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interpreter RAW novel - Chapter (211)
*
제법 여유로운 주말을 보낸 뒤 월요일 아침.
통대 본관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한 무리의 통대생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었다.
“찬영 선배! 축하해요!”
“요, 촨용이.”
“축하한다!”
처음만 해도 방송 출연 얘기인 줄 알았지만.
“흐흐흐, 이젠 완전 전국구 공식인 거야?”
“공식이라니?”
“아, 그게···.”
수용이 형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으려던 순간, 타이밍 좋게 나타난 추가 씩 웃으며 외쳤다.
“흐흐, 스타 커플의 탄생이구나!”
···스타 커플?
잠시 후.
9시 첫 수업을 듣고 나서 공용PC실로 향한 나는 그제야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이런.’
문제의 발단은 내가 방송에 끼고 나간 왼손 약지의 커플링.
이것을 본 팬카페 회원들은 혹시 커플링이 아니냐, 드디어 여친이 생긴 게 아니냐며 흥분한 것이었다.
처음으로 의문을 제기한, [근데 이거··· 커플링 아닌가요?]라는 제목의 글은 이미 베스트 게시물로 자리잡은 터였고.
거기에 달린 수많은 댓글을 보다 보니 기분이 좀 묘해졌다.
···보통은 열애설이 터지면 어떻게든 부인하려 하는 것이 일반적인 팬의 입장이건만.
‘어떻게든 열애설을 인정하려는 이 분위기는 대체···.’
물론 내 연애에 다들 기뻐하고 축하해주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 온 마음을 담아 감사합니다
└ 2222 저도 감사합니다
└ 3333
└ 444
···
저렇게 온 마음을 담을 정도로 고마워할 일인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으니.
‘이 사람들···.’
내 커플링이야 그렇다 쳐도, 내가 레아와 사귄다는 사실이 어떻게 알려진 걸까 싶었는데.
“···아.”
최재중 기자가 담당한, 한성일보 코너에 실린 레아의 인터뷰 기사와 사진.
인터뷰에 응했던 시기가 아주 공교롭게도 우리가 커플링을 맞춘 직후였던 만큼, 레아는 아주 당연하게도-
[어, 이거 찬영 님 커플링이랑 똑같은 것 같은데요···?]흔치 않은 디자인의 커플링을 왼손 약지에 낀 채 사진 촬영을 했던 것이다.
그녀와 내가 통대 동기임은 다들 아는 사실인 데다, 누군가 에 실렸던 레아의 인터뷰 QNA까지 가져오며 심증은 확증으로 굳어져갔다.
[Q : 오늘 촬영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아까 박찬영 통역사도 같이 온 것 보고 깜짝 놀랐어요. 두 분이 무슨 사이인가요?A : 2년 가까이 동고동락한 통대 동기입니다. 그걸 떠나서도 아주 가까운 사이이기도 하고요(웃음).]
당시에는 다들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던 저 문구를, 이제는 다른 식으로 해석하게 된 것.
그리고 이에 대한 반응이 어땠냐면···.
– 또찬영과 통역 여신이라니 실화냐?
└ 내가 어지간하면 너무 식상해서 이런 말 안하는데 미녀와 야수(···)
└ 슈렉이랑 피오나도···
└ 레아 통역사님 혹시 협박을 당하고 계신다면 당근을 흔들어주세요
└ 앜 ㅋㅋㅋㅋ 이분들 진짜 너무하시네
└ 사탄 : 와··· 한 수 배우고 갑니다
내가 속으로 ‘이 사람들이’를 한 번 더 중얼거리고 있는데.
어느새 내 옆자리에 앉은 추가 말을 붙였다.
“크크크, 촨용아.”
“어.”
“너 실검 확인해봤냐?”
“···실검?”
뒤늦게 정신이 확 든 채로 포털 메인에 접속하니, 정말 그 말대로였다.
[13. 또찬영 예쁜 사랑하세요]‘이건 무슨···.’
그리고 그보다 한참 아래로, [또찬영 열애설] [또찬영 신레아]가 나란히 순위권에 있는 것이 보였다.
경악에 물든 내 옆얼굴을 보던 추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거, 또찬영 팬카페에서 총공한 거라더라.”
“총공···?”
그 말대로, 카페의 공지게시판에 들어가니 [총공 공지- 또찬영 예쁜 사랑하세요]라는 게시물이 올라와 있었다.
넌 대체 어떻게 알았냐, 라고 묻기도 전 추가 먼저 말했다.
“참고로 난 송서풍이가 알려줬지.”
“···.”
그 사이.
또 어느 이름 없는 언론사에서 이런 기사까지 잽싸게 낸 터였다.
[박찬영·신레아 열애설··· ‘또찬영의 사랑을 응원합니다’]또찬영 카페에 올라온 열애설 게시물과 그 댓글 반응을 정리한 것이 기사문의 대부분이었지만.
