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82
082
간만의 외출에 이스라는 신이 난 모습이었다.
【후후, 산 채로 뜯어먹혔다니. 실로 괴기스럽기 그지없군! 그만큼 심상치 않은 놈들이 도사리고 있겠지!】
벨트에 착실히 검집을 동여맨 파멸의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본인은 만반의 준비를 마쳤네!】
준비라고 해봐야 평소의 행색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스라는 언제나 갑옷을 입고 다니길 고수했으므로. 그래도 칭찬을 해준다.
“훌륭한 준비 태세입니다. 이스라.”
비록 말은 하진 않았지만, 어깨가 들썩이는 게 훤히 보인다.
반면 마르커스는 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평생을 교회의 거룩한 의무에 헌신했거늘, 이젠 사령술사 놈의 거처를 지키는 경비견 신세라니.】
“어허, 마르커스. 당신의 본분은 엄연히 이곳에서 영가들을 감시하고 있는 겁니다. 저들이 괜히 새어나가 다른 곳의 사람들에게 해를 미치면, 그 또한 경전에서 가르치는 자애를 저버리는 것이지요.”
그가 인상을 구겼다.
【아무 데나 신의 뜻이랍시고 갖다 붙이지 마라. 사령술사 놈!】
마르커스는 툴툴거리면서도 안락의자에 등을 붙인 채 연신 몸을 기울였다.
안치소엔 여태껏 토드가 모아둔 재산뿐만 아니라, 구비해둔 물품들이 가득하다. 적어도 마르커스 정도라면 자리를 비워도 안심할 수 있었다.
비록 그는 둘라한이지만, 어지간한 기사 두세 명 정도는 가볍게 압도할 만한 전력이다.
‘알바로는 지박령이라 여길 떠나면 힘이 약해진다. 아직 다른 곳에선 활용하기가 어려워.’
그를 데려가는 대신, 토드는 작은 손거울을 꺼내 휘파람을 불었다.
그의 부름에 망령 3기가 바닥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여기 머물라.”
망령들은 망설이다가 토드가 슬쩍 마르커스 쪽으로 시선을 던지니 황급히 손거울에 파고들었다.
품에 거울을 잘 갈무리하고, 향로를 집어 든다.
마침 지하실에서 빠져나온 산시아가 말했다.
“말씀하신 도구들은 전부 챙겼어요.”
“좋습니다. 출장을 가볼까요?”
【다녀오겠다! 하수인들이여! 이곳을 잘 지키고 있도록!】
시 일간지를 펼친 채 앉아 있는 마르커스를 향해 토드가 말했다.
“마르커스. 혹시라도 자리를 비운 사이에 손님이 오면 인상을 쓰진 마세요. 어렵게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쫓아내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나는 인상을 쓴 적이 없다. 사령술사. 원래 이런 인상인 걸 어쩌란 말이냐.】
아무래도 마르커스는 오랫동안 교회에서 지내온 데다가, 심판관으로서 활동해오면서 지켜온 엄숙한 관습이 몸에 익은 존재였다.
“흠··· 그럼 다음에 돌아오면 입꼬리 쪽을 수술해보는 건 어떨까요? 언제나 미소를 띠고 있으면 사람들이 두려움을 덜 느낄 것 같은데요.”
일간지를 젖힌 마르커스가 노발대발했다.
【어디까지 나를 끌어내릴 작정이냐! 이 이상, 내 몸에 털끝도 손댈 수 없다! 가서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군! 사령술사와 떨거지들. 그래야 이 저주받은 속박에서 풀려날 수 있을 테니!】
그의 악담에도 불구하고 이스라는 전혀 개의치 않고 문고리를 열어젖혔다.
【하, 하! 하. 날씨가 정말 화창하군! 좋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기분일세!】
바깥은 온통 안개가 자욱했다. 강 하구에 있는 판가우의 지리상 맑은 하늘은 고사하고 햇볕이 내리쬐는 일조차 드물었다.
퉁, 팅, 탁.
거기에 소금 결정만 한 우박이 떨어지면서 연신 이스라의 갑주를 시끄럽게 울려댄다.
망토를 드리운 토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확실히.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긴 합니다.”
“···안 좋은 쪽으로요.”
토드 역시 동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스라는 발걸음은 가볍게 놀리되, 수시로 주변을 살피느라 분주했다.
