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39)
Chapter 39
“갑자기 몸에 변화가 생겨 그 후유증이 남은 것 같습니다. 신력을 보낸 쪽도, 받은 쪽도 채 준비가 되기 전이었으니 말입니다.”
근심 어린 낯빛을 띤 바른이 말했다.
“전하. 여기에선 간호가 불가합니다.”
바른은 당장 이 침실을 벗어날 수 없는 고양이의 현실을 말하며, 킬리언을 쳐다봤다.
텔레포트로 황태자의 침실에 오자마자 바른이 마주하게 된 건 마치 사고가 정지된 사람처럼 굳어 있는 킬리언이었다.
지금껏 황태자는 바른에게 마치 다 자란 성인처럼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고양이가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해 당황하여 그대로 얼어 버린 모습은 해리드와 얼마 차이 나지 않는 열아홉 나이 그대로의 모습 같았다.
“전하.”
바른이 한 번 더 황태자를 불렀다.
고양이의 등에 손을 얹은 채 앉아 있던 킬리언이 고개를 들어 바른을 올려다봤다.
“아프진 않다는 게. 확실한 건가.”
통증 없이 잠든 게 확실한 건지 묻자 바른이 확신하기 어려워하면서도 입을 열었다.
“그럴 겁니다.”
“마력으로 알 수 있는 문제였나.”
“물론 제힘으론 알 수 없으나. 신력은 사람을 해하지 않는다는 걸, 전하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그의 대답에 킬리언이 다시 입을 다문 채 고양이를 바라봤다.
얼음장처럼 느껴지는 그녀의 몸에 조심스레 제 온기를 더해 보지만 냉기가 가실 줄 몰랐다.
“일단. 사누아 넬라스와 다시 만나게 하심이 어떻겠습니까.”
바른이 조심스레 물으며 그의 안색을 살폈다.
텅 빈 붉은 눈동자로 고양이를 내려다보는 킬리언의 얼굴은 빛을 집어삼킨 어둠처럼 고요해 보였다.
매사 자신만만해 보이던 그가 아니었던가.
치밀한 계산하에 추진력 넘치게 모든 일을 진행해 오던 그가 예기치 못한 벽을 만난 것인지 말을 잃어버렸다.
“제가 곧 마차를 끌고 와 모셔 가겠습니다. 지금은 밤중이니, 날이 밝는 대로…….”
“내가 가지.”
텔레포트는 마력을 가진 본인만 쓸 수 있기에 바른이 곧 마차를 가져오겠다 말하자, 킬리언이 고양이의 보송보송한 솜털 속 차디찬 몸을 상기하며 입을 달싹였다.
의외의 대답에 놀란 바른이 멈칫하며 그를 쳐다봤다.
고양이는 고통 없이 깊게 잠든 것뿐이었다.
신력은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이 없으니, 고통 또한 느끼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구태여 이 밤중에 마차를 끌고 움직이는 모습을 황궁에 보여 경계를 살 필요는 없었다.
황태자가 이를 모를 리 있을까.
그러나 바른이 윙스톤에서 마차를 출발해 이곳의 고양이를 데려가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건 빤했다.
황태자는 그걸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마법관리부에서 마력을 감지하기 전에 백작은 돌아가.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킬리언이 피로한 낯빛을 띤 가운데에서도 포장된 상자를 바른에게 건넸다.
“이 안에 든 걸 먹은 건 난데, 레네트가 깨어나지 않아. 우리가 짐작한 바로는 이걸 준 자의 음식들을 먹고 나면 악몽을 꾼다는 건데.”
“!”
바른이 납득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킬리언의 손에서 상자를 받았다.
“이 음식 안에 든 게 뭔지 알아내. 사람이 먹는 음식이 아니라, 다른 게 들어 있는 것 같으니.”
자신이 그녀의 음식을 먹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만류해 온 레네트를 떠올린 킬리언이 말했다.
“물론 짐작일 뿐이야. 그대라면 빨리 구분해 낼 수 있겠지.”
킬리언이 말하자 바른이 자못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채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자를 들고 물러섰다.
악몽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이 안에 들었다고 했다.
그가 아는 한 그런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건 흑마법뿐이었다.
상자를 쥔 바른의 입술이 바짝 마르는 듯했다.
“알겠습니다, 전하.”
“나도 지금 출발하겠다.”
