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57)
Chapter 57
잔뜩 고양된 기분으로 의기양양하게 요구하자 킬리언이 실소를 터뜨렸다. 그러곤 그는 내 양 볼을 감싸 지그시 손바닥으로 눌렀다.
불시에 얼굴이 찌부러져 고개를 뒤로 빼려 했지만 킬리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눈살을 잔뜩 찡그린 채 그를 올려다봤다.
“으, 이게 오에요?(으, 이게 뭐예요?)”
“칭찬.”
이게 칭찬이라고? 내가 찌부러진 볼을 한 채 그를 불만스레 쳐다보자 킬리언이 악랄해 보일 만큼 얄밉게 미소 지었다.
“아, 어우해.(너무해.)”
내가 더욱 입을 앙다물고 올려다보자,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그가 돌연 미간을 살짝 좁혔다.
“레네트.”
“에(네)?”
“다른 사람한테도 이런 적이 있어?”
다른 사람한테? 나는 도리도리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껏 고양이로 지내느라 늘 보호만 받아 온 탓에 칭찬받을 만한 짓을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무슨 수로 칭찬을 요구하겠나. 양심이란 게 있지.
방금 칭찬을 해 달라 뻔뻔하게 말한 건, 폴리아타나 족에 대해 찾고, 킬리언이 고민해 온 게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확인시켜 준 게 내가 주체적으로 해낸 최초의 일 같아 나 기쁨에 푹 젖어 툭 튀어 나간 말일 뿐이었다.
잠자코 내 대답을 기다리던 킬리언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본연의 나른한 빛을 되찾았다.
그는 가볍게 놓았던 내 볼을 한 번 더 꾹 누르며 여상한 눈빛을 띤 채 담담히 말했다.
“다른 이한텐 그런 말은 안 하는 게 좋겠어.”
“에여?(왜요?)”
“보기 안 좋으니까.”
허엉. 아까 그 말이 그렇게 유치했나 싶어 나는 볼이 눌려 닫히지 않는 입 대신 시선을 내려뜨렸다.
곧 내 얼굴을 감쌌던 그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뭐, 여태껏 모두의 도움을 그토록 받아와 놓고 이번 일로 칭찬을 바라는 건 좀 양심 없는 감이 있긴 하지만.
나는 눌렸던 볼을 씰룩거리다 이내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음,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무슨 말인데.”
킬리언이 얼굴을 간질거리는 내 머리칼을 쓸어 넘겨 주며 물었다.
나는 다정한 듯하면서도 내 속을 훤히 보는 듯 차분한 기색을 띤 그의 눈을 보며 부러 허심탄회하게 소리 냈다.
“방금 칭찬해 달라는 말은 듣기에 아주 별로였다. 양심이 시커멓다. 이거 맞죠?”
“아니.”
“그럼요?”
“……그렇게 알게 두는 게 낫겠다 싶어지는데.”
“말씀 안 해 주실 거예요?”
킬리언이 말할 생각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것도 아니면 보기 안 좋다는 건 무슨 뜻이야?
“그러면요?”
“이제 식사하러 가야지.”
대답을 피한 그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내가 무어라 할 틈도 주지 않으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방금…….”
“안 갈 건가. 아까 해리드가 그대는 어젯밤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다고 하던데.”
킬리언이 문을 한 번 돌아보고는 다시 나를 내려다봤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 말씀해 주시지 않았잖아요.
아까 건넨 질문이 마음에 안 든 게 아니면 왜 그런 말을 한 건데요.
그게 뭔지 캐묻고 싶었지만 킬리언은 아무리 물어도 말해 줄 남자가 아니라는 걸 거의 확신할 수 있는지라 나는 깔끔하게 체념하는 쪽을 택했다.
뭐, 중요한 것도 아니니까. 그렇지만 그래도 말을 꺼내 놓고 저렇게 사람 궁금하게 하는 건…….
“뭔가 치사해.”
대신에 나직이 중얼거리며 열린 문을 통해 나갔다.
내 말을 들은 건지 킬리언이 한쪽 눈썹을 휘어 올리며 보폭을 늦추곤 나를 내려다봤다.
“나 들으라고 한 소린가?”
