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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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예능 모니터링
“캬오옹!”
재인과 혁이 대치하는 사이를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갈랐다. 하찬이었다.
“캬오옹!”
“뺙! 뺘악! 뺙!”
“크앙!”
“뺙!”
“…….”
저의 편을 들어 주는 것처럼 그의 앞을 막아선 하찬과 왕관을 지키는 혁의 싸움을 지켜보던 재인은 입을 다물었다. 조그마한 두 녀석의 살벌한 말싸움에 끼어들 틈을 찾지 못했다. 대신 그는 혁이 왕관에 집착하는 이유를 고민해 봤다.
‘황금색이라서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고…….’
혁이 황금색 왕관을 좋아해서 떼를 쓴다기에는 말이 되지 않았다. 지팡이도 황금색이라서였다.
상자에 담아 진열장에 넣어 놓은 왕관과 다르게 지팡이는 평소에도 밖에 나와 있었다. 우산꽂이에 꽂힌 채로 거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혁은 그런 지팡이는 본체만체했다. 재인이 가끔 지팡이를 들고 나가 정원에서 신성력을 뿌릴 때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에이, 모르겠다.’
재인은 뺙뺙, 캬오옹 시끄러운 둘에게서 관심을 끄고 바닥에 둔 대본을 하나 집어 들었다. 둘이 진정될 때까지 대본을 보면서 기다릴 생각이었다.
“응? 뭐야, 업계 얘기야?”
재인이 집어 든 대본은 방송국 PD와 아이돌 출신 배우의 연애 얘기였다. 한물간 아이돌 출신 배우와 수년 만에 자기 프로그램을 맡은 PD가 서로 도우면서 성장하는 전형적인 로맨스물이었다.
‘……음. 이걸 왜 작은 상자에 뒀지?’
대본은 김 실장이 한 번 더 거른 상자에서 꺼낸 것들을 펼쳐 둔 곳에서 집은 것이었다. 자신이 보지 못한 재미 요소가 보였나 싶었는데, 다시 봐도 대본은 그냥 그랬다. 생계형 배우와 신출내기 PD의 연애, 더도 덜도 말고 딱 그것이었다.
“모르겠네. 상대 배우가 괜찮은 사람이 나오면 모를까.”
대본이라고 들어온 것도 온전한 건 아니었다. 인물 설정과 줄거리, 1화 내용 약간만 있는 정도라서 대본을 봐도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사실 이렇게 제작사 기획사로 도는 대본은 내용보다 작가가 누구이고 감독이 누구라는 게 더 중요했다. 혹은 누가 출연하기로 했다는 그런 것들이 더 중요했다.
‘같은 대본이라도 누가 연기하느냐, 누가 연출하느냐에 따라서 작품의 성격이 바뀌기도 하니까.’
평범하기 그지없는 대본인데도 김 실장이 다시 뽑은 걸 보면 괜찮은 제작사나 연출이 붙는 작품일 것 같았다.
“캬오옹!”
“뺙! 뺙!”
“……그만해. 계속할 거야?”
“뺙뺙뺙!”
“캬옹! 캬오옹!”
“에효!”
왕관을 배리어처럼 두르고 안에서 농성하는 혁과 틈을 발견하면 점프해서 솜뭉치를 날리는 하찬은 지치지도 않았다. 재인이 업계 사정이 담긴 로맨스물 대본을 읽은 뒤 다시 시놉시스를 여러 개 볼 동안에도 두 녀석은 시끄럽게 떠들었다.
‘그냥 대본이나 봐야겠다.’
재인은 다시 대본을 집어 들었다. 두 녀석은 이미 무엇 때문에 싸우기 시작했는지는 잊은 것 같았다. 그냥 투덕거리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이건 책이 좀 낡았네.”
김 실장의 선택은 받지 못한, 회사 기획 팀에서 고른 대본이었다. 책 형태로 된 대본이었는데, 긴 시간 여러 사람의 손을 탄 듯 표지에 손때가 묻어 있었다.
‘가족 드라마인가?’
주요한 배역으로는 어머니, 누나 부부, 조카가 있었다. 젊은 나이에 사고로 생을 마감한 누나 부부의 아이를 맡게 된 삼촌과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조카가 만나 새로운 가족이 되어 가는 얘기였다.
‘거짓말쟁이. 버리지 않겠다고 했잖아.’
‘삼촌이 잘못했어. 삼촌이 못 해 준 거까지 할머니는 해 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
‘다시 약속해. 나 안 버리겠다고.’
‘약속할게. 삼촌이 약속할게.’
조카의 양육을 맡았지만, 경제적 문제와 이직 문제가 겹치는 바람에 어머니에게 보낸 삼촌이 찾으러 가는 마지막 장면까지 읽은 재인의 표정이 묘했다.
‘로맨스가 없네. 게다가 조금만 삐끗하면 흔한 신파극으로 빠질 것 같아.’
