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204)
#204. 블레싱 촬영 시작
그다지 즐거운 일도 없는데 입꼬리가 귓가에 걸린 김수혁이 재인의 옆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재인아!”
“네, 형.”
“어우, 야! 너 무슨 준비를 그렇게 잘해 왔어. 아까 너 대사 칠 때 깜짝 놀라서 심장이 다 떨리더라.”
“그, 랬어요?”
“어, 봐 봐. 아직도 엄청 빨리 뛰어.”
친근하게 말을 붙이면서 그의 손을 당기는 김수혁에 재인의 표정이 일순 어두워졌다. 이어질 행동이 절대로 바라는 행동이 아니어서였다.
“봐 봐. 지금도 빨리 뛰지.”
“그, 렇, 네요.”
재인은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불쾌한 체온에 이가 갈리는 느낌이었다.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김수혁의 손을 뿌리치지 않은 재인이 겨우겨우 감상을 말했다.
‘대본 리딩 할 때 아니면 말도 걸지 않는 사람이 이게 무슨 친한 척이냐고.’
사실 김수혁은 친한 척이 아니라 진심으로 친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그것도 몇 시간 지나면 사라질.
‘왜 저런 연기력을 가지고도 작품을 많이 못 하는지 알겠어.’
>블레싱>의 파트너 역할인 김수혁은 배역에 몰입이 심한 편이었다. 신이 끝나면 배역의 감정에서 금방 빠져나오는 재인과 다르게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감정을 빨리 지워 내지도 못했다.
지금 이렇게 가까이 다가와 친한 친구처럼 구는 행동도 그런 상황의 일환이었다. 손을 끌어다 가슴에 얹어 심장 박동을 느끼게 한다거나, 어깨동무하면서 몸을 기대는 행동들도 전부 배역의 감정이 남긴 영향 때문이었다.
“이따가 대본 리딩 끝나고 같이 식사할래?”
“……봐서요.”
“에이. 빼지 말고 밥 먹으러 가자.”
“들어갈 시간 다 됐네요.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그래. 그러자.”
저녁 약속을 잡으려는 김수혁에게 확답을 주지 않고 말을 돌린 후 재인은 대본 리딩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몇 시간 지난 후에 정신을 차리면 괜히 약속을 잡았다고 괴로워할 게 뻔한데 그런 피곤한 일은 사양이었다.
재인이 배역의 감정에 휘둘리는 김수혁에 약간의 불쾌함과 불편함을 느끼는 정도라면 다른 사람은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근거리 경호를 맡은 경호 팀은 살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중이었다.
“죽일까?”
“……참아.”
“저거 진짜로 우리 재인 님한테 흑심이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닌 거 맞지?”
“아니래. 매니저님한테 물어봤는데 원래 몰입이 심한 사람이래. 지금은 많이 나아진 거고.”
“저게? 우리 재인 님 귀찮게 집적대는데?”
“예전에는 아예 그 캐릭터가 돼서 생활했대. 지금은 그래도 몇 시간 만에 빠져나온다고 하니 나아진 거지.”
동료의 설명을 들었어도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이 배우가 아니라서인지 그냥 재인한테 친한 척하는 게 싫어서 그러는 건지 분간되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저 김수혁이라는 배우가 무척이나 거슬린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이력을 확인해 봐야겠어.”
“무슨 이력?”
“연애. 평범하게 연애를 했는지 아닌지 알아봐야지.”
“……그만둬. 그냥 연기 스타일이 그렇다니까.”
“촬영 끝날 때까지 저렇게 두라고?”
경호 팀 동료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영 내키진 않지만, 재인과 같은 작품을 촬영하는 배우였다. 무사히 촬영할 수 있게 간섭은 금물이었다.
“아오! 알았어. 이번에는 넘어갈게. 그래도 다음에도 또 재인 님 손 끌어다 지 가슴에 대면 가만 안 둘 거야.”
“그땐 내가 벼락을 떨어뜨릴게.”
“그래. 누가 됐든 응징하자. 그런데 원래 친한 친구끼리 저래?”
“저렇지 않을까? 모르겠는데…….”
“……진짜 흑심 없는 거 맞는 거지?”
확인하듯 다시 한번 묻는 경호 팀 동료에 그렇다는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 * *
민선영 감독의 >그래, 가족이야> 내부 시사회에 다녀오고, >블레싱>의 대본 리딩, 액션 스쿨 등에 다니면서 시간을 보내자 어느 순간 사람들의 옷이 얇은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두툼한 패딩에서 밝은색 재킷으로. 겨울이 끝나 가고 있었다.
