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66)
Chapter 66
캐번디시 부인이 흔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딸이 하나 있는데 어젯밤에 아이를 낳았답니다.”
딸이 아이를 낳았다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나는 가면을 쓰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번디시 부인은 역시 기젤라 부인이 표적으로 삼은 여인이 분명했다.
나는 억지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무 좋으시겠어요. 보고 오셨어요?”
“오, 아니요. 아직 보지 못했답니다. 딸아이가 리트번에 살고 있어 오늘 아침에 전보를 받았어요. 내일 보러 갈 예정인데, 벌써부터 기대가 돼요.”
캐번디시 부인이 방금까지 보인 미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가슴 벅찬 웃음을 짓고 있었다.
딸이 손주를 낳아 보러 가는 마음이 얼마나 벅차고 설렜을지 조금 톤이 높아진 부인의 음성에서 느낄 수 있었다.
벼랑 끝으로 밀린 마차가 결국 떨어지고 말았을 때 그녀가 느낀 절망과 두려움이 얼마나 격렬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거기다 자신을 보러 오던 길에 시신조차 찾을 수 없는 곳에 떨어진 어머니의 비보에 딸은 얼마나 많은 죄책감을 느끼며 살았을지.
나는 이 상황에 내가 무얼 할 수 있는지 생각했다.
그런 비극은 알고 있다면 막아야 하는 일이 아닐까.
나는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훑고 손뼉을 쳤다.
“축하드려요. 얼마나 좋으시겠어요. 리트번이라면 거리가 꽤 있겠죠? 제가 데인버그 이외엔 가 본 적이 없어 잘 가늠이 되지 않아요.”
“수도에서 떨어진 곳인데다 공녀께선 데인버그에만 계셨으니 이동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짐작하기 어려울 만도 하지요. 음……. 집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할 예정이에요. 그때 출발하면 오후쯤 도착하게 될 거예요.”
부인이 집에서 내일 점심에 출발한다고?
나는 캐번디시 부인이 한 말을 꼼꼼히 곱씹으며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부인이 마차 사고로 죽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기젤라 부인과 바네사가 엮이지 않아도 되고, 바네사는 엘리제 황후의 시녀로 들어가 기젤라 부인의 나쁜 의도를 눈치채지 못한 채 그녀에게 엘리제의 일정이나 생활을 전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억울하게 죽게 될 캐번디시 부인이나, 엘리제 황후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한 셈이란 걸 깨닫고 괴로워하는 바네사도, 마차 사고를 막으면 미리 없앨 수 있는 일이었다.
결론적으로 이 일을 계기로 훗날 사랑에 빠진 킬리언과 바네사 사이에 일어날 비극적인 사건도 방지할 수 있었다.
“…….”
나는 킬리언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그는 지금 나로 인해 제국이 굳건히 믿어 온 신탁을 부정하고 그것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해야 하지 않을까?
저만치에 서 있는 킬리언이 무도회에 참석한 외국 대사들과 함께 홀을 나가는 게 보였다.
“할 수 있어.”
나는 마음을 다잡고 깊이 심호흡하다, 문득 캐번디시 부인을 비롯한 캐번디시 백작과 바른이 내 뒤를 쳐다보는 게 보였다.
“왜 그러세요?”
의아함에 그들을 보며 서 불현듯 감지된 서늘함에 뒤를 돌아봤다.
“……!”
기젤라 부인과 그녀의 시녀인 귀부인들이 뒤에 서 있었다.
“이름이?”
선명한 장밋빛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내게 한 발 다가오며 상냥하게 물었다.
얼굴을 거의 가리지 않고 눈만 레이스로 가린 그녀는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잔인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 같았다.
바른이 다가와 나를 도와주려 하자, 나는 고개를 저어 보이곤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먼저 입을 열었다.
“레네트 브륀힐트입니다.”
“아, 바른 듀흐센 백작께서 동행인으로 해 놓은 브륀힐트 가의 공녀시군요.”
빨간 입술로 매혹적인 웃음을 그린 기젤라 부인이 퍽 즐겁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주욱 훑었다.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 충분히 알고 있기에 심장이 빠르게 뛰는 기분이 들었다.
