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205
205
사자의 서는 사체 유형에 따른 호령 난이도를 3가지로 분류한다.
갓 죽어 싱싱한 사체.
어느 정도 부패가 진행되어 쇠락한 잔해.
종래엔 흔적마저 흩어진 허.
딸랑···.
“지고의 세월 앞에 유명무실해진 존재라도.”
사령술사의 주관하에 황제가 무릎을 꿇었다.
“그 넋을 기리는 후신이 하나라도 남아있다면 영속할 수 있는 법.”
용골 지팡이를 부여잡은 여섯 손가락이 연신 노리개의 족통처럼 골대를 두드린다.
고대의 메아리를 일깨우기 위해선 최대한 부산스러운 가락이 필요했다.
하물며 이들은 형상조차 없으며, 목소리마저 망각한 허깨비들.
“우리가 위대한 선조들을 여기 부르노라.”
선창은 이름짓기부터. 토드의 호명하에 나란히 선 제자들이 낭송을 덧붙였다.
【강대한 뱀의 골자가 장차 지상에 거닐 그대들의 육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며.】
인체 골학 분야에 재능을 보이는 클라우스가 이들의 토대를 담당하고.
“피로 대물림되는 가계를 거슬러 올라 다시금 분노와 영광을 노래하소서.”
이를 직조하여 가닥을 엮는 건 산시아의 몫이다.
사령술사들에게서 뻗어 나온 실타래가 옛 영묘를 촘촘히 옭아맸다.
제아무리 영감이 둔감한 자라도 이변을 눈치챌 정도로 웅대한 마력이 일대에 용솟음친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낭송이 틀어졌다간 주변의 생명체가 전부 즉사한다.’
그마저도 예측할 수 있는 최소한의 피해다. 제대로 주문이 꼬인다면 일대의 공간 자체가 유리되어 명계의 지류와 맞닿거나, 100년 동안 생명체가 거닐 수 없는 죽음의 늪지로 변모할 수 있다.
토드는 인상을 찡그린 채 손끝의 감각에 몰두했다.
‘절대 안 돼! 여긴 아직 내가 체험 못 한 컨텐츠가 넘쳐난다고!’
진정 세상의 파멸을 원한다면 무저갱의 도래보다도 효과적인 방식일지 모른다. 불행 중 다행히도 이 요사스러운 의식의 주체는 이 세상의 존속을 바란다.
뇌가 녹아내리는 것만 같은 힘의 격류 속에서 끝끝내 토드는 거미줄을 휘어잡았다. 날뛰던 마력이 올곧게 석비를 향해 펼쳐진다.
그는 힘을 주어 왼손에 쥐고 있던 용의 송곳니를 으스러트렸다. 토드의 권능이 실린 용해 반지는 금강석보다 굳건한 치아를 거뜬히 녹였다.
“가로되 그대 숫자는 군단이요, 이름은 전쟁이니.”
토드는 뼛가루를 뿌리며 읊조렸다.
“오너라. 용아병이여.”
석관 아래 깔린 지면이 들썩인다.
이윽고 토사를 밀어 올린 인영이 유유히 지상에 바로 섰다.
전신을 단단히 감싸는 묵직한 갑주는 태양 제국 시절의 고대 성채가 의인화된 것만 같았다.
철판 갑옷마저 쇠락하는 시대에 망자가 걸친 무장은 낡은 문헌이나 전승이 아니라, 유적의 부조에서나 찾아볼 법한 양식이었다.
덩달아 황제를 호위하던 기사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역사가 그들 앞에서 움직이고 있었으니.
카타콤에서의 전례를 목격한 바 있는 마르커스조차 포기하고 입을 다물고 있는데, 유일하게 파멸의 기사만이 안광을 빛냈다.
【오오, 그야말로 완벽한 무장 상태! 무릇 기사라면 마땅히 저런 갑옷을 입어야지!】
위아래로 용아병을 가늠한 이스라가 확신에 찬 어조로 중얼거렸다.
【투구에 달린 술의 모양을 보아하니 쇠퇴기의 원정근위군 소속이겠고, 어린갑을 걸쳤으니 저자는 천인장이 틀림없도다!】
뒤이어 일어서는 용아병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중무장한 차림새였다. 그들을 훑어보던 마르커스가 다소 떨떠름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내가 보기엔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만.】
즉각 이스라의 안광에서 불티가 격렬하게 튀어 올랐다.
