멤버들이 알아서 링크를 보내주는데 이 엄마는···.
···되게 신나셨네.
나는 민망함을 애써 감추며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엄마는 방송 타는 게 처음도 아닌데 뭘 그렇게···.”
-얘는, 이게 EBC 방송 때랑 같니? 이번엔 니가 직접 리포터로 나온다며! 그리고···.
수아가 어린이집에서 우리 삼촌이 TV에 나온다고 그렇게 자랑을 하고 다녔다는 것.
‘수아 얘도 참.’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며 알겠다 하고는 전화를 끊자.
곧바로 본방이 시작되었다.
– 안녕하세요, 연예 TV 매거진의 성도훈입니다! 이제 봄꽃이 지고 어느덧 초여름의 느낌이 물씬 풍기기 시작했는데요···.
.
케이넷 본부의 최장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연예계의 다양한 최신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하는 연예 정보 프로그램.
그리고 윤형준 피디는 이 을 담당하게 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했다.
‘그··· 아무래도 부담감이 크다고 할까요.’
워낙 입지가 탄탄한 프로이다 보니 무언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드는 게 더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래서 사실 이번에 박 선생님이 진행해주신 인터뷰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그 말을 들을 때는 꽤 부담이 되었지만.
그래도 지난번 인터뷰 당시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제법 나쁘지 않은 그림이 나올 것 같았다.
– 네, 그럼 두 번째 소식으로 넘어가죠. 연예계의 대표 미녀라 불리는 윤선아 배우님의 득남 소식인데요···.
그 같은 이슈가 몇 개 더 소개된 뒤, 마침내 진행자의 입에서 ‘노트르담 드 파리’라는 말이 나왔다.
– ···그리고 시청자 분들이 가장 기다리셨을 의 메인 배우, 파벨 브뤼스의 인터뷰를 만나보시겠습니다.
그 같은 멘트를 끝으로 화면이 전환되더니.
고급스러운 인터뷰 룸에 앉은 파벨 브뤼스와 나의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
‘되게 기분이 이상하네.’
EBC 에르메스 다큐멘터리 때는 내 얼굴이 메인으로 잡히는 일이 없어서 잘 느끼지 못했는데.
이렇게 화면에 떡하니 나오는 것을 보니 뭐랄까···.
‘그것도 외국의 미남 배우와 나란히 앉아 있어서 그런가.’
안 그래도 액면가가 있어 보이는 얼굴이 좀 더 험상궂어 보이는 느낌이었다.
“음···.”
레아는 지금 이대로가 딱 좋다고 했지만, 역시 외모 관리를 좀 해야 하는 걸까··· 같은 생각을 하던 그때.
화면 속의 내가 멘트를 이어나갔다.
-Vous êtes célèbre en étranger pour Gringoire de , mais en fait, en France, vous êtes mieux connu comme le chanteur et le leader du groupe de rock «Mahatma»(파벨 당신은 외국에서는 의 그랭구아르로 유명하지만, 사실 프랑스에서는 ‘마하트마’의 보컬이자 프론트맨으로 더 잘 알려져 있죠).
밴드 활동 이후 솔로로 발매한 앨범이 25만 부가 팔렸고, 그해 프랑스의 그래미상이라 불리는 ‘빅투아르드라뮤지크’에서 최고의 앨범상을 받았으며···.
-그다음 해는 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뮤지컬 역사상 첫해에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고, 전 세계 공연장을 휩쓸게 되었죠. 그리고 이제는 한국에서도 오리지널 공연을 만나보게 되었는데요···.
나는 탄산음료를 홀짝이며 화면 속의 내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래도 제법 전문적인 느낌이 나는 걸 보면, 준비한 보람이 없지는 않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 어느 때보다도 준비에 더 공을 들였다.
일반적인 통역이야 내가 늘 해오던 것이었지만, 리포터로서 누군가를 본격적으로 인터뷰하는 일은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이번에 인터뷰 준비를 하며 느낀 게 있다면.
