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48
148
그리하여 뫼를렌푸르트 앞에서 토드를 향한 공판이 개최되었는데, 사실상 허허벌판에서 자재들을 가져와 임시로 자리를 마련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선제후들에겐 고유의 재판권이 있으므로 그들의 존재가 곧 고등법원의 권위에 맞먹으므로 야지에서 재판을 벌여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다만 평소엔 마주치기도 어려운 고위 귀족들이 한데 모인데다가, 사실상 사령술사에 대한 마녀재판이나 다름없는 셈이니 진귀한 구경을 해보겠다고 군중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정지! 이 이상 접근은 불허하겠다!”
“아니, 코빼기라도 보게 좀 들여보내 주쇼! 난 이미 나았다고! 이 얼굴이 병에 걸려 뒤져가는 몰골로 보이쇼?”
어떻게든 멀리서 머리털이라도 보겠다고 몸을 들이미는 사람들과 경비병 사이에 실랑이가 일었으나, 란츠크네히트와 고지대 용병들이 삼엄하게 지키는 법정까진 도달하지 못했다.
바깥의 소란과 별개로, 치안법원 내엔 적막이 흐른다.
법대 위엔 공판의 판사로 배속된 다섯 명의 선제후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토드 옆에 앉은 이스라는 안광을 세차게 떨고 있었다.
【꿀꺽.】
침까지 삼키는 모습에 토드는 애써 실소를 참으며 의념으로 물었다.
‘이스라, 왜 그리 긴장하십니까?’
【자네가 태연한 게 이상한 걸세.】
‘저는 한점 지은 죄 없이 결백하니, 긴장할 이유가 하등 없지요. 당신은 전장에서도 두려움 없이 의연한데, 구태여 여기서 떨 필요가 있습니까.’
이스라의 안광이 가늘어졌다.
【물론 본인도 자네는 무죄라고 확신하네! 다만 여긴 창칼과 고성이 오가지 않을 뿐, 본질은 전장과 마찬가지이지 않나.】
그녀의 통찰은 실로 타당했다.
이곳은 무형의 공방이 오가는 곳.
【···본인으로선 차라리 피 튀기는 전투가 낫네. 이곳은 본인처럼 말주변이 부족한 무인이 활약할 수 없는 곳이니.】
자신에게 불리한 전장을 꺼리는 무인의 성정이 고스란히 배어 나오는 발언이었다.
지극히 그녀다운 발상에 토드는 미소를 흘렸다.
‘염려 마세요. 이스라. 칼에는 칼로, 혀에는 혀로 대응하는 법입니다. 설마 제가 언변으로 저들에게 밀릴 거라 생각합니까?’
투구 속 안광이 이글거린다.
【아무렴! 자네는 누구보다도 사특한 사령술사가 아닌가! 간교한 재주와 번뜩이는 음모로 저들을 능멸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네!】
자신이 준비한 게 그리 무시무시하고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토드는 의욕 넘치는 하수인의 대답을 웃어넘겼다.
이윽고 선제후들 가운데 수석에 앉아있던 자가 일어서자, 법정에 참석한 모두가 기립했다.
“나, 제국의 최고대법관이자 시도우의 성직제후인 요한 슈바이크 폰 움슈타트는 사령술사 토드 셰우드에 대한 특별 재판의 개최를 선언하겠다. 본 공판의 심판원으론 지엄한 라이히슈타크의 일원으로서 동석한 에츠헤어조크 올렌부르크, 그로스헤어조크···”
시도우 대주교는 장장 5분여 동안 선제후들의 긴 이름을 다소 힘겹게 낭독했다.
‘저러다 숨넘어가겠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양피지를 내려놓은 대주교는 토드를 향해 고했다.
“멜다비어 북부령의 프라이헤어, 토드 셰우드. 피고에겐 총 다섯 가지 죄목이 부과되었다.”
다섯 가지나?
이틀의 말미는 자신이나 이쪽이나 다소 촉박하다고 생각했는데, 용케 머리를 짜내 꼬투리 잡을 구석을 만들어낸 모양이다.
어디 얼마나 대단한 죄목인지 들어보실까.
