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10)
#10. 사진집 촬영
식사를 마친 재인은 먼저 가라고 떠미는 팀원들을 만류하고 그들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했다. 팀원들은 재인의 배웅이 황송한지 연신 꾸벅꾸벅 인사를 해 대서 그를 당황시켰다.
“가자 형.”
“어. 집에 도착하면 내려 주고 바로 가지 말고 올라왔다가 가. 할 얘기 있어.”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나도 줄 거 있거든.”
“그래.”
동생이 주려는 건 아마 전날 얘기한 정신 보호 물품 같았다. 팀원들이랑 저녁 먹자기에 식사만 생각했는데, 그새 물건을 챙겨 왔다. 얘기한 다음 날 바로 챙겨 오다니, 각성자는 전부 그런 것인지 참 성격들이 급했다.
‘어차피 말할 거 빨리 말할걸, 미안하게……. 헛수고하게 했네.’
집에서 재인이 하려는 얘기는 각성에 관한 것이었다. 상태창이 보인다는 사실은 감추고 치유 능력을 얻었다는 사실만 알릴 생각이었다.
이미 부작용인지 특이 체질인지 알 순 없으나 물약 효과가 극대화되는 일을 겪었다. 거기에 혼자만 상태창이 보인다는 황당한 얘기를 보탤 마음은 없었다.
* * *
“형. 내가 사진 모델 해 보라고 하긴 했지만,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해 보겠다고 했잖아. 이미 끝난 얘기를 뭐 하러 또 꺼내.”
“아까 팀장 말대로 그런 건 누가 떠밀어서 결정하면 안 되는 일이니까.”
“에효. 넌 진짜 나를 몇 살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재인은 동생 덕에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내리느라 애써야 했다. 덩치는 저보다 훨씬 큰 녀석이 기가 죽어 쭈그러든 게 어째 귀여워 보였다. 눈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았다.
가족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였는데, 그게 진심으로 미안했는지 꽤나 풀이 죽었다. 어제오늘 제가 형이라도 된 양 굴더니, 역시나 동생은 동생이었다.
‘그다지 강압적인 것도 아니었는데, 되게 미안해하네.’
여기서는 아니지만 이미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일에 익숙할 대로 익숙한 나이였다. 겉보기엔 사회 초년생을 못 벗어나 보일 테지만, 누가 등 떠민다고 결정하고 말고 하는 나이는 벗어난 지 오래였다.
“어차피 복학할 마음도 없었어. 네 말대로 페이 괜찮은 아르바이트 한 번 더 한다고 생각하지 뭐.”
모델료 잘 쳐준다고 했다는 말을 끝으로 재인이 입을 닫았다. 더는 동생의 풀 죽은 꼴을 보고 싶지 않은 그 나름의 배려였다.
“알았어. 형 이거 받아.”
“아!”
심플한 금속 팔찌와 목걸이였다. 두 가지 액세서리는 재현이 고르고 고른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는 물리 대미지와 정신 간섭을 막아 주는 아이템이었다.
아이템에 관한 설명을 듣는 재인의 얼굴에 미안함이 가득했다. 아까 저녁 약속을 잡을 때 각성했다고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늦게 알려서 헛수고를 시키고 말았다.
“미안. 아까 말 못했는데, 나 각성했어.”
“각성?”
“어. 아침에 각성해서 정신없어서 말 못했어.”
“무슨 능력인데?”
“치유 능력 같긴 한데…….”
형의 각성 능력을 들은 재현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생긴 것도 귀족적이더니 각성한 능력도 딱 자기 같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초능력 중에서 치유는 버프와 더불어 가장 각광받는 능력이었다. 우스갯소리로 귀족 직업이라 부르는.
‘내 형이지만, 참. 무슨 신의 축복이라도 받은 듯하네.’
가족이니 다행이지, 만약 남이었다면 무척 배가 아팠을 것이다. 얼굴만으로도 이미 엄청나게 불평등한데 거기에 각성 능력까지 치유라니.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되고도 남았다.
“그럼 이건 반납하고 형한테 어울릴 만한 거로 바꿔 올게.”
“아니야. 안 그래도 돼. 각성자는 정신 간섭에 어느 정도 면역이 있다며.”
“그건 그렇지. 그래도 물리 대미지 막는 건 하나 차는 게 좋아. 그건 거절하지 마.”
“어, 그럴게. 고마워.”
마음 같아선 물리 방어 물품 외에 위치 추적기나 전기 충격기 같은 것도 챙겨 주고 싶었다. 그 정도로 제 형의 가치는 높았다.
“형, 나한테 치유 한 번 써 봐.”
“어.”
상처가 없는 상태라서 치유 능력은 재현의 몸을 한 번 훑고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완전히 작용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몸이 훨씬 가벼워졌다.
