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30
030
일부 늑대인간들의 난동에도 불구하고 두텁게 구축된 대열이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진 않았다.
그러나 곳곳에 발생한 균열에 적이 하나둘씩 끼어들면서 점차 뒷걸음치는 이들이 속출했다.
번쩍-
때마침 등 뒤에서 번뜩이는 불빛.
길게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 불덩이가 적들의 머리 위로 작렬한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마법의 불꽃은 횃불처럼 선명하게 타올랐다.
모두가 멍하니 목도하던 가운데 누군가가 외쳤다.
“적색 마탑의 마법사가 우리와 함께한다!”
적들이 수십 명씩 쓸려나가는 광경은 병사들의 사기를 잠시나마 밝혔다.
얼핏 맞부딪친 양측이 백중세를 이루는 듯 보이나, 그마저 한계가 명확했다.
‘···비가 너무 많이 와.’
힘겹게 숨을 몰아쉰 카리나가 하늘을 노려봤다.
짙게 형성된 먹구름이 어마어마한 양의 비를 들판에 쏟아내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화염 원소를 응용하려면 더 많은 마력과 집중을 요구한다.
더군다나 카리나의 주력 분야가 묵직한 광역 주문들임을 감안하면 효율이 극도로 떨어졌다.
‘상대편에 있는 주술사의 수작이겠지.’
예로부터 기우제의 주체는 영매들이었다. 마법으로 기후를 조작하는 건 극히 까다로운 축에 속하나, 제물을 통해 신의 권위를 빌린다면 어느 정도 가능했다.
비록 교회가 도래하기 이전, 야만의 시대에나 공공연히 행해졌던 일이었지만.
카리나가 주문에 능통하더라도 이 비를 멈추지 못한다.
그렇다고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다.
지금 전장의 균형을 가까스로 맞춰놓고 있는 건 그녀의 마법 덕분이다.
그걸 알고 있기에 카리나 곁에 있는 자들도 섣불리 재촉하지 않았지만, 못내 불안한 시선까진 감추지 못한다.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재차 입술을 뗀다.
‘마탑을 나설 때만 하더라도 나 혼자 다 휩쓸어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적병이 밀집한 지점에 불꽃이 쐐기를 박는다.
콰콰콰콱-!!
홍염 마탑의 신동.
그녀가 장차 최연소 마지스터로 등극할 거라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여태 마탑 내에서 지냈다 하더라도, 굳이 바깥세상에서 자신의 능력을 검증받을 필요가 없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철저히 자신의 오산이었다.
돌이켜보면 전쟁으로 인해 통행이 막혔을 때부터 모든 것이 꼬였다.
솟구쳐오른 불기둥이 갈퀴처럼 지면을 휩쓴다.
쿠르릉···!
분쟁으로 인해 통행이 막혀, 불가피하게 짐마차를 겨우 얻어타고.
평소 지적받던 시전 속도는 주문의 밀도를 촘촘하게 구성하면 그만이라 생각하여 한낱 탈영병들 따위에 모욕을 당하고.
저열한 트롤의 술법에 속수무책으로 휘말려 기절하고.
마탑 밖은 카리나가 상상했던 것과 너무도 상이했다.
스승님께선 자신으로 하여금 이런 자각을 일깨우기 위해 파견을 명하신 건가?
간극이 너무 지나쳐서, 진정 홀로 극복할 수 있는 난관인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자신과 달리, 그 한계를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듯한 사람이라면 한 명 있지 않았나.
사령술사, 토드.
돌연 자신의 사고가 기묘한 괴짜에게 미쳤다는 걸 인지한 순간, 카리나가 급히 숨을 삼켰다.
‘윽.’
마탑에선 누누이 금지된 마법들과 사특한 장서의 구절들을 경계하도록 가르쳤다.
사령술사는 배척해 마땅한 존재들이다.
