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38)
Chapter 38
그렇기엔 너무 이 제국에 너무 깊숙이 발을 디딘 것 같은데.
나는 저만치에 보이는 소파를 쳐다봤다.
킬리언은 내게 자신의 침대를 양보하고 매일같이 저 불편한 소파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는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될 내 보호자가 되어 모두가 죽여야 한다는 나를 지켜 주고, 내게 얽힌 신탁과 존재의 비밀을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또 내게는 이리나 스콧이라는 엄마가 생겼고, 만날 수 있으리라 예상조차 해 본 적 없던 바른 부자를 알게 됐다.
어디 그뿐인가, 바른 백작은 기젤라 부인의 표적이 될 뻔한 이리나를 자신의 저택에서 보호해 주고, 나를 인간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신력을 행사한 사누아 넬라스마저 돌보고 있었다.
나는 파비앙 넬라스가 지목한 신탁 속 아홉 번째 아이가 됐고, 더 이상 깊숙이 관여할 수 없을 만큼 이 제국에 나의 모든 게 관련돼 있었다.
도망…….
도망을 어떻게 가지.
킬리언은 제국에 대한 반역자로 몰릴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고양이인 나를 살려 놓았고, 바른 부자는 킬리언과 주종관계를 맺어 사활을 함께할 것을 맹세했다.
파비앙 넬라스는 목숨을 잃고 후손들의 몰락을 예견하면서까지 신탁의 일부를 찢고 철저히 감춰 고양이가 대를 이어 살아남을 수 있게 했고, 사누아는 현재 자신의 능력을 꺼내 안정적인 신력을 만들기 위해 훈련하고 있었다.
이리나는 제국의 미래를 알고 있으면서도 과거 시점으로 돌아온 날부터 제국 밖으로 나가는 도망을 꾀하기보단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 온 성을 뒤지고 있었다.
누구도 나를 버리지 않았고, 나를 도와주지 않은 사람은 그중 누구도 없었다.
어쩌면 각자의 사활을 건 도움을 받고도 나 혼자 살겠다고 인간이 되자마자 도망치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인간 말종들이나 하는 짓이야.
모두가 관련된 이 신탁을 밝히고 도망가도 늦지 않을 것이다.
“피유우.”
나는 긴 한숨을 발끝까지 밀어내듯 내쉬며 내가 품었던 도주 계획을 떨쳐 냈다.
일단 찢겨 나간 신탁을 찾아내고, 진실을 밝히자.
그리고 그 안에서 킬리언이 흑마법약에 중독되지 않은 채로 황제에 즉위하면 되는 거야.
나는 다시 앞발을 뻗어 턱을 괴며 수정한 내 계획을 되뇌었다.
폭신한 침대에 몸을 뉘고 이불 속에 들어가 생각에 잠기니 다시금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 *
굉음이 울려 퍼졌다.
온몸이 시커먼 흑사자는 르바르 대륙의 헬크렌에서 조공한 것이라 했다.
거대한 잎사귀 사이에서 용맹한 위용을 드러낸 흑사자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유리창을 뒤흔들 것처럼 울부짖다 사육사들의 채찍질에 서서히 몸을 웅크러뜨렸다.
“굉장하구나.”
진귀한 흑사자를 그의 초원에 넣게 된 아돌프 황제가 기꺼워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킬리언은 그런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채찍질에 괴로워하며 고개를 뒤흔드는 흑사자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제 리탈루스 초원으로 데려가도록 해.”
“네, 전하!”
킬리언의 명령에 사육사들이 채찍질을 멈추고 철로 만들어진 우리 안에 사자를 집어넣어 옮기기 시작했다.
찻잔을 내려놓는 아돌프 황제가 킬리언에게 넌지시 물었다.
“채찍 맞는 사자가 불쌍하더냐.”
황금으로 장식된 의자에 앉는 아버지가 그의 반응을 면밀히 살피려는 게 느껴졌다.
킬리언은 태연히 철창 안에 갇혀 끌려 나가는 흑사자를 일별한 후 아버지를 응시했다.
“시끄러운 게 싫었을 뿐입니다.”
“폐하. 의전장관 레노 맥밀런 인사드립니다.”
킬리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의전장관 레노 맥밀런이 온실에 들어와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그는 급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킬리언을 보고는 곧바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황태자 전하께 인사 올립니다.”
아돌프 황제가 가까이 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닥이자 레노 맥밀런이 큰 보폭으로 다가와 황제에게 조용히 무어라 속삭였다.
아버지의 눈매가 가늘어지나 싶더니 킬리언을 쳐다봤다.
“마법사들이 사방에 돌아다니고 있다지.”
사누아 넬라스를 찾기 위해 마법사들이 전역을 돌아다녔던 일이 황제의 귀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마법사 듀흐센 백작을 황궁에 들인 킬리언이 배후에 있는지를 의심하는 아버지의 눈빛을 보며 킬리언은 느긋하게 빙긋 입가를 끌어 올렸다.
“제가 시켰습니다.”
레노 맥밀런이 주춤하며 자신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마법사들을 경계한 황가가 있고 황가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모함한 귀족들이 있을 것이다.
의식적으로 마법사들을 감시하는 자들이 있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다니더라도 금방 꼬리를 밟히고 말 테니 차라리 숨기지 않고 돌아다니라 지시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들킨다 한들, 그것이 아주 손해는 아니었다.
“…….”
마법사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 인물을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은가.
마법사를 경계해야 하는 세력에 놓인 인물 중 하나가 레노 맥밀런이며, 그는 누구보다 먼저 아버지에게 바깥의 소식을 전하는 인물이라는 걸 알았으니 오히려 이득이었다.
