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질투는 그들의 힘(2)
두 시간 후, 일선아트센터 기획 회의실.
“이거 그냥 둬도 될까요?”
“악의적인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데요. 거기에 허위사실까지 섞였고요.”
“알아보니 이 정도로 끝날 거 같지 않아요. 큰 영향력 있는 언론들은 아니지만, 자기들이 뻗을 수 있는 곳엔 최선을 다해 마수를 뻗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하, 쓸데없이 부지런들 하셔.”
수현의 첫 개인전 ‘위로’의 전시기획자와 JK의 김영인 부장, 그리고 그 아래 홍보 담당자들이 미간을 찌푸리며 강유진에게 상황을 전했다.
갤러리와 현대아트를 비롯한 몇 미술 잡지와 신문에서 수상한 기사들이 발견됐다.
강유진이 처음 확인했고, 비슷한 시각에 JK에서도 이상기류를 포착했고.
“대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이런 짓을 벌인 걸까요?”
강유진은 재밌다는 듯 싱글싱글 웃으며 물었다.
처음엔 몹시 화가 났는데, 차츰 이 상황이 재밌게 느껴진 거다.
“아주 용감한 노인네들 아닙니까? 법이고 뭐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드러눕는 거잖아요. 화단에서 방귀 좀 뀌는 자기들한테 설마 신인 따위가 세게 대응할 수 있을까 싶어 배짱을 부리나 본데, 하. 이걸 어떻게 조져주나…… 아니지, 고운 말 써야지. 흐흠. 그러니까 어떻게 이걸 바로 잡으면 좋을까, 제가 생각이 많아요, 지금.”
회의실 테이블 위엔 수현의 전시회를 소재로 찧고 까분 기사들이 실린 신문과 잡지가 빠짐없이 쌓여있었다.
강유진 관장이 그걸 서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대중의 눈치나 보는 게 예술인가, 감정에 호소하는 싸구려 예술, 현대 미술은 어디로 가는가, 추락한 권위, 하. 입에 담기도 유치하고 지저분하네. 뭐 이런 거야, 못난 질투에서 나온 악평이라 넘기겠는데, 문제는 이거예요.”
강유진이 손을 뻗어 잡지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갤러리와 현대아트. 여기가 제일 악질인데, 기사 말미에 이런 말이 실렸더라고요?”
강유진이 페이지를 후루룩 넘기더니 문제 기사를 찾아 읽어 내려갔다.
“부모는 자기 아이가 그려준 초상화를 소중하게 간직한다. 특별한 추억이 담겨 그만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걸 명화와 동급으로 여기지 않는다. 나름의 가치는 인정하나 제대로 된 잣대를 들이대면 어쩔 수 없이 서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시도는 좋다. 그러나 질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전시 ‘위로’의 신인 작가가 자신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측근에게 확인한 결과, 전시 ‘위로’에 공개된 작품들은 전부 10만 원 선에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고 한다. 하, 하하!”
강유진이 다시 봐도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실컷 까더니, 한다는 소리가 우리 한수현 작가 그림이 한 점당 10만 원이랍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강유진이 흥분했고 회의실 사람들의 얼굴도 심각하게 굳어졌다.
“10만 원이 대체 어디서 나온 숫자죠? 측근은 또 누구고요? 이거 완전히 유언비어 아닙니까.”
“얼른 바로잡아야 하겠는데요. 벌써 여기저기 퍼져나가기 시작하고 있어요. 그냥 뒀다가는 수습하기 어려워질 거예요.”
“그렇죠. 작품을 사려는 고객들이 혼란을 겪을 수도 있고요.”
근거 없는 뜬소문.
그러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전시회에서는 작품에 가격을 붙여놓지 않는다. 그림을 사려는 사람들은 관계자에게 따로 문의해 구매를 진행하는 식이니까.
물론 유명작가들의 경우엔 대강 짐작되는 범위가 있다.