마지막에 나의 지인이라는 누군가의 증언이 덧붙여져 있었다.
[통대 졸업생인데 이 둘이 연애하는 거 이미 학교에선 다들 아는 사실이다. 그 둘이 사귄다는 소식에 오죽하면 신입생들 사이에선 ‘통역 열심히 하면 찬영 선배처럼 연애할 수 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처럼 돌았을 정도. 아직까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누구냐, 너.
이 사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던 그때.
“찬영 씨.”
“오, 역시 여기 있네.”
레아와 송하늬가 공용PC실에 들어섰다.
어쩐지 상기된 얼굴의 레아를 보니 사뭇 긴장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예기치 않게 알려지게 되다니.’
혹시라도 레아에게 피해가 가는 건 아닐지 싶은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입술을 지그시 깨문 순간, 레아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음, 우리 사귀는 거··· 다 알려졌더라고.”
하늬가 알려줬나 싶어 옆을 돌아보자, 하늬가 씩 웃으며 한마디했다.
“레아도 촨용이 니 팬카페 회원인 거 알지?”
“···어?”
그러자 민망하다는 듯 얼굴을 붉히는 레아.
잠시 눈을 마주치지 못하더니 이내 나를 마주 보며 말한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제대로 얘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자 하늬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아예 둘이 사진까지 찍어서 올리지 그래.”
그러면 괜한 추측이 나도는 것도 막을 수 있다는 것.
나야 더할 나위 없이 기쁘지만···.
“레아, 괜찮겠어?”
그녀에게 나중에라도 안 좋은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어 조심스레 물어보자.
레아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응.”
나와 레아는 다소 민망해하며 다정한 포즈를 취했고, 송하늬는 그렇게 찍은 사진 중 제일 잘 나온 것을 골라 우리 둘에게 보여주었다.
“이거 어때?”
“···!”
레아가 얼굴을 붉히더니 ‘언니, 나 이사진 좀 보내줘요’라며 속삭이는 것이 들렸다.
“···찬영 씨가 넘 잘 나와서.”
“흐흐, 거럼 거럼.”
그렇게.
나는 송하늬가 찍어준 커플 사진을 올리며 대충 이런 요지의 글을 남겼다.
[안녕하세요, 박찬영입니다. 좋은 소식에 본인 일처럼 다들 기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도 너무 놀리진 말아주세요···)]그리고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대댓글이 잔뜩 달렸다.
└ 오
└ 오 222
└ 본인 등판!
거기에 지원사격하겠다며 송하늬 또한 댓글을 달았는데.
└ 쏭하(명예스탭): 제가 옆에서 봤는데 은근히 잘 어울림.
└ 쏭하좌도 등판했다
└ 아무래도 쏭하님 댓글의 포인트는 ‘은근히’에 있는 듯
└ ㅋㅋㅋㅋㅋ
모니터 속.
대댓글이 쏟아지듯 달리는 모양새를 지켜보던 추와 송하늬가 동시에 풋-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그저 침묵을 지키던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열고 말았다.
“···이 사람들이 진짜.”
*
어느덧 11월 중순이 눈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열애설이 터진 며칠간, 나와 레아는 전에 없는 유명세에 기쁘기도, 당황스럽기도 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자기야, 너무 스트레스 받진 마.”
그리고 의외로, 레아는 매우 쿨한 태도를 보였으니.
“나한테 안 좋은 영향이 있을까 봐 걱정하는 건 아는데, 또 언제 이런 관심을 받아보겠어?”
“멋지다, 우리 자기.”
또 한 번 반하겠어, 라고 말하던 그때.
등 뒤에서 흠흠, 헛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스터디실에서 너무 노골적으로 애정을 과시하는 거 아냐?”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서이준이 스터디실 안에 들어와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온 그의 모습에 나 또한 헛기침을 하며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아니, 다른 게 아니고.”
그는 일찍이 의 성공으로 출판계의 관심을 모은 이후, 지난번 촬영으로 상당한 유명세를 얻게 된 터였다.
“···그래서 이번에 함영사의 문예지 에 인터뷰를 하게 됐거든.”
는 젊은 독자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는 파격적 형식의 문예지.
특히 화제의 소설가나 번역가를 표지 모델로 삼고, 감각적인 사진과 인터뷰 기사를 싣는 것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데.
“오, 완전 축하한다.”
“축하해요, 이준 씨.”
나와 레아의 축하 인사에 서이준은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거기서 내가 두 사람 얘기를 좀 했거든.”
“두 사람?”
“아니, 저쪽에서 너랑 레아 씨랑 친하냐고 묻길래.”
셋이서 두 학기 동안 스터디 파트너였으며, 그때 첫 만남이 어땠는지에 관해 개인적인 얘기를 좀 털어놨다는 것.
