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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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여우비
“최 PD님 시골집에 일이 생기셨다고 하셔서요. 한동안 지방에 내려가셔야 한다네요.”
최상호가 기회를 봐서 조연출에게 물어봐서 들은 대답이었다. 미리 메이킹 영상 촬영 PD가 변경된 걸 알리지 않아서 미안하다는 사과도 같이 들었다.
그 일은 그렇게 제작진에게도 보고된 변경 사항이라는 걸 확인하는 것으로 기억에서 지웠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이재인 배우님 팀에 합류하게 된 오지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겨우 한 달 조금 넘게 일한 로드 매니저가 그만두고 새로운 사람이 오자, 영화 메이킹 영상 PD가 교체된 것도 다시 신경 쓰였다.
“네, 잘 부탁합니다.”
고용주도 교체된 시기도 달랐다. 그런데도 재인의 주변에서 비슷한 일이 연이어 발생하자 신경이 쓰였다. 금방 그만두고 금방 채워지는 로드 매니저 자리라서 사람이 바뀌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스스로 기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랬다.
“재인 씨한테 JW에서 공식 홈페이지에 올릴 화보 촬영 제안이 들어왔어. 세레나데 말고 다른 가수 MV 촬영 건도 들어왔고. 이건 아직 제안만 들어온 거니까, 그쪽이랑 얘기해 봐야 해.”
“네.”
“영화 촬영 곧 끝나니까, 들어온 일정 정리해서 알려 드리고. 아! 최현 작가 사진전에는 꼭 참석해야 하니까. 그 일정은 특별히 신경 쓰고.”
“네, 신경 쓰겠습니다.”
“오디션은 준비는 문제없지?”
최상호가 문제없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재인의 오디션은 가는 곳마다 좋다는 평을 받았다. 서류와 1차 오디션은 항상 통과됐고, 2차, 3차 오디션을 보자는 연락도 여러 곳에서 받았다.
초반과 다르게 지금은 굵직굵직한 오디션을 노렸는데 반응이 좋았다. 신인이라는 입장만 생각해서 자그마한 자리를 노렸던 게 문제였나 싶을 만큼 연락이 많이 왔다.
“촬영 기간이 길지 않은 배역들이라 재인 씨와 상의해서 최대한 많이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야지. 액션 스쿨 다니시는 건 어때?”
“그쪽도 감독님들 반응이 좋습니다. 몸놀림이 빠르진 않아도 팔다리가 길어서 동작이 유려해서 보기 좋다는 평이었습니다.”
“보기 좋은 게 최고지. 어차피 보이는 직업인데, 그거면 됐지.”
재인의 스케줄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었다. 김 실장이 부지런히 캐스팅 디렉터와 제작사에 프로필을 돌리고, 아는 감독과 작가들에게 인사를 다닌 게 효과가 있었다. 거기에 재인이 꾸준히 찍는 화보의 퀄리티 역시 연출자들의 마음을 사는 데 한몫했다.
“경석 씨는 무슨 일 있습니까? 재인 씨랑 일하게 된 걸 좋아해서 그만둘 거로 보이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재인의 스케줄을 정리하는 게 먼저라서 그만둔 로드 매니저의 사정을 그제야 물을 수 있었다.
“집에 일이 있다던데.”
“……집이요?”
“어. 부모님이 집을 지으실 생각이신가 보더라고. 건설 현장도 지켜보고 가게도 도와야 한다고 내려갔어.”
“신기하네요. 촬영장에도 본가에 일이 생긴 사람이 나왔는데.”
“그럴 수도 있지.”
그만둔 이유가 같은 게 공교롭긴 했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최상호도 김 실장도 그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 * *
주연급 배우나 유명한 연예인들은 몇 년씩 연 단위의 스케줄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나 드라마를 시리즈나 시즌 단위로 계약해 두고 몇 년간 꾸준히 출퇴근하면서 촬영하는 일도 흔했다.
물론 데뷔작을 찍는 중인 재인과는 상관없는 얘기였다. 재인은 여전히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신인 배우였다.
‘김 실장님 인맥이나 이선재 선생님 인맥이라면 오디션이 아니라, 작품에 바로 꽂아 넣는 것도 가능한데.’
아마 재인도 그런 얘기를 자주 들었을 것이다. 소속사에서 푸시해서 작품에 오디션 없이 출연하게 되었다거나 하는 얘기 말이다.
4대 기획사만은 못해도 제법 이름이 있는 클로버라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런 일은 가능했다.
하지만 김 실장도 재인도 그런 방식을 바라지 않았다. 김 실장의 경우는 그런 식으로 하지 않아도 띄울 수 있다는 자신이 있어서였고, 재인은 특유의 곧은 성품 때문이었다.
“오디션 대본은 전부 숙지하셨습니까?”
“네. 다 외웠어요.”
“역할은 어떠십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네. 악역이긴 한데, 사연 있는 악역이라서 괜찮은 것 같아요. 그다지 악역 같지도 않고요.”