이전 작품들의 가격이 공개되기도 하고, 경매시장에서 팔렸다면 그 정보를 기준으로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수현은 이제 막 첫 전시회를 연 신인. 아직 시장에 가격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제 작가와 갤러리가 논의해 정한 가격을 슬슬 공개할 시점인데, 난데없이 10만 원짜리 그림이란 공격이 들어온 거다.
황당한 건 둘째치고 이대로 소문이 퍼지면 앞으로 작품 판매에 큰 악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한수현 작가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위로’라는 취지에 맞는 판매 방식을 고민해달라 요청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림 가격을 처음 욕심만큼 높이진 않았어요. 대신 기념품 제작 쪽에 신경을 쓰면서 부수적인 수입을 낼 수 있게 했고요. 근데, 10만 원은 우리가 낮춘 금액을 놓고 봐도 말도 안 되는, 아주 어이가 없는 금액이고요. 이건 기성들이 한수현 죽이기에 나섰다고 봐도 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강유진 관장이 말하는 동안 꼼꼼하게 나머지 기사와 후속 기사까지 확인한 JK 김영인 부장이 노기 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술 작품 가격이 형성되는 요인은 복잡하고 똑 부러지는 기준이 없다.
보통은 작가의 전시 이력이나 작품 판매 이력, 상태와 출처, 이슈와 희소성, 제작비 등을 고려하는데, 이슈와 제작비만 기준으로 삼아도 수현의 그림은 헐값에 팔릴 수 없는 구조였다.
연초부터 쇼케이스로 호기심을 자극했고, 전시 오픈과 동시에 관람객이 몰려들어 연일 성황을 이루었으니 이슈 면에서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기획부터 전시까지 들어간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
그런데 작품 당 10만 원이란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으니, 강유진과 JK 관계자들은 분노하는 한편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머리가 복잡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반박 기사라도 내고 싶은데.”
“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내용이 문제라서요.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 같아요. 자칫 구정물이 튀는 형국이 되면 전시회는 사라지고 돈 얘기만 조명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술 활동이 계속 이어지려면 작가에게 후원과 경제적인 대가가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걸 앞세우면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
감동이 돈으로 환산된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림 앞에서 순수한 감상보다 숫자를 먼저 떠올릴 테니까.
무엇보다 수현의 전시 주제는 ‘위로’였다.
사람들을 위로하겠다고 모아놓고, 그림 가격이 10만 원이다, 10만 원이 아니다 싸운다면 보는 이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쓸데없는 잡음으로 수현의 전시회에 크게 흠집이 날 수 있었다.
“일단 황 화백 쪽이랑 자리를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요.”
JK 홍보팀 차장이 의견을 냈고, 김영인 부장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리고 강유진 관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 때.
똑똑.
회의실 문을 누가 살짝 두드리더니 빼꼼, 열린 문틈으로 수현이 얼굴을 내밀었다.
“저, 혹시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저도 함께 이야기를 나눠도 괜찮을까요?”
“어?”
“저도, 좀 전에 기사를 하나 봤거든요.”
“어머나!”
강유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시 후.
“우리 한 작가님한테는 내가 면목이 없네.”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한 강유진 관장이 정말 미안한 얼굴로 수현을 바라보았다.
세현예고 시절, 미술 전시회와 전국대회에서도 추악한 어른들의 욕심이 끼어들어 수현을 억울하게 끌어내리려는 시도가 몇 번이나 있었다.
자신과 직접 연관 있는 사건도, 관계된 인물도 없었으나 강유진 관장은 그들과 같은 기성세대라는 이유만으로 무거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불의가 당연하게 판치는 업계를 바로 잡지 못한 데에 미안한 마음이었고.
게다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는데, 아직 확실한 대책을 정하지 못했으니 그 또한 면목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모두 들은 수현의 얼굴은 의외로 아주 침착했다.
“그러니까 제 그림이 작품 당 10만 원이라는 이야기가 번져나가고 있다는 거죠?”
