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86
186
인간의 몸뚱이가 볼링 핀처럼 쓰러진다.
폭음이 울릴 때마다 갈기갈기 찢겨나간 핏덩이가 사방에 흩날렸다.
마름모꼴로 밀집한 보병진에게 적의 포격은 치명적이었다. 약 2km 너머에서 날아오는 포탄은 머리 위를 스치고 날아가거나 발치에 떨어지는 게 대부분이었으나, 일부 눈먼 대포알이 대열을 할퀴고 지나갈 때마다 너덧 명씩 쓰러졌다.
특히 밀집 대형의 외곽을 이루는 장창병들의 손실이 극심했다. 잔뼈 굵은 연대장이 목청을 높였다.
“엎드려! 바닥에 엎드려라!”
굉음이 난무하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살고자 하는 자들은 용케 그의 외침을 듣고 황급히 들판에 몸을 숙인다.
곳곳에서 장대 떨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개중에는 쥐고 있던 장창을 놓치거나, 무질서하게 뒤엉킨 창날에 등을 찔리는 이들도 속출했다.
“악, 등신아! 그걸 거기다 내던지면!”
어설프게 몸을 웅크렸다가 서로 깔려서 뒤엉키는 병사들도 적지 않았다. 부족한 경험이 여실히 드러나는 촌극이었다.
‘모든 병사가 능숙할 순 없지.’
거기에 평원 곳곳에는 적의 마법사가 파놓은 진흙 구덩이들이 널려 있었다. 포탄을 피하려다 자칫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진 병사들은 허우적대다가 침묵했다.
아직 적과는 맞붙지도 않았는데, 산발적인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
일단은 야콥의 부대와 보조를 맞춰야 하니 토드는 망자들을 대기시켰다.
‘여기선 전황을 모두 헤아리기 어렵다. 하수인이라도 뿌려놨다면 대략적인 상황이라도 가늠해볼 텐데.’
가급적이면 배속된 위치에서만 하수인을 운용해달라는 지시가 있었기에 별수 없었다.
장정의 키보다 높은 창대를 쥐고서 포복 걸음을 할 수도 없는 상황. 야콥의 부대는 꼼짝없이 발이 묶인 채 적의 포격이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파란 군기를 쥔 전령이 달려왔다.
“전진! 전진하시오! 오이겐 연대장님의 명령이오!”
즉각 인상을 찡그린 야콥이 항변했다.
“적의 포화가 우리 쪽에 쏟아지고 있는 게 보이지 않나? 이 상황에서 앞으로 나섰다간 몰살이다!”
“그대들은 아군의 선봉에 비해 너무 뒤떨어졌소! 연대장께선 자칫 전열의 좌측에 빈틈이 생길까 우려하고 계시오!”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는 거다.”
“우버펠트 공작! 연대장님의 명령은 곧 지휘부의 결정이오! 황제 폐하의 대리자에게 거역하려는 거요?”
“제기랄! 대체 아군의 빌어먹을 포병대는 뭐 하고 있나? 우린 당장 지원이 필요···”
갑자기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토드는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몸을 숙였다.
후웅─
머리 위로 대포알 하나가 스쳐 지나가더니, 그대로 사수들이 있는 자리에 매다 꽂혔다.
‘어우. 저 정도면 내장을 기워 맞춰도 일으키진 못하겠는데.’
가뜩이나 적의 포격이 집중적으로 쏟아지고 있는데, 아군 오사까지. 연이어 등 뒤에서 날아오는 포탄에 병사들이 동요했다.
“어디서 쏘는 거야?!”
“왜 포탄이 앞뒤에서 날아오지? 지금 아군이 우릴 쏜 건가?”
야콥은 전령을 향해 고래고래 항의했다.
“대체 포대를 통솔하는 머저리가 누구냐! 적의 포대를 요격하진 못할망정, 내 병사들을 쏴 맞춰! 이 일은 잊지 않겠다!”
전령도 아군의 포병대가 이토록 형편없으리라곤 예상 못 했는지, 당황한 표정이었다.
“도, 돌아가면 사격 각을 조절해달라고 전하겠소!”
돌아가려는 전령을 붙잡고 토드가 물었다.
“아군의 기병 전력은 충분하지 않았던가요? 왜 좌측의 포대를 견제하지 않는 겁니까?”
그는 챙 달린 모자를 눌러쓰며 대꾸했다.