로맨스가 없다. 대본이 왜 그렇게 제작사, 기획사를 떠돌았는지 대번에 이해 하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의학 드라마든, 범죄 드라마든 러브 라인을 넣는 한국 드라마 특유의 요소가 없어서였다.
‘원래 세계였다면 제작에 문제가 없었을 텐데.’
차원 이동 전의 한국 드라마는 장르 수용의 폭이 꽤 넓었다. 전 세계적인 한국 드라마 붐을 일으켰던 한국형 좀비 드라마도 그랬고, 웹툰 원작인 판타지 드라마도 그랬다. 장르가 무척 다양해져서 한국 드라마 전성기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였다.
이쪽 세상도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찍는 건 비슷했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어떤 장르의 작품이라도 로맨스가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쪽은 슬슬 K-pop이 유행하려는 조짐이 보이는 정도고.’
원래 세계에선 한국 아이돌이나 가수의 앨범이 빌보드에 오르는 게 일상이었다. 한국 영화를 북미 동시 개봉하는 일이나, 한국 방송국에서 제작 지원한 드라마를 전 세계 동시 방영하는 일도 흔했다. 대중문화 예술 분야에서는 확연하게 원래 세상이 발달해 있었다.
“아쉽네. 재밌을 것 같은데.”
재인은 낮은 제작 가능성에 고개를 저으면서 대본을 상자에 챙겨 넣었다. 차기작 후보들만 모아 둔 상자였다.
‘혹시 또 모르잖아.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투자자가 나올지.’
로맨스 코미디, 하이틴 드라마, 가족 드라마는 꾸준히 수요가 있는 장르였다. 적은 자본으로 만들 수 있고, 스크린이 안 되면 TV 영화나 OTT 서비스로 론칭하는 방법도 있어서였다.
수요자도 있고 대중에 선보일 방법도 있으니, 어떻게든 제작이 되지 않을까 하고 바랐다.
“아! 사진, 사진.”
집중해서 대본을 보던 재인은 어느새 거실이 조용해진 걸 깨달았다. 덜컥! 새로운 대본을 집어 들려던 행동에 제동이 걸렸다.
집이 조용한 순간은 딱 두 가지밖에 없었다. 하찬과 혁이 잘 때 아니면 그가 외출했을 때. 그 외의 시간에는 뺙뺙, 먀앙먀앙 항상 시끌시끌했다.
‘귀, 귀여워. 이런 게 소장 각이라는 거지.’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 음이 한동안 끊기지 않고 거실에 울렸다. 재인은 뿌듯한 얼굴로 잘 나온 사진을 골랐다. 금색과 검은색의 두 녀석이 좁은 왕관 안에 엉켜서 잠든 사진을 핸드폰 배경으로 설정할 생각이었다.
‘아이고, 녀석들 참 달게도 잔다.’
재인은 왕관 회수를 포기했다. 뺏기 미안할 정도로 두 녀석이 잘 자고 있어서였다.
“얻은 게 없는 것도 아니니, 오늘은 봐줄까나.”
왕관과 지팡이를 착용해서 차기작 선택에 도움을 받겠다는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마음에 꼭 드는 핸드폰 배경을 얻은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 * *
-빠밤! 빠밤! 누가 병아리 등장하는데 죠스 브금 깔았냐? 아주 그냥 센스가!
-ㅋㅋㅋ 이번 촬영 감독이 진심임. 칼 갈았어. 스산한 ost에 슬로우 걸고, 날개 끝에 반짝이는 빛 효과까지. ㅋㅋ 병아리 장작 패는 장면을 작정하고 연출한 거 같음.
-또 나만 없지, 병아리
-미쳤다. 진짜. 이재인 섭외 추진한 제작진 물개 박수 받으세요. 짝짝짝!
-여기가 극락인가. 천국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구나.
-무슨 고양이하고 병아리한테 말 거는데 내가 다 떨리냐.
-솔직히 저런 눈빛으로 저렇게 살짝 웃으면서 말 거는데 안 반할 사람이 누가 있냐고.
-이재인 미쳤다. 아주 전국민 꼬시려고 작정했구나. ㅠㅠ
-이재인 그냥 너무 잘생겼다. 너무 잘 생겼어. 미쳤어. 미친 외모야. 유죄야 이재인 ㅠㅠㅠㅠ
“아! 크흠!”
헛기침을 뱉은 재인은 노트북을 덮었다. 더는 볼 자신이 없었다. 하찬과 혁에 대한 시청자 반응을 살펴보려 했는데, 민망해서 이 이상 반응을 살펴보는 건 무리였다. >지기지기 산장 편>의 커뮤니티는 그만 봐도 될 것 같았다.
“바, 반응이 괜찮네.”
파닥파닥! 손부채를 부친 뒤 편하게 소파에 등을 묻었다. 호의적인 댓글이라도 직접 보니 너무 민망했다. 괜히 얼굴에 열이 오르고 이마에 땀이 차는 기분이었다.
