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interpreter RAW novel - Chapter (74)
뱅상 교수의 감동적인 연설로 포문을 연 종강 파티는, 시종일관 떠들석한 분위기였다.
「교수님, 한 잔 쭉 드시지요! 원샷, 원샷!」
···거기에는 교수이건 학생이건 관계없이 누구나 쫓아다니며 ‘원샷’을 외치는 추도 일조한 터.
뱅상 교수가 허허 웃으며 잔을 비우자 추는 한술 더 떴다.
「자, 다 비운 잔은 머리 위에서 한 번 털어주시고!」
「호오, 신기하군요. 이게 한국의 술 마시는 의식인가요?」
「그럼 그럼요. 요래 요래 털어주셔야 한 잔을 클리어한 것!」
다행히 뱅상 교수는 술이 센 편이었지만, 한 30분이 지나자 슬슬 맛이 가는 인원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어, 음, 추성원 씨. 저 친구들 괜찮은 것 맞나요? 원래 한국의 파티가 이런 건지···.」
「그럼요, 이게 바로 한국식 파티(fête à la coréenne)의 묘미죠!」
페트 아 라 코레엔, ‘한국식’ 파티임을 강조하는 추.
헌데 뱅상 교수는 이런 분위기가 제법 마음에 드는 듯했다.
「아, 교수님, 한국식 술 문화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술 게임 한 번 해보시겠어요?」
「오, 게임. 게임 좋지요.」
「그럼 따라해 보세요.」
추가 율동을 하며 신나게 노래를 불러젖혔다.
“하늘에서 내려온~ 토끼가 하는 말~”
「호, 노래가 좋군요.」
잠시 후.
“···.”
나는 그 둘을 포함한 몇 명이 모여 바니바니 게임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바니 바니, 바니 바니, 당궁, 당궁···.”
몹시 근엄하고도 이지적인 인상의 노교수가 토끼귀 흉내를 내며 ‘바니바니’를 연호하는 모습에 내심 개탄할 수밖에 없었다.
‘야 이 미친 놈들아. 교수님한테 그딴 쓸데없는 것 좀 가르치지 말라고···.’
그렇게 종강파티는 몹시 떠들석하게 마무리되었다.
추를 비롯해 매번 꽐라가 돼버리는 몇 명을 한심하게 내려다보고 있는데, 의외로 멀쩡한 기색의 뱅상 교수가 날 보며 미소 지었다.
「찬영 씨도 바니바니 게임 할 줄 아나요? 다음 번엔 같이 해보면 좋겠군요.」
「···.」
*
1주 뒤, 드디어 블레즈 파스칼 장학금 테스트 당일이 되었다.
한성대학교 교육대학원 한편에 마련된 ‘블레즈 파스칼 장학제도’ 시험장에는 수십 명에 가까운 지원자들이 모여 있었다.
‘구술 시험을 보는 게 통번역만이 아니니까 말이지.’
신문방송학이나 정치외교학을 비롯해 인문사회학부 전형은 대부분 구술시험이 포함되는 듯했다.
구술시험은 최대 30분간 진행되며, 통번역학과를 제외한 나머지 과들은 특정 주제에 대한 발표 형식이 주를 이룬다.
3명의 시험 면접관 중 1명은 파리3대학의 ESIT 교수, 다른 1명은 파리1대학의 인문학부 교수, 마지막 1명은 한국인 교수라 했다.
‘통번역 전형에서는 이 ESIT 면접관의 평가가 주축이 될 거라 했지.’
통대 재학생뿐 아니라 졸업생, 혹은 박사 과정 지원자까지 포함해 학교당 최대 3명까지 내보낼 수 있다고 했으니, 통번역 전형만 따지면 총 지원자가 열 명 안팎에 불과할 것이다.
거기에 내 번호는 7번, 딱 중간 정도라 나쁘지 않았다.
“···내 차례가 되려면 30분 정도 남았네.”
시간을 한 번 더 확인한 뒤, 나는 시험장 한켠에 마련된 자판기에서 밀크티 캔을 뽑은 뒤 근처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ESIT는 우리보다 좀 더 학술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만큼, 구술시험도 아카데믹한 주제로 나올 가능성이 커요.’
정화영 교수의 조언에 맞춰 준비해온 텍스트들을 눈으로는 다시 한 번 주욱 검토하는 한편.
손으로는 치익, 하고 캔을 딴 뒤 벌컥벌컥 한번에 들이마셨다.
‘언제 마셔도 최고라니까.’
익숙한 달달함이 입안에 가득 퍼지며 카페인이 정신을 번쩍 깨우던 그때.
“와, 대박.”
누군가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캔 하나를 한 번에 다 마시네요. 방금 원샷한 거 맞죠?”
“···방금 저한테 얘기하신 겁니까?”
미간을 좁히며 옆을 돌아보자, 지금 이 시험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의 미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생긋 웃으며 친근하게 말을 붙였다.
