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81
81. 질투는 전쟁을 부른다
앨리스에게 카디나는 쓰기 좋은 도구였다.
카디나는 모르겠지만 카디나의 운명은 앨리스가 개인적으로 오래전에 정해 놨었다.
‘언젠간 위험한 임무에 투입시키고서 폐기해야지.’
비록 털털한 이복 언니지만 앨리스는 카디나를 경계했다.
카디나가 가문을 위한다고 행했던 더러운 임무 중 상당수는 앨리스의 머릿속에서 나온 작전이기 때문이다.
훗날, 이러한 진실을 알아챈 카디나가 자신에게 검을 들이댈지도 몰랐다.
‘오스카는 지금 난세야. 몬스터 웨이브도 심심치 않게 발생 중이지. 가서 로니아드의 근황만 보고하고 좀 죽어 줘, 언니야.’
카디나를 단신으로 오스카에 보낸 것도 이런 의미였다.
마지막까지 할 일 다 하고 조용히 죽었으면 하는 바람.
혹여나 이번에도 살아남는다면 다음에는 야만의 땅이나 절망의 땅 같은 곳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앨리스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사건이 최근에 터졌다.
“카디나, 감히 가문을 버리다니. 앨리스! 너는 도대체 뭘 하고 있던 것이냐? 카디나를 너의 도구로 달라고 해서 주었다. 그런 도구도 제대로 관리 못 한 것이냐?!”
앨리스는 이복 언니를 관리 못 한 책임을 져야만 했다.
그 책임으로 바로 이곳 하이타이까지 사신으로 온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저 상인 군주와 영락없이 정략결혼을 해야 할지도 몰라.’
말이 특사고 사신 파견이지, 앨리스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자신과 크라운의 정략결혼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것을.
차를 마시면서 앨리스와 크라운은 가볍게 인사를 한 뒤,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무리 졸부 느낌이 강한 펠리오의 왕족이라도 처음부터 ‘내 아를 낳아도’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타 다른 귀족들처럼 예술이나 고상한 취미 같은 얘기도 딱히 하지 않았다.
“폰테임의 제안대로 무리해 가며 오스카를 압박 중이오. 여왕까지 암살하면서 말이지. 하지만 알다시피 요즘 영 신통치가 않소. 새로 즉위한 아스카 여왕과 프리미오라는 재상이 제법이야.”
그는 다짜고짜 본론에 가까운 얘기부터 꺼내기 시작했다.
“오스카의 국경 수비대도 생각보다 강해서, 댁들이 보내 준 용병과 방랑 기사들이 손을 못 쓰고 있네. 그 뭐였지? 폴라라스 레인저라고 했던가? 국경 수비대에 새로 배치된 놈들인데 보통이 아니오…….”
앨리스의 정략결혼 상대가 될지도 모를 크라운이 말끝을 흘린다.
“처음 우리 펠리오의 계획은 오스카의 혼란을 가능한 한 오래 부추기는 것이었지, 이렇게 여왕까지 암살하면서 놈들과 전면전을 준비할 생각은 아니었소.”
이제 와서 슬슬 발을 빼려는 크라운의 모습에 앨리스가 싱긋 웃었다.
“폐하, 마법 함 대금의 일종이라고 생각하셔야죠? 우리 체스카드가 미쳤다고 폐하께 마법 함을 헐값에 드렸다고 생각하셨나요?”
여타 다른 귀족을 상대할 때와 달리, 앨리스의 말은 직설적이었고 가시가 돋쳤으며, 무례하고 공격적이었다.
어쩌면 정략결혼을 최대한 피하기 위한 그녀 나름의 전략이었을지도?
그런 앨리스의 모습에 크라운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의 입가에 재밌다는 미소가 어린다.
‘이게 아닌데?’
예의 바르게 웃고 있었지만 앨리스는 속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앨리스의 표독스러운 대답에 크라운 또한 물러서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 마법 함도 마누스의 적통이 아니면 제 능력을 발휘할 수도 없어!”
“폐하, 마누스의 적통이 없어도 마법 함은 기본 능력만으로도 대형 항해선을 아득히 능가하는 전력입니다. 직접 시승까지 해 보셨잖아요?”
앨리스는 들고 있던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차를 몇 모금 마신 후 입술을 적신 뒤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저희가 알기로 폐하께서는 마누스의 적통을 확보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앨리스의 말에 크라운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한다.