“혹시 그 가면을 한 번 벗어 줄 수 있겠어요, 공녀? 내가 알던 사람이랑 닮아서.”
이렇게 갑자기?
이 무도회는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면 가면을 벗길 수 없는 자리라 했었다.
황당한 요구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뇨.”
나는 떨리는 마음을 누르고 대답했다.
기젤라 부인의 입가가 예상이나 한 듯 싱긋 올라갔다.
“그래요?”
기젤라 부인은 곧 주변에 모여든 귀족들을 돌아보며 활짝 웃었다.
“여기에 모이신 귀빈 여러분. 베일에 싸인 브륀힐트 가에 대해 궁금해마지 않는 날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았습니까?”
“…….”
“황실에서 브륀힐트 가를 초청해도 건강상의 이유로 거부. 재무장관께서 힘들게 개정하여 통과시킨 국세징수법도 거부. 저기 계신 육군장관, 원수님을 비롯한 높으신 분들이 어떻게 병력을 보완해 줄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간다고 해도 거부. 하다못해 제가 데인버그의 천상의 커튼 직조 과정을 보고 싶어 초청을 부탁드려도 전부 거부.”
그녀는 마치 즐거운 소식을 전하는 종달새처럼 낭랑한 목소리로 말하며 나를 가리켰다.
찬물을 끼얹은 듯 어깨가 차갑게 내려앉는 게 느껴졌다.
세상에. 이 여잔 확실히 내 예상을 넘어서는 사람이다.
킬리언과 함께 있었던 나를 모를 리 없는 기젤라 부인이 어쩌면 내게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런 식일 줄은 몰랐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은 이렇게 공녀께서 친히 여기까지 걸음을 해 주시다니. 어찌 보면 오늘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영광의 날이라 할 수 있겠군요.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데인버그의 브륀힐트 공녀가 우리를 이렇게 만나 주시다니 말이에요.”
기젤라 부인이 나를 차갑게 쳐다보며 무표정한 눈빛으로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다른 이들이 하나둘 떨떠름하게 치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녀가 내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며 입을 열었다.
“자, 여러분. 우리는 이 레네트 공녀를 성심성의껏 환대해야 합니다. 언제 또다시 볼 줄 모르지 않겠어요? 하여, 오늘 이 레네트 공녀와 함께하는 이 밤을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 내가 공녀에게 감히, 가면을 벗도록 다시 한번 간곡히, 청해 볼까 하는데 다들 어떠세요. 찬성하시나요?”
이 여잔 악마다. 진짜 미친 여자야!
내 가면을 벗기는 일에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고개를 돌려 코앞에서 나를 응시한 그녀의 시퍼런 눈동자가 매섭게 번뜩였다.
“모두가 동의하고 있어요, 공녀. 그렇죠?”
나를 잡아먹을 듯 환히 웃는 빨간 입매가 소름 끼치게 무서웠다.
내게 가면이 없었다면 창백하게 변했을 내 얼굴을 그녀가 똑똑히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저것 봐, 저 여자는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니까?
차라리 가면을 벗고 얼굴을 보여서 이 상황이 끝내 버리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며 또 다른 내 자아가 소리쳤다.
“얼굴 정도는 보여 줄 수 있겠지. 설마 그것도 거부하려고.”
저편에 서 있는 육군장관이라는 사람이 콧수염을 매만지며 넌지시 말했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그 말이 딱이었다.
저 얌생이같이 생긴 인간이 장관이라니!
“맞아요, 얼굴을 보여 서로 인사도 하고 말이죠?”
기젤라 부인의 곁에 서 있던 귀부인들이 그 말씀이 옳다며 선두로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주변에 서 있는 귀족들이 유쾌한 일을 보는 것인 양 박수를 쳐 댔다.
내 어깨를 감싸고 있던 기젤라 부인이 이번엔 양손으로 내 어깨를 가만히 쥐며 나를 그녀의 앞에 세웠다.
“…….”