“아니요오? 식사하러 안 가세요?”
나는 얄밉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가 했던 것처럼 응수했다.
킬리언이 조용히 내게 눈길을 고정시킨 채 심술궂게 미소 짓는 게 보였다.
“태어나 처음 들어 보는 소리군. 왜 그렇게 말했는지 설명해야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아아, 배고파. 전하도 그러시죠?”
“레네트? 말 돌리지 말고.”
그가 장난삼아 일부러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게 빤한 말투라, 나는 더욱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밑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요? 여기 음식도 꽤 맛있다고 제가 말씀 드렸었…… 아!”
그를 올려다보며 말하느라 발을 헛디딜 뻔한 내 몸이 휘청거리는 순간이었다.
킬리언이 손이 단박에 날 끌어당겼다.
“……드렸……나요?”
깜짝 놀라 호흡이 사그라지는 찰나 어색한 미소를 띤 채 묻자 킬리언이 안도한 눈빛을 띠며 나를 내려다봤다.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았다고 이렇게까지 심술을 부릴 줄이야.”
“……네?”
“계단 아래로 떨어져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의 나쁜 장난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 아니 그게 아니라 저는 아까…….”
“칭찬해 달라 말하는 네 표정을 다른 사람이 보는 게 싫더라고.”
“!”
허리를 감싼 그의 탄탄한 팔이 의식돼 긴장되는 가운데 기습적으로 파고든 낮은 음성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냥 그랬다고.”
놀라 말문이 막힌 나와 달리 그는 태연하기 이를 데 없는 얼굴로 나를 꿰뚫어 보듯 응시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와 그의 입가에 희미하게 걸린 거만하면서도 우아한 미소가 심장에 해로운 것 같았다.
내가 방금 들은 게…… 뭐지?
그 순간 킬리언이 나를 가볍게 잡아당겨 몸을 바로 세웠다.
“이제 됐나.”
“아…….”
“그만 갈까.”
머릿속이 하얘져 어버버하는 와중에 그가 대수롭지 않게 이유를 말하곤 계단을 눈짓으로 가리키자 얼결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킬리언이 먼저 내려가고 나는 주춤주춤 따라가기 위해 황급히 난간을 짚었다.
뭔데? 무슨 뜻인데요?
당사자가 저토록 별일 아닌 것처럼 말하는데, 내가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될 거 같은데.
킬리언은 ‘아까 나무에 앉아 있던 다람쥐를 본 것 같지?’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말을 건넨 것처럼 느긋하게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휴으.”
아니다. 꺼진 원작도 다시 보자. 잊지 말자, 저 남자는 열아홉 살이긴 해도, 이 원작의 남주야.
성에 마주친 여자마다 그의 지나가는 말에 반해 저절로 몸을 내맡겼던 걸 떠올리면 저리도 쉽게 내뱉은 말에 함부로 심장이 떨려선 안 된다.
내 심장아, 진정해. 아까 그냥, 그게 생각난 것뿐이라잖아. 별 뜻 없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숨을 깊게 들이켰다.
“레네트.”
계단의 중간쯤에 멈춰선 그가 내게 눈길을 던지며 말했다.
“어서 와.”
“네. 지금 갈게요.”
나는 정신을 차리고 싱긋 웃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킬리언은 내가 모든 음식을 다 맛보고 끝까지 먹을 때까지 지켜보고 앉아 있었다. 골고루 먹어, 라는 말까지 하면서 그걸 먹을 때까지 눈으로 압박하는데, 은근히 집요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식사를 마치는 것을 확인한 그가 다이닝 룸에서 나서려 할 때, 사과 하나를 통째로 입에 문 채 사누아가 들어왔다.
사누아는 킬리언을 발견하고는 재빨리 사과를 등 뒤로 감추고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전하.”
바른과 해리드에게 배운 대로 깍듯하게 하는 인사였다.
킬리언이 무표정한 얼굴로 신사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 확신했던 얼굴이, 확연히 다른 위치에 있다는 걸 직감하게 만드는 압도적이면서도 우아한 얼굴로 보였다.
“여긴 왜 온 거야?”
“공부할 시간이잖아.”
