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40
140
불씨가 역행한다.
요제핀의 전신에 화마가 너울쳤다.
“아아!!”
그녀는 기겁해서 자신의 몸에 옮겨붙은 불씨를 털어내려 허우적댔다. 그럴수록 불길은 더욱 거칠게 요동치며 요제핀을 살라 먹는다.
마법은 곧 무의식의 발현. 요제핀의 뒤틀린 심상이 투영된 마법은 마찬가지로 악의를 품고 있다.
인명을 경시하는 자가 발현한 주문은 마땅히 제 주인조차 물어뜯기 마련.
하지만 요제핀의 자연 발화가 토드 일행에 마냥 희소식은 아니었다.
마법사를 뒤덮은 화염이 점점 피처럼 붉은빛을 머금는다.
카리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토드, 저건!”
이젠 돌이킬 방도가 없다는 걸 깨달은 걸까.
요제핀은 발버둥을 멈췄다.
“······흐으.”
그녀의 눈동자에선 피 섞인 진물과 더불어 선명한 적의가 뚝뚝 묻어난다.
“종국에는 자신마저 연료로 태울 작정이군요.”
고개를 비튼 요제핀은 마력을 갈무리하지 않고, 더 풀어냈다. 그러자 그녀의 등 뒤로 불길이 혈관처럼 자라나더니 앙상한 관목의 형태를 갖춘다.
즉각 토드는 서리 반지에 마력을 실었다. 오른 검지가 잘려나갈 것처럼 저렸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휘하의 하수인들에게 퍼뜨린다.
이에 호응하여 몸뚱이만 남은 둘라한이 장벽을 가르고, 갈라진 불길을 뛰어넘은 거인은 요제핀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는 날파리 쳐내듯 팔을 휘둘렀는데, 가지에서 떨어진 쐐기들이 거인을 향해 쏟아졌다.
콰콰콱!!
【크갸아악!!】
거인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쏟아내며 나아갔으나, 요제핀의 낭송은 거침이 없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진 주문 세례를 견디지 못한 거인은 장렬하게 전소했다.
머리를 주워든 마르커스가 재빨리 가세했으나, 요제핀이 양손을 모아 합쳤다.
슈욱─···
마르커스는 코앞에서 넘실거리는 아지랑이를 목격했다. 그는 재빨리 목에 걸린 광륜표를 부여잡았다.
펑!
심문관은 가까스로 보호를 둘러 저지해냈지만, 충격으로 비틀거렸다. 그 사이, 요제핀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무재에 당도하는 파이로낙스여!”
입가에 녹아내린 손을 대고 불어넣은 숨결이 타오르는 군마가 되어 엄습한다.
카리나 역시 맞불을 지폈다.
“삼켜라, 카룬틸의 염사!”
유려하게 손목을 휘감으며 뻗어 나간 화염이 혀를 날름거린다.
거침없이 달리는 군마와 입 벌린 독사.
동일한 불길이나, 반영된 심상은 서로 다른 두 마법사의 주문.
양쪽에서 뻗은 격류가 대로 한복판에서 격돌했다.
콰앙!!
충격파에 휩쓸린 건물들이 무너지고, 바닥에 깔려있던 파편들이 사방에 튀겼다.
공기 중의 열기만으로 얼굴이 익을 것만 같다.
카리나가 주문으로 상쇄시켰지만, 요제핀은 한발 앞서 낭송을 거듭했다.
‘주문에 담긴 구결은 카리나가 한 수 위지만, 낭송 속도에서 밀린다.’
아무래도 대단위 주문에 특화된 카리나다. 이런 급박한 공방에선 그녀의 장기가 돋보이긴 어려웠다.
“에스터리츠 양! 마력을 가다듬으세요.”
토드의 외침에 카리나가 눈썹을 치켜뜨며 맞받아쳤다.
“여기서 물러서라고? 그랬다간 끝장이야!”
다시 맞붙은 마르커스가 요제핀의 이목을 끄는 사이, 토드는 침착하게 그녀를 타일렀다.
“어차피 제 하수인들이 있지 않습니까. 요제핀은 수하에 불과합니다. 아직 우리가 상대할 적수는 저 너머에 있어요! 지금 소동을 주도한 원흉 말입니다!”
사납게 마력을 달구던 카리나의 기세가 차츰 누그러진다.