우레와 같이 쏟아지는 박수 소리와 내게 집중된 수천 개의 눈동자가 눈앞에 핑글핑글 도는 것 같았다.
다리가 후들후들거리고 손끝이 차갑게 식는 게 느껴졌다.
“레네트 공녀? 하나 원치 않으시다면 당연히 거부하셔도 됩니다.”
거짓말! 기젤라 부인이 상냥한 어조로 말하며 뒤에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타인이 함부로 가면을 벗길 수 없는 이 자리에서 기젤라 부인은 내가 자의로 가면을 벗은 것처럼 만들기 위해 이 상황을 모두 만든 것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이 많은 사람들이 공녀 한 명을 두고 이렇게 애원하는데?”
“…….”
이 서슬 퍼런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소수의 귀족들마저 서둘러 박수를 치면서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들의 암묵적인 요구가 가면을 투과하여 피부를 찌르는 듯하고, 기젤라 부인의 잔악한 미소가 넝쿨처럼 거침없이 손을 뻗어 내 목을 움켜쥐는 것 같았다.
“레네트 공녀?”
기젤라 부인이 기세등등한 말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가면 벗는 일이 뭐라고. 그냥 벗어 버려. 그리고 빠르게 벗어나는 거야.
이런 일에 휘말리기 싫어하는 원래의 내 성격이라면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공녀?”
기젤라 부인의 목소리가 귓바퀴에 웅웅 울리자,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싣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와 함께 뒤로 돌아섰다.
“브륀힐트 공…….”
“싫어요.”
내뱉는 순간 등줄기를 타고 오싹한 한기가 흘러내렸다.
동시에 기젤라 부인의 미소가 뚝 그쳤다.
“뭐라고……?”
“싫습니다.”
다시 한번 있는 용기를 다 긁어모아 말했다.
이러다 한 대 맞는 거 아닌가 싶어 그녀의 날카로운 손톱을 본능적으로 내려다봤다.
신이여, 제가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거겠죠?
나는 망부석처럼 얼어붙은 그녀를 향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사양하겠어요. 기젤라 백작 부인.”
* * *
“그 앙큼한 계집이!”
마지막으로 영롱한 크리스털 잔이 액자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날카로운 파편은 카펫 위에 흩어진 지 오래였다.
기젤라 부인은 닥치는 대로 집어 던지며 분이 풀리지 않는 목소리로 비명을 질러 댔기 때문이었다.
“그년 때문에 내가 망신을 당했어!”
“진정하세요, 부인.”
“너라면 진정하게 생겼어?”
기젤라 부인이 자신을 만류하는 애나로즈 부인을 밀치며 악다구니를 썼다.
“…….”
유리 파편으로 가득한 곳에 떨어진 애나로즈 부인의 손에서 자잘한 핏방울이 순식간에 배어났다.
“사양? 웃기고 있네!”
가는 몸을 파르르 떨던 계집이 기어이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소리 내 말하는 순간, 그녀는 내면에 빈틈없이 맞물려 있던 톱니바퀴가 살짝 엇나감을 느껴졌다.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뜨거운 분노가 치솟아 이를 악문 채 웃음을 보여야 했다.
그따위 어린 계집에게 당황한 속내를 들킬 순 없지 않겠는가.
“…….”
분명 겁을 먹은 건 분명한데,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던 가면 속 두 눈도 똑똑히 기억했다.
“당장 브륀힐트 가에 전서를 보내. 정말 공녀를 보낸 게 맞는지.”
“예……? 네!”
기젤라 부인의 명령에 따라 그녀의 주변에 서 있던 귀부인들이 바닥에 떨어진 물건 중 종이가 든 함과 펜을 찾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깟 가면 하나 벗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야. 내가 얼굴을 알아볼까 두려운 거지. 내가 가면을 벗으라고 하니 그년이 발발 떨면서도 발악하는 걸 다들 봤겠지? 가면을 벗지 못하는 건 그년이 그 하녀란 뜻이야. 틀림없어.”
그때 애나로즈 부인이 사방이 유리인 바닥을 짚지 않고 일어나려 애쓰며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