“비단 여기만 포화를 맞고 있는 게 아니오! 적이 운용하는 화포가 우리보다 우세한 탓에, 아군이 전방위적으로 노출되어 있소!”
우려했던 바가 현실로 드러났다.
포수들의 숙련도도 밀리는 마당에 보유한 화포의 개수도 열세.
존황파에서 주로 운용하는 묵직한 구형 화포는 자리를 잡으면 쉽사리 움직이기 어렵다.
반면 참칭파는 가죽을 덧씌운 최신예 경포를 굴렸는데, 전황을 보고 유동적으로 위치를 전환하여 힘을 실어줄 수 있었다.
“지금 아군 선봉은 적 보병진과 교전 중이오! 아마 병력이 뒤섞여 있어 포격이 쉽지 않으니 그대들에게 적의 화력이 집중되는 걸 거요! 속히 전진하시오!”
제한된 시야 탓에 확인하지 못했는데, 이미 들판 곳곳에선 산발적인 교전이 발생하는 모양이었다. 입술을 곱씹은 야콥은 이동을 재개토록 지시했다.
희생을 감수하면서 나아가는 야콥의 보병대와 달리, 상대적으로 토드가 이끄는 망자들의 피해는 덜했다.
‘최대한 산개해서 이동한다.’
토드의 명령에 해골 백부장들은 사선으로 시체들을 넓게 퍼뜨렸다. 사령술사의 하수인들까지 밀집 대형을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2천의 망자 무리는 정점에 존재하는 사역자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겁에 질려 달아나거나, 대형을 흩트리지도 않는다.
몇몇 불운한 개체가 대포알에 맞아 짓이겨지더라도, 망자들은 느릿한 걸음으로 꿋꿋이 나아갔다.
딸랑, 딸랑.
“제국의 자랑스러운 일원이여. 카이저를 위해 일어서라. 적이 코앞에 있는데, 어찌 싸워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을 텐가.”
한 구가 쓰러지면, 두 명이 일어나고, 모자란 팔이나 내장 따위를 주워들곤 빈자리를 채운다.
야콥의 부대가 코앞에서 떨어지는 포탄에 정신이 팔려 미처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는 사이, 토드는 전사자들을 규합했다.
비로소 황색 군기가 보인다. 양측의 보병대가 조우하자 비처럼 퍼붓던 포화도 잦아들었다.
상대방의 생김새까지 알아볼 정도의 거리를 두고 병사들이 멈춰섰다.
입김을 불어 넣으며 불씨를 간직하던 사수들이 총구에 장약을 장전하려던 순간.
따다다당!!
먼저 발포한 건 참칭파 쪽이었다. 졸지에 장전하려던 사수들이 우르르 쓰러졌음에도, 야콥 휘하의 부관들이 병사들을 독려했다.
“겁먹지 마라! 응사하면 우리가 배로 돌려줄 수 있다!”
화승에서 피어오른 포연이 자욱하게 깔린 탓에 눈앞을 분간하기 어렵다.
토드는 가늘게 눈을 뜨고 흐릿한 장막 너머를 응시했다.
‘발소리.’
어느새 지근거리까지 적의 장창대가 다다라 있었다. 좌우에서 사수들을 보호하던 방패병들이 황급히 앞으로 나섰으나, 빽빽하게 들어찬 창날이 격렬하게 병사들을 두들겼다.
“아악!”
아군이 물고기처럼 꿰여 죽어 나가자, 사수들은 각기 재량에 따라 무차별적으로 사격을 퍼부었다.
졸지에 백병전에 휘말린 보병들은 피아를 가리지 않고 허망하게 쓰러졌다.
그 모습을 토드는 세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저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쏴도 부대가 들이닥치면 쉽사리 밀어내진 못하는구나.’
일원화된 명령 없이 제멋대로 쏴 재낀 사격은 기습적으로 들이닥친 적 보병들을 효과적으로 저지하지 못한다.
토드로선 유용한 데이터였다.
‘의외로 해볼 만하겠는데.’
장창병들이 치열하게 맞붙는 사이, 슬슬 포연이 걷혀 나간다. 대열의 후방에 있는 적의 화승총 부대가 한창 꽂을대를 쑤시는 데 매진하고 있었다.
사령술사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산시아. 구울들을 이끌고 왼쪽으로 우회하세요. 적의 사수들이 사격을 가하지 못하도록.”