“화경외대 1학년에 재학 중인 한서영이라고 해요.”
자신을 한서영이라고 소개한 여성은 키가 상당히 크고 늘씬했다.
연갈색으로 밝게 염색한 머리에 시원하게 커다란 눈, 뚜렷한 이목구비, 선홍색 립스틱을 바른 입술이 강렬했다.
“한명외대 1학년 박찬영입니다.”
“아, 이미 알고 있어요.”
“네?”
“서장석 교수님의 파티에 왔다면서요?”
“그건 어떻게···.”
“제 지도교수님이시거든요. 아, 저 이준이랑도 친해요.”
그제야 나는 그녀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화경외대에서 야심차게 내보낸 1학년 과톱이다, 이건가.’
이제껏 통대에서 못 본 스타일의 미인이라고 해야 할까. 이곳보다는 연예계에 있는 게 어울릴 법한 화려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처음엔 일종의 라이벌 의식에서 말을 걸었나 싶었지만.
“찬영 씨 레아 데주 통역 영상도 봤어요. 진짜 잘하시던데요? 솔직히 말해 학생 수준이 아니었어요.”
“아··· 감사합니다.”
그런 것치고는 꽤나 호의적인 멘트가 대부분이었다.
“라디오도 나왔었죠! 저 매주 이거 챙겨서 듣는데, 아는 이름이 나와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그랬군요.”
그럼에도 경계해서 나쁠 건 없겠지 싶어 사무적으로 대꾸하자, 한서영은 씩 웃으며 덧붙였다.
“아 그리고 실물이 훨씬 나아요.”
“···칭찬 감사합니다.”
나는 그것을 끝으로 대화를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나를 아직 놔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내가 사람 기를 좀 보거든요.”
“···네?”
그러니까···.
‘기운’할 때 ‘기(氣)’를 말하는 거 맞지?
“찬영 씨는 기운이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 그냥 좋은 게 아니라 흘러 넘치죠.”
“···.”
뭔가 느낌이 ‘도를 아십니까’ 같은데, 라는 생각에 나는 움찔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뭔가 굉장한 경험, 해본 적 있지 않아요?”
“···그게 무슨 말인지.”
나를 마주 보는 한서영의 눈동자가 묘하게 빛났다.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 꿈도 꿔볼 수 없는, 엄청난 기회가 손에 들어왔다든가 말이에요.”
그 순간.
‘설마··· 회귀의 경험을 말하는 건가.’
내심 짚이는 게 떠오른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우리가 흔히 ‘횡재’라는 말을 자주 쓰잖아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희미한 열기가 느껴졌다.
“근데 이게 사실은 사주의 ‘횡재수’라는 말에서 온 거거든요.”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킨 그 순간,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당신에겐 그런 횡재수가 보여요. ···그 운을 잘만 붙들고 끝까지 간다면 반드시 대성할 수 있을 거예요.”
말을 마친 그녀가 히죽 웃는데, 약간 소름이 끼쳤다.
“음,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서영 씨도 시험 잘 봐요.”
그렇게 예의상 한마디하자, 한서영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둘이 같이 붙을 거니까.”
“네?”
그야말로 확신에 찬 목소리인 것이, 흡사 신내림을 받은 무당 같은 느낌이었다.
“이거 붙으면 겨울방학 때 프랑스에 3주간 단기연수 보내주는 거 알죠? 그때 같이 가게 되겠네요.”
“···.”
이번엔 예의상으로라도 맞장구를 쳐줄 수 없었다.
“그럼 나중에 또 봐요. 챠오(안녕)!”
한서영은 반갑게 손까지 흔들면서 가버렸다.
‘뭔가 한바탕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느낌인걸.’
미인이지만 이상한 여자.
나중에 서이준한테 한 번 물어봐야겠다, 그 정도로 결론을 내린 나는 곧바로 텍스트 자료에 눈길을 가져갔다.
‘다시 집중하자.’
그렇게 나머지 20분간 자료를 재검토하고 나자,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7번 박찬영 응시자 들어오세요.”
“네!”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허리를 꼿꼿이 편 채 구술시험장에 들어서자, 면접관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백발의 프랑스인 한 명, 유난히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 프랑스인 한 명, 어디선가 TV에서 본 듯한 느낌의 한국인 한 명.
다들 쟁쟁한 포스를 내뿜는 면접관들을 마주 보려니 살짝 긴장되었다.
‘하지만.’
이 세 명 다, 뱅상 뒤부아에 비하면 아직 머리에 피도 덜 마른 애송이에 불과하다.
그렇게 생각하자 팽팽하게 차오르려던 긴장감이 일순 해소되었고.
“한명외대 통번역대학원 1학년에 재학 중인 박찬영이라고 합니다.”
그들 모두와 천천히 눈을 맞춰가며 인사를 했다.
‘찬영 씨, 기억해요. 통역 스킬도 스킬이지만···.’
