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134)
#134. 농장의 병아리
재인은 어, 어 하는 사이 이주환의 손에 이끌려 민박집으로 향했다.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끌고, 한 손으로는 재인의 팔을 잡아 건물로 이끄는 모습에 뜻 모를 간절함이 느껴졌다.
“재인아, 아이스박스 고기지? 고기라고 말해 줘라.”
“고기 맞아요. 왜 그러세요?”
“아니이잇! 감독님이 가져온 물건 중에 의류 제외하고 딱 한 가지씩만 쓸 수 있다고 하시잖아.”
“네?”
전에는 가져온 물건 전부 아무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었는데, 규칙이 바뀌었다. 지난 시즌의 출연자가 침구부터 조리 도구, 식자재까지 전부 챙겨 오는 바람에 바뀐 규칙이었다.
시청자들은 필요할 때마다 척척 등장하는 도구와 재료에 처음에는 재밌어했지만, 곧 지루해했다. 게스트였다면 괜찮았을 텐데 호스트가 촬영 내내 그러니 아무리 재밌게 편집하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형은 뭐 고르셨어요?”
“나는 육수. 한 알로 해결되는 만능 육수 있잖아. 그거 골랐어.”
“나는 원두.”
“원두요? 커피를 못 들고 들어가게 했어요?”
“응.”
대화에 끼어든 박동준 얘기에 재인의 입이 벌어졌다. 생활필수품인 커피도 못 가지고 들어가게 하다니 제작진이 너무 야박했다.
“와! 심했다. 이성진 선배는요? 뭐 고르셨어요?”
“와인. 6병들이 한 박스. 그 형이 진짜 많이 챙겨 왔거든. 전 시즌에서 보고 진짜로 한 짐을 챙겨 왔는데, 하나만 고르라고 해서. 와인 골랐어. 그게 가져온 것 중에 제일 비싼 거라면서 나눠 먹자고 골랐어.”
가져온 물건을 전부 쓰지 못하는 게 아쉽긴 해도 만능 육수에 커피, 와인과 그가 챙겨 온 고기까지 치면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더 심한 건 다른 요리 재료를 전부 직접 구해 와야 하는 거야.”
“직접이요? 어디서요?”
“농장이랑 이곳저곳에서.”
“농장에 민박집 사장님 텃밭이 있거든. 텃밭에서도 구하고, 근처에 버섯 농장이랑 양계장이랑 있거든, 거기에서도 구해 와.”
간단한 일을 도와주고 구해 와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직 재인은 짐을 풀지 않았다. 진실을 알리는 건 짐을 풀고 카메라에 담긴 후여야 했다.
“민, 박이라고…….”
“민박 맞아.”
“크기가 민박이 아닌데요.”
“원래는 초등학교였는데, 폐교한 뒤 펜션으로 리모델링하려 했다더라고.”
예산도 부족하고 숙박객이 올 만한 곳도 아니어서 도중 전체가 아닌 일부만 리모델링해서 숙소로 쓰게 되었다. 남은 곳은 농산물과 자재를 보관하는 창고가 되었다.
“크흠. 평소에는 농장만 돌보고, 숙박 손님이 있으면 식사만 챙겨 주면 돼.”
“손님 많아요?”
“아니, 없어. 아마 촬영 내내 없을 것 같아. 저번 산장보다 쉬울걸?”
“……전혀 안 쉬워 보이는데요.”
절대로 안 쉬워 보인다. 민박집 규모가 장난 아니었다. 실제로 숙박할 수 있는 방은 몇 개 되지 않아도 건물 자체가 컸다. 손님 없이 건물 청소만 해도 한참 걸릴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이야! 주환이가 한 말이 과장이 하나도 없었네. 아니, 오히려 부족했잖아. 사람이 이렇게도 생길 수 있는 거야?”
“아, 하하.”
“오늘 온다고 해서 기대 많이 했어. 물어보고 싶은 거 되게 많았거든.”
