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128)
Chapter 127
폭발로 인한 먼지가 가실 무렵,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흉곽이 크게 부풀었다 되돌아가는 형체가 부연 연기 사이로 설핏 눈에 띄었다.
아직 내려놓지 않은 검에서는 포악한 붉은 오러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너른 어깨 위로 서서히 얼굴이 드러나자, 시뻘건 화염을 닮은 눈으로 굳은 낯을 한 킬리언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레네트.”
익숙한 그의 음성에 온몸이 내려앉듯 긴장이 풀렸다.
그의 팔이 재빨리 나를 바짝 끌어안으며 이마에 입술을 묻고 거칠게 한숨을 내쉬었다.
경련이 일어나 덜덜 떨리는 몸을 연거푸 끌어안는 그의 손길이 나를 어르면서도 절박하게 자신의 몸을 내게 붙였다.
“크큭……. 보기 좋은 연인이로군요, 전하.”
그때 괴기스러울 만큼 몸이 뒤틀린 맥클런이 고개를 비틀어 우리를 올려다보며 입을 달싹였다.
그가 말을 할 때마다 검은 타르 같은 타액이 흘러나와 카펫에 눌어붙었다.
“위대한 제국 위페르의 황태자께서…… 오러를 가지고 계실 줄이야……. 그것이야말로 위반이 아닙니까……. 거기다 그렇게 강력한 힘이라니……. 크크큭.”
관절이 모두 꺾인 채 엎드려 있는 맥클런의 고개가 더욱 끼익거리며 돌아가 무너진 천장과 벽을 바라봤다.
“……그 힘 또한…… 황태자비에게서 나온 것이겠지요. 하나 이를 어쩌지요? 그 아인 실은 내 것인 것을…….”
“닥쳐라, 맥클런.”
킬리언이 으르렁거리듯 일갈하자 맥클런이 쿨럭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낄낄낄, 제 것입니다. 내가 오랫동안 기다려 온……!”
쿵!
맥클런의 말을 채 다 듣기도 전에 킬리언이 나를 감추듯 감싼 팔에 더욱 힘을 실은 채 다른 손으로 검을 내리찍었다.
그러나 검이 바닥에 꽂히기 직전 맥클런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카펫에 남은 진득한 검은 타액만이 맥클런이 저 자리에 고꾸라져 있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알키오.”
검을 움켜쥔 킬리언의 굵은 손에 뼈마디가 하얗게 불거져 나왔다.
“네…… 네! 전하.”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는 알키오가 황급히 대답하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얼굴을 쓸어내렸다.
넋이 나가 있던 병사들도 하젤과 가스파르, 데인의 몸을 휘감은 넝쿨을 잘라 내기 시작했다.
알키오는 킬리언의 칼이 꽂힌 바닥을 내려다보다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한데 죽은 겁니까?”
“아니.”
킬리언이 냉정하게 대답하며 맥클런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봤다.
“……칼을 그렇게 맞고도 살아 있었어. 몸은 그저 기생할 도구일 뿐이라는 거겠지.”
좀비처럼 살아남는 맥클런을 보고 킬리언이 그의 정체를 쉽게 간파해 낸 사실이 놀라워 내 눈이 절로 그를 향해 올라갔다.
킬리언은 상심이 짙은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며 머리칼을 쓸어넘기고 어깨를 다시 끌어안았다.
빠르게 뛰는 그의 심장 소리가 거침없이 귓가에 파고들어 온몸을 저릿하게 울리는 것 같았다.
그도 많이 불안해했던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알키오. 제국 전역에 클라이버 맥클런에 대한 수배령을 지시해.”
나를 가볍게 안아 든 그가 말했다.
“맥클런이 다른 몸에 기생하기 전에 찾아내야 할 거야.”
“맥클런이 다른 사람들을 표적 삼아 몸을 빼앗게 된다면, 얼굴이 달라질 테니까 찾는 일이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을 테죠……?”
내가 그의 옷깃을 잡고 묻자 킬리언이 내 걱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나를 다독였다.
“흑마법은 엄청난 마력을 감당할 수 있어야 가능해. 그러니 그런 몸을 찾지 않는 한 숙주로 삼기는 어려워. 반드시 찾아낼 테니 그대는 휴식부터 취해. 안색이 나빠졌어.”
“얼굴이 이상해요?”
“응. 많이.”