“우선 첫 번째로, 피고는 차마 입에 담기에도 불경한 영락체를 숭배하는 이교도라는 것이다. 이는 천상의 유일한 존엄자이시자, 거룩한 구주되신 아버지 태양의 신성을 부정하는 행위이며, 제국을 다스리는 태양교단에 대한 도전이다.”
대번에 방청석으로부터 야유가 쏟아진다.
선제후들이 개관한 특별 재판이므로, 방청객으로 참석한 이들은 대부분 뫼를렌푸르트의 부호층이거나, 선제후들이 휘하에 수행단으로 데려온 대사와 하급 귀족들이다.
당연히 저들은 토드에게 적대적이다. 반면 토드에게 호의적인 이들은 멀찍이서 구경하고 있으니, 의도적인 배치가 틀림없었다.
치졸한 수작이지만, 나름 저들로선 자신을 흔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겠지.
‘어림도 없지.’
자신은 공략 사이트에서 비주류 육성 빌드의 효율성을 두고 백 명이 넘는 인원과 키배를 벌인 적도 있다.
하물며 유명 인터넷 방송인이 직접 판까지 깔고 수천 명의 추종자 앞에서 조리돌림을 했어도 끝내 아가리로 그들을 격침시킨 전과도 있는데, 이 정도론 자신의 멘탈을 긁을 수 없다.
“존경하는 심판원분들. 소인이 감히 답하겠나이다. 말씀하신 대로, 비록 저는 솔마르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이나, 그분의 신성을 부정하지 않나이다.”
시도우 대주교가 눈동자를 부릅떴다.
“궤변이로다! 외교인(外敎人)이 구주의 성결함을 입에 담을 자격이 있기나 하던가!”
재차 방청석이 시끌시끌해진다.
“저 사악한 이단 놈이 어딜 감히!”
“목을 매다시오!”
인상을 구긴 시도우 대주교는 거칠게 법봉을 내리쳤다.
“정숙, 정숙!!”
대주교의 일갈에 법정이 고요해졌다.
“빛과 어둠은 자연스러운 순리입니다. 정오의 따사로운 빛은 우리로 하여금 은혜로운 일상을 영위해주지만, 자정의 포근한 어둠이 있기에 우리는 안식을 취할 수 있고, 다음날에 일어설 활력을 회복하지 않습니까.”
차분하게 읊조린 토드는 마저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처럼 태양교단이 양지에서 살아있는 자들의 삶을 관조하고 어버이 신의 말씀을 전하듯, 음지에서 죽은 자들의 인도와 영원한 안식을 위해 헌신하고 보살피는 것. 그게 흑색 학파의 일원으로서 어머님께서 제게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사령술사는 군중과 대주교들의 모멸 어린 시선 속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이 뚝뚝 묻어나는 투로 말을 이었다.
“저를 포함해 여기 있는 모두가 필멸의 운명을 타고난 피조물들이니, 삶과 죽음의 양가성은 다들 익히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둘은 필연적으로 맞물리는 속성을 타고났습니다. 어찌 죽음을 관장하는 어머니를 믿는 자가, 생명을 가져다주는 아버지의 권세를 감히 의심하겠습니까.”
당당한 태도에 방청객이 수군거렸다.
“···정말 흑마술 부리는 놈들이랑 똑같은 패거리 맞나?”
“시체 만지는 놈이라더니, 말하는 본새가 학자들이랑 비슷한데.”
이에 좌중을 살피던 하이젠베르크 대주교가 애써 당황한 기색을 수습하며 되물었다.
“그렇다면 피고는 천주경의 구절을 낭독할 수 있겠는가! 마땅히 구주의 신성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이를 증명할 수 있을 터!”
‘간교한 놈 같으니. 네놈이 제법 말재간이 있다지만, 사교에 속한 자가 감히 경전을 입에 담진 못할 거다.’
흑마법사들을 비롯해 외신을 섬기는 이교도들은 빛의 경전을 외는 것만으로도 몸이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대주교는 제 딴에 외통수라고 확신하던 찰나였다.
“찬미합니다! 이 땅을 처음으로 밝히신 분. 드높은 창공의 권좌에서 피조물들을 굽어살피시는 언약의 이행자시여!”