우박이 떨어지는 우중충한 날씨임에도 뱃사공들은 쉼 없이 뗏목을 몰았다. 점성 가득하고, 죽은 쥐의 사체가 둥둥 떠다님에도 강물을 오가는 물산은 끝이 없다.
판가우는 밀수꾼들이 모여드는 데다가, 제국 북부 물류의 중심지다.
‘방부에 필요한 물건들을 구하기엔 이만한 곳도 없지.’
대도시에서는 밀랍 한 봉에 은화 다섯 닢까지 후려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는데, 물건의 출처나 이따금 피가 묻어있는 걸 신경 쓰지 않는다면 무엇이라도 값싸게 구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물론 품질도 매번 극과 극을 오가지만, 차라리 뽑기를 많이 하는 편이 나았다.
인기척이 드문 변두리를 빠져나오니, 제법 도시를 오가는 사람들이 속속 보인다.
우박이 잦아들더니 이젠 진눈깨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망토를 깊이 눌러써도 이따금 얼굴에 튈 정도로 알갱이가 제법 굵었는데, 그럼에도 누구 하나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천으로 덮은 우산이 존재하긴 하는데, 교회법에 따라 성직자들만 쓸 수 있기 때문.
덕분에 사람이 지나칠 때마다 축축한 냄새가 비릿하게 올라왔지만, 그럼에도 토드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이게 낭만이지.’
그깟 비 좀 맞는다고 탈이 나겠는가.
더군다나 자갈을 깔아 포장한 도로는 곳곳에 웅덩이가 가득해서, 발치에선 첨벙대는 소리가 울렸다.
비록 상체는 젖었고, 신발은 축축해졌어도 이 생동감 넘치는 감각이란. 마치 어렸을 적 우산도 없이 좋다고 비를 맞으며 뛰놀던 동심이 회복되는 것만 같았다.
“쿨럭.”
감상이 무색하게 입에서 기침이 절로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창백한 인상이 백지장처럼 물들어서 병색이 완연한 환자처럼 보였다.
“···스승님. 제 망토라도 덮어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잊으셨나요? 사령술사는 어머니의 은혜 덕에 어지간한 질병으로부터 해를 입지 않는답니다.”
그럼에도 토드를 바라보는 산시아의 눈동자에 안타까운 빛이 어렸다.
“스승님은 당장에라도 돌아가실 것 같은 몰골이세요.”
“괜찮을 겁니다. 쿨럭. 아마도.”
은혜 덕분에 분명 몸져누울 정도의 병으로 치달지 않을 거라는 건 아는데, 원체 육체 스펙이 쓰레기라 그런지 잔병치레가 잦다.
‘빌어먹을 몸뚱이.’
항상 삐걱대는 몸뚱이가 발목을 잡는다.
이쯤 되면 활력을 돋구어주는 마법 물품이라도 구해놔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지출을 최대한 줄여야 해.
시가지로 들어서니 무수한 잡상인들이 달려든다. 유난히 토드 일행에게 어그로가 쏠리는 데에는 이스라의 복색도 한몫했는데, 판가우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흑색 갑옷 때문이었다.
“거기 키 큰 양반! 순무가 달다오! 하나만 잡숴보고 가!”
【이크. 쥐가 뿌리를 갉아먹고 있군! 이거 썩은 게 아닌가?】
“어제 라흐페 지류에서 낚아 올린 숭어요! 지금이 산란기라 알이 실해!”
【눈알이 불어터진 거로 보아, 일주일은 되었구만.】
수중에 돈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지, 어떻게든 주머니를 털어보려 온갖 시정잡배들이 꼬여 든다.
이스라는 괜히 호통을 치거나 겁을 줘서 몰아내지 않고, 일일이 대꾸해주면서도 미꾸라지처럼 요령 좋게 빠져나갔다.
다소 질릴 법도 한데 투구 속 안광은 변함없이 세차게 타오르고 있었다.
“꽤 즐거워 보이십니다.”
【시장에 생기가 넘치는군! 하핫.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네. 마땅히 기사로서 민생을 시찰하는 것도 의무일 테지.】
시끌벅적한 상업 구역을 지나갈 즈음에는 가판대에서 책을 파는 이들도 있었다.