흐으, 살덩이가 툭툭 떨어지는 얼굴을 마주한 데에다 그 역한 냄새를 맡는 곤욕을 견뎌야 해서 그런 걸 텐데.
나는 억울함 반, 걱정 반인 채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맥클런이 가진 현재 그 몸은 더이상 쓸 수가 없을 테니, 맥클런은 반드시 다음 숙주 대상을 찾을 것이다.
다행히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맥클런이 남의 몸을 빌려 살고 있는 걸 킬리언이 빠르게 눈치챘으니 긴장한 마음을 내려놓아도 될 것 같았다.
나는 킬리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온몸에 기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충격에 휩싸인 몸이 서서히 이완되는 것 같았다.
“……레네트?”
나는 킬리언의 음성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스르륵 눈을 감았다.
* * *
“별 이상은 없습니다, 전하. 지금으로서는 한 번에 강한 스트레스를 받아 기력이 조금 쇠하셨던 것으로 사료됩니다. 충분히 자고 나면 일어나실 것입니다.”
황태자비의 주치의가 내린 결론이었다.
예의를 갖춰 인사를 한 주치의가 침실을 빠져나가고 난 후부터 킬리언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잠든 레네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황실 지하 감옥에 수감된 기젤라 부인, 사라진 맥클런, 불의 오러를 사용하여 문과 벽이 무너진 황태자비의 침실.
모두가 기겁할 만한 일이 한 번에 일어난 날이었지만, 감히 누구도 킬리언에게 이 일에 대해 물어볼 용기는 내지 못했다.
특히 오러에 대한 진상조사는 더더욱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그 세력이 더욱 커져 범접하기 어려운 황태자인 데에다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비가 맥클런의 공격을 받아 쓰러졌으니 그 어떤 연유로도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게 모두의 생각이었다.
애석하게도 아돌프는 제외인 채 말이다.
“부르셨습니까.”
아돌프가 그의 집무실로 킬리언을 부른 건 늦은 오후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레네트가 잠들어 있는 킬리언의 침대 주변에는 하젤과 여사제들이 배치돼 있고 침실 복도에는 알키오를 포함한 특수부대원들과 황실 마법부가 보초를 서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킬리언은 황제의 부름에 응할 수 있었다.
“레네트는 좀 어떻지?”
아돌프의 물음에 입 언저리가 굳게 굳어 있던 킬리언이 잠시 아버지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직입니다.”
그가 말을 아낀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아돌프가 아들을 유심히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시늉을 하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
짐짓 할 말이 있다는 식이었다.
킬리언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캐서린이 황실 감옥에 수감됐다지?”
그의 예상대로였다.
아돌프는 마치 이제야 기젤라 부인의 소식을 접한 사람처럼 킬리언에게 묻고 있었다.
아마도 본인이 으름장을 놓으며 내뱉은 말이 있기에 그것을 어떻게 수습할지 몇 시간 동안 고민한 후에 킬리언을 불렀을 것이다.
킬리언은 심상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다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했습니다.”
“흐음……. 물론 죄를 지었다면, 응당 벌을 받아야겠으나. 하나 킬리언.”
“…….”
“세상일이 그토록 유연하지 못한 자세로 나아가서는 안 될 일이지 않겠느냐?”
아돌프의 말에 서늘한 킬리언의 눈빛이 매섭게 내려앉았다.
“오늘 네가 황태자비의 방에 들어가기 위해 쓴 게 오러였다지?”
“…….”
“감히 황실에서, 그것도 황태자가 오러를 썼다니. 내 너에게 그런 가증스러운 능력이 있는 걸 알기는커녕, 그것을 버젓이 남들 앞에서 네가 사용할 줄은 꿈에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야말로 분란을 일으키는 일이었지.”
금지된 오러를 빌미로 기젤라 부인의 형벌에 대한 거래를 제안하는 게 그가 내릴 결론인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나의 아들 킬리언. 내가 그 일을 문제 삼아 너를 문초하지 않았으며 외려 황태자비의 곁을 지키도록 배려해 주었으니 그 은혜를 깊이 새기고 받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아돌프가 대답을 해 보라는 듯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은혜…….”
아버지를 지그시 바라보던 킬리언이 그가 한 말을 곱씹으며 홀연히 미소 지었다.
“그렇지. 은혜. 캐서린이 캐번디시 부인의 마차 사고를 일으킨 데에는 아직 어떤 연유가 있는지 듣지 못하였다. 만일 캐서린이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는지부터 확인하면 될 일이 아니겠느냐.”