그가 매번 공동의 대의를 주장하며 협력하더라도, 호의를 가장한 기만이 틀림없다.
지금 상황에서 어떤 속내를 품고 접근했을지 모를 작자를 떠올리다니, 심상이 흐트러진 게 분명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은 카리나가 재차 낭송에 몰두했다.
다시 한번 폭발.
쾅!
그러나 피해는 미미했다.
연거푸 주문을 쏟아내면서 점차 열기가 약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병력을 넓게 퍼뜨린 탓에 아군과 적이 뒤엉켜 주문을 시전할 지점마저 제한적.
“흐으···.”
주문 하나를 완성할 때마다 탈력감에 온몸의 피가 마르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물러설 순 없다.
스승께서 마지스터 등극을 위해 내건 과업은 이리공의 실각.
쇠락한 집안을 재건하려면, 반드시 마탑 내에서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다져야만 했다.
그리하여 서투른 마법사는 무너지는 육신을 다잡았다.
“나는 여기서, 잿더미로부터 피어오르는 스트라가트의 비상을 기원한다-!”
그녀의 손아귀에서 구체화된 심상이 날개를 펼쳤다. 날카롭게 포효한 불새가 날아오른다.
자유자재로 지상을 휘젓는 불길에 적의 공세가 꺾이고, 아군이 다시금 결집한다.
그러나 여전히 카리나가 전세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이토록 넓은 개활지에서 광역 주문 한 번당 사상자는 50명 안팎.
결국 자신은 시간을 버는 역할에 불과한 게 아닌가?
사령술사는 재수 없는 녀석임이 틀림없다.
살살 돌려 까면서 아닌 척 꼬박꼬박 존대를 붙이는 특유의 화법도 열 받고, 시종일관 짓고 있는 미소도 위선적이다.
특히 모든 것에 통달한 것처럼 구는 태도란!
그럼에도 무의식중에 느끼는 부재가 자꾸만 지독하게 달라붙는다.
왠지 모르게 그 자식이 온다면, 이 난관을 또 아무렇지 않게 헤쳐나갈 것만 같아서.
자꾸만 그런 알량한 마음을 품는 자신이 두려웠다.
순간 메스꺼운 느낌이 목덜미를 치솟는다.
“우읍!”
허리를 젖힌 카리나가 속을 게워내자, 곁에 서 있던 가신들이 기겁했다.
“마법사님! 괜찮으십니까?”
부축하려 드는 손길도 마다하고, 겨우 몸을 일으킨 카리나의 얼굴이 파리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안색이 괜찮지는 않으신···”
핏발 선 눈동자를 부라리니 조용해진다. 한숨을 흘린 카리나가 나직이 다그쳤다.
“마력 물약, 있어요? 그거나 갖다 줘요.”
가신의 손짓에 하인이 헐레벌떡 약병을 가져온다. 다소 힘겹게 마개를 딴 카리나는 단번에 내용물을 비웠다.
변함없이 거지 같은 맛.
얼굴을 구긴 그녀가 땅바닥에 약병을 내던졌다.
“집중에 방해되니 이만 비켜주시고요.”
“아. 예.”
호들갑을 피우는 녀석들이 물러나고, 입가를 훔쳐봤다.
손바닥에 핏기가 역력하다.
옷자락에 혈흔을 슥슥 닦아낸 카리나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까득.
“빨리 오라고, 망할 자식아···.”
///
포위를 뚫고 뮌파흐까지 도달했더니,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방책 근처에 서성이는 보초는 셋.
이스라가 낮게 속삭였다.
【숫자가 많진 않군.】
“아무리 예비대가 있다 한들, 여기까지 병력을 깔아놓을 여력까진 없겠지요.”
죽음의 기사는 아쉬운 듯 안광을 굴려댔다.
아마 토드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그는 좀 전의 숲에서 끝까지 싸웠을 것이다. 마지막 한 놈까지 죽여야 성미가 풀렸을 테지.
