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124)
Chapter 123
“전하……?”
레네트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거린다.
손목이 붙잡힌 채 누워 있어도 레네트의 얼굴엔 막막한 놀라움보다 의아함이 가득해 보였다.
그가 절대 그녀를 다치게 하지 않을 거라고.
위해하는 일은 없으리라 믿는 순진무구한 눈빛이었다.
“……나를 얼마나 미치게 하려고.”
자신의 아래에 누워 있는 레네트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던 킬리언이 느릿하게 말했다.
“어디까지 시험하려고, 이러는 건데.”
막 목욕을 마친 달큼한 체향이 정신을 어지럽히고 젖은 머리칼이 그를 오싹하리만큼 자극해 댔다.
마른침을 삼키는 그의 목울대가 선명하게 오르락내리락했다.
삽시간에 맹렬히 끓어오르는 감정이 뇌관을 건드려 대는데 평정심을 유지해야만 하는 수도승의 마음으로 레네트의 손목이 아프지 않을 만큼 잡았다.
레네트는 모른다.
순진무구한 얼굴로 겁도 없이 침대 위로 달려들 때면 자신이 어떤 기분에 휩싸일지, 조금도 생각지 않는다.
그녀가 염두에 두는 건 오로지 그의 상처가 어떻게 됐나일 뿐.
이걸 기쁘다고 해야 할지, 너무하다고 해야 할지…….
“……아.”
뒤늦게 킬리언의 기색을 알아차리는 레네트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민망한 기분이 든 것인지 시선을 피해 또르르 눈을 굴리다가 이내 말캉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제 딴엔 어찌할 바를 몰라 한 행동일 테지만.
“…….”
가만히 레네트를 바라보는 킬리언의 눈빛이 한층 더 가라앉았다.
저 입술이 얼마나 부드럽고 달콤한지 잘 아는 이로서는 고역이 따로 없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뜬 그가 레네트가 깨문 입술을 엄지로 슥 빼냈다.
“깨물긴 왜 깨물어.”
그게 얼마나 사람을 허기지게 하는지도 모르면서.
나를 어디까지 몰아붙이려고.
“돌겠네…….”
한숨을 내뱉은 킬리언이 그대로 레네트의 옆에 털썩 누웠다.
망연해진 듯 동그란 눈으로 허공을 보고 있던 레네트가 힐긋 고개를 올려 그를 쳐다봤다.
빛이 어린 반질반질한 청록색 눈동자가 자신을 보는 게 느껴지자 제 시커먼 속을 알아차릴까 싶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곁에서 부스럭대며 일어나는 기색이 느껴졌다.
“어딜 가려고.”
레네트가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킬리언은 그대로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
그녀가 반사적으로 바르작거리니 얇은 슈미즈를 사이에 둔 작고 연약한 몸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차라리 고문을 하지, 왜.
단박에 그가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의 긴 눈매가 그녀를 잠자코 내려다보나 싶더니 더이상 움직이지 못하도록 꽉 끌어안았다.
“켁, 숨 막혀요.”
“참아. 나도 참고 있으니까.”
무심히 일갈한 그가 그녀의 머리칼에 볼을 문질렀다.
이익, 소리 내며 그녀가 움츠러들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와 집요하게 따라가 얼굴을 비벼 댔다.
부서져라 부둥켜안고 꽉 끌어안기를 반복해도 도무지 곁에 있는 것 같지 않아 팔과 다리로 모두 얽기까지 했다.
가둬 놓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소리 내 말한다면 그건 미친놈 취급을 받겠지.
킬리언은 튀어 나갈 뻔한 진심을 누르며 레네트의 어깨를 매만졌다.
“…….”
레네트는 현실감이 없게 느껴질 만큼 싱그러웠다.
마치 이 세계의 사람 같지 않게 느껴질 만큼.
갑자기 그의 눈앞에 나타났던 그때처럼 갑자기 사라져 버리면 어쩌지.
문득 그런 생각에 사로잡힐 때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가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고작 상처 하나 확인하겠다고 이 밤중에 달려왔어?”
이 기가 찬 상념을 밀어내기 위해 소리 내 묻자, 그의 품에 온전히 살아 있는 게 느껴지는 레네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작이 아니에요. 그거 되게 중요한 일이거든요?”