‘이 사람이 장래에 어떤 통역사로 성장할 수 있을지, 그 포텐셜을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여기에 오기 일주일 전, 뱅상 뒤부아 교수가 들려줬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생생히 되살아났다.
‘당신이 긴장하지 않고 도리어 이 상황을 즐기고 있으며, 그들을 세 치 혀로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세요.’
‘그러면 상대는 어느새 당신의 카리스마에 사로잡혀 있을 겁니다.’
카리스마.
내게 그런 것이 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지금부터 통역 테스트에 임하겠습니다.”
입가에 미소까지 띤 채 여유를 가장했다.
*
그날 저녁.
해가 다 떨어진 시각임에도, 한성대학교 교육대학원 1층에 임시로 마련된 시험장에선 여전히 불이 꺼지지 않았다.
「다른 전형들은 대부분 결과가 명확하게 나왔고, 이제 남은 건 통번역 전형이네요.」
한국인 교수의 유창한 프랑스어에 다른 두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 놀랍더군요. 한국 학생들의 통번역 수준이 전반적으로 대폭 향상되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아, 그렇게 말씀하시니 말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백발 노교수의 말에 중년 교수가 맞장구를 치자, 나머지 두 명이 동시에 하나의 이름을 말했다.
「촨용 팍!」
「박찬영 씨!」
자신들의 의견이 일치했다는 것에 세 면접관의 표정이 밝아졌다.
백발의 노교수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번 블레즈 파스칼 장학제도에 응시한 열 명의 지원자들 모두 수준이 상당했습니다만, 그중에서도 무슈 박은 독보적이더군요.」
중년의 프랑스인 교수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단어 선택 역시 탄성이 절로 날 정도였습니다. 아주 고급스럽고도 매끄럽더군요. 이 교수님이 보시기에 한국어 표현은 어땠습니까?」
그의 질문에 한국인 교수가 미소를 지었다.
「한국어 표현 역시 아주 매끄럽고 맛깔스럽던데요. 그야말로 군계일학이라는 표현이 절로 떠오를 정도였어요.」
「호오, BA통역 수준도 우수하단 말인가요.」
「솔직히 말하면 제가 각종 포럼에서 경험한 웬만한 통역사들 이상의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데요.」
「아, 그러고 보니 이 친구를 추천한 것이 뱅상 뒤부아 교수였군요.」
백발의 교수가 던진 말에 중년의 프랑스인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신이 한때 뱅상 뒤부아 본인에게 사사한, 그의 제자이기도 한 까닭이었다.
‘처음만 해도 그분이 왜 뜬금없이 이 먼 나라에 와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모자라 직접 추천까지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었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뱅상 뒤부아에겐 고질적인 습관이 하나 있는데,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이른바 ‘원석’을 찾아 헤매는 것.
그리고···.
‘그 전도유망한 원석을, 열정적으로 지원해 완전무결한 통역사로 키워내고자 하는 것.’
그러한 스승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그들이 오늘 봤던 학생은 단순한 기대주를 넘어, 통역사로 대성할 자질을 모두 갖춘 재목이었으니까.
「일단 목소리부터가 설득력 있더군요. 퍼블릭 스피킹에 전혀 부담이 없어 보이는 건 물론이고요.」
통역사는 퍼블릭 스피킹, 즉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연설에 편안히 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경우, 예컨대 유난히 남들 앞에서 유난히 긴장한다거나 목소리가 작다거나 할 경우.
‘메시지 자체는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서브 텍스트는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이지.’
서브텍스트란 연사가 보여준 열정, 기세, 다양한 감정 등, 발화되지 않은 ‘텍스트 외적인 의미’를 말한다.
그런 것들이 ‘유능하지 못한 통역’을 거치며 구멍이 큰 체를 통과하듯 완전히 여과돼버리는 셈.
헌데 이 박찬영은···.
‘마치 물 만난 고기 같았지.’
간혹 그런 사람들이 있다.
오히려 남들 앞에 설 때 더더욱 신이 나고, 타인의 시선을 받아야 자신의 포텐셜을 100퍼센트 이상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
방금 봤던 그 ‘무슈 박’이 딱 그런 경우가 아닐까, 중년인 교수가 생각에 잠겨 있는데.
「부담이라뇨, 오히려 이쪽을 똑바로 마주 보며 통역해나가는데, 여기 앉은 제가 다 긴장이 되지 뭡니까?」
한국인 교수의 너스레에 나머지 두 면접관이 시원하게 웃었다.
「인상도 강렬하고, 눈빛도 보통이 아니긴 했죠. 그러고 보니 이 학생이 프랑스에 딱 1년밖에 안 살았다고 했던가요?」
「이 친구가 ESIT 단기연수라도 받게 된다면, 지금 여기서 얼마나 더 성장할지 몹시 궁금하군요.」
세 면접관 모두 기대감에 가득 찬 눈빛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합격자를 한 명씩 추려볼까요?」
2010년 블레즈 파스칼 장학금의 첫 번째 수여자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하나의 이름을 말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