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interpreter RAW novel - Chapter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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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몰입했던 나머지, 얼떨떨한 채로 현실로 돌아온 것은 박찬영 혼자만이 아니었다.
팀의 방한을 책임지는 CVC프로덕션의 한기준 실장도 이 자리에 있었는데.
‘···압도적이네.’
시사회장에서 작품을 관람하는 것이 일상인 그에게도 이 은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했다.
덕분에 GV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더 커진 채로 무대를 돌아보자, 이미 기다란 테이블 뒤편에 자리를 잡은 감독과 배우진이 눈에 들어왔다.
– 영화 의 클로드 마리니 감독님, 레아 데주 배우님, 엘리오 마레 배우님 정말 반갑습니다. 영화 정말 인상 깊게 봤는데요, GV에 참여한 소감이 어떠신지요.
사회자의 멘트를 곧바로 찬영이 통역하자, 마리니 감독을 시작으로 한 명씩 자신의 소감을 말했다.
한국에는 처음 와봤는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든가.
한국에서 영화의 저력이 대단하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든가.
한국 팬들의 열렬한 응원에 많은 에너지를 받고 있다든가···.
덕분에 시사회장 분위기가 한층 더 부드러워진 가운데, 본격적인 질문이 시작되었다.
– 개인적으로 로마사를 좋아하는 편이라 굉장히 즐겁게 봤는데요, 옥타비아누스의 누이 옥타비아를 이렇게 조명한 작품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어떤 계기로 옥타비아의 이야기를 다루기로 마음 먹으셨나요?
찬영의 통역을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마리니 감독은 이내 마이크를 잡고 답변을 시작했다.
「Eh bien, j’aime en fait les œuvres du maître des romans historiques, Colleen McCullough.(음, 사실 제가 역사소설의 대가라 불리는 콜린 맥컬로의 작품을 좋아하는데요.)」
그중 시리즈를 굉장히 인상 깊게 읽었고, 그 가운데 옥타비아라는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이 이야기를 꼭 스크린에 담아내겠다는 일념하에 시나리오를 집필했지만, 각색에 늘 한계를 느꼈던 터였습니다. 그런데···.」
감독은 옆자리의 엘리오 마레를 돌아보았다.
그와 어느 모임에서 만나 우연히 이 옥타비아에 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엘리오가 로마 역사 매니아였더군요. 그래서 함께 시나리오를 재정비해보자고 의기투합하게 되었죠.」
그 말을 엘리오 마레가 유머러스하게 받았다.
「그게 제게는 일생일대의 기회였고요. 어릴 때 로마 오타쿠였던 게 인생에 이렇게 도움이 될 줄 몰랐지만요, 하하.」
···역시 그랬군.
영화계에 빠삭한 한기준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오 마레, 지금은 레아 데주보다 인지도가 없으며 빼어난 마스크만으로 주목받는 인물이지만.
‘원래는 배우가 아니라 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지.’
그의 데뷔작이 독립영화판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아 여러 제작사에서 러브콜을 받았으며.
결국 이번 영화에서는 시나리오를 감독과 함께 공동 집필한 것은 물론, 주연 옥타비아누스로 출연하기에 이른 터였다.
‘앞으로 상승세가 기대되는걸.’
다음으로 감독은 레아 데주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기 있는 레아 배우는, 뭐라고 해야 할까요, 제가 생각한 옥타비아 그 자체였습니다.」
그 전만 해도 머릿속에 희미하게 존재하던 옥타비아라는 캐릭터가, 그녀를 만난 후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게 되었다는 것.
「결국 이 은 두 명의 주연배우가 아니었더라면 아예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작품이 아니었나 싶군요.」
폐기하기로 했던 시나리오를 심폐소생하여 태어난 게 이 이라는 말에, 통역을 이어나가던 찬영은 내심 납득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회귀 전에는 그런 제목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거구나, 하며.
사회자가 웃으며 감독의 말을 받았다.
– 그렇군요. 이 훌륭한 작품이 탄생하지 않았을 뻔했다 생각하니 오싹해지는걸요?
그렇게 사회자와 감독 및 배우진과의 질의응답이 한두 개 더 오간 뒤.
–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관객분들의 질문을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객석 여기저기에서 손이 마구 올라왔다.
지목받아 자리에서 일어난 관객들의 질문들은 하나같이 그 내공이 상당했다.
‘오히려 기자회견 때보다 더 날카로운 질문들이 많은 느낌인걸.’
그중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을 하나 꼽아보자면, 자신을 역사전공자라 소개한 어느 관객의 의견이었다.
