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미대 오리엔테이션(1)
“파이팅!”
“회화과, 파이팅!”
의문을 품은 건 수현뿐이었는지, 그 영악한 김민준마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고, 애들 모두가 홀린 듯 파이팅을 외쳤다.
순진한 동기들은 사활을 걸고 승리를 가져오겠노라 다짐하며 곧 집으로 돌아갔다.
스무 살이 됐고, 무려 백현대 미대에 들어왔고, 회화과 1학년 대표로 뽑히기까지 한 데에 잔뜩 가슴이 부푼 게 분명했다.
다음 날 정오.
“와, 미대는 미친 애들이 왜 이렇게 많아?”
친구들이 수현의 집에 모였다.
화제는 단연 어제 있던 신입생 환영회였다.
“이제 얼굴 처음 봤는데 자기소개랑 장기자랑을 같이 시키더라? 근데 애들이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빼는 것도 없이 철판 깔고 하는 거야. 와, 노래하고 춤추고 난리도 아니었어. 나, 디자인과 아니고 연영과 온 줄.”
박선화는 동기들 대부분이 끼가 충만해 오히려 자신이 위축되는 기분이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와, 박선화. 네가 눌릴 정도면 애들 기가 보통이 아닌가 보네. 근데 장기자랑? 넌 뭘 했는데?”
“하긴 뭘해. 그냥 노래 하나 불렀지. 그게 제일 평범하니까.”
그러자 박선화의 남자친구인 박준영이 고개를 저었다.
“믿지마, 얘들아.”
“뭘?”
“왜?”
“어제 최고로 시선을 끈 게 선화였으니까.”
“박선화가?”
“진짜?”
모두의 시선이 박선화를 향했다.
“뭘 불렀는데?”
수현이 물었고, 박선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냥 애니 주제가. 달에서 온 소녀.”
“헐.”
“와.”
애들이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차라리 유행하는 발라드 곡이나 대충 부를 것이지, 애니메이션 주제가, 그것도 달에서 온 소녀라니.
달에서 온 소녀는 90년대 폭발적인 인기를 끈 애니메이션으로 TV에도 한참 방영돼 수현의 또래엔 모르는 사람이 드물었다.
처연한 목소리에 아련한 분위기. 조금만 작품의 색깔을 풍기면 자지러지는 애들이 속출했을 텐데, 겁도 없이. 아니, 노린 건가?
“난리도 아니었다. 한 소절 시작하자마자 선배들이 막 울부짖더라. 중반부부터는 거의 떼창이었어. 다 같이 부르는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는데…….”
키득키득 웃으면서도 예뻐죽겠는지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박선화를 바라보는 박준영. 애들이 그 시선을 모른 척 다시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오리엔테이션에서 무슨 경합을 한다며?”
“아, 너희도 들었어?”
“대표 선수 뽑는다고 지원하라더라고. 근데, 누가 손을 들겠어. 결국 회장이 조교님이랑 상의해서 지목했잖아.”
“오, 조소과는 그렇게 했구나.”
“너희도 뽑았지?”
“시디과는 튀려는 애들이 엄청 많은지 막 손들더라고. 순식간에 끝났어. 네다섯 명 뽑았나? 예술학과는?”
“우린 공 뽑기로 했어. 빨간 공 뽑은 애들이 선수가 된 거지.”
경합에 대한 건 공통적으로 공지된 모양인데 선수를 뽑는 방식이 과마다 달랐다.
부담 없이 가볍게 넘기는 과가 있는가 하면, 윤희네 조소과나 수현의 회화과처럼 덤벼드는 과가 있었다.
“사실 나 회화과 대표로 나가게 됐어.”
그리고 수현이 회화과에서 어떤 절차를 통해 대표 선수로 선발됐단 얘길 꺼내자 애들이 화들짝 놀랐다.
“와. 괜찮아?”
“저런. 어쩌다가.”
진심으로 딱하단 얼굴로 수현을 바라보는 친구들.
오래 봐온 친한 사이니 수현의 성격을 잘 알았고, 떠밀리듯 일을 맡게 된 걸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뭐, 대회도 아니고 즐기는 기분으로 해야지. 이왕이면.”
“그래. 그럼 됐고.”
“아, 그런데 좀 이상한 게 있더라?”