생각보다 많은 기자들이 해외에서 온 인터뷰 상대에게 ‘한국에 대한 지식 테스트’를 한다는 것이다.
‘할 줄 아는 한국어가 뭐 있냐고 꼭 물어보던데.’
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하고자 던지는 질문이겠지만, 비슷한 질문을 수없이 받을 상대방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울 수도 있을 터다.
그래서 파벨에게는 이미 많이 받아봤을 질문 대신, ‘그 자신’에 관한 질문을 던져보려고 했다.
‘선물도 마찬가지 차원이지.’
인터넷에서 ‘외국인 선물’로 검색하면 나오는 인사동에서 팔 법한 나무 젓가락이나, 자개 명함 케이스가 아니라.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찾아보고자 했다.
왜, 우리도 누가 여행 기념품 같은 걸 사다주면 잘 안 쓰게 되지 않는가.
그러면 그냥 잡동사니가 되어버리고 마는데, 그보단 좀 더 쓸모 있는 뭔가를 주고 싶었달까.
‘뿌끼 인형을 받고 좋아하는 얼굴을 보니 잘 골랐다 싶었지.’
그때.
화면 속의 내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락뮤지션이었던 당신이 에서 그랭구아르 역을 맡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파벨이 이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원래 뮤지컬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학생 시절, 위고의 원작 소설을 굉장히 충격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남아 있었거든요.
그랭구아르는 에스메랄다에게 이런 식으로 자신을 소개하죠.
그는 목을 가볍게 가다듬고는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 J’ai voulu me faire soldat, mais je n’étais pas assez courageux, alors je me suis fait moine mais je n’étais pas assez dévot. J’aurais pu devenir maître d’école, mais je ne savais pas lire (나는 군인이 되고 싶었습니다만 그리 용감하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수도사가 되었지만 그다지 신실하지도 못하더군요. 학교 선생님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글을 읽을 줄을 몰랐습니다.)
그 짧은 순간, 파벨은 이미 ‘그랭구아르’에 빙의한 느낌이었다.
-Bref, il me manquait toujours quelque chose. Et puisque je n’étais bon à rien je me suis fait poète.(뭘 하든 어중간하더군요. 내가 그 무엇에도 대단히 능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은 뒤 시인이 되었습니다.)
기나긴 대사를 읊은 후의 그 약간의 정적을, 카메라는 고스란히 잡아냈다.
배우의 얼굴에 떠오른 복잡미묘한 감정까지도.
-한창 진로를 고민하던 시절,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던 그 그랭구아르와 저 자신을 겹쳐보았다고 할까요. ···그 배역이 제게 들어왔을 때, 이건 운명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예감이 저를 성공으로 이끌어주었죠.
담담하게 말하는 화면 속의 파벨을 나는 진지하게 지켜보았다.
···뭘 하든 어중간한 1400년대의 음유시인에 자신을 겹쳐보던 어느 뮤지션은, 이제 프랑스를 대표하는 뮤지컬 배우로 자리매김한 터였다.
그렇게, 파벨 브뤼스와의 인터뷰 분량은 금세 끝나버렸다.
실제로는 30분 가까이 촬영했지만, 10분이 채 되지 않는 길이로 편집된 터였다.
– 그럼 이제 다음 소식으로 넘어가···.
그럼에도 여전히 노트북 화면을 닫지 못한 채 감상에 젖어 있던 그때.
송하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ㅋㅋㅋㅋ 촨용아 이거 봤니?]그 아래 첨부된 링크를 무심코 클릭한 순간,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어?”
그것은 파벨 브뤼스 본인이 페북그램에 남긴 메시지였다.
[Alice, je vais t’apporter un cadeau. Juste attends deux mois(알리스, 아빠가 선물 갖고 갈게. 두 달만 기다리렴.)]– 최고의 통역사 찬이 준 선물.
#뿌끼 한정판#한국 민속촌 콜라보레이션#또찬영#최고의 통역사#박찬영#한국의 셀러브리티
···그것은 뿌끼와 얼굴을 맞댄 채 V자를 날리고 있는 파벨의 모습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