【조무래기들이라 하더라도, 전공은 전공이지.】
스릉.
검을 뽑아 든 이스라가 곧장 방책 안으로 쳐들어갔다.
“뭐야, 이거―”
“아?”
목을 잃은 몸뚱어리가 바닥에 일제히 쓰러졌다. 깔끔하게 잘린 단면에 이스라는 내심 뿌듯해하는 눈치였으나, 토드가 핀잔을 줬다.
“이스라. 목을 날려버리면 망자로 일으키기 어렵지 않습니까.”
【미안하네. 거기까진 미처 신경 쓰지 못했군.】
겸연쩍게 뒤통수를 긁적인 죽음의 기사는 닫힌 입구를 걷어찼다.
안에서 뭘 하고 있나 했더니, 놈들은 구덩이에 불을 피워놓고 시신을 던져놓고 있었다.
대번에 토드가 인상을 와락 구기자 이스라가 외쳤다.
【멈춰라, 이놈들! 순순히 목을 내놓, 아니, 가슴팍을 피고 있거라! 그래야 고통 없이 깔끔하게 죽여줄 테니!】
대답 대신 화살이 날아왔지만, 이스라의 접근을 막을 수 없었다.
토드가 손을 들어 가택 뒤에 숨은 놈들을 지목했다.
“물어.”
―끼기기긱!
포효한 구울들이 골목 곳곳을 쏘다녔다.
빠르게 소탕을 마치고 돌아온 구울들의 주둥이가 제각기 피로 물들어 있었다.
토드는 얼떨떨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부사관들을 향해 말했다.
“마을 내부를 수색해주시겠습니까? 망자들은 손길이 투박해서, 더 엉망으로 만들어놓거든요.”
“아, 예.”
그들을 들여보내고, 토드는 몸을 숙여 구덩이에 묻힌 시신들의 수를 헤아렸다.
셈을 마친 그가 눈을 좁혔다.
수가 안 맞잖아.
분명 기병대장은 뮌파흐에 50호의 가구가 있다고 했는데, 구덩이에 묻힌 시신은 100구가 채 안 된다.
“시신이 부족하군요.”
【이미 놈들이 소각했다기엔··· 불을 피운 진 얼마 안 된 것으로 보이네만.】
“이리공도 제가 시신들에 접근할 걸 예상했지만, 아마 전부 처리하기엔 시간이 촉박했을 겁니다.”
시반의 크기와 색을 보아, 닷새 전후로 죽은 이들이다. 목에 남아있는 상흔은 제례용 단검으로 그은 것이 분명했다.
침음을 흘리던 이스라가 돌연 바닥을 가리켰다.
【지면에 있는 저 자국 말이네, 마차 바퀴가 남길 법한 자취 아닌가?】
구덩이에서 들끓는 영가들의 목소리에만 정신이 팔려,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이었다.
바닥을 짚은 토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관찰력이었습니다. 이스라.”
이토록 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음에도 여전히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움직인 지 얼마 안 됐다. 바퀴가 이리저리 요동친 거로 보아 어지간히 급하셨군.
【흠흠. 별거 아니었네. 기사도 전집에 따르면 무인은 언제나 맹금처럼 사방을 훑어봐야 한다고 강조하지. 본인은 그 가르침을 충실히 이행한 것 뿐이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견갑이 삐죽삐죽 올라간다.
“그럼 이들을 끌고 어디로 갔을까요?”
거기까진 생각 못 했는지, 뻗대던 어깨가 급격히 수축한다.
【그건, 모르겠군. 늑대인간들이 시체를 섭식하던가?】
“글쎄요··· 저라면 번제로 안배된 공양물을 함부로 섭취하진 않을 겁니다.”
【하물며 야수로 영락한 마당에 마다할 까닭도 없지 않나?】
“인간성을 상실한 지 오래되었다면 모를까, 저들은 비교적 최근에 파생된 존재들입니다. 아직은 그리 인육을 갈구하지 않을 테죠.”