수현이 안 그래도 궁금했던 일을 꺼냈다.
“선배들이 안 보이던데?”
“무슨 선배?”
“세현예고 선배들 말이야.”
“어, 정말. 그러고보니 나도 그랬어.”
수현의 말에 차윤희도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 명문인 만큼 세현예고에선 매년 백현대 미대 합격자를 배출했다.
그러니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 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던 거다.
그게 희한하다 싶었는데, 차윤희도 조소과에서 세현예고 선배들을 보지 못했다고 무릎을 쳤다.
“디자인과는?”
“시디과엔 있었어. 종현 선배랑 로운 선배랑, 경희 누나도 보고.”
“오. 디자인과에는 다 있던 거네?”
“뭐, 우리도 복잡해서 길게 인사하거나 얘기할 시간은 없었어. 어쨌든 2학년 선배들은 다 본 듯해.”
“하긴 시디과는 정원이 많아서 세현 출신들이 많기도 하니까.”
시각디자인과는 한 학년에 70명이 정원인 반면, 회화과는 40명, 조소과는 20명으로 그 수가 적었다.
세현예고 출신들의 수도 그에 비례해 회화과의 경우, 졸업 준비로 바빠질 4학년을 제외하면 서너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그러니 마주칠 확률이 낮았겠거니, 오리엔테이션이나 입학 후엔 얼굴을 보겠거니 넘기려는데, 박선화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게, 디자인과 선배들은 그래도 성격이 좋은 편들이잖아.”
“……?”
“종현 선배도 그렇고, 다른 선배들도 까탈스럽진 않으니까. 근데 회화과랑 조소과에 들어간 선배들은 문제가 좀 있어. 특히 2학년들.”
“무슨 문제?”
“대충 김하영 같은 스타일이라고 해야 하나?”
좀 과격한 표현이긴 했으나 단박에 이해되는 설명이었다.
“그러니까 여기 와서 자기들이 예고 출신이라고 엄청 티를 낸 거지. 오래 그린 거, 집 좀 사는 거, 이런저런 우월감에 도취돼서 말이야.”
“뭐, 그럴 수 있지. 안에서 새던 바가지가 대학 간다고 안 샐 리가 없으니까.”
“그래. 세현에서도 눈살 찌푸리게 하는 애들이 있었잖아. 그런 성향의 선배들인 거면, 와서도 엄청 물을 흐렸겠네.”
“맞아. 은근히 사람 깔아뭉개고 편 가르고 그런 짓을 하다가 거꾸로 따돌림 당한 것 같더라고. 여튼 2학년 선배들 몇몇은 아주 안 좋은 처지래. 3학년 중에선 사고 치고도 다시 유학 간 선배들이 있는데, 2학년들은 아직 그런 낌새는 없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
새삼 박선화의 정보력에 감탄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얘는 대체 자기네 과도 아닌 다른 과 내부 사정을 어떻게 이렇게 속속들이 알고 있는 걸까. 이것도 화랑을 통해 드나드는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얘기들일까?
어쨌거나 그럴듯한 정황 설명이었다.
“우린 그러지 말자.”
박준영이 마음에 안 든단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고.
“그래. 대학에 왔으면 더 많은 경험을 해야지. 내가 가진 걸 자랑할 게 아니라.”
차윤희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리고 오유나는,
“그래도 일부러 피할 것까진 없잖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전공 상관없이 듣는 수업들이 개설될 예정이라며. 나, 너희랑 그거 같이 들을 생각이었는데?”
“어?”
“예고 티 내고, 친목을 앞세우는 그런 거, 하지 말잔 소리로 들려서. 그렇다고 아예 모른 척하자는 건 아니지? 그 수업은 같이 들을 거지? 와, 그런 것도 안 할 거면 같은 대학 왜 다녀?”
“에이, 그 정도야 괜찮지.”
“그럼 그럼. 진정해 유나야. 우리가 친하게 지내는 거랑 다른 애들한테 선을 긋는 거랑은 다른 얘기니까.”
“안 그래도 나도 그 수업 얘기 하려고 했어. 구체적인 시간표가 나오면 상의하려고 했지. 하하, 다들 같은 생각이었구나?”
“좋아. 그럼 됐어.”
