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Hitler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바르바로사 작전 (9)
1942년 7월 22일
독일 쿠머스도르프 시험장
동부전선 시찰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온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들뜬 얼굴의 구데리안이었다.
“어떻습니까, 총통 각하?”
긴장으로 얼굴이 다소 경직된 병기국 소속 연구원들과 달리 구데리안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은 채 내 평가를 기다렸다.
“이건….”
그리고 내 대답은-
“합격, 합격이오!”
신형 중전차 티거 II와 5호 구축전차 야크트판터에 대한 내 점수는 100점 만점에 100점이었다.
기동, 사격 그 외 기타 등등 모든 면에서 두 전차는 합격점을 받기엔 충분한 성능을 보여줬다.
“티거보다 중장갑에 더 강한 화력을 가진 중전차라니. 최고지 않소.”
“그렇습니다, 총통 각하.”
“벌써부터 저것들의 실전 투입이 기대되는군요, 하하하!”
카이텔, 브라우히치, 라이헤나우, 토트, 슈페어까지 5명 모두 합격 판정을 내림에 따라 티거 II와 야크트판터의 양산은 최종 승인되었다.
단, 야크트판터는 설계도 그대로 제작되었지만 티거 II는 아니었다.
장갑이 늘어남에 따라 중량이 59톤으로 증가했고, 105mm 주포의 개발이 지연됨에 따라 임시방편으로 88mm 71구경장 주포가 탑재되었다.
실제 티거 II도 같은 주포를 탑재했고, 해당 주포를 전면에서 방어해낼 수 있는 전차는 1942년에는 존재하지 않는 관계로 문제 될 요소가 아니긴 하다.
두 차량의 개발 목적이 스탈린선 돌파를 위해서였는데, 막상 개발이 끝나기도 전에 스탈린선은 이미 허벌이 되었다.
괜히 설레발을 쳤나 싶다가도 장차 소련과 미국, 영국이 개발할 중전차들을 상대하려면 판터, 티거만으로는 부족했기에 헛수고라 할 수는 없었다.
“쾨니히스티거도 나왔으니 티거는 생산을 중단하는 게 어떻소이까?”
“안 됩니다, 총통 각하.”
티거를 단종시키고 생산라인을 전부 티거 II로 교체하자는 내 제안을 구데리안은 단칼에 거부했다.
이유인즉 59톤에 육박하는 중량으로 인해 운용에 애로사항이 많은 티거 II보다 11톤이나 가벼운 티거는 티거 II보다 운용이 쉽고, 티거의 생산라인을 티거 II로 당장 교체해야 할 만큼 전황이 급박하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장차 티거 II의 생산이 안정화에 들어가면 티거의 생산을 종료하는 게 맞지만 아직은 이르다는 게 구데리안의 주장이었고, 루츠, 토트, 슈페어도 구데리안의 의견을 적극 지지했다.
결국, 티거의 생산은 최소 1943년 말까지 지속하는 것으로 결정 났다.
티거의 뒤를 이을 차기 중전차로 티거 II가 개발된 만큼, 장차 판터를 대신할 차기 중형전차인 ‘5호 전차 B형 판터 II’도 개발에 착수했다.
판터 II는 기존 판터에서 장갑을 전면 100mm, 측면 60mm로 강화한 버전에 티거 II, 야크트판터에 탑재된 것과 같은 KwK 43 전차포를 탑재하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쿠머스도르프 시험장에는 티거 II와 야크트판터의 프로토타입 말고도 영국산 발렌타인 전차와 미국에서 만들어진 M3 스튜어트, M3 리, M4 셔먼 전차도 있었다.
지난번 아군이 나포한 영국 화물선에 실려 있던 것들로, 수십 대의 전차들을 쿠머스도르프 시험장에서 보관 중이었다.