“우리가 마누스의 적통을 확보한 것을 알고 있다면, 최근 그 마누스의 적통이 무슨 짓을 하고 누구랑 어디로 갔는지도 알겠군?”
그의 나직한 말에 앨리스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의문이 일었다.
‘로지스트와 비단궁 화재가 연관되어 있었다고?’
당황한 앨리스의 기세를 읽은 크라운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율카네스!”
“?!”
크라운의 입에서 폰테임 후작가의 금기어이기도 한 마도사의 이름이 나왔다.
마침내, 나이에 맞지 않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앨리스의 표정도 흔들렸다.
“율카네스가 로지스트를 데리고 갔다! 내 비단궁을 불태우면서까지.”
상인 군주의 말에 앨리스는 영문모를 얼굴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 대마도사는 저희 폰테임에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연재해 같은 존재입니다. 저희도 그에게 피해 본 일이 많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앨리스는 아직도 얼굴에 멍이 다 지워지지 않은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렸다.
그 얼굴을 떠올리니 마음이 진정된다.
“무엇보다, 비단궁이 불탄 것은 유감이지만 그게 저희 잘못은 아니잖습니까?”
앨리스의 말에 크라운은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로지스트도, 비단궁도, 관리 못 한 내 잘못이지.”
그는 끄덕이던 고개를 멈춘 후 말을 이었다.
“야심 차게 준비했던 남진은 국경에서 막혔지, 마누스의 적통은 잃어버렸지, 비단궁은 불탔네. 최근엔 해양 괴수들이 우리 배들만 노려 침몰시키고 있어. 상황이 이럴진대 어떻게 폰테임과 협력을 이어 갈 수 있을까?”
“협력이라니……. 언제부터 펠리오 같은 강국이 일개 후작가와 협력을 했지요?”
앨리스는 크라운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말 그대로 폰테임은 제안만 했을 뿐이다.
제안을 하면서 살살 긁어 줬을 뿐이다. 펠리오인들의 욕심을.
그들이 오랫동안 염원하던 오스카의 넓은 곡창지대를 향한 욕망을.
“우리는 그저 마법 함 거래를 중개하면서 제안만 했을 뿐입니다. 실력 있는 기사와 용병을 지원했고, 식량이 부족한 펠리오에 체스카드의 밀을 군량미로 댔습니다.”
“지원이라고? 중개인 놀음으로 방랑 기사부터 용병 그리고 밀 한 톨까지 비싸게 팔아먹은 주제에…….”
마찬가지로 크라운 또한 앨리스가 말한 지원이라는 단어가 몹시 거슬렸다.
‘영악한 폰테임 놈들!’
사실상 폰테임은 중개인 역할만 했지, 직접적으로 손해 본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어찌 되었든! 아무리 우리 펠리오가 부유하다고 해도 더 이상 오스카와 다툴 여력이 없네. 폰테임과 체스카드에서 뭔가 더 큰 제안을 주지 않는 한, 조만간 우린 오스카와 화친을 맺을 것일세!”
크라운의 선포에 앨리스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생각보다 빨리 자신 쪽의 패를 꺼내게 될 것 같았다.
꾸르르르르.
그때, 크라운의 배에서 불쾌한 소리가 들렸다.
“끄응, 근래 스트레스를 받으니 속이 안 좋군. 뒷이야기는 좀 있다가 하지.”
크라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다.
덕분에 앨리스는 잠시뿐이지만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계획은 영영 끝났나?’
처음 세운 계획은 오스카를 펠리오와 함께 양분해 먹는 것이었다.
그 정도 요구를 할 지분은 확실했다.
펠리오 육군 중 일부가 폰테임을 비롯한 체스카드 전역에서 모집한 방랑 기사와 용병들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이유를 근거로 오스카 영토의 최소 4할 정도를 할당받을 계획이었다.
펠리오가 반발해도 펠리오 또한 오스카와의 전쟁으로 많은 국력을 소비한 상태일 테니, 폰테임 입장에선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인 셈이다.
그 과정에서 아스카 옆에 있을 로니아드도 포섭할 생각이었다.
겸사겸사 가문을 배신한 카디나 또한 처리하면 좋았고.