“맞아. 뜬금없긴 한데, 유명 신인의 그림이 단돈 10만 원이라니 여기저기 퍼다 다르면서 기사를 쓰고 있어.”
“해프닝이라고 정정 기사를 내는 것 말고, 다른 좋은 방법이 있을지 고민 중이신 거고요?”
“그렇지. 우리는 사건을 키우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닐 거라 생각해.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고 저쪽을 고소 고발하면 우리 쪽에도 좋을 게 없을 거거든. 당장은 전시를 잘하는 게 중요하니까. 구설수에 오를 일은 피하는 게 좋지.”
“그래서 생각해본 게 있는데요.”
강유진이 설명을 마치자 다시 김영인 부장이 좀 전 떠올린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우리가 안 그래도 그림값을 내리는 대신에 기념품 쪽에 집중하고 있었잖아요. 엽서라든가 스티커, 도록, 노트 같은 것들을 따로 제작했고.”
“네.”
“구성을 몇 개 더 추가해서 아예 10만 원짜리 특별 패키지를 만들면 어떨까요?”
“10만 원짜리 특별 패키지요?”
“어차피 10만 원이란 숫자가 퍼져나간 이상, 사람들 뇌리에서 깨끗하게 지우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림을 정말 10만 원에 팔 수는 없는 노릇이니, 특별 패키지 세트를 만들어보자는 거죠. 100인 한정 10만 원에 판매한다. 이렇게 홍보하고요.”
“아, 그러니까 이번 사건을 해프닝이라 해명하면서, 작품의 가격이 아닌 특별 패키지의 가격을 명시한 게 잘못 보도된 거라 입장을 밝히자는 거죠? 그 사이 황 화백 쪽이랑 만나서 정리도 하고?”
“그렇죠.”
김영인의 설명에 강유진이 살짝 콧등을 찡그리며 생각에 잠겼다.
김영인의 말대로 10만 원짜리 그림은 없다고 못 박기보다, 다른 상품 정보가 잘못 전해진 거라 말하는 편이 좀 더 설득력 있을 것 같긴 했다.
그러나 특별 패키지라는 건 또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그게 10만 원이 되려면 어떤 설득력을 주어야 할지 얼른 판단이 서질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음. 저는 생각이 좀 다른데요.”
수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른 생각? 뭔데? 어려워하지 말고 말해 봐.”
“응. 편하게 말해요, 작가님.”
강유진과 김영인이 수현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수현이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아무리 특별 패키지라 해도 진품이 아닌 기념품이 10만 원이나 한다면 마음에 저항이 생길 것 같아요. 어려운 시기에 전하는 위로인데, 가격이 너무 센 것 같아서요.”
“음. 그건 그렇지만 100인 한정이기도 하고, 형편이 좋은 사람들에겐 그리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니까요. 아니면 특별 패키지의 수익금은 기부 형식으로 진행한다고 밝혀도 좋겠고요.”
“음. 그것도 좋겠지만, 본래 이슈를 덮으려면 더 큰 이슈가 필요한 법이잖아요.”
수현이 눈을 반짝였다.
“그렇긴 하지?”
“맞는 말이에요. 이슈는 이슈로 덮는 거죠.”
“음. 차라리 10만 원짜리 그림은 없다고 정정 기사를 내면 어떨까요?”
“정정 기사를?”
“정면으로 부딪치자고요? 그다음엔?”
“10만 원이 아니라, 모든 그림은 공짜다. 당분간 그림 판매 계획은 없다고 밝히는 거죠. 물론 이걸 진행하려면 JK쪽과 일선아트센터의 동의와 도움이 필요하겠지만요.”
“뭐?”
“어?”
생각지도 못한 수현의 강수에 강유진과 김영인, 홍보팀 사람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한수현 작가. 그냥 지르는 말 같진 않고, 뭔가 계획이 있는 거지?”
강유진 관장이 수현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물었다.
“네, 안 그래도 지금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수현이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