“그때를 대비해서 당신의 마력을 안배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입술을 곱씹은 카리나는 낮게 되뇌었다.
“···그럼 난, 또 너한테 의지하는 거잖아.”
“의지하는 게 아닙니다. 서로 협력하는 거죠. 당신의 힘이 쓰일 곳은 따로 있습니다.”
언뜻 카리나의 눈가에 물기가 맺히더니, 그녀가 힘겹게 허덕였다.
“그렇다고 해도, 나, 난. 민폐만 끼친걸. 번번이 자존심만 세우고, 쓸모도 없으면서 나서기만 하고···.”
여태껏 애써 내색하지 않았지만, 한때 덩달아 수학했던 동문이 타락한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을 향해 살의를 쏟아내는 상황.
항상 당찬 척을 해도, 엄연히 카리나는 소녀와 성년 사이의 애매한 어딘가에 있는 인간.
고개를 떨군 카리나는 심적으로 위태로워 보였다.
토드가 화염에 휩싸인 요제핀을 가리켰다.
“요제핀의 상태가 정상으로 보입니까?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진작 죽었을 겁니다. 그녀는 흑마법사들과 협력하면서 모종의 성사를 받은 게 분명해요.”
토드가 보기에 요제핀의 경지 자체는 카리나에게 한참 못 미친다. 그럼에도 그녀가 시종일관 카리나를 압도하는 건 그녀에게 작용하는 모종의 권능 탓이다.
“상대는 생명을 연소하는 금제까지 건드려가며 덤비는 겁니다. 무모한 편법을 써가며 달려드는 상대에게 밀렸다고 자신을 폄하하지 마세요.”
드물게 토드가 단호한 어투로 말하자, 카리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당신이 쓸모없는 게 아닙니다. 당신의 힘은, 충분히 가치가 있어요. 요제핀은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카리나는 인정하기 싫은 눈치였으나, 무겁게 입을 떼었다.
“···요제핀은 강해.”
그러자 토드가 히죽 웃었다.
“그래도 제겐 못 미칩니다.”
낭송했던 주문을 소진한 요제핀은 파멸의 기사와 둘라한의 합공에 속수무책이었다.
“···네가 그토록 강하다면, 난, 필요 없는 게 아니야? 쾨흘링 때처럼, 짐덩이일 뿐인데.”
사령술사는 부드럽게 속삭였다.
“카리나.”
이어 토드는 조심스럽게 그을린 자국이 역력한 어깨를 쓸어내렸다.
“요제핀을 쓰러트린 뒤, 우리는 무저갱에서 올라올 존재를 상대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놈은 저만으론 버거워요.”
서리 반지를 찬 손에서 올라오는 서늘한 기운에 카리나가 나직이 신음했다.
“특히 그놈은 역병과 관련된 성사를 내리는 만큼, 불이 특효약일 겁니다. 전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으려면 버겁듯이, 아무리 잘 벼려낸 칼이라도 상황과 쓰임새에 따라 부엌칼만도 못할 수 있는 것이다.
‘카리나는 이런 조무래기한테 낭비할 자원이 아냐. 보스전에 쓸 필살기지.’
원래 누커는 PVP에 사용되는 빌드가 아니다.
단발성 주문을 쉬지 않고 남발하는 캐스터와 달리, 누커만의 묵직한 한 방은 궤를 달리한다.
확신에 찬 토드의 시선을 보곤 비로소 카리나의 손에 맺혀있던 열기가 사그라든다.
“정말 악마가 강림한다면, 우리만으로 물리칠 수 있을까?”
사령술사가 미소 지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의 여정을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군요. 저, 이래 보여도 나름 퇴마 경력직입니다? 스칼바냐르에서도 악마 놈을 때려잡았지요. 그때도 당신 같은 조력자가 있었답니다.”
토드의 너스레에 카리나는 울먹임을 그쳤다.
“넌, 내가 그 조력자만큼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물론입니다.”
망설이는 기미 없이 튀어나온 즉답.
카리나는 눈가를 비비곤 다시금 권표를 쥐었다.
“···알았어. 이렇게 간곡하게 부탁하니 들어주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요. 악마가 현세에 뛰쳐나온다니, 그것도 홍염 마탑이 있는 한복판에서요.”
여전히 눈매 끝이 붉게 물들어 있었지만, 다시금 카리나의 눈동자가 결연해졌다.