스킨 워커들이 낮게 으르렁거리며 뛰쳐나간다.
토드는 연이어 지시를 내렸다.
“이스라. 야콥이 밀리는 듯하니, 한가운데 합세해서 적의 보병진을 밀어내주세요.”
투구 속 안광이 세차게 이글거렸다.
【토드! 본인은 정말 오래 참았다! 이대로 돌격하면 이 벌판의 모든 적을 쓸어버릴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야!】
입꼬리를 올린 토드가 덧붙였다.
“얼마든지요.”
대번에 박차를 가한 영마가 새파란 갈기를 휘날리며 장창이 빽빽하게 얽힌 한복판으로 뛰어든다.
【이 역적 놈들! 본인이다!!】
영마는 물리적 형체가 없어 병사들의 몸을 고스란히 뚫고 지나갔으나, 안장에 올라탄 이는 그렇지 않았다.
콰직, 꽉!
가속을 받은 이스라의 각반에 병사들의 머리통이 짓뭉개졌다.
【네놈들의 파멸이 왔노라!!】
포성에 밀리지 않겠다는 듯, 힘차게 쏟아낸 외침에 적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고위 망자가 내지르는 귀곡성에 그녀를 에워쌌던 병사들이 주저앉았다.
【똑바로 일어서라! 무릎 꿇은 자에게 어찌 전사의 긍지가 있으랴!!】
검이 닿질 않으니 파멸의 기사는 훌쩍 안장에서 뛰어내려 바닥에 엎어진 자들을 휩쓸었다.
새파랗게 타오르는 유령마나 투구에 맺힌 안광이 자아내는 무시무시한 위용에 병사들이 기겁했다.
“찔러! 그래 봤자 놈은 혼자다!”
그래도 제 전우들이 피 흘리며 쓰러지는 모습에 적들도 악에 받쳐 창을 내질렀으나, 문양으로 도배한 갑주에 속절없이 튕겨져 나왔다.
【하, 하! 하. 간지럽구나! 이깟 잡졸들로 파멸의 기사 이스라를 막을 수 있을 것 같더냐!?】
파멸의 기사는 거침없이 대검을 휘두르며 창대를 부러뜨리고, 적들을 무참히 도살했다.
하물며 갑주마저 찢어발기는 검격인데, 다소 빈약한 방어구로 무장한 장창병들이 견뎌낼 리 만무하다.
이스라는 물 만난 고기처럼 적진을 누비며 피보라를 일으켰다.
아직 이스라의 명성을 알지 못하는 이들의 뇌리에 왜 그녀가 파멸의 기사인지를 똑똑히 새겨주는 순간이었다.
두텁게 구축한 적의 종심이 단신으로 뛰어든 이에게 속절없이 무너진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력 투사.
파멸의 기사는 전방에 선 적들의 전투 의지를 무참히 짓밟았다.
누구도 감히 그녀에게 맞서려 들질 않아, 졸지에 기사 한 명이 수백 명의 꽁무니를 쫓는 형국이 되고야 말았다.
이스라는 안광을 희번덕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네놈들의 상관은 어디 있더냐! 병사들을 통솔할 기사는!】
가뜩이나 칠흑빛 갑주의 외형도 꺼림칙한데, 핏물까지 뒤집어쓰고 있으니 흉흉한 기세에 누구 하나 대답하는 자가 없었다.
적의 부연대장은 온통 흠뻑 젖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사수들은 대체 뭘 꾸물대고 있길래···.”
그가 뻣뻣하게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뒤편에선 들개를 닮은 괴이한 존재들과 총병들이 얽혀 있었다.
망자가 히죽 웃었다.
【보아하니 이곳엔 본인과 겨룰 만한 무인이 없어 보이는군?】
부연대장이 탄식했다.
“아아···!”
【정정당당하게 겨뤄 승부를 볼 생각은 않다니! 괘씸하도다! 네놈은 말단부터 다시 시작하여, 본인으로부터 기사도 전집의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스라의 호통에 급기야 부연대장은 병사들을 제치고 달아났다.
기어코 그를 쫓아간 이스라는 등에 칼날을 꽂아 넣었다.
투구 속 안광이 호선을 그린다.
【생전의 비열하고 나약한 정신은 버리고, 명예롭게! 다시 태어나라!! 병사여!】
장검을 뽑아내자 축 늘어졌던 시체가 고개를 쳐든다. 부연대장이었던 존재가 핏물을 뚝뚝 떨구며 읊조렸다.