당연히 이스라는 넘어가는 법 없이, 책머리와 표지를 샅샅이 살피고 지나갔다.
【주인장. 이건 무슨 책인고? 도통 제목이 쓰여있질 않구만.】
그러자 졸고 있던 사내가 입가에 침을 닦고는 음흉한 미소를 흘렸다.
“여기 모아둔 건 하나같이 잘 팔리는 것들이라오.”
【잘 팔린다고? 괴상하군. 우선 책을 고르려면 겉장의 제목부터 살펴보는 게 관례이거늘···】
무심코 책장을 넘기던 이스라의 안광이 흔들렸다. 토드가 어깨너머로 슬쩍 살펴보니 어째 활자보다 삽화가 많아 보였다.
화들짝 놀란 이스라는 헛기침을 하더니 급히 책을 내려놓았다.
【실례했네!】
“다음엔 혼자 오셔! 특별히 두 권 사면 한 권 더 끼워줄 테니!”
【올 일 없네!】
성큼성큼 걸어가던 이스라는 분통을 터뜨렸다.
【어찌나 저리 망측스러울 따름인가! 저런 불순한 출간물을 길거리에서 버젓이 팔다니. 역시 도시는 타락이 만연한 공간이로군!】
“조금 전까진 시장에 생기가 넘쳐서 보기에 즐겁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의 안광이 가늘어진다.
【저건 문학에 대한 모독일세! 무릇 본인이 즐겨보는 기사도 문학들은 하나같이 숭고한 서사와 지고지순한 정열과 사랑에 대한 고상한 찬사이거늘! 저건 순 야만적이고, 무가치한 외설적 쪼가리에 불과하네!】
토드가 반문했다.
“평소에 책을 즐겨보는 애독자시면서, 문학에 우열을 가리시는 겁니까? 저것도 어찌 보면 사랑의 솔직한 일면을 다룬 문학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폄훼할 정도는 아닐 텐데요.”
【흠! 아무리 자네라도 반론은 듣지 않겠네! 무엇보다 책을 고르는 데 있어선, 본인에게 타협이란 없으니!】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있네.
토드가 생각하기에 이스라가 탐독하는 기사도 전집이나 길거리에서 파는 외설적인 책들도 본질적으론 같았다.
이상적인 기사도와 낭만으로 꾸며진 연애담? 호화로워 보이는 포장지를 벗기면 드러나는 것이 인간의 적나라한 욕망이다.
적어도 이상향을 추종하는 저 기사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일 수도 있다.
‘아니면 혹시 모르지. 그냥 내숭을 떠는 것일 지도.’
뭐, 그거야 본인이 알아서 하는 거니까.
문득 토드는 걸어가다가 자꾸만 이스라가 고개를 돌려 예의 책을 팔던 가판대 쪽을 확인하는 걸 목격했다.
속셈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움직임에 토드는 실소를 흘렸다.
‘나중에 이스라가 시장 쪽으로 혼자 외출할 일이 생긴다 해도, 모르는 척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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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잡이로 지어진 기색이 역력한 판가우의 여타 건물들과 달리, 의회 의사당은 으리으리한 위용을 풍겼다.
건물 좌측에 솟구친 뾰족탑이 광장에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뒤편으론 초록색 라흐페 강이 휘감겨 내려간다.
눈발이 잦아들긴커녕, 거세지는 와중에도 광장에는 짐 마차들과 말 탄 장정, 도롱이처럼 짚을 엮은 모자 쓴 선원들이 시끄럽게 조잘대며 물결치듯 스며들었다가 도시의 동쪽에 난 성문으로 빨려 나간다.
광장 왼편에는 교수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벌거벗겨진 시체가 줄에 매달린 채로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었다.
토드가 썩어가는 불우한 사내를 가리켰다.
“산시아. 저분의 상태는 어떤가요?”
그의 물음에 시체를 예의주시하던 산시아는 막힘없이 답했다.
“팽창된 신체 부위나 외피의 허물이 벗겨진 정도로 보아 부패기에 도달한 상태네요. 이미 죽은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것 같은데, 날씨가 추워서 변형이 심하게 이루어지진 않았고요.”
산시아는 공작령 영애였던 까닭인지 몰라도, 기존에 보유하던 학식이나 이후에 학습 진척도가 우수하다.
토드는 흡족한 미소를 흘렸다.
