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129)
Chapter 128
자칫 움직였다간 목에 칼이 들어올 것만 같았다.
아돌프는 숨조차 크게 내쉬지 못한 채 킬리언을 쳐다봤다.
섬광처럼 번뜩이는 붉은 눈동자가 첨예하게 날이 서 있었다.
명백히 자신을 겨누고 있는 눈빛이었다.
“…….”
입 언저리가 단단히 굳은 아돌프가 킬리언을 보며 떨리는 손을 감췄다.
지내 온 세월이 갑절이었다. 감히 아들 따위에게 지겠는가.
슬그머니 아래로 손을 뻗는 찰나 킬리언의 음성이 들려왔다.
“쥐세요, 아버지.”
자신이 하려던 행동이 무엇인지 쉽게 간파당한 것일까.
쭈뼛 멈춘 아돌프에게서 킬리언의 검이 스스럼없이 물러났다.
더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검을 마저 거두는 킬리언의 행동에 동상처럼 굳은 팔을 어쩌지 못한 아돌프가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느긋하게 책상을 짚고 몸을 숙인 킬리언이 그와 눈을 마주쳐 왔다.
“그 손으로 채찍도 쥐셨고.”
“…….”
“죄 없는 내 어미를 몰아내기도 했으니.”
“…….”
“이런 날도 충분히 예상하셨을 겁니다. 쥐세요, 아버지. 당장.”
책상 아래 검이 있을 자리를 눈짓한 킬리언의 적안이 그를 종용하듯 냉혹하게 응시했다.
“아내를 멸시하고 아들을 학대한 황제가…….”
“…….”
“미친 까닭에 검을 휘둘렀다네.”
“…….”
“하여, 황태자는 하는 수 없이,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아버지의 심장에 칼을 꽂았다더라…….”
“……!”
삽시간에 얼어붙은 아돌프가 검을 쥐지 못한 채 아들을 바라봤다.
“그럼 레네트도 충분히 이해해 줄 테니.”
새벽빛에 반짝이는 서리처럼 아름다운 아들의 미소가 그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눈길을 피하지 못하고 혼이 나가 킬리언을 보던 아돌프가 자신도 모르게 눈꺼풀을 주춤 떨다 재빨리 수습하듯 부릅떴다.
“노먼!”
곧바로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을 내지르며 근위대장의 이름을 불렀다.
“노먼 비에른!”
그러나 벌컥 열려야 할 문이 열리지 않았다.
킬리언을 노려본 채 소리를 지르던 아돌프가 홱 문을 바라봤다.
문 앞에 선 두 명의 시종들만 조용히 그를 보고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살얼음판 위를 걷듯 숨죽인 채 서 있던 시종 하나가 아돌프의 힐난에 입을 열었다.
“……현재 캐서린 하먼 기젤라와 연관된 자들은 모두 감옥이 수감돼 있습니다, 폐하.”
일시에 맥이 탁 풀리게 만드는 대답이었다.
동시에 아돌프의 얼굴에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 어렸다.
근위대장이 잡혀간 사실이 자신에게 보고됐었던가……?
“그렇다면 노먼이……!”
응당 들려와야 했을 소식이 자신을 건너뛰었음을 질타하려다 불현듯 더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지?
멈칫한 아돌프가 저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긴 사람처럼 시종 너머의 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자신의 귀에 황실에 일어난 일들이 더이상 들려오지 않게 된 게…… 언제부터였지.
“의, 의전장관 레노 맥밀런을…….”
“레노 맥밀런. 노먼 비에른. 그 밖에도 만나고 싶은 자들이 있으실 텐데.”
차분한 어조로 대꾸하는 킬리언의 반응에 아돌프가 서서히 눈길을 돌려 아들을 바라봤다.
“편하게 한 번에 보실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뒀습니다.”
자신의 수족이 돼 주던 이들이 모두 수감됐다는 뜻이었다.
아돌프는 세상의 종말을 눈앞에 맞닥뜨린 사람처럼 말문이 막힌 얼굴로 킬리언을 보고 있었다.
“네놈 짓이구나.”
혼란은 불시에 파고들어 그를 공황 상태에 밀어 넣었다.
자신의 감시하에 놓여 있다 믿었던 모든 게 제자리를 이탈했다.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 그의 통제가 제힘을 잃었다는 사실에 아돌프는 본능적으로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이런 일이 언제부터, 대체 얼마나 있어 왔던 것인가.