“휴식기가 휴식기 같지 않았지?”
“아, 하하. 좀 그랬죠?”
“블레싱에 필요한 의상이 많아서 준비하느라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우린 꽤 쉬었어. 너만 계속 바빴지.”
“작품 할 때처럼 매일 일한 것도 아닌데요. 저도 쉴 만큼 쉬었어요.”
“지난 주말에도 이틀 내리 화보 촬영해 놓고는 뭐래.”
“하, 하하.”
재인은 슈트의 선을 잡아 주면서 타박하는 김신우에게 멋쩍게 웃어 보였다.
휴식기답지 않게 바쁘게 보내긴 했지만, 처음 생각했던 일도 다 했고 휴식도 잘했다. 나아가 전속 계약 조항도 깔끔하게 손 봐서 앞으로는 수익도 더 늘어날 예정이었다.
“박세영 배우는 봤어?”
“박세영 씨요? 봤어요.”
“어때? 예뻐?”
“실장님도 그런 거 궁금해하세요?”
“아니, 나는 별로 관심 없는데. 사람들이 여신급 미모라고 하도 얘기를 많이 해서.”
푸흡! 김신우가 꺼낸 여신급 미모라는 말에 재인이 헛기침을 터뜨릴 뻔한 걸 겨우 참았다. 미의 신이라는 각성 직업을 되도록 잊고 살고 싶은 그에게 여신급 미모라는 말은 무척 신경 쓰이는 말이었다.
‘여신급이라니. 예쁘긴 했지만…….’
>블레싱>에는 김수혁 외에도 에피소드별로 조력자가 등장한다. 김신우가 궁금해하는 박세영도 마찬가지로 한 에피소드의 조력자 역할이었다.
“예쁘긴 예뻐요.”
“그래?”
“네. 왜 그렇게 보세요, 실장님?”
“아니, 괜히 물었다 싶어서.”
“네?”
소식이 빠른 직업인 것에 비해 다른 배우한테 관심이 많지 않은 김신우였다. 재인이 알아야겠다 싶은 소문은 빼놓지 않고 들려주지만, 개인적인 호기심을 드러내는 적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솔직한 느낌을 말했는데 반응이 떨떠름했다.
“너 눈 낮잖아. 네가 예쁘다고 해 봤자 변별력이 없는 것 같아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상대적인 거잖아요. 판단에는 개인 취향이 많이 반영되고요.”
“그건 그렇지만, 재인이 너는 진짜로 얼굴 별로 안 따지잖아.”
“제가요?”
“응. 네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 보면 외모가 판단 기준이 아닌 것 같던데? 사람이 착하냐 아니냐 혹은 성실한가 아닌가가 기준인 것 같더라.”
그랬었나? 김신우의 대답에 재인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자신이 사람을 판단할 때 김신우의 말처럼 그런 기준으로 판단했나 되돌아보는 중이었다.
‘그랬던 것도 같네. 사람을 볼 때 외모보다 느껴지는 기운에 더 중점을 뒀었어.’
예전에는 재인도 평범하게 상대의 외모를 봤었다. 키 큰 자신과 적당히 어울리는 키가 큰 편의 여성을 더 선호했었다. 나이 차이가 크지 않고 학력도 비슷한 상대를 바랐다.
그러나 각성한 후에는 그런 조건들을 더 이상 보지 않았다. 특히 기운을 세밀하게 느끼고 움직일 수 있게 된 후로는 외모는 따지지 않게 되었다. 상대가 깨끗하고 맑은 기운을 가지고 있거나 호의적이고 친절한 감정으로 대할 때는 더 그랬다.
“어……, 음. 제가 보는 눈이 낮은 게 맞긴 하는데요. 박세영 씨는 객관적으로도 예쁜 편이세요. 저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도 그렇다고 할 거예요.”
“그래, 알았어.”
김신우는 자신이 먼저 꺼낸 화제면서 금세 흥미를 잃은 것 같았다. 예쁘다고 한 번 더 말하는 재인의 말에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재인이 미에 관한 기준치가 낮은 것과 다르게 김신우는 미에 관한 기준치가 아주, 아주 높았다. 매일 최고의 작품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재인을 꾸며 주다 보니 저도 모르게 기준이 상향 고정되어 버렸다. 어지간한 미모로는 그의 높은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봐요. 객관적으로 봐도 예쁘다니까요.’
재인은 고사장으로 들어서는 박세영을 본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박세영은 뛰어난 외모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박세영과 눈이 마주친 스태프들이 황송해하는 걸 흥미롭게 감상하던 재인이 김신우를 돌아보았다. 분장실에서 화제로 삼았던 박세영의 실물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흐음. 뭐, 예쁘네.”
