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80
80. 대해적 시대
“뭔가, 치트 키를 치고서 게임 하는 기분이야.”
“예? 치트 키요?”
“아아, 혼잣말이다, 혼잣말.”
나는 루키엘의 어깨를 한 번 두들겨 주고는 이번에 약탈한 선단을 보았다.
“중형 항해선 세 척에 대형 항해선 두 척. 동방에서 가져온 각종 향신료까지……. 극동의 비단과 도자기가 없는 게 아쉽지만, 근래 가장 큰 월척입니다, 제독님.”
니콜라가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해맑게 웃으며 보고한다.
“마, 말도 안 돼! 우리 펠리오의 배들을 잡아먹었다는 존재가, 해양 몬스터가 아니라 해적이었다고?!”
포로로 잡힌 선장들 중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는 선장이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뭐, 자업자득이라고 치게나.”
나는 포로로 잡은 장교들과 마법사 중에서 전향할 자들을 찾았다.
그들은 마나의 맹세를 조건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펠리오의 전형적인 귀족인 선장은 다른 방식으로 처리한다.
‘지구와 달리, 이곳에서 배의 운전은 항해사와 갑판장이 전부 하니 부담이 덜하군.’
이카디아, 특히 펠리오에서 선장은 군림하고 누리고 독식하는 전형적인 봉건영주였다. 배라는 영지를 가진 영주.
“너희들은 이제 자유다!”
나는 선장들을 일렬로 세워 놨다. 갑판에는 아직 포로로 잡힌 수 많은 선원들이 앉아 있었다.
하나같이 피골이 상접하고 오랫동안 잠을 못 잤는지 눈 아래가 검었다.
“이 선장을 처형할지 안 할지 묻겠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하다.
“죽여! 죽여! 죽여!”
“그가 내 동생을 상어 밥으로 던졌소!”
“그를 죽여 준다면 당신에게 충성하지.”
그들은 자신들을 노예처럼 부리던 선장이 지목되자,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 함성을 질렀다.
“쯧쯧, 평소에 인덕을 베풀지그랬소?”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면서 검을 뽑았다.
“개소리! 이딴 놈들이 원한다고 귀족인 나를…….!”
서걱.
선장은 말을 잇지 못하곤 내 검에 목이 잘렸다.
첫 선장이 선원들의 투표(?)로 처형당했다.
“헐, 진짜로 죽였네?”
“씨X…… 이 해적단 X나 멋있다!”
“진짜로 충성한다! 나도 이 해적 함대에 들어갈래.”
선원들은 내가 진짜로 선장을 죽이자 놀랐다.
“미친! 나는 펠리오의 스리겐 백작가의 차남 술리페다! 나를 북항로 조약에 따라 정중히…….”
“이건 미쳤어. 저런 천한 놈들에게 내 목숨이 저울질되다니.”
“…….”
포박된 선장들은 경악했다.
“다음은 이 선장이다. 죽여, 살려?”
이어서 두 번째 선장이 내게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왔다.
“히익, 히이익!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오…….”
자신을 백작가의 차남이라고 말한 놈이다.
놈은 귀족답지 않게 바지에 오줌을 지리면서 질질 짠다.
“저 새끼가 가장 악독합니다!”
“저놈 때문에 내 인생이……!”
당연하게도 선원들은 사형을 원했다.
배가 영지고 선장이 영주라면 선원들은 농노다.
하지만 땅 위의 농노들과 달리 선원들은 자유의지가 강하다.
실제로 대부분 자유민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좋아, 처형!”
아까와 마찬가지로 선장의 목을 잘랐다.
“와아아아!!”
“만세!”
선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어서 다음 선장도 죽이고 그다음 선장도 죽였다.
그리고 마지막 선장의 차례가 왔다.
“당신은 앞서간 선장들과 달리 의젓하군.”
마지막 차례로 올라온 선장은 체념한 건지 담담히 눈을 감았다.
“죽여! 죽여!”
일부 선원들이 선장의 죽음을 외쳤지만, 앞선 선장들과 달리 격렬하지 않았다.
“저 선장은 괜찮은 양반이오!”
“솔직히 저 선장만큼은 안 죽였으면 좋겠소!”
오히려 선장을 살려 주라는 외침이 더 크게 들렸다.