티거 II, 야크트판터의 시험을 겸해 해당 전차들의 성능 테스트도 이루어졌는데, 발렌타인과 M3 스튜어트의 경우 경전차치곤 두꺼운 장갑과 준수한 화력은 호평받았지만, M3 리는 그 애매한 성능 탓에 이도 저도 아닌 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고가 너무 높아 눈에 쉽게 띄는 데다 주조가 아닌 리벳 접합식이라 방어력도 떨어지고, 차체에 장착된 75mm 주포는 사각이 제한되어 측면의 적을 상대하려면 포탑의 37mm 주포를 사용하거나, 차체를 일일이 돌려야 했다.
차체 하단에 달린, 조종수용 기관총 두 정도 웃음거리였다.
어차피 조종수는 조종하느라 바쁠 텐데 이걸 뭐하러 달아놨는지. 심지어 기관총이 일자로 고정되어 오직 앞만 쏠 수 있다.
그야말로 무식과 낭비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M4 셔먼은 앞의 세 놈보다 평가가 훨씬 좋았다.
4호 전차보다 우수한 야지 주행능력과 준수한 기동성, 넓직한 내부공간은 병기국 연구원들과 기갑병과 장교들에게서 호평받았다.
M3 리처럼 위장이 어렵고 전복 위험이 있는 높은 전고와 높은 접지압이 단점으로 지적되었지만, 이를 감안해도 셔먼의 성능은 4호 전차와 동급이라는 게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방어력은 셔먼이 낫지만, 화력과 사정거리에선 4호 전차가 앞섰다.
까놓고 말해 먼저 쏴서 맞추는 쪽이 이기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판터에는 미치지 못하니 안심입니다. 측면만 잡히지 않으면, 이쪽이 당할 일은 없어요.”
“주포의 관통력과 사정거리는 4호가 우위에 있으니 충분합니다.”
“맞는 말이오. 하지만 안심하지는 마시오. 4호 전차와 대등한 성능의 전차를 수백 대씩이나 동맹국에 공여해준다는 건 자국 군대가 사용하고도 수량이 넘쳐난다는 소리니. 제아무리 판터, 티거의 성능이 뛰어나다고 한들 물량 앞에서는 장사 없는 법이오. 지난날 독일이 패전한 이유를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요?”
현실적인 경고를 날리자, 장군들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1차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난 결정적인 원인인 미국의 막대한 물량을 다시 떠올린 게 분명했다.
독일군 전체에게 보급되는 고기와 감자의 전체 양보다 미군 1개 사단에 배급되는 고기의 양이 더 많았다.
독일군이 기아에 허덕일 때, 미군은 군화가 흙탕물에 젖는 일을 피하려고 통조림 깡통으로 참호 바닥을 도배하는 ‘미친 짓’을 선보였다.
아무리 독일 병사들이 정예이고 독일제 무기가 세계 최고라고 한들, 상식을 훨씬 뛰어넘는 압도적인 물량 앞에서는 당해내기 힘들다는 것을 장군들은 말만 하지 않을 뿐 모두 알고 있었다.
뭐…. 말은 이렇게 했다만 그렇다고 독일만 너무 불리한 것도 아니었다.
되려 역사와 비교하면 독일이 미국보다 앞서 나가고 있는 점도 많았다.
1942년 말과 1943년 중반이 되어서야 전력화된 티거와 판터를 우리는 1942년에 이미 대량으로 전선에서 굴리고 있으며, 1944년에서야 등장하는 티거 II까지 개발해냈다.
미국이 판터, 티거를 압도하는 성능의 M26 퍼싱을 실전 배치하려면 최소 2년은 더 걸릴 것이고 소련도 IS-2를 내놓으려면 최소 1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
지금 개발 중인 걸로 알려진 T-34/85도 T-34/76보다 나을 뿐이지 여전히 판터, 티거보다 한 수 아래인 물건이다.
전차뿐 아니라 전투기 성능 역시 우리가 영국, 미국, 소련보다 뛰어난 관계로 내일 영국, 미국과 전쟁이 터진다 해도 일방적으로 밀리는 일은 없다고 장담할 수 있다.