하, 이렇게 예쁘게 말하는데 어쩌라는 건지.
눈을 질끈 감았다 뜬 그가 고개를 숙여 레네트를 내려다봤다.
빼꼼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마주쳐 오는 레네트의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넘기고 동그란 이마를 손끝으로 스쳤다.
닿고 싶은 게 어디 그뿐일까.
킬리언은 잠시 레네트를 끌어안은 팔을 쭉 뻗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풀었다.
다시 거머리처럼 그녀의 몸에 팔을 두르고 크게 심호흡했다.
레네트는 순수하다.
그녀를 놀라게 해선 안 된다.
겁먹게 하면 나는 진짜 나쁜 놈이다.
뭐든 식을 올리고 하는 게 예의다.
오만가지 우려가 그의 머릿속에 떠올라 스스로를 착잡하게 만들었다.
“그게 왜 중요한데.”
그는 최대한 차분한 얼굴을 한 채 레네트를 응시했다.
“전하의 건강과 관련된 일이잖아요. 다치면 안 되니까.”
“난 괜찮아. 안 해도 돼.”
“싫어요. 할 거예요.”
하? 제법 강경한 태도가 우스웠다.
괜히 비딱하게 나가고 싶은 심술이 튀어 올라 그가 한쪽 눈썹을 휘어 올렸다.
“번거로워.”
“제가 하는 건데 왜 전하가 번거로워요?”
“그걸 언제까지 하려고.”
“매일?”
레네트의 대답에 무표정을 유지하려던 킬리언의 눈매가 저도 모르게 나른하게 휘었다.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한 자연스러운 태도와 그 말투가, 그를 미소 짓게 했다.
매일이란다.
이걸 어떻게 배기나. 못 버티지.
“하, 시험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네.”
킬리언이 자조적으로 읊조리며 레네트를 품에 꽉 끌어안았다.
레네트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 척 연기하고 있는지. 무엇을 어떻게 참고 있는지.
주변의 이목이 있기에 혼인은 돼 있더라도,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같은 침실을 써야 한다는 황실의 의견을 지키는 일이 그에게 꽤나 고역이라는 것도.
그의 성정대로라면 묵살하고 제 식대로 레네트와 함께 지내는 게 당연했지만, 황실의 의견을 따르는 게 좋겠다는 레네트의 말에 그는 고민할 것도 없이 그녀의 결정을 따랐다.
그뿐일까.
그의 방식대로라면 황실 서고의 천장 붕괴 사건을 흑마법이 침투했을 가능성을 시사해 로베티로 하여금 기젤라 부인과 맥클런을 묶어 조사하게 했을 수도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닌 수백 년간 보존되어 온 황가의 서고를 건드린 일은 수월히 그들을 사형대 앞으로 떠밀도록 만들 수 있었다.
증거야 조작하면 그만이 아닌가.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선악을 구분하는 일은 결코 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쉽고 효율적인 길을 택했다.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하나.
“전하. 우리 황후 폐하를 뵈러 가요.”
레네트의 제안에 킬리언의 붉은 눈동자가 우뚝 멈췄다.
“같이 가요, 우리.”
그의 눈에 비친 레네트가 해사하게 웃었다.
자신이 구태여 이렇게 번거로운 길을 택해 가며 황실에 남아 있는 건, 순전히 아무리 안아도, 마주 보고 있어도 갈증이 나는 레네트 때문이었다.
그녀가 자칫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보고 실망할까 봐.
어둡게 잠식된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그를 외면하고 마는 장면은 상상조차 하기 두려워서.
“그래.”
그러니 그녀가 하자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자신을 외면한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일도, 선뜻.
“그렇게 해.”
킬리언은 빙긋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말캉하고 보드랍게 느껴지는 피부를 온전히 만질 수 있는 게 자신뿐이라는 사실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레네트.”
“네?”
“……이 옷으로 달려왔어?”
해맑은 레네트의 얼굴을 보며 묻자, 그녀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아!”
뒤늦은 탄식에 킬리언이 이를 악문 채 미소 지었다.
그를 걱정하는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왔으니 응당 좋아해야 할 일이나, 이 얇은 슈미즈를 입고 복도를 내달리는 동안 마주친 자가 있을까 싶어 내부가 뜨겁게 끓어올랐다.
