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123)
Chapter 122
“예?”
킬리언이 던진 질문을 들은 로베티라는 자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본능적으로 마른침을 삼키며 달싹이는 입매가 잔뜩 긴장한 형색이었다.
킬리언은 왜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걸까?
이 서재 안에는 킬리언의 말처럼 분명 나와 킬리언밖에 없었으니 저들이 보기에 유력한 용의자는 우리일 수밖에 없지 않아?
“짐작건대 이 상황을 미루어 말씀드리자면…….”
로베티의 경직된 시선이 뚫린 천장과 현장을 확인하는 그의 형제들을 한 번 더 돌아봤다.
피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라인하르트 가의 서자들이 움직일 때마다 먼지가 일어나는 통에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이윽고 로베티의 고개가 다시 우리를 향해 돌아왔다.
“지금으로서 저희가 내릴 수 있는 판단은…….”
부단히 대답을 고심하는 눈치의 로베티는 심상찮은 얼굴로 한 번 더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상한 일이었다.
로베티가 우리의 안색이 어떤지, 범행을 숨기려는 목적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게.
“아무래도 쥐의 소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뭐? 쥐?
예상치 못한 답변에 내가 외려 흠칫해 눈이 커져 킬리언을 올려다보고 말았다.
압도적인 피지컬로 로베티를 내려다보고 있는 킬리언의 시선은 평소처럼 동요하는 기색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로베티의 말을 가만히 들어주는 황태자의 모습이었다.
“제가 그런 판단을 내린 근거로는…….”
침묵을 지키는 킬리언의 반응을 살피던 로베티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쥐나 여타 성안을 돌아다닐 수 있는 작은 짐승들은 성의 골조를 통해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이 튼튼하기는 하나 골조들을 가끔 손봐야 할 때가 있기는 하니까…….”
잠시 말의 휴지가 생길 때마다 로베티의 눈이 킬리언을 힐긋거렸다.
“가령 황실 주방을 기웃대다 꼬리에 불이 붙은 채로 다녔다든지. 새들이 제 깃에 불꽃이 닿은 것도 모른 채 안을 다녔다든지…….”
킬리언이 태평하게 로베티의 말을 들으며 그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말을 잇는 로베티의 낯빛은 근육이 수축하듯 어둡게 죄어들고 있었다.
“제 사견으로는, 그러니까 제가 드리는 말씀은…….”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긴장한 얼굴로 로베티는 연거푸 자신이 한 말의 연유를 찾았다.
로베티의 얼굴이 긴장할수록 킬리언이 그를 잠자코 기다려 주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 높은 천장에 불이 붙을 방법이란 게 없습니다, 전하.”
아무래도 로베티는 킬리언이 지금껏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자신을 보고 있는 게, 그를 설득하는 데에 자신의 논리가 부족해 그런 거라 여기는 눈치인 게 분명했다.
“저 천장은 사다리 세 개를 쌓아도 올라갈 수도 없는 높이라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인간이 저기에 올라가 무너뜨리거나 훼손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로베티가 자신의 주장에 확신을 더하기 위해 광활한 서재의 드높은 천장은 감히 인간이 망가뜨릴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기야.
천장화는 인간이 닿기엔 아득하리만큼 높은 위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도 용의선상에서 제외된 킬리언이 로베티의 말이 그럴싸하다는 듯 가만히 듣고 있다 불현듯 미간을 찌푸렸다.
“천장화를 관리해야 할 때가 있을 텐데 사람이 전혀 닿을 수 없는 곳이라 단정 짓는 건가, 로베티. 단순히 동물의 소행이라고만 판단하는 게 섣부른 감이 있군.”
로베티의 추측이 썩 와 닿지 않는 사람처럼 킬리언이 지적하며 여유롭게 한쪽 눈썹을 들어 보였다.
와, 누가 보면 그는 정말 사고 현장에 대해 보고를 받는 상관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
표정 하나 흐트러지는 법 없이 로베티를 내려다보는 킬리언의 시선이 마치 느리게 흐르는 깊은 강처럼 고요했다.