문제는 해군인데, 해군 역시 원 역사보다 전력이 강화되긴 했지만, 미국, 영국 해군을 상대로 밀리는 구도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나마 스파이 폭로 건으로 당장은 이쪽에 신경 쓸 틈이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이대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현 상황이 쭉 유지되면 좋을 텐데….
“총통 각하, 안심하십시오.”
걱정도 팔자라는 듯, 카이텔이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처칠도, 루즈벨트도, 둘 다 어지간히 미치지 않고서야 간첩 건으로 전국이 시끌시끌한데 미쳤다고 독일에 선전포고하겠습니까?”
“그놈들이 정치인인 이상, 한동안은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을 겁니다. 괜히 일을 벌였다간 국민에 의해 지금 있는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 테니까요.”
라이헤나우도 카이텔처럼 처칠과 루즈벨트가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참전하고 싶어도 참전할 수 없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기야 이들의 말대로 그 둘이 합당한 이유 없이 덜컥 독일을 치기로 한다면, 탄핵당할 확률이 높았다.
탄핵당하기도 전에 백악관과 다우닝 가 10번지가 불탈지도 모르고.
독일, 소련 같은 전체주의 국가들과 다르게 미국과 영국은 엄연한 민주주의 국가이니 말이다.
“하긴. 원수들 말대로 내가 공연한 걱정을 하는 것 같소. 조금은 편하게 살아도 되겠지.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
1942년 7월 23일
영국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이게 아니었는데.’
엠마 글린은 생각했다.
자신이 원했던 건, 이게 아니었다고.
북아일랜드 독립을 목표로 하는 IRA는 그들의 적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한 후에도 독일과의 동맹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IRA 내부에서 독일과 손을 잡아야 한다거나, 독일에서 IRA를 이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영국이 강화조약에 도장을 찍고 전쟁에서 빠졌기 때문.
하지만 핼리팩스가 사임하고 대영제국 불멸의 트롤러 처칠이 집권하면서 영국과 독일은 다시 불편한 관계에 놓였다.
처칠이 집권한 후 ‘우연히’ 일어난 IRA의 무기 밀반입 사건은 서로를 닭, 소 보듯이 하던 제3제국과 IRA의 은밀한 동맹을 추진케 했다.
“좆같은 영국 놈들을 좆되게 만드려면, 독일의 힘을 빌려야 하오.”
“영국과의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를 대신해 놈들의 뒤통수를 때려줄 자들이 필요하네.”
IRA는 멋대로 벌인 자작극에 자신들을 방패로 내세운 영국에 복수하고 북아일랜드의 해방을 위해서.
독일은 영국과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영국이라는 공공의 적 앞에 둘은 손을 잡았다.
독일은 무기와 자금을 지원해 IRA의 무장을 돕고 교관을 파견해 IRA 대원들을 훈련시켰다.
영독전쟁이 터지는 순간, 이들은 오랫동안 갈고 닦았던 칼날을 마음껏 휘둘러 그들을 차별하고 억압해온 영국 돼지들의 배때지를 무참히 찢어발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떻게 하긴. 무기한 대기지.”
“대기? 장난해?”
케임브리지 5인조 사건이 폭로되면서 영국 내부의 여론은 극도로 혼란해졌다.
당장 독일과 싸워야 한다, 아니다로 나뉘어 으르렁대던 여론은 한마음 한목소리로 빨갱이를 때려잡자고 외쳤다.
중국을 돕는다던 핑계로 소련에 물자를 보내던 처칠의 입장은 난처해졌다.
국민 사이에선 처칠 내각이 독일과 전쟁을 하려는 이유가 다름 아닌 소련을 돕기 위해서라는 소문이 돌았고, 급기야 처칠이 스탈린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빨갱이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뼛속 골수까지 반공산주의자요, 제국주의자인 처칠에게 자신이 빨갱이란 소문은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
허나 사실대로 털어놓았다간 그건 그거대로 문제가 되고, 그 역시 소련의 간첩이 영국 중심부 깊숙이 침투했으리라곤 꿈에도 몰랐기에 당장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여론이 극도로 험악한 상태에서 계속 참전을 주장했다간, 국민들 손에 붙잡혀 개처럼 거리를 끌려다니게 될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아무리 독일을 물리치고 히틀러의 불알을 다트판으로 삼는 게 중요하다고 한들, 당장의 총리직보다 중하지 않았다.