주인공을 질투해서 괴롭히는 정도라서 악역이라고 부르기도 힘들었다. 그냥 아직 인간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서 짐승 같은 구석이 남은 주인공을 먼저 자리 잡은 그가 이용해 먹는 것뿐이었다. 그런 본인도 사실은 좋아하는 인간 여자에게 이용당하는 중이고.
“김 실장님은 >태양의 부대>하고, >어느 별에서 왔니?>를 기대하시는 것 같지만, 저는 >여우비>가 제일 기대됩니다.”
“저도요. 같은 조연이라도 비중도 이쪽이 더 크기도 하고. 강연경 선생님에게 배운 걸 써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 중이에요.”
“아마 그 작품이 픽스되면 스타일리스트 분이 새로 오실 겁니다.”
“전 지금 계신 분들도 괜찮은데요.”
지금 재인의 의상과 분장은 메이크업은 이 샘 숍에서 온 아티스트에게, 스타일링은 회사 소속의 코디네이터에게 맡기고 있었다. 전부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늘어날 스케줄을 한 몸처럼 소화할 만한 사람이 필요했다.
“실력이 좋은 분이십니다. 사무실도 따로 가지고 계시고, 나이에 비해 경력도 긴 분이십니다.”
“네.”
이번에 재인이 계약하게 된 스타일리스트는 전속으로 고용할 수만 있다면 고용하고 싶은 실력 좋고, 인맥 넓은 사람이었다. 프로젝트별로 계약하는 걸 고집해서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재인 씨를 보고 나서는 얘기가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최상호는 재인의 얼굴을 보면 태도가 바뀌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녀뿐 아니라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이 전부 그랬다. 연습생 출신도 아니고, 예고나 예대에서 연기나 음악을 전공한 것도 아니라는 소개를 들으면 인상부터 찌푸렸었다.
그러나 실물을 본 뒤에는 태도가 바뀌었다. 재인의 얼굴을 본 뒤에는 뭐라도 더 챙겨 주고 싶어 하고, 하나라도 더 알려 주고 싶어 했다.
‘강인경 선생이 좋은 예지.’
포토 포즈와 모델 워킹을 맡은 강인경은 처음에는 레슨 제의에 무척 난감해했었다. 실제로 재인을 보기 전에 23살이라는 나이만 듣고 나서 데뷔하기엔 늦었다, 쇼에 서기엔 나이가 많다며 거절하려 했었다.
재인이 배우 지망이고 화보 제안이 많이 들어오는 편이라서 필요하다는 설명에 레슨을 수락했었다.
‘지금은 신년 파티에 데려가고 싶다고 먼저 말씀하실 정도니…….’
패션업계 종사자들이 많이 모이는 크리스마스 파티나 신년 파티에 재인을 데려가서 소개하겠다는 제안이었다. 디자이너, 모델, 패션 잡지 에디터 등이 모이는 자리에 제자로 소개하겠다고 했지만, 아쉽게도 그날은 영화 촬영이 있었다.
>조선 탐정 한설록>의 제작진은 실감 나는 강설 장면을 찍기 위해 일기 예보를 확인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설원 추격전을 찍기 위해서 액션 스쿨에서 훈련도 여러 번 했다. 파티 참석을 이유로 촬영에 빠지기엔 아쉬운 이유가 많았다.
“도착했습니다.”
“네.”
재인이 탄 차가 멈추고 잠시 기다리자 문이 열렸다. 매니저인 최상호가 내려서 열어 준 것은 아니었다. 재인의 동생, 재현이 뒤따라오던 차에서 내려 열어 준 것이었다.
“안전해. 내려도 돼, 형.”
“……고마워.”
“VIP 내렸습니다.”
-OK.
“컹!”
재현과 팀원은 마치 영화에 나오는 경호원처럼 이어 마이크를 차고 무전을 주고받으면서 경호하고 있었다. 차량에 붙어서 재인이 내리는 걸 돕는 재현, 건물 입구에 서서 입장하기 전에 안전을 체크하는 팀원. 재미 삼아 하는 경호치고는 꽤 본격적이었다.
‘어휴! 이제는 거의 취미 생활 수준이네.’
고급 인력을 낭비하는 듯해 미안해했던 그가 무안할 만큼 재현과 팀원들은 경호를 즐기고 있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검은색 롱 코트를 입고 이어 마이크를 찬 팀원들은 재인이 일하는 동안 인근의 맛집이나 카페에서 맛있는 걸 먹으면서 기다렸다.
-치킨 크로켓 먹을 사람?
-크로켓 말고 다른 건 없어?
-메밀 지짐 만두 유명한 곳도 있어요.
-메밀만두는 김치가 맛있는데.
재인은 팀원들이 오늘의 메뉴를 고르는 무전을 들으면서 오디션을 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제작진의 태도는 재인을 뽑겠다는 의지가 느껴질 정도로 바뀌어 있었지만, 실제로 드라마든 영화든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진 출연이 확실하다고 할 수 없었다.
지금 촬영 중인 영화도 2차 대본 리딩까지 진행했던 배우의 신상에 일이 생겨서 재인이 급하게 투입된 경우였다. 그런 비슷한 일이 또 생기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아! 저 사람이.’