동시에 슬쩍 올라간 그의 입가가 마치 로베티의 답변에 대해 대단한 기대가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을 들어줄 용의가 충분한 것처럼 너그러워 보였다.
그러자 로베티가 더욱 초조해진 얼굴로 빠르게 해명했다.
“무, 물론 그렇게 보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나 천장화 관리는 아시겠지만, 전문가의 감시하에 먼지를 털어 내는 정도만 진행하고 있습니다. 천장화에 대한 지식을 수료한 황가의 일원의 감독하에서만 말이죠.”
“그 감독이 그대가 됐고.”
“기,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뭐, 중요한 일은 아니니 계속 설명해 봐.”
킬리언의 무심한 반응에 로베티의 속도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더욱 빨라지고 말았다.
“그것도 그때에만 임시 도르레를 설치해 하는 정도입니다. 저기 보시면……. 보이시죠? 저 천장에는 지금 그런 기구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걸 전하께서도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기계를 설치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저희뿐이고요.”
자신들의 소관임을 분명히 밝히던 로베티가 문득 창백한 낯빛으로 킬리언을 올려다봤다.
“전하. 혹여 사람이 한 소행이라 염두하고 계시는 걸까요? 여기에 무언가를 설치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저희뿐인 건 사실이긴 하나 저희는 진정 전하께 그 어떤 짓도……!”
“진정해.”
서고에 출입하여 기계를 설치할 수 있는 건 저희뿐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범인으로 몰리게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든 모양이었다. 그가 반 흥분한 상태로 두서없이 해명하려 들자, 킬리언이 한숨을 내쉬며 그를 진정시켰다.
“내가 그대를 비롯한 형제들을 의심하려고. 설마?”
“가, 감사합니다, 전하!”
로베티가 허리를 숙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머리를 조아린 채 좀처럼 몸을 세우지 않던 로베티가 은근히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를 덧붙였다.
“저……. 전하. 저희가 철이 없어 전하께 저질렀던 일들은, 진실로 사죄드리는 바입니다. 그것은 모두 저희의 불찰이며 불손한 행태였습니다. 혹 일전에도 저희가 전하의 심기를 거스른 일이 있다면…….”
“로베티.”
킬리언이 허리를 굽힌 로베티의 이름을 불렀다.
“나의 비가 듣고 있어.”
그의 말에 나는 문득 로베티를 지켜보던 시선을 들어 킬리언을 바라봤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려 애쓴 로베티가 좀 안쓰럽지 않나 여겼던 내 생각이 우뚝 멈추는 찰나였다.
원작에서 황위에 오르기 전까지 황실에 오래 머물지 않던 킬리언이었다.
그가 이곳에서 홀대를 받았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고 로베티를 비롯한 서자들 역시 킬리언을 어떻게 대했을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계승식에서 모두를 죽였다고 했으니 그들이 킬리언을 대한 태도가 가히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로베티 스스로조차 저희들이 한 짓에 대해 사과할 정도라면, 자각한 채 자행했다는 뜻이었으리라.
나는 로베티가 자신의 추측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논리를 펼치고 킬리언의 반응을 살피는 로베티가 가여울 뻔했지만, 곧 로베티가 이토록 전전긍긍하는 데에는 킬리언의 세력이 황실 내에서 커졌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죄…… 죄송합니다, 전하.”
“현장 조사를 마치면 다시 이야기할까. 레네트를 쉬게 해야겠어.”
“무, 물론입니다. 전하! 푹 쉬시지요, 황태자비 전하.”
로베티가 큰 소리로 말하자 조사를 하던 이들도 다가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권력의 기세가 어디로 기우는지 기민하게 살펴 머리를 조아렸을 저들을 보며 입 안이 까끌까끌해졌다.
물끄러미 저들을 바라보는데 시야가 차단되나 싶더니 킬리언의 손이 내 얼굴을 감쌌다.
“걸을 수 있겠어?”
“네?”
당연한 걸 왜 묻나 싶어 그를 올려다보는 순간, 킬리언이 가볍게 나를 안아 올렸다.
우리를 향해 예의를 갖춰 배웅하는 저들을 보기 민망해 슬그머니 킬리언의 재킷을 꼬옥 잡아당겨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걸을 수 있는데요, 전하?”
