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87)
#87. 유기 동물 후원 챌린지
“혹시…….”
“?”
재인은 눈앞의 아이돌 선배가 이제야 저를 알아보나보다 생각했다.
“프롬 네이처?”
“네?”
“변신 히어로 맞죠?”
“……네.”
“우와! 변신 진짜로 하는 거였구나. 그래픽인 줄 알았는데.”
자기를 알아봤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사료 광고를 찍은 하찬을 알아본 거였다.
“하찬아, 변신. 다시 들어가자. 복잡하다.”
“먀앙.”
말이 끝나자마자 고양이 모습으로 변한 하찬을 가방에 다시 넣어 주었다. 한창 잘 시간에 깨워서 변신하라고 했는데도 짜증도 부리지 않고 변신해 준 게 고마웠다.
“정말 이재인 배우님이셨네요.”
“네.”
“아! 저는 디 키즈의 여상이라고 해요.”
“디 키즈! 그런데 왜 혼자서? 매니저님이나 다른 스태프는 어디에 계세요?”
“개인 스케줄이 있어서요. 방송국으로 바로 왔어요.”
디 키즈는 이쪽 세상의 가요계에 관한 지식이 일천한 재인도 들어 본 적이 있는 유명한 아이돌 그룹이었다. 나아가 일곱 멤버의 활동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가 한화 몇 조에 달한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보도되는 그룹이었다. 경호 인력도 없이 혼자서 새벽에 움직일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이래 보여도 신체 강화 각성자라서요.”
“아! 맞다.”
디 키즈가 유명한 이유에는 멤버 전원이 각성자라는 점도 있었다. 각성한 초능력도 뛰어난 편이라, 키퍼 부대의 홍보 대사도 했었다. 동생에게 여러 번 들었었는데, 워낙 딴 세상의 얘기 같아서 잊고 있었다.
“드라마 촬영 끝나면 아마 저희 무대 녹화 차례일 거예요. 아침에 바로 출국해야 해서요. 일찍 촬영한다고 들었거든요.”
“아! 그래서 지금…….”
“이재인 배우님은 드라마 촬영 중이시라고요? 혹시 가수 역할이세요?”
“네. 워, 크흠. 아이돌 출신 배우 역할이에요.”
“아아, 어쩐지 의상이…….”
재인은 워너비원 멤버들과 무대에서 공연하는 장면을 찍는다고 얘기하려다 급히 말을 바꿨다. 미공개 곡으로 촬영하기로 해서 밝히면 안 되는데, 좋은 곡이라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실수할 뻔했다.
“저…….”
“네.”
“사실 제가 이재인 배우님을 진짜로 뵙고 싶었거든요.”
“저를요? 왜요?”
그런 것치고는 저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오해긴 했지만, 신인 아이돌로 착각하고 군기를 잡으려 했다.
병아리색 같은 옅은 금발에 촌스러운 무대 의상을 입고 있어서 누군지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는데, 재인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게요…….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무슨 부탁인데요?”
“Vlog요.”
“브이, 로그요?”
“네, 그게 뭐냐면요.”
디 키즈의 여상이 말한 브이로그는 말 그대로 브이로그를 촬영하는 일이었다. 반려동물이나 반려 몬스터와의 일상을 영상으로 남겨 공개하는 그것이었다. 단지 그 영상을 제작하는 목적이 여타의 브이로그와 조금 달랐다.
“공개한 영상이 일정 조회 수를 달성하면 기부를 한다고요?”
“네. 유기 동물 후원 챌린지예요. 다음 챌린지 주자로 이재인 배우님을 지명하고 싶어서요. 괜찮을까요?”
“미션에 대해서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네. 영상은 5분 이상이면 되고요. 조회 수 10만 단위로 후원하게 되어있어요. 10만 조회 수에 사료 백 포대, 20만에 이백 포대, 30만에 삼백 포대예요. 한 사람당 삼백 포대까지 적립할 수 있어요.”
“그렇구나. 할게요. 언제부터 해요?”
“제가 주최 측에 다음 챌린저로 이재인 배우님을 지명한다고 알리면 연락이 갈 거예요.”
자세한 설명은 주최 측에서 들으면 된다고 말한 뒤 여상이 핸드폰을 꺼냈다.
“매니저님 번호 알려 주실래요?”
“네. 010-59…….”
“그, 괜찮으시면 이재인 배우님 연락처도…….”
“하하하. 네. 요새 촬영하느라 낮에는 연락을 거의 못 받아요. 저녁 지나서는 괜찮으니까, 편하게 연락하세요.”
여상이 내민 핸드폰 화면을 본 뒤 재인은 그가 왜 화를 냈는지 깨달았다. 검고 하얀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장난치는 사진을 배경으로 해 둘 정도로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역시 밖에선 고양이 모습은 무리인가. 하찬이 잘 시간이라 이렇게 데리고 다닌 건데…….’