‘……어디 소속이지?’
‘뭐야! 내정자야?’
재인이 최상호와 오디션 대기자들이 기다리는 복도로 들어서자 시선이 쏠렸다. 오디션은 회차를 거칠수록 대기자가 확 줄었다. 그래서 그런지 네댓 명의 대기자 사이에서 재인의 존재가 유독 눈에 띄었다.
대기자들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 재인을 앉힌 뒤 최상호는 대기실 한구석을 노려봤다. 그곳엔 내정자냐고, 있지도 않은 말을 꺼낸 입이 가벼운 사람이 있었다.
“쯧!”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차 드시겠습니까?”
“네.”
내정자냐고 함부로 입을 놀렸던 사람을 매서운 눈빛으로 찍어 누른 뒤 최상호는 보온병을 꺼냈다. 향이 좋은 차를 선호하는 재인의 취향은 아니었지만, 영화 촬영이 시작된 후로 빼놓지 않고 챙기는 목에 좋은 차였다.
“이재인 씨 들어오세요.”
동생과 기다리는 하찬이를 잠시 떠올리고 차를 몇 모금 마시자, 재인의 차례가 되었다. 재인은 자신을 부르러 나온 스태프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오디션장으로 들어갔다.
“저번에 얘기한 연기 준비해 오셨나요?”
“네.”
“연기 먼저 볼게요.”
“네.”
던전이 생긴 뒤로 구미호나 늑대인간, 뱀파이어 같은 이야기 속의 존재가 더는 허구가 아니게 되었다. 물론 사람들의 상상과 전부 부합하지는 않았다. 인간처럼 두 발로 뛰고 걷지만, 몬스터와 구분할 만큼 지성체는 아니었다.
>여우비>에 나오는 수인은 현실의 수인이 아닌, 예전 이야기 속의 수인과 닮아 있었다. 도술과 비슷한 초능력으로 인간으로 변신하기도 하고 애정, 질투, 배신 같은 인간적인 감정도 느낀다.
“인간 행세하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아. 변신하고 신분증 만든다고 인간이 된 것 같지? 근데, 인간 사회에서 사는 게 그렇게 심플하진 않거든. 몸에 밴 짙은 피 냄새나 걸핏하면 휘두르는 발톱은 어쩌고. 그래 놓고 무슨 사랑을 바라니.”
“난 변했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 그 사람을 위해서 변했다고.”
“로맨틱하네. 그런데 아니야.”
“너도 인간 여자를 좋아하잖아.”
“발톱 드러내지 마. 네가 죽고 못 사는 여자가 한 달 일해도 갚아 줄 수 있는 옷 아니야.”
“한 번만. 한 번만 도와줘. 넌 그럴 수 있잖아.”
“내가 왜? 너처럼 말 더럽게 안 듣는 녀석을 위해서, 왜 그런 수고를 해야 하는데?”
스태프가 맞춰 주는 무미건조한 대사와 다르게 재인이 내뱉는 대사에는 엷은 실망감과 짜증이 섞여 있었다. 표정 역시 기껏 인간 사회 적응을 도와주었더니, 다시 사고를 친 주인공이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원하는 게 뭐야?”
“지워 줘.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들. 넌 할 수 있지?”
“할 수 있지. 그 여자 머릿속에서 네 기억도 지울 수 있고.”
“차수원!”
“좋아. 해 주지. 대신 너도 해 줄 게 있어. 아니, 너만 할 수 있는 일이야.”
비릿한 미소를 지은 재인이 몸을 돌렸다. 사람들 모르게 주인공이 쓰러뜨린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고 최면을 걸기 위해서는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마치 바닥에 누군가 누워 있는 양 아무도 없는 바닥에 한쪽 무릎을 대고 손을 뻗은 재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누군가의 머리를 잡고 눈을 마주친 것처럼 자세를 잡은 그는 그렇게 한동안 상대의 눈을 바라봤다.
“거기까지. 좋네요. 어떻게 보셨어요? 전 마음에 들었는데.”
“저도 좋았어요.”
“그럼 대본 연기는 여기까지 봅시다. 충분히 본 것 같아요. 재인 씨 모델 워킹 레슨을 받은 적 있다고 들었는데요. 혹시 저쪽부터…….”
“네.”
재인의 연기를 멈추게 한 건 감독이었다. 그녀는 만족스럽다는 듯 함박웃음을 지은 채 옆자리의 작가에게 의견을 물었다. 작가의 의견은 굳이 물을 필요 없었다. 이미 재인이 오디션장으로 들어오던 순간부터 꽂혀 있었다.
“좋네요. 슈퍼 모델 강연경한테 배웠다더니, 빈말이 아니었네.”
“진짜요! 너무 좋아요.”
재인의 연기, 워킹 등을 확인하는 오디션장 안의 분위기는 무척 좋았다. 대기실에서 내정자라는 말을 들은 게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기 힘들 정도로 감독과 작가의 태도는 우호적이고 활기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