심각한 표정으로 고뇌하던 이스라가 신음했다.
【끄응··· 본인은 수수께끼를 안 좋아하네. 그건 자네 같은 괴짜들이나 매달릴 사안이지. 본인이라면 고민할 시간에 차라리 검을 휘두르겠네.】
솔직한 이실직고에 토드가 웃음을 터뜨렸다.
“지극히 무인다운 직선적 발상이군요.”
이스라의 건틀렛이 부들부들 떨린다.
마침 부사관들도 수색을 마치고 돌아왔다.
“마을에는 생활 기재를 비롯한 물자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생존자는 없더군요.”
그들이 조심스레 되물었다.
“이제 어찌할까요?”
토드는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막상 뮌파흐에 와보니 시신 수급이 기대했던 바에 못 미친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곳으로 움직이자.
“···담로우로 가지 말고, 이대로 적의 본영을 칩시다.”
부사관들이 움찔댔다.
“이 전력만으로 말입니까? 아무리 뒤를 급습한다 한들, 자칫 적에게 둘러싸일지도 모릅니다.”
딸랑···.
구덩이에서 피로 얼룩진 손이 솟구친다.
토드의 부름에 이끌린 망자들이 슬금슬금 기어 올라왔다.
“숫자는 크게 문제 되지 않습니다.”
나직한 속삭임에 부사관들은 입을 다물었다.
방울이 그칠 즈음, 30구에 달하는 망자가 일어섰고, 토드는 남겨진 이들에 대한 추도까지 마무리 지었다.
‘99% 정도 찼나.’
30 레벨까지 딱 한 걸음.
아쉽지만, 나머지는 어떻게든 피의 업으로 충당하리라 여겼다.
우글거리는 송장에 부사관들조차 질겁했다. 그럼에도 겨우 목을 쥐어짜 묻는다.
“그래도 담로우까지 가야··· 충분한 전력이 확보되지 않겠습니까?”
“다들 이리공 수하의 주술사가 사람을 제물로 바치고 있다는 건 아실 테죠. 그놈이 뮌파흐에서 꽤 많은 수를 급히 끌고 갔습니다. 아마 담로우에 가더라도 상황은 비슷할 겁니다.”
“좀 전에 갑자기 쏟아졌던 폭우도, 그 전조라고 봐야 할까요?”
“예. 놈이 본격적으로 수작을 벌이면 본대도 위험해집니다. 아직 야영지에 남아있을 적의 예비대를 섬멸한 뒤, 전투에 합세합니다.”
적의 예비 병력을 망자로 만들어버리겠다.
악독한 속내를 알아차린 이들은 전율했다.
토드가 손을 들어 바닥을 가리켰다.
시신을 싣고간 놈들을 쫓아라.
일제히 넙죽 엎드린 구울들이 코를 킁킁대더니, 날카로운 울음을 쏟아냈다.
찾았다.
“이만 움직입시다.”
///
이리공의 야영지는 쑥대밭이 되었다.
대부분의 주력이 출병한 가운데, 난데없이 시체들이 들이닥쳤다.
선봉에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 명백히 인외의 형상을 한 구울, 여기에 물밀 듯이 몰려오는 망자들까지.
나름의 방비가 무색하다.
잔존병들의 전의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전투라기엔 달아나는 놈들을 일방적으로 추격하는 구도였다.
죽은 자들은 마땅히 피로 억압하여 불러들인다. 이미 수하에 들인 망자가 상당한 탓에, 마력 점유량이 한계치에서 맴돌았다.
최대한 마력이 바닥나지 않으면서, 업을 적절히 소모하도록 계산하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벌써 마력 물약을 3병이나 먹어서, 손등 위로 혈관이 도드라졌다. 수차례 난자질한 손바닥이 따끔거린다.