애들의 확실한 대답에 오유나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씩 웃었고, 수현과 친구들은 다시 이번 학기 백현대 미대에 신설될 커리큘럼에 대한 정보를 아는 대로 나누었다.
같이 떠들고, 먹고, 쉬고, 그리고.
주말이 훌쩍 지나더니 다시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
“과티 안 입은 학생들은 얼른 착용해주세요!”
“버스 잘 보고 타라! 다른 과 버스 타면 책임 못 진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어, 그래. 주말 잘 보냈고?”
“선배님 보고 싶어서 못 지냈습니다. 얼굴 보니까 너무 좋아요오!”
“넉살도 좋네. 애들 좀 챙겨줘! 신입생 환영회 불참한 애들, 저쪽에 뻘쭘하게 서 있더라.”
“네! 알겠습니다!”
백현대 운동장은 2천 명에 가까운 인원으로 북적거렸다.
미술대학 11개 과, 3천 명의 학생 중 절반 이상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게 된 거다.
45인승 버스가 무려 40대나 줄줄이 세워져 있었고, 그 모습만으로도 벌써 질리는 기분이 드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오리엔테이션이었다.
“수현이 왔니?”
수현 역시 조금 멍한 기분으로 그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회화과 학생회장을 비롯해 몇몇 얼굴이 익은 선배들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컨디션 어때?”
“괜찮아요. 잠도 잘 잤고요.”
“좋았어. 너 혹시 멀미하니?”
“잘 안 하는 편인데요?”
“혹시 모르니까 이거 붙여라. 귀밑에다가. 강원도 쪽이라 버스가 빙글빙글 돌면서 갈 거거든. 멀미해서 컨디션 떨어지면 큰일이야.”
월드컵이라도 내보낼 기세로 오늘도 학생회장은 수현을 살뜰히 챙겼다. 수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학생회장이 건네준 멀미약을 받아들었다.
백현대 회화과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버스를 발견한 수현이 성큼. 걸음을 옮겼고,
부릉부릉. 부와왕-.
30분쯤 후, 정해진 인원을 모두 태운 버스가 무겁게 시동을 걸며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미르시각!”
“강화조소!”
“으뜸산디!”
“열정회화!”
오리엔테이션 장소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자마자 불려 나온 대강당.
새내기들은 미대 학생회장의 손짓에 따라 자기 과의 별칭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다.
“조소과 목소리가 작습니다! 인원이 작아서 목소리도 작은 겁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다시 한번 외쳐보겠습니다! 중심 백현! 단결 미대!”
“강화조소!”
극기 훈련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학생회장이 중심 백현, 단결 미대를 외치며 손짓하면 그 방향에 앉은 각과 학생들이 자기네 별칭을 고래고래 외쳤다.
‘이래서 백현대, 백현대 하는구나.’
순식간에 길들여진 새내기들을 보며 수현은 내심 놀랐다.
전에 다녔던 대학과는 비교되지 않는 규모에 엄청난 열기.
언제 준비했는지 대형 강당엔 엄청난 크기의 현수막들이 주렁주렁 걸려있었고 새내기들은 빠르게 거기 적힌 자기네 과의 별칭을 외워 주문처럼 반복해 외치고 있었다.
미르시각, 강화조소, 으뜸산디, 열정회화, 감성도예, 불꽃섬디, 극강목조, 기품예술, 기백동양, 매일판화, 폭풍금디.
11개 과의 별칭과 현수막의 디자인은 다소 오글거렸지만 이 시절다운 것이었고, 각 과의 개성을 드러내기에도 충분했다.
구호를 외치는 사이, 새내기들은 소속감과 연대를 느끼며 백현대 미대 안으로 슬슬 녹아들었다.
애들의 목청이 점점 쉬어갈 즈음.
미대 학생회장이 씨익 웃으며 개회사를 시작했다.
“지금부터 백현대 미술대학 98학번 새내기들의 미대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와아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이 울려 퍼졌고, 두구두구두구.
재학생과 새내기 모두가 앉은 자리에서 손바닥으로 바닥을 두드리며 자기네 과의 별칭을 박자에 맞춰 외치기 시작했다.
어쩐지 섬뜩한 광기의 현장.
부릉부릉 시동이 걸렸고-.
“먼저 선배들의 환영사가 있겠습니다!”
회장의 선언으로 오리엔테이션 첫날이 뜨겁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