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interpreter RAW novel - Chapter (6)
선욱재 교수는 내 노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참을 들여다 보더니 뒷장까지 넘겨보며 열심히 파고든다.
“저··· 교수님, 제 노트에 무슨 문제라도?”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선교수는 상당히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러니까 학생은···.”
“박찬영입니다.”
“찬영 씨는, 음, 통대 들어오기 전에도 노트테이킹을 해왔나요?”
네, 10년 전부터요.
-라고 할 수는 없고, 애매한 얼굴로 애매하게 대답했다.
“노트테이킹 책을 따로 사서 혼자 연습해보긴 했습니다.”
“아, 어쩐지 그랬군요. 물론 지금까지 그랬던 학생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건 정말···.”
선욱재 교수는 여전히 내 노트를 주시한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
“뭐 하나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하네요.”
그 한 마디에 강의실 안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앞선 세 사람을 평가하는 모습만 봐도 보통이 아님이 분명한 이 선욱재가,
‘완벽하다’라는 표현을 쓴 데에 다들 충격을 먹은 눈치였다.
선욱재 교수는 그런 학생들의 반응을 눈치 못 챈 채 말을 이었다.
“전반적인 논리의 플로우도 그렇고, 노트양이 많지 않으면서도 핵심만 정확히 짚고 있어요.”
선교수의 말마따나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흐름, 즉 논리를 적는 거다.
달리 말하자면 세세한 정보를 적다가 논리의 흐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
‘노트테이킹을 처음 해보는 사람들은 받아쓰기를 하기 십상이지.’
바로 여기서 암기 요약 훈련이 빛을 발하는 거다.
듣자마자 바로 뭔가를 적기보다는 일단 그 의미를 파악하고.
각각의 논거가 나무에 가지를 쳐나가듯이 전체 몸통을 만들어나가는 그 ‘형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
여기서 노트량이 많으냐 적으냐는 온전히 통역사의 개인 스타일이다.
그러나 반드시 적어야 할 게 있다면···.
“무엇보다 수치를 정확하게, 그것도 눈에 확 띄게 적어놓은 것도 그야말로 모범적이네요.”
그렇다.
몇 년 몇 월 며칠인지.
증감액은 얼마인지.
누가 누구한테 얼마를 줬는지.
이런 건 아무리 암기력이 좋다 해도 실수하기 쉬운 부분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흠잡을 데 없는 세부 사항보다 더 놀라운 건, 전반적으로 여유가 느껴진다는 거예요. 어색하거나 긴장한 느낌이 전혀 없는, 마치 10년 차의 내공이 느껴지는 노트라고 할까.”
···일부러 어설프게 할 걸 그랬나, 한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 기대치를 높여놓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지.
흥분한 기색으로 말을 쏟아내던 선교수가 자기 말에 픽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내가 1학년생의 노트를 보고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혹시 괜찮다면···.”
그 순간.
선욱재 교수의 눈이 의미심장하게 빛났다.
“이 자리에서 방금 전 추성원 씨처럼 불어로 통역해볼 수 있을까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내 얼굴에 따가운 시선이 떨어졌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나를 주시하는 중이었다.
절반은 내 불어 실력을 궁금해하는 눈치였고, 나머지 절반은···.
‘고작 1년 갔다 온 게 전부인데, 불어 실력은 보나마나 뻔한 게 아니겠어.’
이런 시선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나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물론 선욱재 교수가 이렇게 나온 건 예상 외의 일인 데다가,
한국어에 비해 불어가 훨씬 약한 건 사실이지만.
‘이런 자리에서 뺄 생각은 없거든.’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는 웃으며 선교수를 돌아보았다.
“그럼요.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이 수업이 시작된 이래로 내심 줄곧 바랬던 바였으니까.
모두의 눈이 내게로 향한 가운데.
나는 입을 열었다.
*
수업을 마치니 점심시간이었다.
한명외대는 외국어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대학이라는 것 말고도 한 가지 더 특장점이라 할 만한 것이 있었는데.
“···역시 여기 학식이 최고라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맛과 가짓수 모두 완벽하기로 유명한 학식이었다.
돌솥에 팔팔 끓는 채로 나온 순두부찌개에 계란 하나를 톡 깨어넣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 정도로 고운 빨간색 사이로 송송 썰어넣은 초록색 파가 언뜻 보인다.
코 끝을 자극하는 매콤한 냄새.