반려 몬스터와 민박집에 들어선 재인을 시즌 1의 주인공이자, 피디의 마수에서 수년째 벗어나지 못하고 여러 예능에 출연 중인 이성진이 반겨 주었다.
이성진은 한동안 현대극만 찍다가 최근에는 사극에서 왕 역할을 주로 맡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로 자칫 사나워 보일 수 있는 인상을 짙은 보조개가 중화해 줘 친근하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뭐 해요?”
“그게…….”
재인의 양옆에서 이주환과 박동준이 고개를 격하게 저었다. 아직 짐을 다 옮기지 않았다.
“일단 가방 두고 애들하고 산책 먼저 하고 와. 차 오래 타고 오느라 지쳤을 거 같은데.”
“아! 그래도 돼요?”
“되고말고. 지금 다녀 와. 짐은 우리가 옮겨 놓을게.”
“네? 아니에요. 제 짐은 제가…….”
“됐어, 됐어. 어서 가 봐. 애들 스트레스 풀어 주고 와.”
다른 출연진들한테 떠밀리듯 산책을 나온 재인의 옆으로 카메라맨과 작가가 따라붙었다. 이미 한 번 게스트로 나와서 경험한 적 있는 재인은 익숙하게 카메라를 모른 척하면서 하찬을 리드했다.
“뺙뺙! 뺙!”
“잘 따라 올 수 있어?”
“뺙!”
“알았어. 내려 줄게.”
주차장 쪽으로 이어진 도로를 벗어나자마자 혁을 바닥에 내려 주었다. 처음 오는 장소인데도 겁도 없는지 조그마한 녀석이 내려 달라고 뺙뺙거렸다.
‘예상하고 좀 다른 상황이긴 해도 오랜만에 시골에 오니 좋네.’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이나 푸릇푸릇 싱그러운 자연을 볼 수 있는 여름에 왔으면 좋았을 테지만, 지금도 나쁘지 않았다. 발에 밟히는 낙엽 소리를 들으며 걷는 것이나 군데군데 잎이 남은 마른 나무를 보며 걷는 것도 괜찮았다.
“하찬이 재밌어?”
“컹!”
이곳저곳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 하찬도 커다란 나뭇잎을 뒤집는 혁도 시골길 산책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걷는 속도가 느렸다.
* * *
느긋하게 시골 풍경을 만끽하는 재인의 옆에서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을 참느라 애를 썼다. 재인이 걷고 있는 시골길 옆으로 쭉 늘어선 밭들이 민박집 사장님의 텃밭이었다. 재인과 다른 출연진들이 추수해야 하는.
“염소인가? 검으니까 흑염소?”
“컹.”
“쉿, 쉿. 염소 놀라겠다.”
“뺙뺙뺙!”
“혁이 너는 성질 좀 부리지 말고.”
길가에서 풀을 뜯는 염소도 구경하고 대롱대롱 높은 가지에 매달린 감도 혁에게 하나 따 주고 하면서 돌아온 민박집 마당에는 이주환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뭐 하세요?”
“점심 먹으려고. 바람도 별로 안 불고, 밖에서 먹기 딱 좋은 날씨잖아.”
“고기 가져올까요?”
“불 피워서 대나무통밥 쪄 먹을까 했는데, 고기 먹게?”
“네. 저거 불판 아니에요? 아이스박스에 녹은 고기 있어요. 불판 얹어서 굽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요.”
건물 안쪽 주방에서 반찬을 준비하는 사이 재인과 이주환은 마당에 불을 피우고 불판과 솥을 얹었다. 아침나절 불던 찬바람도 잦아들어 고기를 구워 먹기 딱 좋은 날씨가 되었다.
점심은 밤과 대추, 은행과 잣을 넣은 대나무통밥과 된장찌개, 소고기였다.
“이야! 고기 좋다. 고기 많이 먹더니 안목도 좋아졌나 보다. 고기가 진짜 좋네.”
“하, 하하. 다음에 집으로 육회용 고기 좀 보내 드릴까요? 오늘은 얼려서 오느라 못 해 먹었지만, 육회 정말 괜찮아요.”