저녁에 서고에서 그의 배다른 형제들이 레네트를 가까이에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사이 레네트가 그들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피가 역류하는 것 같았는데.
“앞으로 또 그러면…….”
“막 확인하고 싶어서 아무 생각 없이 뛰쳐나왔어요. 에잇.”
스스로를 타박하듯 중얼거리며 레네트가 입을 꾹 다물자 더이상 말할 의지를 잃은 킬리언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도로 그녀를 끌어안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런 레네트에게 어떻게 화를 내나.
그런 마음을 먹는다면 내가 나쁜 놈이지.
“기다려. 꽁꽁 싸매서 데려다 놓을 테니까.”
* * *
킬리언은 정말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지키는 사람이 분명하다.
나는 김밥처럼 이불에 돌돌 말린 채 그의 품에 안겨, 아니 실린 채로 침실로 돌아왔다.
예쁜 노란 커튼이 드리워진 내 공간에 들어선 그가 성큼성큼 가로질러 걸어가 나를 침대에 눕혔다.
“감사해요오…….”
이불에서 벗어나며 멋쩍은 마음에 그에게 고맙다고 말하자, 킬리언이 기가 찬 듯 웃음을 지었다.
“이상해.”
“네? 뭐가요?”
“……그대가 무슨 말을 하건 듣기 좋아서.”
살짝 찌푸린 가늘어진 눈매로 나를 내려다보던 그가 말했다.
“미친 건가…… 싶기도 하고…….”
“…….”
“잘 자, 레네트.”
머리칼을 넘겨 준 그가 상체를 숙여 이마에 입을 맞췄다.
뜨겁고 보드라운 촉감이 이마에서부터 손끝으로, 그리고 발끝까지 저릿하게 퍼지는 것 같았다.
쭈뼛 얼어붙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다른 데에도 해도 돼?”
이마에 울려 퍼지는 낮은 음성이 동굴처럼 온몸을 울렸다.
일부러 짓궂게 묻는 게 분명한 어조라, 차마 고개를 들 엄두도 나지 않았다.
뭐에 홀린 사람처럼 고개가 절로 주억거리는데 그의 입술이 코끝을 스치고 볼에 닿았다가 이내 입술에 머물렀다.
뜨겁고 또 청량한 숨결이 또렷하게 오감을 깨우고 잔털을 곤두서게 했다.
볼을 지그시 누르는 그의 높게 솟은 코와 턱을 붙잡는 손길이 모든 상념을 날려 보내고 머릿속을 하얗게 만드는 것 같았다.
“…….”
오래 머물러 있던 그의 입술이 떨어지자 휑한 공기가 확 느껴져 잠시 몸이 파들 떨렸다.
겨우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드는데, 나른하고 퇴폐적인 얼굴이 코앞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진짜 잘 자.”
입가를 가만히 끌어 올린 채 말한 킬리언이 몸을 일으켰다.
나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끄덕거리기 시작했다.
“잘 자요!”
바보처럼 목소리를 높인 내 반응이 우스운지 그가 빙긋 미소 지었다.
쿵-
“후아아.”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나는 가슴을 꾹 누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꺄악!”
뒤늦게 밀려든 생생한 촉감에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발을 동동 굴렀다.
아까 얼굴에 그의 맨살이 닿은 채 침대에 누워 있을 땐 머릿속에 폭탄이 여기서 펑! 저기서 펑! 연달아 터지는 통에 생각이랄 건 할 수도 없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 채 되는 대로 입을 벌려 말하는 게 전부였다.
심장이 바닥에, 아니 벼랑 끝 어디론가 쑤욱 꺼져 버리는 줄 알았다.
나는 다시 천장을 마주 보고 반듯하게 누우며 이불을 목 끝까지 잡아당겼다.
“나는 잘 수 있어. 잘 수 있다.”
눈만 감으면 기가 막히게 잘생긴 황태자의 얼굴과 그 조각 같은 몸이 떠오르지만 나는 변태가 아니니까. 잘 수 있다, 잘 수 있어…….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잠을 청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전하.”
어렴풋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새벽까지 뒤척이다 잠든 탓에 피로가 눈꺼풀에 진득하게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으음…….”
졸린 눈을 겨우 뜨며 숨을 크게 들이켜는데, 거뭇한 형체가 시야에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