‘이 계획을 시행하기 위해 아버지를 설득하느라 힘들었는데……. 실패하면 꼼짝없이 정략결혼이겠군.’
처음 앨리스의 아버지 카라스 폰 폰테임 후작은 그녀의 계획에 부정적이었다.
오스카의 영토를 얻는다고 해 봤자, 바다 건너에 있는 영토다. 관리하기도 힘들다.
무엇보다 성공 확률도 높지 않았고.
그런 카라스를 설득한 것이 앨리스였다.
“앨리스, 너를 믿고 이번 일을 진행하지. 단! 카디나 관리 실패에 이어, 이것까지 실패하게 되면, 너는 바로 정략혼을 해야 할 거다.”
“하지만 저는 로니아드를 포섭하려고…….”
“로니아드는 너 말고도 다른 아이들로 충분히 포섭 가능하다는 것이 나와 알렉스의 생각이다. 앨리스 너에겐 너와 어울리는 등급의 남자와 맺어질 의무가 있다.”
당연히 카라스는 앨리스에게 책임을 요구했다.
‘보나마나 알렉스도 왔으니 여자인 나는 꾀주머니보단 정략결혼용으로 적합하다는 뜻이겠지.’
최근 그녀의 셋째 오라비 알렉스가 제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다.
자연스레 알렉스는 카라스의 꾀주머니 역할을 다시 하게 되었다.
앨리스의 활용도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 일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아버지는 나를 상인 군주에게 시집보낼 거야. 서서히 대비하는 게 좋겠어.’
펠리오의 상인 군주와 체스카드의 폰테임이 혈연으로 힘을 합치면?
북부의 절반은 사실상 폰테임의 영향을 받는다.
‘아무리 영악한 꾀를 내도, 카디나처럼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가져도, 귀족가 여자의 운명은 정략결혼인가?’
문득, 상인 군주의 거대한 체격을 떠올렸다.
자신의 작고 여린 몸이 저 거대한 몸에 매일 밤 짓눌린다고 생각하니, 썩 좋지 못했다.
‘로니아드…… 모든 게 그 남자 때문이야!’
애초에 이런 무리한 계획을 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오스카의 영토 할당은 핑계에 불과했다.
이 작전을 짠 앨리스 또한 잘 알았다.
모든 것은 앨리스 개인의 사적인 욕망과 질투 때문이었다.
처음엔 로니아드를 향한 호기심이었다.
난데없이 오스카로 떠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었고, 이를 위해 폰테임과 교단은 물론 북부의 거의 모든 정보 길드를 이용했다.
그들이 모아 온 정보를 보면서, 늘 로니아드와 함께 언급되는 여자가 거슬렸다.
‘스카이? 로니아드의 전속 창×라고? 근데 이 보고서에는 사촌 동생으로 되어 있네? 공주일지도 모른다? 무슨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 여자, 도대체 정체가 뭐야?!’
호기심에 이어 두 번째로 든 감정은 질투였다.
처음 염문설이 돌았던 여공작 이노와의 관계는 이해했다.
이노는 앨리스도 인정하는 자격이 되는 귀족이었으니까.
‘스카이라는 이 천한 계집! 정말 마음에 안 들어!’
하지만 로니아드와 애인처럼 붙어 다닌다는 스카이라는 여자는 몹시 거슬렸다.
그리고 로니아드가 테오스카에 도착했을 때, 마침내 스카이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아스카 테오스 데 오스카.
‘스카이라는 여자가 오스카의 공주라고? 설마, 로니아드와 아스카 공주가 결혼하게 되는 것일까?’
하지만 아스카는 아니었다. 왕족이면 뭐 하나? 애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천한, 왕족 같지도 않은 공주다.
심지어 지금까지 취합한 정보에 의하면 아스카는 망나니에 저능아 같은 여자다.
‘절대 인정 못 해!’
그런 자격 없는 여자가 자신도 못 누리는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로니아드와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전속 창×니, 사촌 동생이니, 전담 교사니, 호위대장이니 같은 이야기로 회자된다는 것이 앨리스는 참기 힘들었다.
‘부숴 버리고 싶어! 아스카, 그년의 모든 것을 빼앗고 싶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스카를 향한 질투!
딱 한 번 보았던 로니아드를 향한 갈망.
이 두 가지가 어느덧 펠리오와 오스카 두 나라를 전면전으로 치닫게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