“제가 약초 하나가 필요하다 하였습니다. 그걸 먹으면 젊음을 유지한 채 좋은 체력을 길게 가져갈 수 있다고 하여, 아바마마께 드리고자 했습니다.”
킬리언은 흔연히 대꾸하며 차를 마셨다.
“설마, 그런 게 있단 말이냐?”
“저도 책으로만 봤던 것인데, 듀흐센 백작이 이곳에 오도록 허락해 주신 아바마마께 어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른다 하여, 제가 혹 찾아올 수 있는지 명을 내려 보았는데. 아는 마법사를 모두 동원한 모양이군요.”
“하하하. 듀흐센 백작이 모두를 동원하여 찾는다라. 그래, 저도 그렇게라도 해야 이 제국에 쓰임이 있으리란 걸 아는 게지.”
“마, 맞습니다. 폐하. 그런 연유가 있었다니. 하하하하!”
아돌프 황제가 흡족한 웃음을 터뜨리자 레노 맥밀런이 그를 따라 뒤늦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박수까지 쳐 댔다.
킬리언은 레노 맥밀런을 주시하다 불쑥 떠오른 생각을 꺼내듯 입을 열었다.
“아, 근위대장. 그 뒤로 그 일은 어떻게 됐지.”
근방에 서 있던 근위대장 노먼 비에른이 서둘러 다가왔다.
“무슨 일 말씀이십니까, 전하.”
“황궁에 강력한 마력이 감지되어 황궁을 샅샅이 살펴야 한다 하지 않았나.”
“송구스럽게도 찾지 못했습니다, 전하.”
킬리언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관리부가 잘못된 판단을 내린 건가.”
“그 사안에 대한 경질은 어떻게 됐지, 노먼? 그러고 보니 그 뒤로 보고를 안 하지 않았느냐?”
불현듯 아돌프 황제가 인상을 찌푸리며 근위대장을 올려다봤다.
근위대장 노먼 비에른이 레노 맥밀런과 눈빛을 주고받으며 표정을 얼른 다잡았다.
“소, 송구합니다, 폐하! 충분한 논의 끝에 보고를 드리려 하였는데…….”
“네가 논의라 할 게 뭐가 있지? 내가 너에게 생각이란 걸 허용한 적이 있었나?”
“폐하! 제 발언이 경솔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속히 경질하여 보고 올리겠나이다.”
아돌프 황제의 날 선 질문에 노먼 비에른이 마른침을 삼키며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성안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발밑에 두고 감시해야 하는 아버지의 성미를 건드리는 일이리라.
“자리로 돌아가라. 노먼.”
“예, 폐하.”
근위대장이 굳은 안색을 억지로 지우며 제자리로 돌아가 섰다.
“폐하! 새로운 꽃이 들어왔군요! 그런데 그 흑사자는 어디에 있나요?”
온실 깊숙이 들어온 기젤라 부인이 무거운 분위기를 깨뜨리며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흑사자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자연스레 아돌프 황제의 곁의 빈 의자에 착석했다.
“초원으로 보냈으니 조만간 시간 내 찾아가 보도록 해. 가면무도회 준비는 어떻지?”
“열심히 준비하고 있답니다. 황후 폐하께서 계셨다면 이 일을 아주 훌륭히 해 주셨을 텐데요, 흐음.”
“정사는 뒷전이고 본인의 요양이 급한 여자이니 더는 입에 담을 필요도 없다.”
“아이참, 그런 냉정한 말씀을……. 그럼 제가 무서워져요, 폐하.”
아돌프 황제의 팔을 매만졌다 뗀 그녀가 킬리언을 쳐다봤다.
“전하께서도 한 달 뒤에 있을 가면무도회가 기대되시나요?”
킬리언은 어머니를 입에 담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여유롭게 미소를 머금었다.
“기대가 큽니다, 기젤라 부인.”
그가 호의적으로 대답을 건네는 것처럼 느껴진 기젤라 부인은 드디어 제 뜻대로 되는 건가 싶어 두 눈을 반짝이며 덩달아 웃기 시작했다.
킬리언은 잠자코 차를 마시며 찻잔 너머 레노 맥밀런, 기젤라 부인, 그리고 노먼 비에른을 상기했다.
처음엔 그냥 죽일 생각이었는데.
그가 황제에 즉위하는 그날.
그러나 마음이 바뀌었다.
“…….”
그날을 상상하면 비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지난 밤처럼 생생하게 구현되곤 했다.
뜨뜻한 핏방울이 얼굴을 적시고 그것을 뿜어내는 인간들과 형체를 잃고 이지러진 나머지들의 모습이 입체적으로 말이다.
킬리언은 찻잔을 내려놓고 찬찬히 제 입가를 매만졌다.
“…….”
마음을 바꿨다.
단박에 죽이기엔 이 고까운 마음이 가시지 않을 것 같았다.
* * *
“자고 있네.”
킬리언은 침실로 돌아와 잠들어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뭐라도 먹고 자는 게 좋겠는데.
그는 털썩 침대에 걸터앉았다.
“일어날까,”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제 곧 눈을 떠 보일,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가 자신을 향할 것을 기대했다.
황금빛 태양 아래 짙은 녹음이 드리워진 눈동자는 태어나 본 적 없는 신비한 색의 조화를 이룬 것이었다.
피로로 점철된 이 성에서 유일하게 생기 있는 색을 가지고 있었다.
“…….”
킬리언은 몇 차례 그녀를 더 부르다 망설이며 손을 뻗었다.
“잠깐 일어나서 밥 먹고…….”
그는 부드럽게 그녀를 흔들다 불현듯 얼어붙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잠든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아닌 고양이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깨워도 눈을 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