계란을 적당히 풀어 국물과 섞자 그야말로 완벽했다.
“그냥 매운 게 아니라 되게 맛이 깊다니까? 아주 감칠맛이 돌아요. 이걸 이렇게 흰 쌀밥에 슥슥 비벼서 먹으면···.”
와암.
한 입 크게 삼키자 입안 점막이 기쁨으로 요동치는 게 느껴진다.
배고플 때 먹는 제대로 된 한끼.
이게 미미(美味)가 아니고 뭐겠는가.
“무슨 먹방 중계 하냐? 얼굴만 닮은 줄 알았더니 식성도 하종우네.”
한식은 입에 안 맞는다며 햄버그 스테이크를 시킨 추가 툴툴거렸다.
놈이 열심히 나이프로 썰고 있는 햄버그도 자르르 윤기가 흘렀다.
‘과연 세계인의 입맛을 맞추는 걸 목표로 한다는 한명외대 학식답네.’
우리나라에서 가장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진 한명외대.
그 덕분인지 학식도 다국적 메뉴를 갖추기로 유명했다.
어느 학교에나 있을 법한 중식, 일식, 이탈리아 음식은 물론이고.
프랑스의 식사대용 타르트인 ‘키슈’.
러시아식 소고기 요리 ‘비프 스트로노가프’처럼 생소한 메뉴도 있었다.
‘그 메뉴들이 하나하나 다 맛있다는 건 그야말로 더 놀라운 일이고.’
오죽하면 한명외대 전체 예산 중 약 10퍼센트가 학식 메뉴 개발에 할당된다는 말도 안 되는 루머가 돌았으니.
‘그럼에도 이 수많은 세계 요리 가운데 순두부찌개를 고른 나는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아재인 걸까.’
후우, 후우.
이마의 땀을 닦아가며 뜨거운 찌개를 열심히 먹는데.
그런 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추성원이 입을 열었다.
“야, 내가 너한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찌개를 밥에 비벼 또 한 입 크게 문 순간.
“···너 인생 2회차지?”
추의 갑작스러운 말에 밥알이 목에 걸릴 뻔했다.
“갑자기 무슨 같잖은 드립을 치고 앉았어.”
간신히 물을 삼키고는 대충 대답하는데, 추는 웬일로 진지했다.
“솔직히 말해도 좋아. 나만큼은 니 말 믿어줄 테니 다 털어놓으라고.”
“아, 좀.”
그러면서도 속으론 설마 했다.
내가 너무 티를 냈나 싶어서 말이지.
은근 긴장하며 남은 밥알을 긁어먹는데, 추의 힘빠진 목소리가 들렸다.
“제발 그렇다고 해줘. 아니면 나 진짜 자괴감에 빠질 것 같거든.”
“···.”
“야, 그게 말이 되냐? 이제 막 들어온 1학년생이 그런 통역을 해?”
아.
그런 얘기였나.
내심 안도하는데, 추가 선욱재 교수의 말투를 따라했다.
“‘내가 통대에서 강의하며 1학년 1학기에 이런 통역을 들어본 건 처음입니다.’”
“···그만해라.”
방금 전 한불통역 수업 시간 얘기였다.
내가 통역을 마치자 선욱재 교수는 살짝 벙쪄 있었는데.
잠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는 평가를 시작했다.
···통대에서 강의하며 1학년 1학기에 이런 통역을 들어본 건 처음이라는 말로.
극호평이지만 마냥 기뻐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나는 1학년 1학기가 아니라 10년의 경험을 평가받는 셈이었으니까.
‘물론 아까 통역했던 추성원 씨처럼 유창함은 부족합니다. 아무래도 현지 체류 경험은 1년이 전부라 했으니 아쉬울 수밖에 없는 부분 같고.’
선욱재 교수는 당연하지만 단점을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원어민 수준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지만, 발음이나 억양이 흠잡을 데 없이 정확해요. 원체 타고나길 귀가 좋은 편인 것 같네요.’
내가 항상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도 그럭저럭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무엇보다도,
통역사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칭찬인 말을 서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는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붙기 마련이죠.’
‘그런데 박찬영 씨의 통역에선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더군요. 이는 A언어로 들은 것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해 B언어로 재창조해낸다는 의미입니다.’
‘적확한 단어 선택, 구조가 단순한 덕분에 간결명료한 문장이 참 듣기 좋았습니다.’
정확성과 명료성이야말로 통역사가 추구해야 할 최상의 가치들이니까.