그러고 보니 브륀힐트 가에 대해 공부하는 늦은 오후가 다 된 시각이었다. 사누아도 그 때문에 돌아온 것이었다.
사누아는 평소엔 정원에 나가 동물들이나 곤충들을 구경하는 데에 시간을 쓰는 편이었다.
요즘은 사누아가 가만히 서서 하늘을 보고 있으면 시간에 맞춰 날아오는 새도 보였다.
“사누아. 몸은 좀 어때? 아침엔 괜찮았어?”
나는 들고 있던 주스를 내려놓고 지난 밤에 내내 인간인 채로 깨어 있던 게 생각나 사누아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찻잔을 들어 올려 조용히 마시는 킬리언의 시선이 나와 사누아에게 머무는 게 느껴졌다.
사누아가 입 안에 남아 있는 사과를 마저 씹어 삼킨 후 어깨를 으쓱였다.
“응. 난 똑같아. 오늘도 건강해. 됐어? 오늘은 또 왜 그래?”
“내가 어젯밤을 새웠거든. 원래 밤엔 신력을 보내지 않아도 됐던 건데. 혹시 무리가 가진 않았을까 하고 물어본 거야.”
“밤새웠다는 말은 오늘 아침에 들었어. 나는 잘 때나 일어날 때에도 별일 없던데?”
사누아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는 내 앞에 놓인 물컵을 들고 안에 든 물을 꿀꺽꿀꺽 삼키기 시작했다.
내 앞에 놓인 거긴 했지만 주스를 마시느라 손대지 않은 것이었다.
또 정원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낸 건지, 목이 많이 마른 사누아가 결국 내 컵을 깔끔하게 비워 냈다.
“막 괜찮다고 허세 떨지 말고 무슨 문제 있으면 꼭 말해 주는 거다?”
“누가 허세래? 그리고 그렇게 만날 물어볼래? 이제 신력 보내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거기다 사실 계속 보내고 있는 게 아니라, 한 번 보내면 네가 잘 때까지 지속되는 거잖아?”
“그래도 내 입장에선 좀 걱정이야. 그 지속성이 완전히 보장받은 것도 아니고. 나는 그때 네가 쓰러질 뻔한 게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구.”
혹여나 나로 인해 나보다 어린 사누아에게 문제가 생길까 내심 걱정이 된 나는 착잡한 어조로 말하며 그에게 과일이 놓인 접시를 내밀었다.
마른 사누아의 몸이 마차에 거의 실려 가다시피 하던 날, 나 때문인가 싶어 얼마나 신경이 쓰이던지.
지금이야 사누아가 잘 먹고 잘 자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또래보다 작았다.
“이렇게 먹는데 대체 왜 살은 하나도 안 찌는 걸까?”
“신의 축복?”
사누아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자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한쪽 입가를 불만스레 올렸다.
“지금 비웃은 거지?”
“아니, 오해야. 그냥 웃은 건데?”
“참나…….”
사누아가 혀를 차며 테이블 위를 빠르게 훑어봤다.
먹성이 대단해서 금세 배고파하는 편이라 나는 디저트 디쉬에 담긴 애플파이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냥 조심조심하자는 거니까,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마.”
“아직까지 문제없잖아. 그걸로 증명된 거 아냐?”
애플파이를 한 입 먹은 사누아가 대답했다.
나는 매일 그의 컨디션을 물었는데, 처음엔 짜증스럽게 대답하던 사누아도 이제는 익숙해진 건지 대충이라도 다 대답해 줬다.
물론 짜증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었다. 매일 물으면 당연히 성가실 거다. 하지만 나로서는 확인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사누아는 위대한 파비앙 넬라스의 후손이어서인지 모르지만 정말 내게 신력을 보내는 방법을 금방 터득해 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사제 학교에 들어가 정식으로 배운 과정이 아니기에 때문에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 하기에 언제 고양이로 변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다.
걱정만 하느라 현실을 마냥 흘려보낼 순 없기 때문에 나는 되도록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썼다.
“목이 말랐나 보군.”
그때 킬리언이 사누아가 비운 내 물컵을 보며 뜻 모를 눈빛을 띤 채 여상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