“네가…….”
흰자위가 시뻘겋게 충혈된 아돌프가 이를 바득 갈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네가 나를 속이다니……!”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던 아들이었다.
황실에서 태어난 숱한 아들들 중 유일하게 모든 학대를 견디고 자신에게 조용히 복종하던 녀석이었다.
체벌을 하기 위해 가죽 벨트를 휘두르면 묵묵히 그것을 감내했고, 제 어머니가 성에서 쫓겨나는 순간에도 반항 한 번 일으킨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킬리언 하나만 감시하는 게 수월하겠다 싶어 킬리언을 제외한 다른 황자들을 모두 강등시키거나 허드렛일을 하는 곳으로 내보냈다.
황실에 분란을 일으킬 여지를 모두 자르고 짓밟았다.
“…….”
아돌프는 떨리는 눈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이 손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행한 모든 일들이, 결국 킬리언의 길을 닦아 주는 일이었구나.
이 손에 얼마나 많은 피를 묻혀 왔던가.
손쉽게 모든 걸 다 얻을 때까지 몸을 바짝 낮춘 채 기다리는 맹수처럼 자신을 지켜봐 온 아들의 치밀함을, 조금도 의심하지 못한 채 말이다.
“이러고도 네가 무사할 것 같더냐.”
아돌프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힘겹게 또박또박 말을 꺼냈다.
킬리언은 태연한 눈빛으로 아돌프를 내려다보며 기울였던 몸을 일으켰다.
“그들을 사냥감으로 만나게 했던 것보다 이 편이 훨씬 더 낫지 않을까요?”
사냥감?
킬리언이 한 말에 의심을 하기도 전에 새끼 여우들을 잡아 죽인 날 밤, 자신과 기젤라 부인에게 심상한 미소를 지은 채 사냥에 대해 말하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만하면 꽤나 자비를 베푼 셈이라…….”
“…….”
“신도 저를 나무랄 순 없을 겁니다.”
“킬리언!”
킬리언이 자신에게 등을 보이며 걸어가자, 아돌프는 자신에게서 한 줌의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의지를 실감하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검을 내려다봤다.
손가락만 움직이면 움켜쥘 수 있는 검이 지척에 닿아 있었다.
그러나 검을 빼 드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조금 전 보았던 킬리언의 반응 속도를 놓고 보자면 곧바로 자신의 심장에 검날이 박혀 들 게 자명했다.
더군다나 킬리언이 오러를 썼다고 했다.
수백 년간 금지해 온 오러를 황실에서 썼다는 것은 이제 더이상 거리낄 게 없다는 뜻이었다.
그때 문 앞에 선 킬리언이 문고리를 쥐고 양쪽에 서 있는 시종들에게 눈길을 던지는 게 보였다.
“이제부터 그대들의 임무가 막중해지겠군.”
임무……? 저의를 파악하기 어려운 말에 아돌프의 눈매가 일순 가늘어졌다.
그런 아돌프를 의식하듯 킬리언이 천천히 고개를 비틀어 이쪽을 돌아보는 시늉을 했다.
“앞으로 이자들이 아버지의 눈과 귀가 되어 드릴 겁니다.”
언뜻 그의 입가에 스친 미소가 사늘했다.
“각별히 잘 모시도록.”
“알겠습니다, 전하.”
“!”
킬리언이 한 말의 의도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순간 그가 유유히 빠져나갔다.
지금껏 자신의 수족이 되어 온 자들이 모두 감옥에 갇혔다는 것.
그들의 몰락이 곧 자신의 고립이 되리란 것.
아돌프의 탁한 눈동자에 비친 육중한 양 문이 매섭게 닫혔다.
“전하.”
복도를 서성이던 바른이 킬리언에게 급히 다가왔다.
“마법관리부 소속 여섯 명이 사라졌습니다. 알아본바, 맥클런이 따로 관리해 왔던 마법사들이라고 합니다.”
황실 마법관리부의 수장이었던 맥클런이 그 안에서도 소수만 특별히 관리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사라진 여섯 명은 맥클런이 빼돌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마법관리부 안에서도 마력이 강하게 발현된 자들인 건가?”
“맥클런에 비하면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나, 부원들 중에는 강한 편이라 볼 수 있는 자들입니다.”
오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법 발달을 저해해 온 제국이었다.
황실 마법관리부 소속이라 하더라도 마력이 월등히 대단한 자들은 극히 드물었다.