“손가락은 왜 그래? 하트야?”
“아니잇! 십자가야, 십자가. 치료 잘 되라고.”
“아아. 루틴 같은 거구나.”
“어? 어, 어. 맞아, 루틴.”
“루틴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자기한테 하트 보냈다고 오해할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겠다.”
사실 손가락 하트 정도는 요새 누구나 가볍게 해서 오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게 형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눈만 마주쳐도 좋아할 사람들이 사방에 가득한데 하트라니. 그걸 받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했다.
“그, 그렇겠지?”
“잘됐다. 치유 능력자라면 어딜 가도 대접받는데.”
“그래?”
“어. 알게 모르게 페이도 얹어 주고 해.”
사회 분위기상 일반인과 각성자를 차별하지 않으려 하지만, 어디든 차별이 있기 마련이었다. 미약한 초능력을 가진 각성자의 얘기는 아니고 재인, 재현 형제 같은 특별하거나 강력한 각성자의 얘기였다.
‘연예계도 각성자 대우가 좋다고 했는데.’
매니저나 경호원 같은 스태프가 각성자일 때도 그랬지만, 연예인 본인이 각성자일 경우에는 특히 대우가 좋다고 들었다.
출연 가능한 프로그램도 늘고 맡을 수 있는 역할도 늘어난다고 언젠가 들은 적 있었다. 만약 괜찮은 초능력을 각성하면 화제성도 있고, 다른 일반 연예인보다 하드한 스케줄도 소화 가능해서 더 활동에 유리하다고.
‘진짜 형한테는 연예인이 딱이란 말이지.’
강요한 일을 사과하긴 했어도 재현은 재인이 연예인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접진 않았다. 형 정도의 외모를 가졌다면 차라리 사람들의 시선 속에 있는 게 안전했다.
그게 아니라면 정부나 길드 소속으로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곳에서 일하는 게 나았다.
물론 그런 것도 전부 형이 하고 싶어야 가능한 얘기였지만, 사진집 촬영을 재고한다는 걸 보면 아예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그럼 내일 등록하러 같이 가자.”
“어? 아니야. 혼자 가도 돼.”
“집에서 자고 갈 거야. 내일 아침에 길드 가는 길에 태워다 줄게. 같이 가.”
“그래.”
그 얼굴로 혼자 다니다가 어떤 난리를 겪으려고. 재현이 혀를 찼다.
연예인이든, 정부 요원이든,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자신의 형은 본인의 외모가 어떤지 먼저 자각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 * *
사진 촬영 장소를 훑어보는 재인은 감회가 새로웠다. 페이 좋은 아르바이트 정도로 여겼던 게 얼마나 가소로운 생각이었는지, 지난 열흘 뼈저리게 느꼈다.
‘다사다난했다, 진짜.’
각성자 신고는 무난하게 지나갔다. 동생이 태워다 주는 정도가 아니라, 신고 내내 뒤에 장승처럼 버티고 서서 지켜본 것만 빼면 무척 조용히 마쳤다.
그러나 사진집 촬영까지 오는 길은 자못 험난했다. 계약을 도와준 박연화의 무시무시한 협상력에 원래 페이보다 몇 배를 더 받게 된 것은 물론 좋은 일이었다. 사진집의 판매 수익 중 일부를 받기로 한 것도.
‘걱정스럽다, 진심으로. 유명 배우도 만 부 정도면 많이 발행하는 거라던데.’
단지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재인은 자신이 없었다. 유명한 사진작가도 이천 부 정도면 많이 발행하는 건데, 이번 사진집은 초판을 오천 부를 발행하기로 해서였다.
예상보다 많은 발행 부수에 재인은 요 며칠 걱정으로 잠을 설쳐야 했다. 주변에선 절대로 재고가 남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몇 권 팔리지 않고 전부 창고행이 될 것 같아 불안했다.
‘그나저나 예술가들의 심리는 알다가도 모르겠네. 이런 데서 무슨 사진을 찍는다는 거야.’
사진집의 첫 번째 촬영 장소는 서울 인근의 폐교회 건물이었다. 오래전 던전이 생기면서 버려진 마을의 가운데에 있는 건물로, 깨진 유리, 무너진 벽, 나뒹구는 십자가 등 잔혹한 시간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었다.
폐교회는 흉가가 따로 없어 보였는데, 사진작가는 이곳이 매우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조수와 같이 이리저리 바쁘게 조명과 대형 조명 디퓨저, 반사판 등을 설치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건물 안에 서 있으면 된다고?’