“그럼 고맙지.”
은근슬쩍 끼어든 제작진도 대접하고 하찬의 몫도 한판 구워서 먹이자 점심이 끝났다. 박동준이 가져온 커피와 사과로 후식까지 먹고 나자 배가 불러서 움직이기 힘들었다.
“어우, 배불러. 이제 소화 좀 시킬까?”
“산책은 했는데, 소화 시키게 뭐 할까요?”
“…….”
“…….”
뭘 해서 소화를 시키냐는 재인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짧은 침묵에서 불안을 느낀 건 어쩌면 당연했다.
“……뭐 해야 하는데요?”
“갓이랑 시금치, 들깨랑 콩 있는데 뭐로 할래?”
“뭐가 틀려요?”
“한쪽은 뽑는 거고 한쪽은 베는 거.”
“…….”
둘 다 해 본 적 없었다. 재인이 해 본 농사라고는 토마토 모종과 캣그라스를 사다가 현서랑 같이 마당에 심은 게 전부였다.
‘농장 안 민박이라고 듣긴 했지만, 진짜로 농사까지 하는 거였어?’
어쩐지 점심으로 먹은 대나무통밥이 가슴에 얹히는 기분이었다.
“이게 미션을 완수해야지 장 볼 돈을 준다니까.”
“네?”
“사람이 풀만 먹고 어떻게 살아. 가끔은 외식도 하고 해야지.”
“그러니까. 내가 이래서 차 감독이랑 찍기 싫었어. 사람이 아주 지독하다니까. 아까도 봐. 우리 고기 먹는데 맥주 한 캔도 안 주잖아.”
“맞아, 맞아.”
그건 술 먹는 장면, 그것도 낮술을 먹는 장면을 찍으면 안 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지만, 재인은 조용히 있었다.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한 차 감독에게 유감이 있는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점심 먹은 것을 치우는 팀, 밭일 팀으로 나눈 일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인은 이주환과 같이 밭일 팀이었다. 카드도 못 쓰게 한다며 궁시렁궁시렁하는 이주환에 맞장구를 치면서 같이 밭으로 나갔다.
“어? 여기는…….”
“응?”
“아까 이 길로 왔거든요. 이걸 보면서 왜 이 밭만 아직도 작물이 남아 있나 했는데…….”
“크흠. 그렇게 됐어.”
밭 중에는 콩인지 뭔지 모를 작물을 다 베어 한쪽에 쌓아 두거나 땅을 갈아엎어 흙이 그대로 드러난 밭도 꽤 있었다.
“이거 전부 베요? 엄청 넓은데.”
“전부 베라더라고. 이거 전부 베면 얼마 준다고 했더라…….”
백만 원. 두 사람을 찍는 카메라 뒤쪽에서 작가가 작은 소리로 알려 줬다. 넓은 콩밭의 작물을 전부 베면 장 볼 비용으로 백만 원을 준다고.
“진짜로 줘요?”
-네.
“다 벴는데 너무 많이 줬다고 그러면서 뺏어 가는 거 아니죠?”
-다 베시면 진짜로 드려요. 안 뺏어요.
“이거 다 녹화 중이거든요. 나중에 딴말하면 안 돼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재인이 움직였다. 재인이 이렇게 몇 번이나 확인한 이유가 있었다. 비장의 무기 황금 병아리 혁이 같이 왔기 때문이었다.
“반려 몬스터 도움받는 건 괜찮겠죠?”
“혁이? 혁이한테 베어 달라고 하게?”
“네.”
“혁이 좋지. 장작 패는 거 보니까 콩도 잘 벨 거 같긴 하다.”
황금 병아리 혁을 밭일에 투입하고 싶어 하는 재인에 작가가 쾌재를 불렀다. 하찬이 낙상자를 찾아내는 장면과 혁이 장작을 패던 장면은 시즌 전체 명장면 톱 10에 항상 뽑혔다. 이번에도 볼만한 장면이 나올 것 같아서 흔쾌히 허락했다.