맥클런이 장기간 장관을 역임할 수 있는 이유도 그만한 마력을 가진 후임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맥클런은 자신의 후임을 만들기 위해 마력이 강해질 만한 자들을 추려 훈련을 시킨 것이라 둘러댔겠지만, 속내는 따로 있었을 것이다.
“……대체할 몸이 필요한 거였군.”
킬리언이 무겁게 내려앉은 눈빛으로 바른을 보며 말했다.
바른이 그의 짐작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죽은 자의 몸을 흑마법으로 유지해 왔던 터라, 황태자비 전하를 살해하기 위해 흑마법을 쓴 게 치명타가 됐을 겁니다. 사람을 해치는 흑마법은 그것을 사용한 자의 몸을 대가로 치러야 하니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겠지요.”
마지막을 맥클런을 마주했던 장면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차마 눈을 뜨고 보기 거북스러울 만큼 처참한 몰골을 한 맥클런이 검은 진액을 쏟아 내며 칼을 맞은 채 컥컥대던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더군다나 텔레포트를 쓸 때마다 자신의 뜻과 달리 찢기듯 흐릿해지던 형체도 모두를 당혹스럽게 만들기 충분했었다.
“그래 보였지.”
기분을 이상하게 만드는 맥클런의 괴기한 모습을 기억 저편으로 밀어내며 킬리언이 껄끄럽게 대꾸했다.
“이제 그 몸은 더이상 사용이 어려울 것이니, 새로운 몸을 찾고자 할 것입니다.”
“데리고 간 여섯 명으로는 부족하다?”
“며칠은 가능하겠으나, 오래는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맥클런의 흑마법이 그토록 강하단 말인가.
젊은 마법사들의 몸들로는 그자의 마력을 견디지 못할 만큼?
자신이 측정할 수 없는 맥클런의 힘을 어디까지 상상해야 하는 것인지 답답해진 킬리언이 크라바트를 느슨하게 만들며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럼에도 레네트를 원한다는 건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취약점이 있다는 뜻이야.”
그렇게까지 강한 힘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레네트를 찾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는 것은 그가 아직 원하는 바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레네트에 대한 보호를 더욱 강화해야 했다.
“레네트는.”
“아직 깨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침실로 향하는 킬리언의 발걸음이 주춤 멈추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그녀를 보기 위해 움직였다.
* * *
“장관님은?”
문을 닫고 나온 동료의 모습에 맥클런의 제자 마이어 체보리드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맥클런의 상태에 대해 물었다.
그와 같이 맥클런의 제자인 젠슨 스트랜드가 닫힌 문을 돌아보고는 마이어에게 고개를 비틀었다.
“쉬고 계신다.”
“회복되실까?”
“그럴 거다.”
젠슨의 말에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마이어가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말투가 왜 그래?”
지적을 받은 젠슨이 마이어를 지그시 쳐다보다 곧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피곤해서 그랬어. 오늘은 내가 여기에 있을 테니 너는 내려가서 동료들과 좀 쉬거…… 쉬어. 여긴 교대로 보초 서면 되니까.”
“어, 그래 그럼.”
마이어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가는 발걸음을 따라 나무판자가 삐걱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
젠슨은 고개를 기울인 채 멀거니 허공을 보다 소파에 기대앉아 자신의 소매를 걷었다.
“쯧. 그날까지 몇 번 갈아치우게 생겼군.”
갈아 끼운 새 몸이 자신의 마력의 압을 견디지 못하고 어느새 실핏줄을 터뜨리고 있었다.
* * *
“으음…….”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야트막한 빛 무덤이 확 번지는 듯하더니 짙은 푸른빛 캐노피가 살랑이며 눈에 들어왔다.
“케켁! 저…… 전하?”
부스스 몸을 일으켜 눈을 비비는데 저편에서 물을 마시던 하젤이 유령을 본 것처럼 사레들려 캑캑거렸다.
“괜찮아요?”
내가 침대에서 빠져나와 슬리퍼에 발을 꿰려 하려 하자 하젤이 빠르게 달려와 나를 저지했다.
“그, 그대로 계세요!”
“왜요? 나도 목마른…….”
내 말을 듣기도 전에 하젤이 튕겨 나가듯 침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전하께서 깨어나셨어요!”
누가 들으면 내가 오래 자다 깨어난 줄 알 정도의 외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