갈라진 상처를 따라 온몸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
“제길.”
여태껏 주기적으로 마력량과 관련된 선택지를 골랐음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저번처럼 통제 없이 풀어놓기엔 전장까지 거리가 너무 멀었다.
내색해선 안 돼.
저들 앞에서 자신이 구축한 사령술사의 전형을 무너뜨려선 안 된다.
바닥에 피 가래를 뱉은 토드는 허물어진 천막에 뒤엉킨 병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여기 맴도는 그대여, 내가 부른다. 내 손길을 받아들여 다시 지상으로···”
전신에 고양감이 몰아쳐온다.
토드는 낭송을 하다 말고, 눈을 부릅떴다.
99.75% 가량이었나.
정말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다.
조금이라도 가용 마력을 초과했다간 급성 쇼크는 기본이고, 신체 능력치가 영구적으로 하락한다.
미숙했던 초기에 몇 번 겪어본 적이 있어서, 내심 토드도 조마조마했다.
괜히 그의 평소 몰골이 창백한 게 아니다.
레벨이 오르면서 만신창이가 된 몸도 회복되면 좋으련만, 그런 메커니즘은 원작에도 없었다.
개 같은 게임.
재빨리 눈을 감은 토드는 의식계의 제단을 확인했다.
평소와 달리, 대접이 아니라 2개의 검은 잔이 놓여 있었다. 시선을 집중하니 머릿속에 글귀가 파고든다.
좌측은 ‘토대’.
잔해로부터 일어나 행군하라.
반경 500m 이내의 망자들을 강화하는 ‘묘비’를 소환한다. 강화 수치는 망자가 생전에 보유한 기량에 비례하며, 1회에 한해 무력화된 하급 망자들을 다시 소생할 수 있다.
우측에 놓인 것은 ‘숙명’.
그대는 죽어야만 하는 존재임을 기억하라.
지정 대상의 ‘노화’를 촉진한다. ‘노화’에 걸린 대상은 전반적인 육체 능력치가 경감되고, 빠르게 지친다.
내용을 확인하니 절로 양심 없는 생각이 튀어나온다.
‘왜 둘 다 고를 수 없는 것이지.’
지옥은 딴 곳이 아니라, 다름 아닌 여기 있다.
가령 짜장면과 짬뽕, 후라이드와 양념, 떡볶이나 순대처럼, 인생에서 때때로 마주치는 운명의 기로에 인간이 고뇌하듯.
토드는 분통을 터뜨렸다.
‘눈 딱 감고 반반씩 마실 순 없나.’
될 리가 없다.
그만큼 양쪽 다 아쉬운 선택지였다.
‘토대’는 다수의 하수인을 강화하는 광역 오라, ‘숙명’은 단일 개체를 약화시키는 강력한 디버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저울질해봐도 한쪽에 쉽사리 마음을 기울이기 어려웠다.
그렇지 않아도 사령술사는 경험치나 다름없는 양쪽 업을 자원으로 끊임없이 사용해대는 탓에 성장이 극도로 느리다.
이제 겨우 30 레벨을 달성했는데, 언제 40 레벨에 도달할까.
간혹 선택하지 않은 선택지가 차후에 재등장하는 사례가 있지만, 10 레벨마다 주어지는 포인트의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
어느 쪽을 골라도 분명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다만 그로 인한 리스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때, 돌연 사방이 요동쳤다.
‘······?’
의식계의 문제는 아니다.
토드는 아직 어떠한 선택지도 고르지 않았으니까.
표층에 있는 현실의 육신에 뭔가 일어났다.
황급히 의식을 부상한 토드는 자신의 몸이 바닥에 뒹굴고 있음을 인지했다.
“큭···.”
귀가 먹먹하고, 시야는 아득한데, 누군가 머리를 망치로 내려친 듯 묵직한 충격이 이어진다.