“알아.”
“그럼 왜…….”
“너무 가까이에서 보고 있었어.”
“네? 뭘요?”
킬리언이 더는 설명해 주지 않은 채 나를 안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 * *
“푸하!”
욕조에 누워 정수리까지 잠겨 있던 몸을 확 일으켰다.
재가 섞인 석회 가루를 뒤집어쓴 몸을 뽀득뽀득하게 씻고 향유를 뿌린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있자니 하루를 보내고 난 후 밀려드는 피로가 뭉근하게 몸을 덮쳐 오는 것 같았다.
목욕을 마치고 나와 물기를 털고 슈미즈를 입은 후 의자에 앉았다.
“음…….”
대체 그 펜이 뭘까?
나는 하젤의 도움을 받아 머리를 말리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나비는 진실을 좇는다.
펜대에 새겨진 글귀는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아리송한 말이다.
나와 킬리언은 그 진실이란 파비앙 넬라스가 숨겨 놓은 원문의 일부를 가리키는 것이라 추측했다.
그런데 그걸 나비가 좇는다는 건 무슨 말인지…….
일단 이리나에게 펜대와 관련한 내용을 아는지 물어보고, 엘리제 황후에게도…….
“…….”
불현듯 엘리제를 아직 만나지 못한 킬리언이 마음에 걸렸다.
엘리제는 킬리언의 상태가 불안정해질까 싶어 만남을 저어하고 있지만, 아까 그는 걷잡을 수 없이 솟구치는 그 포악한 오러를 결국엔 제어해 냈다.
“!”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오러를 쓸 때 그의 상태가 어떻게 됐는지는 살피지 못했다.
펜대에 무너진 천장화에 거기다 들이닥친 킬리언의 배다른 형제들까지! 그가 나를 곧장 욕실에 내려놓고 가는 바람에 킬리언의 등을 봐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안 되는데!”
상처가 깊어졌으면 어떡하지?
내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자 하젤이 깜짝 놀라 나를 쳐다봤다.
“왜 그러세요?”
“금방 올게요, 하젤!”
네? 어디 가세요? 하는 소리가 등 뒤에 애타게 울리는 것 같았다.
나는 부리나케 드레스룸에서 벗어나 복도를 달려 킬리언의 침실로 향했다.
광활한 복도를 달리고 또 달려 그의 침실 문 앞에 다다르려는 찰나 나를 보자마자 시종이 자동반사적으로 킬리언의 침실 문을 열어 주었다.
“감사해요!”
숨을 헉헉대며 들어가 곧장 그부터 찾았다.
재빨리 발을 옮겨 드넓은 침실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침대에서 책을 읽다 내려놓는 킬리언이 눈에 들어왔다.
팬츠만 걸친 채 베개에 기대 있던 그가 몸을 일으키자 탄탄한 근육이 적나라하게 갈라지는 것 같았다.
“레네트?”
그가 무슨 일이냐는 듯 눈을 살짝 크게 뜨자 나는 섣부른 오해를 부르지 않도록 재빨리 설명했다.
“전하, 다른 뜻은 없고 아까 오러를 쓰셨으니까 상처가 어떻게 됐는지만 볼게요.”
“뭐……?”
별안간 무슨 소리냐는 듯 묻는 킬리언을 묵살한 채 침대 위로 올라가 그의 등에 고개를 쭉 내밀었다.
“뭐 하는 거야.”
자꾸 나를 돌아보려 움직이는 그의 행동 때문에 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자 나는 손을 뻗어 근육들이 빼곡히 채워진 등 가운데 움푹 파인 척추를 따라 올라가 흉터가 자리 잡아 있는 곳을 찾아냈다.
“어?”
상처가 커지지 않았다. 작아진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다.
“괜찮은, 것 같아요.”
이 정도면 엘리제를 만나도 킬리언이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그가 극심한 분노를 느끼지 않도록 나도 옆에서 그를 지키면서 말이다.
“안 아픈 거 맞죠?”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와 기쁨에 겨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올려다보는 순간 몸이 풀썩 침대 위에 가라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