-그럼 지금 혼자서 여행 중이에요?
-네. 천천히 동해안 따라서 부산까지 갈 계획이에요.
-멋지다. 무섭지 않아요? 여름 대청소 후라지만, 던전이 언제 생길지 모르는데.
-던전이나 몬스터 같은 것보다 다른 게 고민이라서요.
장작 패기가 끝나고 손님들과 정원에서 바비큐를 할 때의 장면이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대학 졸업반 숙박 손님을 보는 재인의 얼굴에 반가운 빛이 떠올랐다.
‘대학생 손님 분량이 꽤 되네?’
대학생 숙박 손님의 분량이 많은 게 의아했지만, 금세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구조 장면을 좀 더 극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일부러 분량을 늘린 것 같았다.
-컹컹!
-하찬아, 잠깐만! 너무 빨라!
>지기지기 산장 편>의 엔딩 장면은 하찬이 장식했다. 등산 코스 갈림길에서 고집을 부리는 모습과 무언가를 발견한 듯 재인을 끌고 달리는 장면이 마지막이었다.
“……역시. 이렇게 끝날 것 같았어.”
아무리 자유롭게 편하게 지내는 모습을 촬영하는 예능 프로라지만, 화제성이 중요하지 않을 리 없었다. 재인과 하찬이 협조해서 사람을 구하는 장면같이 화제 삼기 좋은 장면을 놓칠 리 없었다.
“헐! 벌써 기사까지 올라왔네.”
솔직히 기사라기보다는 방송 리뷰라고 하는 게 알맞은 내용이었다. 기사 내용도 누가 무슨 음식을 만들었다, 무슨 말을 누구에게 했다 정도라서 읽을 필요도 없었다.
‘해당 편은 이재인과 펫 하찬이 등산로를 질주하면서 끝을 맺었다? 쯧!’
재인은 가장 최근에 올라온 >지기지기 산장 편>의 기사를 확인한 뒤 혀를 찼다.
기사가 빨리 올라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기사는 다음 화 전개를 추측하는 내용이나, 다음 화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내용 한 줄 추가되지 않았다. 프로그램 내용에 대한 정리 몇 줄이 전부였다.
“그래. 나쁜 내용 없으니, 됐다.”
처음 출연한 예능의 모니터링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말실수한 것도 없었고, 비호감으로 비칠 구석도 없었다. 이주환이나 박동준처럼 손님들과 허물없이 대화하고 어울리진 못했지만, 적당히 분위기를 망치지 않고 어울렸다. 그 정도면 첫 출연치고 잘한 것 같았다.
‘치유하는 장면은 빼 주기로 했는데, 다음 주에 그것만 확인하면 되겠다.’
구조 신고하는 장면과 숙박 손님의 상태를 확인하러 비탈을 내려가는 장면은 그대로 쓰기로 했다. 그러나 재인이 치유사라고 밝히는 장면이나 치유하는 장면은 편집하기로 합의했다.
치유하는 장면의 편집은 재인이 먼저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감독이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본인의 프로나, 구조 사건 자체보다 현직 배우가 치유사라는 점이 더 부각될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예능도 꽤 재밌구나.”
촬영이 끝난 뒤 감독이 다음에 한 번 더 나와 달라고 했는데, 괜찮을 것 같았다. 일이 많아서 몸은 조금 고단하긴 해도 누군가를 연기할 필요 없어서 편했다. 카메라가 많은 건 촬영 끝날 때까지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덕분에 하찬이랑 혁이를 색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에 또 같이 출연하자 하찬아, 혁아.”
“뺙!”
“먀앙.”
재인은 첫 예능 출연에 긍정적인 인상을 받았다.
* * *
재인의 예능 출연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평가는 쉴새 없이 밀려드는 섭외 연락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예, 이재인 배우 매니저 최상홉니다. 죄송합니다. 현재 드라마 촬영 중이시라, 장기간 촬영은 어려우십니다.”
-…….
“예, 예. 하루 이틀은 시간을 조정하시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우선 제안서 먼저 보내 주시면, 이재인 배우와 논의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
“늦어도 내일 오전에는 연락드리겠습니다.”
-…….
“예. 들어가십시오.”
재인이 촬영에 들어간 사이 최상호는 섭외 제안을 받고 있었다. 예능 프로그램 PD, 잡지 인터뷰, 라디오 작가, 행사 대행사 등등 많은 곳에서 재인을 찾았다.
‘김 실장님은 일 년 안에 자리를 잡을 거라고 했는데…….’
최상호는 미리 작성해 둔 메시지에서 적당한 거절 메시지를 복사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재인이 자리 잡는데 일 년은 너무 길었다. 일 년도 채 되지 않는 시기, 그의 배우는 이미 많은 사람이 원하는 배우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