“주환 형, 그럼 저 숙소에서 짐 좀 챙겨 올게요.”
“무슨 짐?”
“기대하세요. 제가 장 볼 돈 싹 다 받아 드릴게요.”
“진짜?”
“진짜요. 혁이랑 기다리고 계세요.”
재인은 숙소에 둔 반짝이는 왕관을 챙기러 걸음을 서둘렀다. 혁이 왕관에 애착이 심해서 챙겨 온 게 다행이었다.
혁의 변신을 방송에 노출시킬 생각은 별로 없었지만, 이번에는 예외였다. 맛있는 식사를 위해서, 출연진을 고생시키면서 즐거워할 제작진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 변신을 공개하기로 했다.
‘반려 몬스터 등록증도 챙겨야겠다. 변신해서 커진 것 보고 사람들이 무섭게 느낄 수도 있으니까.’
재인은 왕관을 챙긴 뒤 반려 몬스터 등록증도 주머니에 넣었다. 갱신한 등록증을 공개해서 혹시 모를 논란을 사전에 방지할 생각이었다.
“뭐야? 뭐 챙겨 왔어?”
“이거요.”
“왕관? 그걸로 뭐하게?”
“잠깐만요. 금방 보여 드릴게요.”
“뺙! 뺙뺙뺙!”
재인이 들고 온 왕관을 보자마자 뺙뺙 뺙뺙 혁이 난리였다. 제 보물을 허락 없이 가져왔다고 날개까지 퍼덕이면서 성질을 부렸다.
“아이, 시끄러워라. 혁아, 성질 그만 부리고 이리 와 봐.”
“뺙! 뺙뺙!”
“알았어. 이리 와. 여기 서 봐.”
“뺙.”
가슴 털을 부풀려 화났다고 시위하는 혁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살살 쓰다듬었다. 조심조심 머리를 쓰다듬길 한참 야구공처럼 부풀었던 혁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성질부릴 때마다 이렇게 달래 버릇했더니 금세 진정됐다.
‘아이고, 귀여워라. 하여간 성격 한번 불같다니까.’
재인이 완전히 진정한 혁의 옆으로 비켜섰다. 이어서 적당히 거리를 벌린 뒤 다정한 목소리로 변신해도 된다고 허락했다.
“퓌요오오옷!”
혁의 작은 몸 주위로 황금빛이 일렁이더니 금세 커다랗게 변했다. 숫자 열을 세기도 전에 콩밭 앞에 성인 남성에 버금갈 정도로 커진 혁이 나타났다.
“헉! 내 귀여운 병아리 혁이가…….”
“혁이는 제 병아리인데요.”
“변신도 할 수 있었어?”
“몇 달 전에 성장했어요. 덕분에 반려 몬스터 등록도 새로 했어요.”
혁이 변신한 모습에 놀라는 이주환 옆에서 재인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잘생겼다, 멋지다. 이주환과 작가가 번갈아 가면서 내놓는 평에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혁의 변신한 모습을 공개한 보람이 있었다.
“왕관 씌워 줄게.”
“피욧! 피욧!”
“옳지. 착하다.”
“피요오오옷!”
커다랗게 변해도 여전히 말이 많은 혁의 머리 위에 왕관을 씌워 줬다. 원래도 잘생긴 녀석이 왕관까지 쓰자 위엄까지 더해져 눈이 부셨다.
‘반은 오후 햇빛 덕분이지만.’
따사로운 햇볕의 후광을 받은 혁의 옆에서 재인이 손을 들었다. 숙소까지 다녀오는 번거로움을 감수한 이유가 있었다.
“가라, 혁! 가서 콩밭을 해치우는 거야.”
“재인아?”
“공격!”
“퓌요오오옷!”
재인은 이주환의 부름을 못 들은 척하고 혁에게 공격 목표를 정해 줬다. 콩밭, 백만 원의 상금이 걸린 목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