고양이 모습이든 늑대 모습이든 몬스터 믹스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호기심 많고 장난스러운 한편 용맹하고 대담했다. 수백 명의 사람이 저를 지켜볼 때도, 제 덩치보다 큰 몬스터와 대적할 때도 용감했다.
그런 하찬이지만, 고양이 모습으로 외출할 경우는 오해를 사기 쉬웠다. 낯선 장소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고양이의 습성을 무시하는 이기적인 보호자로 보이기 쉬웠다.
“매니저님 오셨네요. 먼저 가 볼게요.”
“네, 좀 전의 일은 정말 죄송했습니다.”
“아니에요. 오해하실 만했어요. 그럼, 챌린지 건 결정되면 연락해 주세요.”
“네.”
저와 다르게 여상을 대번에 알아봤는지 최상호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직후 주변을 휘휘 둘러보는 모양이 예상대로 여상이 혼자서 다니는 게 절대로 평범한 일이 아닌 듯했다.
* * *
“형. 어디 갔었어요?”
“복도에…….”
“우린 준비 끝났어요.”
“그래? 그럼 샌드위치 먹고 하자. 여기 오면 이거 꼭 먹어야 한다며.”
“그렇죠.”
재인은 복도에서 디 키즈의 여상을 만났다는 말을 꺼내려다, 말았다. 대신 최상호가 한가득 사 온 샌드위치를 나눠 주었다.
워너비원의 출연은 비밀이었다. 컴백 타이틀을 처음 공개하는 무대이기도 하고, 제작진이 노이즈 마케팅의 효과를 마지막까지 누리길 바라서였다.
“이거 먹고 힘내서 촬영하자.”
“네!”
촬영은 야식을 먹고 나서 얼마 후에 시작됐다.
정식 촬영이라면 팬도 입장시키고 댄서들도 부르고 화려한 소품과 무대 효과 같은 것들도 썼겠지만, 이번 촬영은 그렇게 하기 힘들었다. 비공개 곡이기도 하고 망한 아이돌 콘셉트라서 무대에 힘을 줄 수 없었다.
“아까도 생각했는데, 이 멤버로 망할 수 있나?”
“감독님이 보시기에도 그렇죠?”
“응. 클로버는 입사 기준이 미모인가? 재인 씨 빼고도 다 눈이 부시는데?”
“진짜로 인물들이 다 좋네요. 비율도 좋고요. 망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노래 들어 봤어?”
“리허설할 때 들었어요. 진짜 좋았어요. 감독님은요?”
좋았다. 도저히 망한 아이돌의 노래라고 하기 어려웠다. 음악에 관한 전문 지식은 없지만, 음악 방송 1위 정도는 충분히 할 것 같은 노래였다.
‘OST 받은 것도 좋던데. 확실히 클로버가 음악은 좋아.’
회사 규모만 좀 작을 뿐이지 몇몇 분야는 4대 기획사 못지않았다. 물론 가장 뛰어난 부분은 재인을 데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아가 그 재인을 확실한 스타의 코스로 달리게 하는 점도.
“좋아! 이 무대가 화제가 되면 더 좋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곡이 좋아서 나쁠 건 없었다.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화제가 될 만한 장면이었다. 재인이 몇 달간 배운 안무를 직접 무대에서 선보인다는 사실 하나로 이미 목적은 달성했다. 남은 건 망한 것 같은 무대를 반대로 멋지게 촬영하는 것뿐이었다.
* * *
워너비원과 재인의 컬래버레이션 무대 촬영은 리허설 무대부터 상상 이상으로 멋졌다. 처음엔 낯설어하던 강렬한 조명과 무대의 높이에 금세 익숙해진 재인은 원래부터 워너비원의 멤버였던 것처럼 능숙하게 무대를 펼쳤다.
‘으아! 차라리 단역 배우를 데려다 놓고 찍는 게 나았어.’
한 가지 예상하지 못한 것은 그림을 풍성하게 만들 의도로 넣었던 음악 방송 감독, 특히 카메라 감독님의 반응이었다. 가끔 촬영 비하인드에도 출연하시길래 출연을 부탁드렸더니, 카메라 앞에서 석고상이 되어 버렸다.
김고운 감독은 이번은 자신이 실수했다고 인정했다. 카메라에 익숙하다고 해서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익숙한 건 아닌데, 너무 쉽게 생각했다.
“감독님들 긴장하지 마세요. 감독님들 지금 표정은 이 장면에 찰떡이에요. 대신 몸만 조금 편하게 움직여 주시면 딱 좋을 것 같아요.”
너 뭐야? 렉 걸렸어? 카메라 들고 팝핀 춰? 촬영 하루 이틀 해? 그따위로 할 거면 당장 때려치워! 하고 싶은 말은 수없이 많았지만, 김고운 감독은 내심과 다르게 사근사근한 말투로 음악 방송 감독들을 달랬다.