···이 사람이 원래 이렇게 후했나, 의심할 정도의 극호평이었다.
“선교수의 그 눈빛 봤냐? 호감을 넘어선 집착이 느껴지던데 아주.”
추의 말에 민망해진 내가 둘러댔다.
“그냥 텍스트가 나한테 잘 맞은 거라니까.”
“넌 지금 여기서 ‘운이 좋군’, 이 한 마디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냐? 어디 이 수업뿐이야, 불한통역 때도 대활약을 해놓고!”
“대활약까진 아니고 그냥 좋은 인상을 준 거지 뭐. 근데 그거에 왜 니가 과민 반응인데.”
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겨우 1년 프랑스 갔다온 게 전부인 중현대 동기한테 그냥 발리는 것도 아니고, 완전 쳐발리려니 자괴감이 들어서 그런다.”
그 말에 조금 찔리긴 했지만.
나는 추의 약점을 꼬집었다.
“누가 들으면 죽어라 공부해서 들어온 줄 알겠다?”
역시나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는 추.
아마 42기 스무 명 중 제일 공부 안 하고 입학한 게 본인이라는 걸 추 녀석도 모르지 않을 거다.
“암튼. 내 이성으로는 니가 회귀자가 아님 설명되지 않는 사기캐라는 거다 이거지.”
“사기캐 좋네.”
“평범한 줄 알았던 대학 동기가 알고 보니 천재과였다니.”
천재과라니.
스무 살 넘어서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얼굴은 안 그렇게 생겨 가지고.”
···저 말만 아니면 좋았을 텐데.
결국 나는 묻고 말았다.
“내 얼굴이 어디가 어때서.”
그래도 이 정도면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정도는 되지 않나.
···아닌가?
“아니, 야 그렇게 보지 마라 무섭잖아.”
그렇게 말한 추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서이준이 같은 자식은 딱 봐도 얼굴 천재잖아. 근데 그런 놈들이 공부 잘하는 건 어쩐지 놀랍지가 않거든. 말하자면 개연성이 있는 느낌?”
“그럼 내 얼굴로 공부 잘하는 건 개연성이 없는 거고?”
“어, 음 그게 넌···.”
한참 단어를 찾던 추가 나를 마주 보며 씩 웃었다.
“한 주먹 하게 생긴 얼굴이잖냐.”
“···.”
많이 들어봤던 말이라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한참을 깨작거리던 추는 멀쩡한 스테이크를 반쯤 남긴 채였다.
“다 먹었냐?”
“어? 어.”
여전히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는 추.
나는 다 먹은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
“그럼 나 이만 간다.”
“어디 가냐?”
“어디 갈 것 같아?”
내 얼굴을 멍하니 올려다본 추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니, 안 물어보련다.”
그대로 돌아서자 추가 ‘독한 놈’ 하고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나만 독한 게 아니라니까.’
픽 웃으며 식당을 빠져나왔다.
제법 따스해진 교정을 걷는데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설마 그 선교수가 그렇게 호평할 줄은.’
아까는 추 앞이라 티를 내지 못한 것뿐, 기쁘지 않은 건 아니었다.
“10년 전엔 탈탈 털렸었는데.”
선욱재 교수.
정화영 교수의 수제자답게 독설 또한 그녀를 닮아 날카롭기로 유명했다.
‘지금 장난합니까? 여러분이 언제까지 학교 품에서 보호받으며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여기를 졸업하는 순간부터 여러분은 전장에 떨어지게 됩니다. 칼과 방패만 들지 않았다뿐, 매순간 순간이 치열한 싸움이나 다를 바 없어요.’
‘싸움에선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나오는 법. 여러분이 이런 식으로 나태한 생활을 계속한다면, 원치 않아도 패자의 운명에 처하게 될 겁니다.’
패자의 운명.
지난 10년간 나를 구속해온 과거이자, 다시는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기껏 붙잡은 이 절호의 기회를,
절대로 헛되이 날려먹을 생각은 없다.
그러니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매일처럼 지옥의 스케줄을 실행하는 건 당연한 얘기이고.
‘그 이상을 이뤄내야지.’
1회차에서 내 목표가 상위권 학생들을 따라잡는 거였다면.
2회차에서는 이를 좀 더 상향 조정했다.
한 기수에 단 한 명, 1등만이 받을 수 있는 학기별 성적장학금.
그것을 받는 것이 나의 단기 목표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