이렇게 간단해도 되나? 테스트 컷을 찍으면서 받은 지시가 지나치게 간단해서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어떤 포즈를 취하라는 말도 없고, 무슨 감정을 연기하라는 말도 없었다. 편하게 서 있으면 된다는데 정말 그래도 되는지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의상도 상당히 단순했고, 메이크업이나 머리 손질도 지난번 촬영과 달랐다. 메이크업은 브러시로 코와 턱만 몇 번 문지르고 머리도 빗으로 쓱쓱 빗은 게 전부였다. 거의 맨얼굴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손을 대지 않아서 괜찮을지 걱정이었다.
“자, 지금 빛이 딱 좋아. 촬영 시작하자.”
“네, 선생님.”
“재인 씨. 아까 얘기한 대로 편하게 건물 안에 서 보세요. 알려 드린 위치만 벗어나지 않게, 조금씩 움직이셔도 되고요.”
“네.”
아침 일찍 도착해서 여러 준비를 하더니, 드디어 사진작가가 바라던 시간이 되었다.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시기. 건물에 지는 그림자도 인물에 닿는 빛줄기도 적절해서 원하는 사진을 담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상반신만 나오게 찍고 다음엔 무릎까지 나오게 찍는다고 했지?’
움직여도 괜찮은 공간을 확인하면서 건물 안으로 재인이 들어섰다. 망가진 건물 안은 촬영을 위해서 치운다고 치웠는데도 먼지가 날렸다. 그래도 그가 움직일 범위 안은 작은 돌멩이 하나 없이 깨끗했다.
-찰칵찰칵!
건물 밖에서 카메라를 들고 집중한 사진작가의 모습이 보였다. 찰나의 순간을 잡아내기 위해 열중한 모습이 제법 멋져 보였다. 처음엔 워낙 집요하게 연락해서 이상해 보였는데, 자기 일에 진심인 모습을 보니 평가를 다시 해야 할 듯했다.
‘확실히 여긴 다른 세상이야. 이런 건물을 그대로 남겨 둔 것도 그렇고. 교외에 나오려면 경호가 필요한 것도 그렇고.’
벽에 남은 발톱 자국이나 검으로 벤 것 같은 천 쪼가리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물론 그런 걸 느끼는 사람은 이 현장에서 그 혼자뿐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겐 이곳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폐허일 테니.
‘낯설다. 전부.’
순간 재인은 저도 모르게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로 인해서 박탈당한 것들이 어지럽게 떠올랐다. 동시에 저 밑에 묻어 두었던 의문과 적나라한 괴리감이 전신을 덮쳐 왔다.
‘최고야! 어떻게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지? 연기는 전혀 할 줄 모른다더니!’
사진작가는 요구하지 않은 감정 연기를 과하지 않게 하는 모습에 쾌재를 불렀다. 자세한 디렉션은 주지 않았는데, 능동적으로 나서는 태도가 바람직함을 넘어 감사했다.
‘크으! 불안하고 위태로운 눈빛이…….’
소년과 청년의 경계에 선 위태로운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재인의 모습은 사진작가의 마음에 꼭 들었다. 특히 몸을 비틀어 얼굴의 반이 그림자에 가려진 순간을 찍은 사진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늘 촬영 중 최고의 사진이 되리란 걸.
사진작가가 만족스러운 촬영에 기뻐하는 순간 재인은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혼란의 구렁텅이 저 밑바닥에 빠질 뻔했던 그는 한 메시지로 인해 강제로 현실로 끌어올려지고 있었다.
[공헌도 1이 올랐습니다.]각성한 이후로 수시로 듣고 있는 시스템 메시지. 짜증 나고 거슬리는 내용이 담긴 메시지 박스가 정신 차리라는 듯이 쉼 없이 허공에 출력되고 있었다.
아마도 이번 메시지는 신나서 촬영 중인 사진작가와 그가 데려온 스태프, 재현과 그 팀원들 때문에 나온 것 같았다.
‘아 놔! 너무 하는 거 아니야? 사람이 고민하는 데 배려는 못 할망정 방해를 해? 게다가 당장 쓰지도 못할 공헌도는 왜 이렇게 자주 주는 건데!’
재인에 얼굴에 감추지 못한 짜증과 화가 서렸다. 시도 때도 없이 출력되는 메시지 설정을 바꾸기 위해서 얼마나 상태창을 헤집었던가. 바꾸려면 공헌도 상점에서 소모성 아이템을 사야만 한다는 걸 알아내고 얼마나 허탈했던지.
-찰칵찰칵!
답을 얻지 못해 복잡했던 마음에 짜증, 분노, 원망이 자리 잡았다. 재인은 제 뜻대로 할 수 없는 시스템을 향한 화를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사진작가 최현은 시시각각 변하는 재인의 표정에 반색하며 셔터를 눌러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