보아하니 이 선장이 이끄는 배에 탔던 선원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선원들과 달리 안색이 좋았다. 좀 마르긴 했지만 피골이 상접한 정도는 아니었다.
“호오? 내가 많은 선장들을 심판대에 세웠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군.”
어지간하면 선장은 죽이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이 경우엔 얘기가 다르다.
“좋아! 마나의 서약을 조건으로 당신을 살려 주지.”
투항한 장교들과 동일한 조건이었다.
“……알겠소.”
선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한숨을 쉬곤 투항했다.
“이름이나 들어 보지, 올곧은 선장 양반.”
“메이플 카네스요.”
“메이플?”
이름이 굉장히 친숙하다.
“내 이름이 웃기오?”
메이플이 이해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메이플, 이제부턴 내게 존대를 하도록. 나는 이 해적 함대를 대표하는 샤락 제독이네.”
“……알겠습니다, 제독님.”
‘능력 있는 친구기는 한데, 저런 타입이 쓸데없는 충성심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을 한단 말이지.’
일단 선원들의 의견 때문에 거두기는 했다.
하지만 당분간 선장이 아닌 항해사로 써야지.
기함인 돌개바람호의 일등항해사가 된 메이플은 의외로 바로 적응했다.
“그나저나 배에 마법 아티팩트가 정말 많군요.”
그는 드라센의 레어에서 가져온 아티팩트로 도배된 기함을 보면서 감탄했다.
“코리스에 있는 배가 생각나는군요. 물론 배의 모양은 완전히 다르지만…….”
메이플의 말에 나는 귀가 쫑긋 했다.
“코리스? 펠리오 북부에 있는 항구도시를 말하는 건가? 거기에 무슨 배가 있다고?”
“예, 지금 이 배처럼 마법 아티팩트가 가득한 배가 있습니다. 아직 개발 중인지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을 본 적은 손에 꼽지만요.”
“모양이 어떻다고?”
“생김새는 생전 처음 보는 배였습니다.”
메이플이 던진 뜻밖의 말에 나는 속으로 확신했다.
‘마법 함이다! 마법 함이야!’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고 했던가? 마법 함이 보관된 위치를 알게 되었다.
“잠시 어디 좀 갔다 오겠다. 나 없는 동안 최대한 은신해 있도록.”
갑작스러운 내 통보에 루키엘과 니콜라가 황당해 한다.
“아니, 바다 한가운데서 갑자기 어딜 가시겠다고요?”
“잠시 그랑블루를 타고 코리스에 좀 갔다 올게.”
이미 메이플로부터 마법 함이 어느 건선거에 있는지도 알아냈다.
하지만 그의 말만 믿고 전 함대를 움직이는 것은 위험하다.
사전에 직접 가서 확인해 보고 와야지.
“코리스에 마법 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진짜인지 확인 좀 해 보게.”
나는 계속 뚱한 표정을 짓는 루키엘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어서 다녀오십시오, 제독님! 함대는 저와 니콜라가 최선을 다해 운영하고 있겠습니다!”
루키엘이 내게 바로 경례를 올린다. 하여간 태세 전환은 박쥐보다 빠르다.
“그랑블루!”
바다 저편에서 해양 괴수를 사냥해 먹고 있던 그랑블루를 불렀다.
“키엣, 키이이!”
녀석이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는 거 모르냐는 투로 짜증 내면서 날아온다.
“미안, 급히 갈 곳이 있어서 그래.”
그랑블루의 몸에서 환한 빛이 나더니 어느새 몸집이 마차만 한 크기가 되었다.
커다랗게 변한 그랑블루가 함수에 착륙했다.
착륙한 녀석의 등에 올라탔다.
지도를 펴서 서서히 어두워지는 밤하늘을 보았다.
“저쪽으로 쭉 날아가자!”
별을 통해 방향을 잡은 다음에 그랑블루에게 부탁했다.
“다녀오십쇼!”
내가 그랑블루를 타고 날아오르자, 루키엘이 손수건까지 흔들며 배웅한다.
* * *
나 홀로 코리스에 도착한 후, 제일 먼저 문제의 건선거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율카네스가 그려 준 것과 일치하는 배, 마법 함을 보았다.
두 눈으로 확인까지 마친 나는, 도시에 설치된 마법 포에 장난질을 했다.