“미안. 이 상황에 시간 끌어서.”
토드는 어깨를 으쓱이며 손을 떼어냈다.
“아닙니다. 대강 정리된 것 같으니, 확인해볼까요?”
이미 요제핀은 바닥에 쓰러진 뒤였다.
그럼에도 숨이 끊어지지 않고, 간헐적으로 헐떡이고 있었다.
반쯤 뭉개진 안면은 탈피를 거듭해 끔찍한 몰골이었다.
“요제핀. 넌···. 고작 이것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살덩이로 전락한 요제핀은 카리나가 쥔 권표를 응시했다.
“···고작? 그건 나한테 전부···였어. 그으윽, 내가 받아야 했을··· 그걸 노리고, 마탑에 들어와 죽도록 발버둥 쳐왔다고···.”
온통 익어버린 살에서 유독 불쾌한 잔향이 토드의 신경을 거슬렀다.
‘유황 냄새.’
게다가 피부가 벗겨진 요제핀의 신체는 도저히 정상적인 인간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곪아 있었다.
가닥처럼 자라난 줄기들이 이미 신체를 잠식했고, 마력을 증폭하는 매개로 보이는 불길한 문양들이 새겨진 모습.
육안으로 흑마법과 접목된 정황을 살핀 카리나는 참담한 듯 물었다.
“그걸 위해 흑마법사들의 조력을 받았다고. 난, 도저히 널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
부족한 경지를 극복하기 위해 흑마법의 손을 빌리는 건, 마법사에게 있어 바닷물로 갈증을 해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입꼬리를 끌어올린 요제핀이 빈정거렸다.
“···그러니까 네가 죽도록··· 싫은 거야···.”
질끈 눈을 감은 카리나는 한숨을 흘리곤, 이내 토드를 향해 말했다.
“토드, 결착은 내가 지어도 될까? 홍염 마탑의 마법사로서, 책임이 있는 것 같아서.”
“좋으실 대로.”
손을 모은 카리나는 권표를 겨눈 채로 읊조렸다.
“요제핀 라우터바흐. 나는 홍염 마탑의 마지스터로서 메를리누스의 맹세를 저버린 그대를 단죄한다.”
붉게 달궈진 쇠뭉치 끝에 일점으로 화염이 결집한다.
“무릇 마법이란, 세계의 이치에 시전자가 간섭하여 가변을 자아내는 권능. 우리는 이 신비로운 힘을 운용하는 데 있어 상시 그 무게를 절감하고, 인세의 장벽에 부닥친 사람들을 돕는 것이 마법사로서 마땅한 사명임이라.”
카리나의 눈동자가 붉게 타올랐다.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네 논리는 정당화될 수 없어. 떼쓰는 아이도 너만 못해. 네 행동으로 말미암은 결과를 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죽어 나갈지!”
허덕이던 요제핀이 조소를 흘렸다.
“···난. 너한테, 그흐, 진 게 아닌걸···?
눈썹을 찡그린 카리나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싸늘히 뇌까렸다.
“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행동해. 너와, 흑마법사들의 계획은 반드시 막겠어.”
요제핀이 입을 열기도 전에 권표가 번뜩였다.
쏟아진 불길이 그치고, 카리나는 확실히 사망을 확인한 뒤에 봉을 거둬들였다.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훌륭합니다. 고통 없이 죽었을 겁니다.”
“저 녀석이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자비로운 처사겠지만, 너가 마력을 안배해두라고 했으니까.”
미소를 유지하던 토드는 느닷없이 수확된 피의 업에 당황했다.
‘꽤 많은 양인데. 대량 학살이라도 저지른 정도가 아니고서야 이만한 양이···’
토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침 눈앞에 죽어있는 요제핀이라면 어림잡아 비슷한 양이다.
‘카리나는 하수인도 아닌데. 그냥 처치에 관여해서 일부가 들어온 건가?’
그렇다고 원작에서 어시스트 개념이 있나 싶었냐면 그건 또 아니다.
“뭐해, 우리 급한 거 아니었어?”
토드를 상념으로부터 일깨운 건 카리나의 독촉이었다. 퉁명스러운 기색을 가장하고 있지만, 항상 날카롭게 응시하던 눈매가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동료 상태면 처치 경험치도 나눠서 수급했었나.’
새삼 카리나 내면에서의 인식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 잠시.”