으레 게임을 하다 보면 로딩 중 화면 하단에 그럴싸한 어록이나 문구들을 실어주기 마련이다.
성전사를 플레이하면 질리도록 보는 것이 태양교단의 경전에 실린 글귀들이다.
게다가 1회차 당시 틈만 나면 동료 성전사들이나 자신의 캐릭터가 외치는 함성의 출처가 경전이니, 외우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터득할 수밖에 없다.
사령술사는 대주교들 앞에서 일체의 망설임이나, 버벅거림 없이 경전의 구절을 암송했다.
“···구주께서 임재하시어 지상의 피조물들을 구원하심을 믿나이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소서.”
나름 전전전전직 성전사다. 인게임 내 흐른 시간을 감안하면, 오히려 자신의 짬바가 저 대주교들보다 앞선다고 볼 수 있다.
‘니네가 경전을 알어? 내가 성전사만 1000시간 넘게 했다.’
하물며 지옥 원정까지 찍었던 몸인데, 토드로선 가소로울 따름이었다.
“이것으로 제 변론이 충분하길.”
하이젠베르크 대주교의 표정이 고목처럼 굳었다.
“······.”
대주교가 아무 말도 못 하니 대번에 방청객들이 술렁였다.
“저게 맞소?”
“아니, 이 사람이. 어찌 신자가 천주경도 몰라?”
“커험, 거 모를 수도 있지. 내가 그래도 기부금은 꼬박꼬박 냈다오.”
경전은 값비싼 서책에 실려있는 데다, 고어체로 적혀있어 재력과 학식을 동시에 갖춰야 접근할 수 있다. 덕분에 경전과 이를 낭독하는 사제들은 자연스런 권위를 갖추기 마련.
그런데 이교도라 여겼던 자의 입에서 유산층조차 잘 모르는 경전의 내용이 풀버전으로 튀어나왔다.
이쯤 되면 슬슬 인지 부조화가 오기 시작한다.
분위기가 요상한 방향으로 흐를 기미가 보이자, 시도우 대주교는 인상을 찡그렸다.
“받아들일 수 없다! 애당초 불신자의 신앙 고백은 유효성이 없으며, 이는 이어질 귀책사유에서 반박할 수 있다! 두 번째 죄목은 피고가 행하는 요사스러운 술법이다!”
그는 서기관들이 바삐 가져다준 양피지들을 그러모아 읽어내렸다.
“경전에 가로되, 구주께서 이 땅에 도래하시면 생전에 독실했던 자들이 모두 부활하여 천상에서 영생을 누린다고 하시었다. 하여 죽은 자의 장례 절차는 사제의 주관하에 시신을 정결케 하는 추도미사를 거쳐 입관을 진행하도록 교회법에선 명시하고 있다.”
원작의 세계관에서 사람들이 유독 화장을 꺼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태양교단에선 언젠가 솔마르가 지상에 강림하여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고, 영생을 선사할 거라 믿기에 매장을 선호하는 관습이 뿌리내렸다.
미라를 만드는 건 고대에 사장된 관습이고, 현시대엔 무덤이나 관을 짜는데 훨씬 공을 들인다.
‘이걸 처음 들었을 땐 시신이 널린 세상이니 일으킬 게 많아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철저한 오산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교리상 살인범보다도 도굴꾼을 훨씬 혐오한다.
사령술이 유독 금기시되는 경향도 이에 따른 결과물이다.
저들이 보기에 묘지에서 서성이거나 수상할 정도로 관에 집착하는 꼬락서니가 도굴꾼과 다를 바 없으니, 사령술사라면 거품 물고 까무러치는 게 일상이었다.
“피고의 요술은 사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의지를 억압하여 강제로 사역하는 극악무도한 악행이다!”
대주교의 고발에 방청객들이 수긍했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죽은 사람의 몸에 손을 대다니. 천하의 쌍놈이 따로 없지.”
“죽이시오!”
이스라가 의념으로 나직이 물었다.
【토드, 아까부터 앵무새처럼 떠드는 놈이 있던데, 본인이 처리해도 되겠나?】
‘참으세요.’
토드도 사형무새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자중해야 한다.