대마도사가 만들어 준 아티팩트와 나의 피지컬이 합쳐지니, 이 모든 것이 은밀하게 가능해졌다.
‘무슨 특수부대가 된 기분이군.’
그리고 그랑블루를 타고 다시 함대로 복귀했다.
이 모든 게, 불과 하룻밤 만에 일어난 일.
“전 함대! 이번엔 항구를 털어 보자!”
아침이 밝자마자, 나는 약탈 함대 전체에 코리스 공격을 명했다.
“마법 포를 처리했다 해도, 아직 놈들은 우리 정체를 모릅니다. 굳이 이렇게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니콜라가 우려를 표했다.
“이번엔 어쩔 수 없네, 선장.”
마법 함에 눈이 돌아간 루키엘이 단호하게 니콜라의 우려를 막았다.
‘마법 함은 못 참지. 언제 다른 항구로 갈지도 모르고.’
약탈 함대의 우두머리와 그 우두머리의 오른팔이 결정한 사항이다.
감히 누가 거부하겠는가!
* * *
“이봐, 이번 주에 몇 개의 선단이 입항할 예정이었지?”
코리스의 등대지기 지크는 망원경으로 지평선을 보면서, 옆에 있는 동료 안슐에게 물었다.
“일곱 개.”
“그 일곱 선단이 한번에 입항할 확률은?”
“제로.”
안슐의 성의 없는 대답에도 지크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지루한 등대지기의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저런 모습이 되니까.
“근데 저기에 그 불가능한 일이 벌어진 거 같은데?”
지크는 그렇게 말하면서 안슐에게 망원경을 건넸다.
안슐은 말없이 망원경으로 지크가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그리고 당황한 목소리로 지크에게 말했다.
“……바보야! 여러 선단이 아니잖아……. 깃발이 다 똑같아!”
안슐의 말에, 지크는 멍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해군인가?”
“해군이 뭐하러 저렇게 몰려오는데!”
“그럼 뭔데? 해적이라도 된다는 거야?”
“…….”
지크의 말에 안슐은 말이 없었다.
그러자 지크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외친다.
“세상에 저런 규모의 해적은 본 적 없다고!”
“해적이든 해군이든, 저 정도 규모가 같은 깃발을 달고 오는 것은 절대 좋은 일이 아니야, 지크.”
“……기도라도 해야겠군.”
둘은 서서히 몰려오는 정체불명의 함대를 보면서 성호를 그었다.
* * *
상인 군주 크라운은 요새 기분이 영 좋지 못했다.
그토록 아끼고 자랑스러워했던 비단궁이 사악한 대마도사(?)에게 불타 버렸고, 금방 굴복할 것 같았던 오스카가 의외로 잘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뭐! 또 실종됐어?!”
크라운은 마법 통신구가 놓인 탁상을 쾅! 하고 쳤다.
“지금까지 없어진 배가 몇 척인지 아나? 최소 함대 두 개는 만들 수야!”
격정 내던 크라운은 이내 진정하곤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에 물었다.
“……누구 짓인지는 찾았나?”
―고위 해양 괴수의 짓으로 추정됩니다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습니다.
“알겠네, 제독.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그 원흉을 찾게.”
―알겠습니다. 폐하!
청명 함대 사령관과의 통신을 종료한 크라운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끄응, 몇 달 전에는 청명 함대의 군함도 실종되더니……. 정말 리바이어던이라도 출몰한 건가?”
무슨 마가 낀 것도 아니고 요새 일진이 사납다.
‘못해도 동방무역로는 지켜야 하는데. 근래 그쪽에서도 실종되는 선박이 늘고 있단 말이지.’
정말 골치 아팠다. 마치 서서히 말라 죽어 가는 기분이다.
“폐하, 티타임이 다 됐습니다.”
그때, 얼마 전 새로 임명된 시종장이 공손히 다음 스케줄을 알렸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먼저 와 계실 손님께 실례군.”
크라운은 애써 갑갑한 기분을 누르곤 접대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오늘 이 시각에 티타임을 갖기로 한 예약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늦어서 미안하오, 폰테임 영애. 통신구로 보던 것보다 더 성숙하고 아름답구려. 누가 그대를 14살로 보겠소?”
상인 군주 크라운이 과장된 몸짓으로 먼저 온 손님을 맞이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폐하, 체스카드에서 온 앨리스 폰 폰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