토드가 무릎을 굽힌 채 향로를 꺼내들자, 카리나가 미간을 구겼다.
“뭐? 너···”
어김없이 낭송.
“내가 그대를 부르노라.”
기껏 동료 취급을 받은 지 10초도 안 됐는데, 곧장 관계가 파국으로 곤두박질칠 만한 언동이었다.
이마를 부여잡은 카리나의 눈자위에 경멸감이 어리는가 싶다가도, 차마 타박하진 못하겠으니 힘이 풀렸다.
“있지, 이젠 내 심경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
낭송을 마친 토드가 태연히 답했다.
“그래도 써먹을 수 있는 건 아낌없이 사용해야지요. 나름 목숨을 건 결전인데, 가릴 건 없지 않습니까.”
적당한 온도로 가열해서 살만 녹여달라는 부탁은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을 것 같으니.
해골 마법사로 일으키면 안성맞춤이겠으나, 별수 없이 여기선 송장 마법사로 일으킬 수밖에.
“그대가 축적한 업고로 불러내어 속박한다. 이제 나의 수족으로 복속하여, 내 명령을 받들라.”
아무래도 손상된 부위가 좀 있으니, 토드는 녹아내린 살점 거인의 잔해를 끌어모아 수복해냈다.
【으으, 으으···.】
여태껏 토드가 만들어냈던 망자 중에 외형은 가장 공포스러웠다. 카리나는 애써 입을 틀어막은 채 헛구역질을 억눌렀다.
이걸로 일단 마법사는 둘.
“크흠, 이제 가볼까요? 뫼를렌푸르트를 구하러.”
어깨에 장검을 걸친 이스라가 쾌활하게 답했다.
【하, 하! 하. 본인은 준비되었네!】
망자의 몰골을 보곤 마르커스는 혀를 찼으나, 광륜표를 내려놓으며 다그쳤다.
【이미 시간이 꽤 지체되었다. 사령술사.】
“그래도 충분한 공양물이 모이진 않았을 겁니다. 도시 상공에 만연한 마력의 동향을 보아하니, 경비대가 제법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 같군요.”
그나마 대피가 원활하진 못해도 착실히 진행된 탓에, 원래라면 걷잡을 수 없이 나왔을 사상자는 어느 정도 차단했다. 요른카리에서 강림했던 놈이 도시 전체를 피양분 삼았던 걸 생각해보면, 이미 상당한 전력을 깎고 전투에 임하는 셈.
“카리나. 미리 주문을 낭송해두세요. 최대한 강하고 큰 거로 부탁드립니다.”
“강한 거? 이, 일단 알았어.”
미간을 좁힌 카리나는 작은 입술을 달싹이며 낭송에 매진했다.
대앵─
유독 종소리가 처연하게 울려 퍼지더니, 어느새 문득 물기가 콧잔등에 떨어졌다.
【아, 비가 오려는군! 마침 다행이네! 저 요술쟁이가 퍼뜨린 불은 꺼지지 않겠나.】
그런 것치곤 빗방울에 맞은 부위가 화끈거린다. 마치 가열한 녹물이라도 튄 것처럼.
“마르커스! 카리나를 보호하세요.”
토드의 지시에 재빨리 마르커스가 신성을 펼쳤다. 한두 방울씩 떨어지던 빗줄기가 점점 거세진다.
대앵─
그제야 토드는 종소리가 뫼를렌푸르트의 종탑으로부터 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더 아득한 곳으로부터 울리는.
고귀한 이의 행차를 알리는 종이다.
///
광장 한복판에 이르러, 토드 일행은 바닥에 엎드린 이와 맞닥뜨렸다.
누군가에게 경배를 드리듯, 허리를 굽히고 있던 사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네가 사령술사더냐?”
“그렇습니다. 당신이 데믈러인가요?”
혀를 찬 노인은 절그렁거리는 사슬을 끌며 대꾸했다.
“내 이름은 누구한테 들었는고.”
“클라우스 씨가 상세히 설명해주시더군요.”
“끌끌, 그 쥐새끼가 입을 놀렸던가. 뭐, 이제 와선 상관없을 일이다.”
토드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손에 차고 계신 반지, 돌려주시겠습니까? 그럼 적어도 고통스럽게 죽는 선에서 끝내드리겠습니다.”
낄낄거린 데믈러는 용해 반지를 들어 보이며 답했다.