“감독님이 그려내신 옥타비아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분명합니다만, 실제로 학계에서 바라보는 정사 속의 옥타비아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역사와의 간극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라는 질문에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날카로운 지적이군요. 보신 대로, 제가 그려낸 옥타비아는 정사보다는 야사에 가까운 버전이 맞습니다. 다만, 애초에 이 은 정사 속의 옥타비아를 극사실주의로 그려내고자 한 작품이 아닙니다.」
1800년대에 출간된 가 이후 수없이 많은 버전의 영화로 만들어졌고, 만들어진 시대에 따라 새로운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는 것처럼.
역사 속 헨리 5세와 루이 14세가 수많은 각색 속에서 매번 새로운 인물로 재탄생하는 것처럼.
「저는 로마사를 좀 더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보고 싶었습니다. 거기서 생겨난 것이 바로, 옥타비아누스의 누이가 사실은 정치적 야망을 감춘 여인이었다면- 이라는 의문이었어요.」
그렇게, 설명이 좀 더 이어진 후에야 감독의 답변이 끝났다.
그 후로도 질문은 끊이지 않았다.
레아 데주와 엘리오 마레 배우들 개인에게 던지는 경우도 많았고, 이번 영화뿐 아니라 감독의 전작들에 대한 질문도 쏟아졌는데.
그럼에도 망설이는 기색 없이 통역하는 찬영을 보며, 한기준 실장은 혀를 내둘렀다.
‘대단한걸.’
문득, 작년에 레아 데주가 내한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VIP 파티에서도 찬영은 여유롭게 통역하는 모습을 선보였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거의 괴물 같다고 해야 할까.’
조금의 빈틈도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숨쉬듯 자연스러운 통역.
그래서 듣는 이에게는 오히려 통역이라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로 편안하게 다가온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오가는 질의응답을 경청하던 그때.
조금 특이한 인상의 관객이 질문해왔다.
“저는 마리니 감독의 전작들을 전부 다 봐왔는데요, 데뷔작인 에선 기존의 사회구조 붕괴가 일반적인 중산층 가정에 미치는 영향을···.”
감독의 전작 주제들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으로 서두를 열더니, ‘영화의 변방성’ ‘포스트포디즘’ 같은 용어들을 남발했는데···.
‘본인도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고 쓰는 것 같은걸.’
자꾸 중언부언해 주술 호응이 안 맞는 것은 물론, 논리도 찾기 어려운 발언이 이어졌다.
한 실장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려운 단어만 쓴다고 능사가 아니라고.’
GV에선 꼭 저런 질문을 던지는 부류들이 있기 마련이다.
답변이 정말 궁금해서라기보단,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통역사 입장에선, 저런 질문이라도 충실하게 통역해야 하는 법이니.’
한 실장은 분주하게 노트테이킹 중인 찬영을 흘긋 보며 생각했다.
게다가 더 큰 문제가 있다면.
“···그래서 저는, 감독님이 지금껏 고수해오던 작가주의를 포기하신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저 질문자의 말이 질문받는 입장에선 상당히 기분 나쁠 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
“이번 은 상당히 상업성에 오염됐다는 느낌이 들어서···.”
···오죽하면 그 말에 헉, 하며 관객석이 술렁일 정도였으니.
그러나 찬영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차분하게 노트테이킹을 했고, 사회자는 얼른 질문자의 발언을 끊었다.
– 질문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서, 이만 통역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질문자는 아쉬워하면서도 자리에 앉았다.
한 실장은 물론, 모두의 눈이 박찬영에게로 향했다.
아마도 찬영이 저 불편한 질문을 어떤 식으로 통역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 순간.
찬영은 몹시도 여유로운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Si ça ne vous gêne pas, j’ose poser une question···.」
물론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은 프랑스어를 알아듣지 못하지만.
프랑스어에 능통한 한 실장은 저도 모르게 감탄하고 말았다.
‘···와.’
일단, 찬영은 ‘괜찮으시다면 감히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라는 조심스러운 문두로 질문자의 무례함을 중화시켰을 뿐더러.
「저는 이번 이 감독님의 전작들에 비해 상업적 색채가 상당히 강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전작들에서 고수해오신 작가주의를 내려놓으신 건 아닌지 궁금합니다···.」
질문자가 질문의 진짜 의도를 맨 마지막에야 드러낸 것과 달리, 곧바로 서두에서 꺼내 보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저 질문자가 중언부언한 내용을, 한두 문장으로 압축해버렸네.’
마치 모래성에 진흙을 부어 형태를 잡아내듯.
희미하던 논리의 요지를 쏙쏙 뽑아내 재정립해나가는 찬영을, 한기준 실장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그 덕분일까.’
감독은 질문에 전혀 기분 상한 기색 없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꽤 길게 이어진 질문 통역이 끝나자 곧바로 답변을 시작했다.