【허어! 심문관! 태양 갑주의 고상함을 모르다니! 그대의 비루한 안목이 실로 안타깝군! 보라! 저건 찰갑이고, 이건 판갑이네! 물론 둘 다 태양 제국의 정규 제식이나, 비용의 문제로 병사와 지휘관 사이엔···】
대개 광적인 애호가들은 전문 분야에서만큼은 말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평소 이스라의 짧은 식견을 타박하던 마르커스는 된통 역공을 당했다.
고봉밥처럼 묵직한 설교를 견디다 못한 마르커스가 진절머리를 냈다.
【그것도 그놈의 기사도 전집에 적혀 있나?】
마르커스의 물음에 이스라는 투구를 바로 세우며 으스댔다.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어서 잘 알고 있네. 평소 갑주를 걸치고 싸우면서, 정작 장비에 대한 소양이 부족할 순 없지 않은가!】
죽어도 파멸의 기사가 잘난 체하는 꼴만은 못 보겠는지 마르커스가 중얼거렸다.
【···쯧. 갑주의 기원에 대한 지식은 해박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의 기원은 잊고 지낸단 말이지.】
매섭게 파고드는 조리돌림에 이스라의 손이 검집에 올라갔다.
【뭣이라!】
하수인들의 소란과 별개로 침묵을 고수하던 집정관은 용아병들이 전원 도열하자 비로소 입을 열었다.
【자네는 양례 교단의 신관인가.】
빙긋 웃은 토드가 화답했다.
“그렇습니다. 집정관.”
망자의 눈에 맺힌 황색 안광이 부드럽게 토드 일행을 훑고 지나갔다.
【장막을 자아내는 어머니께서 자네에게 미소짓기를.】
의외로 호의적인 반응에 이스라뿐만 아니라 마르커스 역시 눈을 가늘게 떴다.
토드가 태연히 화답했다.
“승리를 관장하는 아버지가 그대들과 함께하실 겁니다.”
고개를 끄덕인 집정관은 나직이 물었다.
【그러면 묻겠다. 신관. 권좌의 후예는 어디 있는가?】
토드가 직접 부복했던 황제를 일으켜 세우자, 망자의 눈빛이 그에게로 향했다.
【자네는 아버지 솔마르께서 약속하신 승리의 언약을 믿나?】
“···저는 평생 구주를 향한 신앙을 견지해왔습니다.”
【자네는 제국 민회의 대표자들과 존귀한 원로원의 뜻에 따라 선출되었는가?”
“저는 크로이츠부르크에서 개최된 의회에서 일곱 선제후들과 지방 의원들의 지지를 받아 황금 옥좌의 정당한 주인으로서 등극했습니다.”
【자네는 태양의 정당한 권역과 거룩한 도시들의 수호를 이행하는가?”
입술을 곱씹은 황제가 꿋꿋이 답했다.
“나는 통치자로서 이 땅의 누구도 저버린 적 없으며, 권좌에 앉아있는 한 그러지 않을 겁니다.”
잠시 눈을 감았던 집정관이 낮게 속삭였다.
【그렇다면 실로 그대는 우리의 임페라토르이노라.】
고토의 수호자는 아득한 후손에게 기꺼이 고개를 숙였다.
【어째서 레기오나리를 깨웠나.】
“제국의 존속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병력은 턱없이 부족하고, 배교자들과 마경의 악마들이 지상을 유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자 망자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후세가 여전히 우리를 필요로 한다면, 레기오나리는 외면하지 않겠다.】
그가 가슴팍을 두들김과 동시에 용아병들이 연신 창대와 방패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지축이 울린다.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기사들에 필적하겠는데.’
애당초 저들의 근간은 무수한 사경을 넘나든 전사들이다. 거기에 저들이 물질계에서 새로이 부여받은 육신의 원료는 용골.
이런 존재들이 자그마치 천 구나 있다.
이제 지상에서 두려울 것이 없었다.
찢어진 토드의 입꼬리는 도무지 내려올 줄을 몰랐다.
【잠깐! 잠깐! 당신들은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사자들이 아니오?】
마르커스의 질문에 황색 눈동자가 희미하게 일렁였다.
【그렇다.】
【더군다나 당신들은 구주의 신봉자인데, 작금의 상황이 이상하지 않소? 순리를 역행하여 일으켜 세운 꼴인데, 한 치의 의심 없이 대뜸 싸워달라는 요청에 응하다니.】
도리어 집정관이 별놈을 다 보겠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게 왜 이상하단 말인가.】
【그야 묘지는 망자들의 안식을 위한 공간이잖소. 게다가 무저갱의 존재들이 지상에 난립하고 있다 하더라도, 사령술사들은 오랫동안 태양의 적대자였는데. 나로선 영면을 방해당한 당신들이 순순히 따르는 걸 도무지 납득할 수···】
집정관이 조소했다.