“훌륭합니다. 그럼 방부 처리의 수준은 어떻게 보이십니까.”
산시아가 고개를 저었다.
“처우가 그리 좋진 않았네요. 소금에 절인 걸로 그쳤는지, 코와 입에서 흐른 분비물이 그대로 말라붙었고요. 저대로 뒀다간 위생상 좋지 않을 거고요.”
주변을 거니는 이들 중 누구 하나 교수대에서 말라붙은 사내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가 없다. 그가 매달리던 당시에는 구경꾼이 꽤 몰렸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도시의 구조를 생각해보면, 아마 경고의 의미가 강할 겁니다. 워낙 범죄자들이 가득한 곳이니, 저것만으로도 통제하기가 쉽진 않겠지만요.”
“이곳은 범죄의 온상인 곳인데, 여기서마저 매달릴 정도면 얼마나 중범죄를 저지른 걸까요?”
토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비록 고름과 종기에 덮여 잘 안 보이시겠지만, 어깨에 새겨진 표식으로 보아, 조직원. 그중에서도 흑마법사들의 끄나풀이 분명합니다.”
산시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번 일도 분명 도시에서 암약하는 흑마법사들과 모종의 연관성이 있겠죠.”
“글쎄요. 아직 속단하기엔 이릅니다. 곧 확인할 수 있겠죠.”
의사당 입구는 의회가 개최될 때까진 굳게 잠겨 있다. 토드는 사전에 라즐이 일러준 대로, 옆에 나 있는 창구를 향해 다가섰다.
“실례합니다. 행정관 라즐 씨의 요청으로 방문했는데요.”
특이하게도 창구는 귀가 뾰족한 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묘한 생김새 탓에 성별이 모호했다. 그인지, 그녀인지 모를, 엘프는 지루함이 뚝뚝 묻어나는 투로 성의 없이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장의사 토드 하워드입니다.”
엘프가 손을 휘적였다.
“망토 좀 걷어보세요. 얼굴 좀 보게.”
“···됐습니까?”
빤히 시선을 마주치던 엘프는 작게 중얼거렸다.
“안에서 소란은 피우지 마시길. 그렇지 않아도 이번 달 초에 흑마법사 나부랭이 하나가 깝치길래, 제가 매달아줬거든요.”
토드가 빙긋 웃으며 답했다.
“아, 광장에 걸린 분이요. 당신이 잡으신 겁니까?”
턱을 받친 엘프가 비릿하게 웃었다.
“예에, 뭐. 제가 마법사 놈들 하나는 기가 막히게 족치죠. 그러니까 그쪽도 괜히 들어가서 뭔가 수틀렸다고 육갑 떨면 골로 가는 거예요? 가뜩이나 인간들은 수명도 짧은데, 왜 그리 죽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다니깐.”
구시렁대던 엘프는 비척비척 걸어 나와 문을 열어줬다.
“라즐 씨는 시 안전보장 의원회 소속이니까. 3층 끄트머리 사무실로 가시길.”
“감사합니다.”
토드는 발을 질질 끌며 창구로 들어가는 엘프를 예의주시했다. 저렇게 움직이는데도 기척이나 별다른 소음이 전혀 없다.
‘암살자네. 저런 사람이 시의회에 3명 정도만 있어도 뒷골목의 범죄자들은 하룻밤 안에 싸그리 소탕하겠는걸.’
하지만 시의회에서 범죄자 소탕에는 그리 관심이 없어 보인다. 더군다나 저 엘프도 평소에 의욕이 넘치는 인물론 보이지 않았고.
시끌벅적한 길거리와 달리, 시의회 내부는 고요했다. 게다가 온통 석조로 지어진 복도는 삭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창구의 엘프가 일러준 대로 3층 끄트머리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니, 곧장 살이 통통하게 오른 시궁쥐 같은 사내가 반색하며 토드를 맞이했다.
“아, 하워드 씨! 마침 잘 오셨습니다. 이거, 안에 들어오셔서 옷도 좀 말리시고 하셔야 할 텐데, 지금 상황이 급박해졌습니다. 어서 지하로 가시죠.”
“급박해지다니. 뭔가 징후가 있었나요?”
라즐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저도 방금 들었는데 말입니다. 지금 지하 구금실에서 죽은 가해자가 되살아나 난리를 피우고 있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