귓바퀴를 타고 뭔가 흘러내리는가 싶어 손바닥을 대보니 검은 피가 맺혀 있었다.
이곳엔 딱히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만한 상대는 없었을 텐데?
토드가 손짓하자 좀 전에 일으켜 세웠던 망자가 그를 부축했다.
천막 사이를 비틀거리며 나와보니, 병사들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귓구멍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사령술사, 자네는 괜찮은가?】
이스라는 여전히 괄괄한 거로 보아, 망자들은 영향에서 자유로운 듯 보였다.
토드가 힘겹게 물었다.
“뭐였습니까?”
녹색 안광이 세차게 이글거렸다.
【놈이 부르고 있네. 그렇지 않아도 본인의 검이 절로 타오르더군.】
성물로 주조한 장검에 은은한 빛이 맺혀 있었다. 여태 망자들에겐 반응하지 않다가, 야수의 포효에 깨어나다니.
“잡고 있어도 괜찮습니까?”
【하, 하! 하. 조금 거슬리긴 하네만, 그래 봤자 몸이 가려운 정도와 다를 바 없네.】
이스라가 너스레를 떨었지만, 오래 쥐고 있어 봐야 좋을 게 없다.
그나마 고위 망자인 죽음의 기사라 견딜 수 있는 거지, 다른 망자들이 이스라로부터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고 있는 것만 봐도 극도의 상극을 띤 물건이었다.
차츰 시야가 회복되고 나서야, 토드는 구석에서 선명하게 타오르는 글귀를 확인했다.
《 ‘회색 야수’, 디트마흐: Lv.55 》
올 것이 왔군.
동시에 저편에서 붉은 섬광이 번뜩였다.
그걸 지켜보던 이스라가 감탄했다.
【아무래도 그 요술쟁이가 재주를 부리느라 정신이 없는 모양일세.】
이미 전투가 벌어진 뒤 시간이 꽤 지났다.
누커는 순간 화력에만 극대화되어있어 지속력이 극도로 떨어진다.
카리나의 주문이 멎는 즉시, 일방적인 학살극이 펼쳐질 거다.
레벨 50 이상의 개체에겐 그만한 파괴력이 있다.
【기대되는군. 분명 쉽지 않은 강적일 테지!】
이 상황에서 미소 짓는 광인은 죽음의 기사 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주인 역시, 만만찮은 기인이었으니.
라이칸스로프의 육신을 연구할 수만 있다면, 그 힘을 하수인들에게도 심을 수 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짜릿한 수확이 되겠어.
“서두릅시다. 아군이 전멸당하기 전에!”
그러자 이스라가 의아한 투로 되물었다.
【전멸당하면 오히려 좋은 게 아닌가? 자네가 일으킬 하수인들이 늘어나는 건데.】
“그렇긴 합니다만, 아직 제가 그들 전부를 일으킬 정도로 마력이 충분치 않습니다. 그래도 아군이 좀 살아있어야 나머지 떨거지들을 막아주겠죠.”
【그렇군! 그럼 느긋하게 가세! 반절 정도 죽으면 딱 적당하지 않겠나!】
“아니, 서둘러야 한다니까요. 저만한 놈에게 적당히라는 게 있겠습니까.”
당당히 칼을 거머쥔 이스라가 포효했다.
【하, 하! 하. 사악한 사령술사 토드의 하수인이자, 불경한 마검의 주인, 이스라가 간다!】
하수인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 별개로, 자신만큼은 침착함을 유지해야 한다.
일단 레벨 30을 달성하면서 얻은 선택지는 유보하기로 했다.
실전에선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마지막까지 무엇이 튀어나올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으므로.
다시 말에 올라탄 토드가 하수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전력으로 움직인다!”
아까부터 저 멀리서 곧잘 피어오르던 불꽃이 점차 희미해지더니, 어느새 그친 뒤였다.
빗줄기가 더 거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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