고양이를 조심스레 품에 안은 킬리언이 침실을 빠져나갔다.
바른의 모습도 삽시간에 공중에서 사라졌다.
* * *
살아 있는 모든 게, 그의 곁에 있던 모두가 자꾸만 떠나거나 멀어진다.
누구와도 가까이 지내선 안 된다는 아버지의 말씀처럼.
감히 꿔선 안 될 꿈을 꾼 게 문제일까.
함께 잠드는 밤이 실은 저를 지켜 주는 일이라 머릿속에 새긴 게 잘못일까.
생각을 품는 순간 그녀가 아팠다.
그의 과오일지도 몰랐다.
누군가를 마음에 담으면 상대방은 반드시 그를 떠났다.
자의든 타의든, 그의 곁에 머물지 못했다.
생각하지 말걸.
의미 따위 부여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나선형의 계단을 내려가는 킬리언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붉게 물든 눈동자에 악이 뻗치듯 불꽃이 일었다.
“……눈만 떠.”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눈으로 마주해야 안심할 수 있기에 그는 큰 보폭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아침까지 기다릴 순 없었다.
“…….”
그는 수많은 시간은 오직 기다림으로 채워 왔다.
이복형제들 사이에서 완벽한 황태자가 되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숨죽였고.
힘을 잃은 어머니를 다시 권좌에 앉히기 위해 억겁의 시간을 견뎌 냈다.
그뿐인가. 시시각각 다른 형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감시하며 경계와 시험을 건네는 아버지를 맞서야만 했다.
더 얼마나 무얼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한단 말인가.
왜 자신의 삶은 이토록 험난한 인내로 점철돼야 한단 말인가.
고작 사람 한 명.
사람이야 얼마든지 잃어도 얻을 수 있으리라던 그의 생각이 단박에 무너지는 찰나였다.
몇 시간 뒤에 멀쩡하게 돌아다니며 그에게 언제 아팠냐는 듯 굴지 모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마냥 기다리는 게 그에겐 더 곤욕이었다.
“전하?”
계단을 벗어나 그랜드홀에 들어선 찰나 기젤라 부인의 목소리가 킬리언의 발목을 붙잡았다.
우뚝 멈춰 선 킬리언의 눈빛이 고아하게 얼어붙었다.
“늦은 밤인데 어딜 가시나 봐요.”
기젤라 부인이 아돌프 황제의 팔에 낀 팔짱을 풀며 반갑게 알은체를 했다.
그녀와 함께 밤 산책을 마치고 유유히 걸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킬리언은 품 안의 고양이를 의식하며 표정을 담담히 굳혔다.
“나가는 길인가 보군.”
“크라우드 타운에 가려고 합니다. 일전에 그곳은 밤에도 즐길 거리가 많다 들어 둘러보고 올 생각입니다.”
“그래, 너도 학교나 성에 틀어박혀 있기보단 바깥의 즐거움에도 슬슬 눈을 뜰 때가 됐지. 그게 세상을 알아 가는 거다.”
아돌프 황제가 다가와 킬리언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캐서린이 네 어머니의 침실을 아주 아름답게 꾸며 놓은 걸 보고 나오는 길이다. 엘리제의 건강을 위해 캐서린이 언제나 노력해 준다는 걸 너도 알아주면 좋겠구나.”
어머니가 궁전에서 주로 기거하는 곳은 본성이 아닌 궁전 남쪽의 아마빌레 성이었다. 그곳엔 엘리제 황후의 몸에 좋은 식물들로 정원을 꾸며 놓고 편히 쉬게 하는 게 주목적이었다.
그녀가 요양차 테네사에 간 사이 기젤라 부인이 어머니의 침실을 꾸며 놓았다는 사실에 킬리언은 사뭇 날카로워진 기색을 아름다운 미소로 덮으며 캐서린을 바라봤다.
“훌륭한 일을 하셨군요.”
“전하께서도 기쁘게 생각해 주시니 제 기쁨이 더욱 커졌답니다. 혹 전하께선 황후 폐하께서 언제 오실지 알고 계실까요?”
기민한 눈빛으로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를 듣던 기젤라 부인이 싱그럽게 웃으며 킬리언에게 물었다.
그녀를 쳐다보는 킬리언의 입가가 가만히 올라가기만 할 뿐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
잠깐의 침묵이 밤공기처럼 서늘히 그들을 가르고 지났다.