【아둔한 후손이여.】
고개를 움츠린 마르커스는 그의 눈에 맺힌 황록색 안광을 목도하곤 작게 탄식을 흘렸다.
【언제부터 밤이 낮과 대적했다더냐. 정녕 밤이 지하의 악귀들처럼 이 땅의 피조물들에게 해악이었다면, 하루의 반절이 왜 밤이겠는가.】
괜히 나섰다가 면박만 뒤집어쓰는 마르커스의 모습에 이스라는 숨을 죽였다.
【낮과 밤은 끊임없이 맞물린다. 삶이 있다면 안식도 필요하다. 생명과 죽음의 이치도 이와 같다. 예로부터 광명 교단이 삶의 약동을 찬미했다면, 양례 교단은 안식을 노래하는 게 당연한 이치였나니.】
마르커스는 토드가 망자들의 정신에 간섭하지 않는 성향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과거엔 태양 교단과 더불어 사령술사들이 당당히 공존했었다니.
다름 아닌 과거의 산(?)증인이 담담히 밝히는 전말에 그의 눈동자는 갈 길을 잃었다.
【이 땅에 계속 광명만이 비춘다면 그건 영원한 고통에 지나지 않는가.】
【바, 반대로 당신들과 나의 처지가 그렇지 않소. 불사자에게 안식이 있으리라 보시오?】
마르커스와 토드를 번갈아 보던 집정관이 낮게 웃었다.
【애당초 자격이 없는 자는 우릴 깨우지 못했을 것이다. 사자를 기리기 위함이었다면 구태여 이리 장중한 집을 축조했으리라 생각하는가.】
황록색 안광이 번뜩였다.
【당대 최고의 전사들만이 여기 묻혔다. 죽어서도 장차 우리의 유지를 이어나갈 이들을 지키기 위해. 우린 불멸의 영광을 위해 안배되었고, 줄곧 기다려왔다.】
그는 용아병들의 대열로 돌아갔다. 넋이 나간 듯한 마르커스를 향해 이스라가 싱글벙글 미소를 흘렸다.
【하, 하! 하. 심문관! 무지는 잘못이 아니네! 어쩌겠는가? 모르면 공부해야 하는 것을!】
툭툭 건드려도 마르커스는 대꾸조차 못 하고 종이 인형처럼 흐느적댔다.
“저도 미처 몰랐군요. 태양 제국 시기의 영묘들이 이런 목적으로 건설되었을 줄은.”
어쩐지 견습생 시절에 고분을 도굴하려고 하면 전날 잠자리가 험악하거나 당일에도 심상치 않은 기분이 들더니만. 불순한 의도로 접근하면 원천적으로 사자소생이 차단되는 식이었나.
이런 존재들을 피의 업으로 종속시키려 시도했다간 단단히 피를 봤을지도 모른다.
괜히 토드가 팔에 돋은 닭살을 쓸어내리는 와중에 이스라는 안광을 반짝였다.
【죽어서도 섬긴다니! 실로 훌륭한 군병의 모범이지 않은가! 기사도 전집에도 추가해야 마땅하네. 살아서든··· 죽어서든 섬긴다···.】
용아병들의 언행이 인상 깊었는지 파멸의 기사는 그들의 행동가지 하나하나 유심히 관찰했다.
【그래도 조금 아쉬운 감도 없지 않군.】
“아쉬운 게 있다고요?”
【여태 자네가 일으켜 세웠던 망자들이 대체로 호락호락했던 건 아니지 않나. 자그마치 고대의 존재들이니, 본인은 협상이 조금 수월하지 않으리라 예상했다네.】
음흉한 미소를 흘린 이스라는 검집을 두드려 보였다.
【으레 기사도 문학에선 상호 간에 무력으로 우열을 가늠하는 전개도 등장한단 말이지. 고대의 전사와 진심으로 겨뤄볼 기회가 언제 또 있겠는가.】
“아마 대련을 신청하면 받아주지 않을까요?”
파멸의 기사는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의미가 없네! 본인 정도의 투사에겐 목숨과 신념을 건 대결이 아니고서야 깨달음을 줄 순 없는 법! 이제 대련은 김이 샌단 말이네!】
아무리 봐도 이스라는 집정관을 닦아버리고 자신이 용아병 군단을 통솔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았다.