“…….”
김신우는 기대와 다른 반응이었다. 박세영을 스치듯 한번 흘깃 본 뒤 관심을 거두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한마디라도 더 말을 나누려 하거나 조금이라도 가까운 자리에 서려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왜? 어디 불편해? 어깨 조금 끼는 것 같았는데 팔 들기 힘들어?”
“아니요.”
“불편하면 말해. 다른 재킷도 준비해 뒀거든.”
“네.”
그저 돌아보는 재인한테 불편한 점이 있나만 확인했다. 감독이 축문을 읽는 것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준비한 제물을 올리고 기원하는 동안에도 일말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 * *
“커피 차네. 누가 보낸 거야?”
“이재인 씨한테 보낸 거 같은데? 디 키즈 여상? 헐!”
“와! 디 키즈랑 친하다더니 진짜였네.”
“무사 촬영 블레싱. 심플해서 좋네요.”
새로운 영화나 드라마 촬영에 들어갈 때마다 재인의 팬 카페 두 곳에서 번갈아 가면서 서포트를 했다. 가볍게는 음료나 스낵 차량을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화려한 케이터링 서비스를 준비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팬 카페에선 서포트를 계획 중이었는데 팬들보다 먼저 나선 사람이 있었다. 개인 친분이 있는 아이돌 디 키즈의 여상이 팬 카페보다 먼저 커피 차를 보냈다.
“재인아. 밖에 커피 차 왔던데 봤어?”
“아직 못 봤어요.”
“너한테 온 찬데 아직 못 봤어? 같이 갈래? 아니, 같이 가자. 인증 샷도 찍어야지.”
“네. 잠시만요. 집게 핀 좀 빼고요.”
재인은 그의 분장실을 거리낌 없이 방문하는 김수혁을 익숙한 듯 받아 주었다. >블레싱>을 촬영하는 동안은 그의 몰입이 깨지지 않게 감수하기로 했지만, 가끔은 걱정스러울 때도 있었다. 김수혁의 본래 성격이 붙임성 있는 편이 아니라고 들어서였다.
‘작품 끝나면 동료 배우들 찾아다니면서 사과까지 한다니, 다시 봐도 피곤한 스타일이야.’
김수혁이 피곤한 스타일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맡은 배역에 쉽게 몰입하고 빨리 벗어나는 재인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인 김수혁의 연기 스타일이 피곤하다는 뜻이었다.
‘누구였지? 촬영 현장에 메소드 연기하는 배우 있으면 피곤하다고 했었는데.’
메소드 연기법을 쓰는 배우 본인도 만만치 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고, 주변에서 그 배우가 몰입을 유지하도록 신경 써야 해서, 같이 일하기 피곤하다는 식의 인터뷰를 한 걸 본 기억이 있다.
누가 그런 인터뷰를 했는지 잘 기억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그 의견에 동감하고 있었다. 김수혁이 재인의 친한 친구 역할에 빠져 있는 지금 실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였다.
‘친구가 많지도 않지만, 친구랑 이러고 다니지도 않는다고.’
재인은 제 어깨에 팔을 두른 김수혁에 남모를 한숨을 쉬었다. 출연 배우끼리 사이좋아 보여서 나쁠 게 없다고 자신을 납득시키는 중이지만, 여상이 보낸 커피 차로 가는 길이 어쩐지 너무 멀게 느껴졌다.
“재인 씨 잘 마실게요.”
“네, 많이 드세요.”
“잘 마실게. 잘 마셨다고 친구한테 전해 줘.”
“네, 선배님. 꼭 전할게요.”
재인이 분장하는 사이 먼저 다녀왔는지 손에 음료수와 간식을 쥔 사람들이 보였다. 그런 사람들의 감사 인사를 받아 주면서 재인과 김수혁이 커피 차에 도착했을 때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박세영이 다가왔다.
“선배님! 커피 드시러 오셨어요?”
“네.”
“아직 쌀쌀한데 따뜻한 커피 한 잔 좋네요.”
“네.”
“저는 아메리카노요.”
재인은 ‘왜 메뉴를 자기한테 말하지?’라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곧 이게 자기 음료수를 주문해 달라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최근 이런 부탁을 받을 일이 없어서 당황할 뻔했으나 다행히 금방 정신을 차리고 음료수를 주문했다.
“고마워요. 사진 찍으실 거죠?”
“네.”
“그럼 전 오른쪽에 설 게요.”
“?”
음료수 컵을 들지 않은 팔로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면서 옆에 서는 박세영에 이번에야말로 재인이 당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