촬영 스태프들을 관객석에 보내 매가리 없는 응원과 함성도 따고, 비어 있는 관객석 영상도 딴 뒤엔, 본 공연 무대 촬영이었다.
‘좋아! 이거지.’
본무대 공연에 들어간 뒤 김고운 감독은 급하게 카메라 한 대를 음악 방송 스태프 쪽으로 투입했다. 워너비원이 진지하게 공연하기 시작하자, 그들의 태도도 바뀌었다. 특히 전문가 포스를 뿜뿜 뿜어내며 촬영하는 카메라 감독의 모습은 최고였다.
‘표정 좋고.’
음악 방송 스태프들과 다르게 무대 위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는지 워너비원과 재인은 한 몸처럼 복잡한 안무를 소화하고 있었다.
그중 재인은 촬영 전 자신 없다 약한 소리를 한 것과 다르게 수시로 대형을 바꾸면서도 그를 찍는 카메라를 놓치지 않았다. 무대에만 집중하는 워너비원과 다르게 드라마 촬영 중이라는 걸 잊지 않은 모습이었다.
‘배우는 배우네. 뒤로 도는 찰나에 연기로 들어가는 게.’
어렵게 잡은 음악 방송 무대. 채우연은 마지막 무대를 하는 것처럼 열정적으로 공연하고 있었지만, 중간중간 힘든 표정을 드러낸다. 무대에 서기 직전의 분장실에서도 멤버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았기 때문이었다.
무대에서 그런 감정을 드러내는 건 프로답지 못한 일이었지만, 드라마상 현재 나이는 열아홉, 아직 성인도 아닌 나이였다.
“컷! 좋았어요. 좋았는데, 이번에는 우연이 중심으로 한 번만 더 가 보죠.”
“네!”
“거기 ‘갓어 샤인 마이 라이프’ 하는 부분 있죠, 다 같이 부르는. 그 장면에서 카메라랑 동선 겹치지 않게 움직여 주세요.”
“네.”
실제 음악 방송처럼 클로즈업 카메라가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 역시 음악 방송의 카메라 스태프들이었다.
“레디, 액션!”
다시 시작된 촬영. 재인은 저를 따라다니는 클로즈업 카메라에 주의하면서 안무를 소화했다. 복잡한 춤을 추며 찰나에 감정 연기까지 하느라 신경이 곤두섰지만, 얼굴에 드러난 표정은 무대의 열기에 취한 즐거운 표정뿐이었다.
‘여기에 노래까지 불렀으면 죽었을지도. 아이돌은 진짜 극한 직업이야.’
속으로는 숍에서 했던 생각을 다시 하면서 힘겹게 무대를 이어 나갔다.
“오케이, 컷!”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다른 촬영장에서보다 오케이 사인이 늦게 나오는 것 같았다. 아니면, 격렬한 안무를 계속하느라 지쳐서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몰랐다. 그래도…….
“진짜 좋아. 이거 우리 메이킹에도 넣어도 될까?”
“워너비원 매니저님 저기 계시는데 물어볼까요?”
“응. 다녀와. 인터뷰도 따고 싶다고 말씀드려.”
“네.”
김고운 감독의 반응을 보니 몇 달간 공을 들인 보람이 있었다. 거기에 메이킹 필름에 워너비원의 인터뷰가 실린다면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이제 워너비원은 걱정할 필요 없겠다.’
컴백 타이틀 곡의 촬영 현장 반응도 좋았다. 곡도 좋고 멤버 실력 확실하니, 남은 것은 드라마의 방영을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에구구구!”
“피곤해?”
“조금이요.”
“분장실 장면은 금방 끝나니까, 조금만 힘내. 치유 걸어 줄까?”
“괜찮아요.”
뮤직비디오 찍을 때는 이것보다 더 많이 춘 적도 있다며 워너비원 멤버는 치유를 거절하고 분장실 세트 방향으로 이동했다.
“인호, 너는 왜 같이 안 가? 혹시 다쳤어?”
“아니요.”
“그럼 배고파?”
“아니요!”
“그럼 왜 하찬이처럼 보고 있어?”
바라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말도 없이 빤히 보는 게, 딱 간식 봉지를 앞에 둔 하찬이 같았다.
“고마워요, 형.”
“뭘. 네가 노력한 거지.”
“아니에요. 형 아니었으면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포기하지 않았잖아. 그거면 됐어.”
“네.”
물기 가득한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재인은 그런 인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그저 도울 능력이 돼서 도왔을 뿐인데, 한 사람의 꿈이 꺾이지 않는 결과로 돌아왔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가자. 남은 촬영 끝내고 맛있는 거 먹자.”
“네.”
분장실 세트로 이동하는 발걸음이 힘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