어림도 없지.
“너무 야만적이에요.”
【끄응···】
투구를 긁적이는 이스라를 향해 토드가 덧붙였다.
“그리고 이스라. 기왕 당신만의 기사단을 만들 거면 이미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라 기초부터 직접 구축해야죠. 낭만이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자신이 보기에 중보병으로만 이뤄진 용아병 군단은 파멸의 기사가 통솔하기에 부적격했다.
저돌적으로 머리부터 들이미는 이스라의 성향상, 딱 봐도 기동성이 떨어지는 중보병대를 맡겼다간 일주일도 안 돼서 전멸이다.
용아병들은 굳건하게 전선의 모루를 지탱할 하수인들이다.
‘이스라는 처음부터 적을 깨부술 망치로 키웠지. 인내심 있게 상대의 공세를 받아낼 위인은 아냐.’
파멸의 기사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돌격을 외칠 예스맨이다.
그렇다면 장차 그녀 휘하에 붙여줄 하수인들은 그에 걸맞는 돌파력이 필요할 터.
‘···레벨을 더 올려야지.’
마침 제물로 널린 놈들이야 많았다.
///
성채를 점거하던 선봉장, 그룸다즈는 뜻밖의 낭보를 전해 들었다.
─뭐? 군대가 몰려오고 있다고?
“인근의 사역마들이 동향을 목격했습니다. 그 숫자만 4천인데, 전원 틀림없는 시체들이었습니다.”
샛노란 눈동자가 탐욕으로 물결쳤다.
─토드 셰우드로군! 그 미물한테 걸린 영혼이 엄청나. 복덩이가 제 발로 걸어들어오는구나.
시시덕거린 악마는 수십 명이 내걸린 물레를 빙글빙글 돌렸다. 나신으로 가시에 꿰인 인간들이 유쾌한 목소리로 꽥꽥 울어댔다.
“군주시여! 조심하셔야 합니다. 놈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흉악한 간계를 품고 다닙니다.”
흑마법사의 간언에 비웃음을 흘린 그룸다즈는 제 애완동물의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그래 봤자 제깟 놈이 고르곤의 응시를 견딜 수 있을까.
파닥파닥, 세차게 울리는 사역마의 날갯짓 소리가 회랑에 울려 퍼졌다.
─어디, 얼마나 대단한 끄나풀들을 끌고 오셨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거들먹대는 모양새에 흑마법사는 이를 갈며 분을 삭였다. 놈이 성벽 위로 향하자 그가 동료를 향해 속삭였다.
“저 등신들은 학습 능력이란 게 없나? 저들 동족을 셋이나 담갔는데, 대체 언제까지 방심할 거냐고···!”
머리를 긁적인 다른 흑마법사가 작게 중얼거렸다.
“악마들이란 게 누구보다도 제 잘난 맛에 사는 족속들이잖아. 애초에 저놈들이 그렇게 주제 파악이 잘되는 놈들이었으면 아직까지 지상을 태양신이 다스렸겠어?”
“아.”
무심코 동료가 중얼거린 말이겠지만, 흑마법사는 붉은 진실을 깨달았다.
“···아까 슬쩍 봤는데, 클라우스. 리치가 되었더라. 하수인들도 제법 많이 끌고 오더라고.”
“살점도서관에서 굴러먹던 그 반푼이? 3년 전에 비밀 집회에서 봤을 땐 저주 한 구절도 제대로 낭송 못 하던데?”
짙은 회의감을 내비친 흑마법사가 낮게 중얼거렸다.
“나도 이 개 짓거리 관두고 흑색 학파에 투신해볼까.”
사사삭···.
갑자기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산드로.
흑마법 외길 인생 25년 차.
살면서 좋은 예감은 도무지 들어맞질 않아도, 꼭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더라.
인생이 이따위니 자연히 흑마법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산드로는 지금보다도 서늘한 기분을 느껴본 적 없었다.
혹여나 휴대용 개구리를 꺼내 창자를 갈라보고, 까마귀 깃발을 태워봐도 모든 징후가 악운을 가리킨다.
그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이곳 전체에 죽음의 그림자가 깔렸다.’
어느새?
새카만 잿가루는 미소짓는 해골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일찍이 그는 사역마의 시야를 통해 비슷한 문양의 깃발을 목격한 바 있었다.
‘이, 이 정도론 저자를 막지 못해.’
밖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찢어지는 듯한 포효와 함께 수천의 망자가 내지르는 귀곡성이 성채를 뒤덮었다.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