저들은 눈물의 업과 피의 업으로 일으키는 망자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이어지는 세 번째 죄목도 이와 연관이 있으니, 일부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대악마가 강림한 당시, 무수한 숫자의 유령들이 물결처럼 몰아닥치는 흉악한 참상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 또한 피고의 권능으로 말미암은 현상이 아닌가?”
언뜻 저들이 보기엔 백귀야행이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겠지. 동시에 수천의 영가들이 솟구치는데 어지간한 담력이 아니고서야 제정신을 붙들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무저갱의 존재를 상대하기 위해선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수천의 희생자들이 안식에 들지 못하고, 피고의 수족으로 지상에 남아 영영 고통받는 것이 어찌 불가피하다 이를 수 있는가!”
토드는 빙긋 웃으며 답했다.
“전하, 저는 단지 부름에 응답한 자들만을 일으킬 따름입니다. 제가 모시는 어머니 오르카사의 이름에 맹세코, 대악마가 강림했던 날 일어섰던 망자들은 순전히 자신들의 의지로 저와 더불어 무저갱의 존재와 맞섰나이다.”
“말도 안 돼. 네놈이 사악한 주문으로 불우한 자들의 영혼을 사로잡은 것이 아니더냐?”
하이젠베르크 대주교의 추궁에 토드가 손짓했다.
“제가 내세울 증인이 이를 증명할 겁니다.”
【······.】
마르커스는 토드와 시선을 마주했다.
이내 하이젠베르크를 대주교를 돌아보던 심문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선제후들 앞에 망자가 바로 섰다.
【···나는 심문관 마르커스요.】
투구를 벗은 마르커스의 창백한 낯빛을 드러나자, 방청객들이 수군거렸다.
“이런, 제기랄. 진짜 송장을 끌고 오다니···.”
“우읍, 욱.”
마르커스를 헤아리는 대주교들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눈앞에서 그들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존재가 태연히 서 있으니, 심사가 꼬일 수밖에.
일찍이 마르커스를 대면했던 하이젠베르크 대주교가 황급히 제지에 나섰다.
“공, 저자는 자신이 속한 교구마저 잊은 자요! 사령술사의 마술에 지배되어 영락한 존재가 감히 교회의 심문관을 참칭하니, 속히 이 자리에서 끌어내는 게 지당하오!”
침음을 흘리던 시도우 대주교가 되물었다.
“심문관 마르커스, 그대는 섭리를 거스르는 불경한 존재다.”
【실로 그렇소.】
“그렇다면 그대는 생전의 모습을 흉내 내는 사령술사의 수족에 지나지 않는가.”
마르커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는 비록 사령술사의 권능에 의해 되살아났으나, 오롯이 나의 의지에 따라 이 자리에서 증언하고 있소. 거룩한 구주께 맹세코.】
“그마저도 마법사의 간섭에 의한 허상이라면?”
심문관은 대주교 앞에서 성검을 뽑았다.
호위병들이 창대를 세우자, 그는 검날을 자신에게로 돌린 채 읊조렸다.
【빛이, 있으라.】
백광이 사무친다.
선명하게 타오르는 빛무리에 시도우 대주교의 동공이 요동쳤다.
여태 침묵하던 순록대공은 숨을 들이켰고, 베라나드 공왕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
“와아···!”
하이젠베르크 대주교가 이를 악물었다.
“미혹되지 마시오! 나는 이미 저 요술을 보았소! 분명 공들여 꾸민 눈속임에 지나지 않을···”
마르커스는 그들 앞에서 자신의 손바닥을 베었다.
창백한 손 위로 새빨간 혈흔이 샘솟는다.
심문관은 유유히 성검을 거두며 속삭였다.
【아직도 의심하는가.】
마르커스는 불신자들 앞에서 손바닥을 내보였다.
상처는 말끔하게 나은 뒤였다.
거룩한 힘이 불경하다 여긴 존재를 치유했다.
하이젠베르크 대주교의 몸이 휘청이더니, 뒤로 넘어갔다.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무시무시한 적막이 내려앉자 시도우 대주교가 급히 법봉을 내리쳤다.
“휴정, 잠시 휴정을 선언하겠다!”
맛이 어떠냐, 이놈들아.
토드는 여유롭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