「날카로운 질문이군요. 그래요, 내 전작들을 계속 봐오신 분들께는 이번 작품이 전작들과 조금 궤가 다르게 느껴지실 수 있다고 봅니다.」
감독이 옆을 돌아보자, 곧바로 그의 말을 통역하는 찬영.
그러자 질문한 남자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저는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작가주의란 대체 무엇인가. 아니 무엇보다도 저는, 애초 작가주의적 노선을 지향하는 감독이 아닙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감독님들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한결 더 침묵에 잠긴 관객석을 둘러보며 감독이 말을 이었다.
「Je me définis comme la personne qui fait des films pour le public avant tout.」
“무엇보다도 저는, 관객을 위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의 말을 찬영이 곧바로 통역하자.
“···!”
시사회장 안에 조용한 반향이 퍼져 나갔다.
마리니 감독이 담담하게 말했다.
「물론, 감독이 반드시 자신의 노선을 작가주의다, 상업주의다 라고 결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주의’라는 것이 오늘날 영화계에선 사실상 의미가 없지 않나 싶기도 하고···.」
작품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고, 또 이를 보여주기 위한 방식 또한 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라고 덧붙인 그가 말을 이었다.
「늘 많은 분들이 제 작품을 한 번 더 되짚어주시고, 몇 겹의 함의까지 살려서 읽어내시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러나 때로는, 영화는 그저 이 자리에 존재하는 이 순간, 찰나의 행복을 위해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고요한 가운데.
감독과 찬영의 목소리만이 널따란 공간을 울렸다.
「영화관에 앉아 있는 이 관람의 순간에 영화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면-
그때의 제 작품은 실패한 것이 되겠죠.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내 찬영이 그의 말을 통역했고, 마지막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의미 깊은 질문에 감사한다”라고 마무리하자.
짝짝짝짝——
앞선 질문들에 비해 유난히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질문을 던졌던 장본인도 멍한 얼굴로 얼떨결에 같이 박수를 쳤고 말이다.
오늘 이 자리의 일등공신인 찬영을 바라보던 한기준 실장은 새삼 감탄하고 말았다.
자칫 날카로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세 치 혀만으로 부드럽게 풀어내고.
그리하여 모두에게 성공적인 대화를 완성하는 것.
‘···이런 게 바로 소통의 힘이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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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V가 끝난 뒤, 무대에서 내려왔다.
대기실로 돌아오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셔츠 등판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통역 중간 중간 물을 마셨는데도 입안은 바짝 말라 있었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뒤늦게 심장이 제멋대로 뛰어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어느새 새카맣게 변해버린 노트테이킹용 노트를 흘긋 보았다.
‘미리 단단히 대비해뒀기에 망정이지.’
감독의 전작들 제목을 한국어와 프랑스어로 외워둔 것은 물론, 시나리오를 달달 외울 정도로 준비했으며.
아역배우 레오의 통역을 맡았을 때 영화 전문용어들을 익혀둔 것이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오늘 통역에선 몇 차례나 고비가 찾아왔을 테니까.
‘봐주는 게 없다고 해야 할까.’
골수 팬이라 그런지 오히려 기자회견때보다 훨씬 더 날카로운 질문들투성이였다.
후우, 한숨을 내쉬며 이마의 땀을 닦아내는데.
「찬, 정말 고생 많았어요.」
「아, 감사합니다.」
마리니 감독이 내게 음료수를 건네며 치하의 말을 이어나갔다.
「덕분에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진정한 소통이란 게 뭔지 경험하는 기분이었달까요.」
「···.」
그야말로 최고의 칭찬에 뭐라 대꾸할 바를 몰라하던 그때.
「저도 정말 의미 깊게 봤습니다!」
「통역사님 진짜 잘하시던데요!」
「완전 푹 빠져들었어요···.」
스탭들이 한마디씩 던지는 칭찬에, 오늘의 피로가 싹 날아가는 듯했다.
「찬, 최고였어요.」
양손의 엄지를 치켜세운 엘리오는 내게 메일 주소를 교환하자고 했고.
「아, 페북그램 친구 신청은 이미 해놨어요. 맞팔하는 거 잊지 말아요.」
마지막으로 레아 데주와도 산뜻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매번 그렇듯 고마워요, 찬.」
이에 늘 응원하겠다, 대꾸하니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이젠 소중한 사람을 만나러 가봐야 하지 않아요?」
그렇게.
스탭들 모두와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대기실을 나서자.
등 뒤로 엘리오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좋을 때네.」
「엘리오, 자네가 그러면 난 뭐가 되나.」
「하하, 감독님도 한창 좋을 때죠.」
반쯤 열린 대기실 문 너머를 가만히 지켜보던 레아가 나머지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그럼 우린 우리끼리 축제를 즐겨볼까요?」
그녀의 제안에, 스탭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