데인버그에서 나온 광물에 정신이 쏠려 기젤라 부인을 덜 보긴 하지만, 여전히 그가 가장 아끼는 정부인 모양이었다.
혹은 그녀가 주는 약이 끊길까 염려돼 저러는 걸지도.
킬리언은 차가운 감정이 날카롭게 벼려지는 과정이 어떤 것인지 맹렬히 실감하며 담담히 눈을 감았다 떴다.
“내 너의 오러에 대해 묻지 않으마. 물론 다시 사용하는 일은 없어야겠지. 지하 감옥에 있는 캐서린에 대한 구속수사를 중지하고 원래의 숙소에서 지내게 하되 필요할 때 취조를 하는 것으로 하자꾸나. 가엽고 연약한 여인이다. 또한 누구보다 내 안위만을 생각해 주는 하나뿐인 연인이지. 그러니 킬리언…….”
“죄인 캐서린 하먼 기젤라와 저를 놓고, 거래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의도적으로 선선한 미소를 지은 채 차분히 대답한 킬리언이 아돌프이 눈을 고요히 바라봤다.
“……네가 내 명을 거역하겠다는 것이냐?”
“죄인을 처벌하겠다는 겁니다.”
“킬리언!”
대번에 격노에 휩싸인 아돌프가 고함을 지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너에게 많은 권한을 위임했다는 것으로 네가 나보다 이 황실을 움직일 힘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감히 건방지게……!”
“적어도 본인이 하신 공언을 쉽게 뒤집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요.”
킬리언의 일갈에 아돌프가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그의 눈자위에서 팽팽한 분노가 느껴졌다.
“네가…… 네가 감히 나에게……!”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어 가 봐야겠습니다. 죄인 캐서린에 대한 면담이 필요하시다면 친히 가 보시길 권유드리죠.”
그사이 레네트가 깨어났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아니, 그사이에 깨어나지 않았으면 어떡하지.
언젠가 잠이 들어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던 그날의 기억들이 그의 머릿속을 잠식해 와 그의 멱살을 움켜쥐는 듯 했다.
“내가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킬리언!”
문 앞에 도착하는 찰나 아돌프가 난폭한 어조로 소리쳤다.
움찔한 시종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황제를 한 번 쳐다본 후 킬리언을 올려다봤다.
“감히 황제인 나의 허락 없이 수석정부를 감옥에 넣어 둔 죄. 내 엄히 다스릴 것이다. 또한 마차 사고의 배후가 설령 캐서린일지라도 그녀는 그 모든 형벌에서 제외시킬 것이다. 네가 나의 권위에 도전한 만큼, 캐서린을 끝까지 보호하여 네 기세를 꺾어 놓아 주마!”
아돌프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킬리언이 여상한 눈길로 시종을 일별했다.
문이나 열라는 뜻이었다.
시종이 문고리에 손을 얹자 아돌프의 얼굴이 더욱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네가 황태자비를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캐서린을 능멸한 일들을 모를 줄 아느냐? 너뿐만 아니라 너의 비 또한 황실 귀족이 보는 앞에서 본보기를 보여 줄 것이다. 누구도 나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은 있을 수 없어. 내 반드시……!”
격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고함을 내지르던 아돌프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어느새 방향을 변경해 다가온 킬리언이 자신에게 칼을 겨누고 있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아돌프가 충격에 휩싸인 눈으로 퍼뜩 킬리언을 올려다봤다.
“위협은. 실행이 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아버지. 이렇게.”
“!”
어느새 파르라니 빛나는 날카로운 검이 아돌프의 턱밑까지 들어와 살갗에 닿았다.
“지금껏 당신이 그 자리를 무사히 보존할 수 있는 이유가 뭐였을……까.”
잠시 말을 멈춘 킬리언이 손목을 살짝 비틀어 검날의 반향을 더 깊숙이 댔다.
“나의 비가 놀라선 안 되거든.”
차갑게 들끓어 오르는 붉은 눈동자에 화염과 같은 증오가 넘실댔다.
아들을 바라보는 아돌프의 시선에 경련이 일 듯 정처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니 기도나 해.”
무자비한 어조로 이를 짓씹은 채 경고한 킬리언이 칼끝을 아돌프의 목에 지그시 눌렀다.
“당신을 살려준 나의 레네트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