“혹시 나중에 기사 보고 놀랄까 봐 미리 말해두는 거야.”
“뭐 놀랄 것까지야.”
내가 픽 웃으며 대답한 순간, 서지연 과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잠시만.”
스터디실을 나와 전화를 받자, 서 과장의 묘하게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박 선생님, 통화 가능하세요?
“그럼요, 과장님.”
– 다행이네요, 수업 중일까 봐 조심스러웠는데···.
내게 전달할 좋은 소식이 두 개나 있어서 몸이 달았다는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신경이 집중되었다.
“좋은 소식이요?”
– 네, 일단 첫 번째부터 얘기드리면···.
···새로운 의뢰인가.
센터를 통해 의뢰를 받은 게 한두 번도 아니지만, 일이 들어올 때마다 매번 기대가 된다.
– 토마 키페티 교수 기억나요? 전에 통대에서 특강했던.
기억나다마다.
안 그래도 그가 작년 말에 발표한 소논문 가 어마어마한 붐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회귀 전과 비교하면, 원래보다 1년은 빨라진 것 같은데.’
프랑스 학계에서 전도유망한 경제학자 정도였던 그는 순식간의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프랑스 학계’ 내부에서 그랬다는 것이지만.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를 펴내는 시점이 오겠지.’
그 후로는 명실상부한 월드스타급 학자로 발돋움할 테니 말이다.
– 한성일보에서 주최하는 국제미래포럼, 여기서 키페티 교수가 기조강연을 맡을 거예요.
“설마-”
– 그 설마가 맞답니다, 후후.
국제미래포럼은 전 세계 유명 석학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학문의 축제.
그 기조강연의 통역 의뢰가 들어왔다는 말에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그의 강연을 듣고 사인을 받던 일개 학생에 불과했는데···.
‘그 토마 키페티의, 그것도 기조강연 순차 통역의 의뢰를 받게 되다니.’
그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몹시 고무적이었으나, 놀라운 소식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 그리고 두 번째 좋은 소식을 말하자면···.
잠시 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진 채로 반문하고 말았다.
“···잠깐만요, 정무보좌관이라고요?”
그녀가 말한 좋은 소식이란 다름 아닌 프랑스 대사관 측의 잡오퍼였다.
이미 다비드 대사에게 두 차례 정도 얘기를 들은 만큼 이 시기쯤에 오퍼가 들어오리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정무보좌관직을 제안할 줄은 몰랐으니까.’
대사관에는 통역사를 필요로 하는 부서의 종류가 다양하다.
경제상무관실, 정무과, 재경관 등···.
나처럼 통대를 갓 졸업한 경우에는 주로 영사과에 채용된다.
‘행정 민원 서비스가 주된 업무이지.’
다비드 대사가 언뜻 말했을 때도 그런 자리가 되지 않으려나 싶었는데···.
– 네, 놀랍죠? 정무보좌관이라니, 저도 듣고서 깜짝 놀랐다니까요.
프랑스 대사관 대사 전속 통역사.
‘정무보좌관’은 현장에서 다년간의 경험을 쌓은 통역사들이나 접근 가능한, 5급에 상당하는 직책이니 말이다.
‘일전에 임주희 교수님이 대사 전속 통역사로 활약하셨다 했던가.’
분명 엄청난 제안임이 분명했지만, 막상 눈앞으로 닥쳐오니 마음이 복잡했다.
“···음, 고민이 되네요.”
아직 여유가 있으니 천천히 고민해보라는 서 과장의 말.
“기분이 묘하네요. 제 실력 이상으로 너무 좋게 평가해주시는 것 같기도 하고.”
– 후후, 박 선생님이야 늘 그렇게 얘기하지만 결국 클라이언트 입장에선 믿고 맡길 수 있는 통역사를 필요로 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부담갖지 말고 내 뜻대로 하면 될 거라는 서 과장의 말에, 어쩐지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여러모로 의미 깊은 대화를 나눈 뒤, 그날 저녁.
나의 페북그램 계정에 송하늬가 ‘칼을 갈고’ 썼다는 새로운 게시물이 올라갔다.
[(공식) 또찬영·신레아 열애설 인정]– 또찬영과 신레아는 험난한 통대 생활 중 함께 스터디를 하며 인연을 맺었고, 2학년이 되며 서로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또.
– 이에 찬영의 팬카페 ‘1일1찬영했또’에선 축하 메시지가 쏟아지는 한편, 신레아의 종족이 천사냐 여신이냐며 궁금해하는 댓글이 쏟아졌또.
– 얼핏 나이차 커플로 보이는 두 사람은 사실 두 살 차이밖엔 나지 않는다는 것···! (tmi)
–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둘의 사랑을 응원해주길 바라겠또 ♡
그리고 거기에 달린 수많은 댓글 중.
누군가의 댓글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 함석영(외교부장관) : 또찬영 님 예쁜 사랑 하세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