황태자의 대답을 기다리던 기젤라 부인은 자신을 꿰뚫듯 응시하는 킬리언의 시선에 습관처럼 그리고 있던 그림 같은 웃음을 가까스로 부여잡았다.
그의 적안에 깃든 부드러운 눈빛이 황후의 귀가 예정을 묻는 제 심중을 들여다보는 게 아닌가 싶었다.
기젤라 부인은 더욱 해사한 눈웃음을 그리며 제 의도가 들키지 않도록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이틀마다 꽃을 바꿔 꾸며 놓고 황후 폐하를 기다리고 있는데 도통 오시질 않아 걱정이 크답니다. 황후 폐하의 건강이 걱정돼 여쭤본 것이에요.”
“좋아지고 있다 알고 있습니다.”
킬리언이 빙긋 웃으며 대답하자 기젤라 부인은 그제야 마음을 놓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 착각이었나보다.
그래, 킬리언 황태자는 그녀가 보낸 요리는 언제나 남김없이 먹어 치워 빈 접시로 테이블 위에 남아 있다고 사용인이 보고했고, 그녀가 슬쩍 보낸 간식도 군말 없이 잘 받아먹고 있었다.
슬슬 저도 중심이 흔들리고 믿어 온 모든 게 확신할 수 없다고 불안해하겠지.
기젤라 부인은 별안간 찾아든 좋은 기분을 만끽하며 입을 열었다.
“어머나. 너무 좋은 소식이지 않나요?”
그녀가 진심으로 기다린 소식을 듣기라도 한 양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황제를 쳐다봤다.
황제가 그녀를 몹시 대견해하며 킬리언에게 눈짓했다.
“캐서린은 참으로 마음이 따뜻한 여인이 아니지 않으냐. 섣부른 질투로 일을 그르치는 다른 정부들과 달라. 아주 현명한데다 좋은 인품을 타고났지.”
“황후 폐하께 비하려면 한없이 부족한 저이지만, 그분을 닮아 가려 노력하고 있어요. 폐하.”
“하하하. 겸손하기까지 하니 내 너로 인해 웃는 일이 많아지는구나.”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그랜드 홀을 쩌렁쩌렁 울리자 킬리언이 태연히 미소를 짓씹었다.
어머니의 자리를 빼앗고 황후를 대신해 궁내부의 일을 관장하는 그녀가 겸손하다라.
그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어 하는 정부인 줄 알았으나, 레네트로 인해 캐서린 하먼 기젤라가 음식에 무언가 위험한 것을 넣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녀에게 감춰진 진실이 아마 더 있지 않겠는가.
그는 기젤라 부인을 지켜보다 불현듯 시종 중 하나가 들고 있는 자루에 눈길을 던졌다.
자루는 아직 따뜻한 핏물을 머금은 것처럼 묵직해 보였다.
“저건 무엇입니까.”
“음, 저건.”
킬리언의 시선을 본 아돌프 황제가 시종이 든 자루를 힐긋 돌아보며 말했다.
“여우지. 털이 좋아 보여 잡아 왔다. 캐서린이 아마빌레 성 정원에서 아주 깜짝 놀라는 바람에 내 눈에도 저 여우가 들어온 게지.”
“전 고양이인 줄 알고 소리를 지른 거라구요, 폐하!”
기젤라 부인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아돌프 황제의 팔을 붙잡고 얼른 소리쳤다.
고양이인 줄 알았다는 기젤라 부인의 말에 재킷 안에 잠든 고양이를 떠올린 킬리언의 눈매가 잠시 얼더니 다시 핏자국이 흥건히 밴 자루를 내려다봤다.
황제는 기젤라 부인의 허리를 두드리곤 즐거운 어조로 말했다.
“하하. 아기 여우를 보고 고양이라 착각하여 소스라치게 놀라다니. 이 얼마나 겁이 많은 여인이더냐. 하나 차라리 여우라 다행이지? 고양이였다면 그 자리에서 고통스럽게 갈가리 찢어 죽여놓아야 하는 수고만 있을 뿐 가죽은 쓸모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
“하나 다시 생각해 보니 그 간악한 것들이 오래전에 모두 죽어 내 손으로 직접 도살해 보지 못한 건 조금 안타까운 일이긴 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