“고통스러운 최후가 담보라면, 거부했을 시엔 무슨 짓을 벌일 작정이란 말인가.”
토드는 빙긋 웃으며 카탈로그를 읊는 홈쇼핑 진행자처럼 떠들었다.
“당신 같은 흑마법사는 우수한 골재이지요. 다방면으로 활용할 구석이 많습니다. 뇌는 연마제로, 눈알은 비전 의식, 뼈는 고위 망자로 가공하여 처리하고, 손가락은 마력을 고취시키는 부적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
오묘하던 카리나의 시선이 조금 싸늘해졌다.
“이미 생명을 다해가는 비루한 몸뚱이. 누군가에게 쓸 데가 많다면, 그보다 나쁠 일은 없지.”
토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 그렇다면 부디 기증하시지요.”
이빨을 드러낸 데믈러가 낮게 뇌까렸다.
“아쉽게도, 육신을 탈피한 뒤에 허물은 남기지 않을 생각이라 말이야. 존귀한 분께서 오시면, 나를 거두고, 새로이 탈바꿈할 것이니.”
대앵─!
더욱 또렷해진 종소리는 기이한 음색으로 필멸자의 정신을 흔들었다. 이 악물고 낭송을 유지한 카리나가 다급히 속삭였다.
“토드, 지금 써야 하는 거 아냐? 의식을 방해해야 하잖아.”
“아뇨. 카리나. 어차피 주문으론 의식에 훼방을 놓을 수 없습니다. 놈이 완전히 도착했을 때를 노려야 합니다. 제가 신호를 줄 테니, 정확한 시점에 발동하세요.”
“···알았어.”
일단 그 전에 앞서 흑마법사는 치워둘까.
‘이스라.’
나름 만전을 안배해놓고 이스라부터 내보냈는데, 준비가 무색하리만큼 데믈러의 목이 허공에 휘날렸다.
쿵.
막상 머리를 베어놓고 이스라도 당황했는지, 안광을 깜빡였다. 그녀는 자신의 건틀렛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본인이 원래 이렇게 강했던 건가···?】
대앵─!
빗줄기는 뫼를렌푸르트를 뒤덮었다.
산성을 띤 운무가 도시의 상공에 자욱하게 드리우고, 장막에 삼켜진 공간부터 야금야금 현실의 경계가 무의미해진다.
문득 잘려나간 머리가 속삭였다.
“오오, 찬미하라. 가혹한 사망의 운명을 타고난 피조물들을 굴레에서 꺼내주실 이를!”
인상을 찡그린 이스라가 재빨리 머리통을 짓밟았다.
【이런, 이놈도 모가지가 따로 노는 놈이었나?!】
괜히 불편해진 마르커스가 헛기침을 흘리다가, 안개 저편을 응시했다.
그의 목에 걸린 광륜표가 어느 때보다 밝게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지독한 놈이 온다.】
그러고 보니 타종이 13번 울렸던가.
흐릿한 안개 너머, 거대한 형체가 광장을 굽어봤다.
토드가 일으켰던 살점 거인들은 거인이라 칭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놈은 거대했다.
온몸에 펄떡대는 물집과 종기가 가득했는데, 그 크기만 하더라도 작은 연못에 필적했다.
저만한 덩치가 걸어온다면 대지가 요동쳤겠지만 어째서인지 날벌레들의 사각거리는 날갯짓과 구더기 끓는 소리만 들렸다.
악마가 비대한 손을 들어 토드를 가리켰다.
─너.
묵직한 울림이 두개골을 뚫고, 머릿속까지 울리는 것만 같다.
초월자의 시선은 육신을 넘어 그 안에 기거하는 존재까지 미치니.
─난 널 안다.
“저희가 구면이던가요? 아.”
고개를 기울인 채 반문하려던 토드는 새삼 악마의 생김새를 돌아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새삼 모니터가 아니라 직접 보니 더 못생겼군요. 임푸트레카!”
기우를 몰고 오는 자, 임푸트레카.
레벨 88의 대악마.
성전사를 플레이했을 적, 막 지상에 강림하려던 놈을 토벌한 바 있었지.
토드는 마치 잊고 있던 오래전 인연과 재회한 것 같아, 반가운 기분이었다.
반면 사령술사를 내려다보는 악마의 눈자위엔 혼란이 깃들었다.
─또, 네놈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