【정정···당당.】
【그렇다! 명예는 정정당당하게 쟁취하는 것! 목숨을 거두는 행위란 검으로 직접 찔러야 그 무게를 알 수 있다!】
이스라는 검을 휘두르다 말고 기행을 벌였지만, 정작 병사들은 그 틈을 노려 공격할 엄두 따위 내지 않았다.
죄다 달아나기 바빴다.
【손끝 너머로 느껴보라! 살갗을 가르는 감각! 상대방의 숨이 끊어지는 소리! 멀리서 방아쇠만 딸깍대며 당겨봐야 어찌 죽음의 숭고함을 이해하겠는가!】
망자는 바닥에 떨군 검을 집어 들었다.
【죽음의, 숭고, 함···.】
투구에 맺힌 안광과 마찬가지로, 망자의 공허한 눈동자가 연녹색 불빛으로 물든다.
【그렇다! 이 얼마나 거룩한 가치란 말인가! 이토록 훌륭한 가르침을 그대의 우둔한 전우들에게도 가르치지 아니할 수 없지 않겠나!】
고위 망자인 죽음의 기사도 사령술을 행할 수 있다.
여태껏 이스라가 자신만의 하수인을 일으키는 건 본 적 없는데, 그녀의 호령은 괴악한 구석이 다분했다.
‘보통은 피로 억압하여 지배하거나, 눈물로 동조하여 회유하는 게 일반적인데···.’
저건 순전히 세뇌가 아닌가?
【맞, 다···. 이 가르침··· 알려야만, 한다!】
그녀의 엉터리 가르침만큼이나 호령도 어설퍼서 그런지, 마찬가지로 망자의 상태도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파멸의 기사는 뿌듯한 미소를 흘렸다.
【하, 하! 하. 이로써 기사도 전집의 훌륭함을 아는 자가 이 땅에 늘어났군. 이 얼마나 보람찬 일인가!】
왼쪽에선 산시아의 구울들이, 오른쪽에선 클라우스가 이끄는 백골 근위병들, 전방에선 이스라와 그녀만의 병사가 활개 친다.
거기에 토드 역시 쉼 없이 낭송을 읊조리며 죽은 자들을 일으켰다.
워낙 난전 중이라 자신에게 이목이 쏠릴 일은 없었다.
“신이시여.”
야콥은 넋 나간 표정으로 뇌까렸다.
어느새 전장엔 살아서 움직이는 것들보다, 죽은 채로 약동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적뿐만 아니라 자신의 병사들도 겁에 질려 도망치는 탈영병들이 속출했으나, 그들을 잡아 세울 기운조차 없었다.
‘나도 지휘관이 아니었다면 당장 도망치고 싶군.’
아군이라기엔, 너무 두려웠다.
오금이 저렸지만 야콥은 애써 목청을 가다듬었다.
“적이 패주한다! 모조리 섬멸하라!”
참칭파의 좌익은 붕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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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커는 고지대 용병에서 20년 넘게 복무한 고참병이었다. 그는 말단부터 연대장의 지위까지 오른, 농노 출신들의 살아있는 신화나 다름없었다.
“속히 군대를 물리셔야 합니다.”
그의 조언에 콘라트를 대행하여 지휘하는 오펠부르크 변경백이 미간을 구겼다.
“···아군의 좌익이 패퇴했다곤 하나, 아직 전세가 기운 건 아니지 않나. 적의 기사단은 궤멸되었고, 전열도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치우쳤다.”
스트레이커가 나직이 말했다.
“보고에 따르면 교전이 개시된 지 한 시간 무렵, 오백이 넘는 시체를 격퇴했답니다.”
“썩어있는 몸뚱이론 잘 싸우지도 못해.”
“두 시간째엔 천을 죽였지요.”
“······.”
“네 시간째엔 이천오백.”
지휘부가 있는 천막까지 송장 냄새가 파고들 정도였다. 죽은 자들이 사방에 가득했다.
“지금 발견되는 시체들은 사천구에 육박합니다.”
변경백이 침을 삼켰다.
“각하. 사령술사의 병력은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는 저희만으론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닙니다.”
군막에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얼굴을 감싸 쥔 변경백은 힘겹게 중얼거렸다.
“단 한 명의 권능만으로··· 이만한 대군이 맞붙는 전투가 기운다고?”
구주께서 우리를 저버린 게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