영국 내부의 참전여론이 줄어들자, IRA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되었다.
영국과의 전쟁 위기가 줄어들면서 독일은 자신들이 자금을 대주고 있는 IRA에게 영국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키지 말라고 당부했다.
IRA는 독일의 지시에 당연히 불만이 많았지만 베를린에서 대는 돈으로 피 같은 조직원들을 먹이고 재우고 손에 권총을 들려줄 수 있었기에 독일의 당부를 감히 거절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조직에서나 집단의 명령에 불만을 품는 자들이 한두 명쯤은 있기 마련.
엠마 글린은 대표적인 불만분자들 중 하나였다.
어렸을 적, 영국군의 불심검문에 투덜거렸다는 이유로 부모는 두들겨 맞고, 자신은 나체로 수색을 받았던 경험이 있는 엠마는 자신과 같은 비극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신념으로 IRA에 들어갔다.
그녀는 여자라면 적들이 방심한다는 점을 이용해 몇 번의 작은 작전을 성공시켰다.
지금까지 그녀가 죽이거나, 죽게 만든 영국인들의 숫자는 최소 10명 이상.
나름 IRA 대원들 사이에서도 알아주는 행동파 대원이었던 그녀는 베를린에서 날아온 전보에 벌벌 기는 지도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린 독일 놈들과 손을 잡은 거지 놈들 따까리가 된 게 아냐!”
“옳소!”
“아일랜드인은 아일랜드인만의 길을 가야지! 독일 놈들의 명령 따위 알 게 뭐야!”
그녀는 자신과 뜻이 맞는 동지들과 함께 독자적인 작전을 세웠다.
게으르고 거들먹거릴 줄 만 아는 나치들과 그 나치들이 주는 돈맛에 취해 의무를 망각한 지도부에게 경각심을 주고, 영국의 압제에 고통받는 동포들에게는 희망을, 영국 놈들에게는 공포를 심어다 줄 거사를.
거사는 착착 진행되었다.
거사에 사용할 폭탄을 빼돌리고, 뇌물을 퍼먹여 매수한 영국 놈으로부터 정보와 지도를 입수하고, 지도부엔 일상적인 정탐 활동이라 둘러대고.
이제 거사 당일만 되면 되는데….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매수한 영국 놈과의 마지막 만남을 위해 약속장소로 향했던 엠마와 그녀의 동료들은 영국군 수십 명에게 포위되었다.
매수했다고 생각한 부패 경찰이 정체를 숨긴 MI5 요원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제 어떻게 하지? 총구를 보는 순간 머리가 하얗게 변하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사람을 죽여본 적은 여러 번 있지만, 누군가에게 총구가 겨눠진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그런데 오랜 훈련의 결과물인가.
총구를 보는 순간 그녀의 손은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꽂아둔 리볼버로 향했다.
손이 리볼버 손잡이를 잡는 순간, 총구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게 아니었는데.
절대로 이러려는 게 아니었는데.
***
1942년 7월 26일
영국 런던 다우닝 가 10번지
“그래, 이게 바로 신의 뜻이란 말이지!”
요근래 처칠은 기분이 대~단히 좋지 않았다.
대영제국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악마에게도 영혼을 기꺼이 팔아넘길 충신인 자신이, 애국자인 척하는 빨갱이니 스탈린의 하수인이니 등 오만 모욕을 당했는데 기분이 좋다면 그건 그거대로 정신이 나간 인간이다.
그러나 국민의 반소, 반공 여론이 반공주의자인 그조차 놀랄 정도였기에 갖은 모욕 속에서도 처칠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괜히 상황을 모면해보겠다고 어쭙잖게 나섰다간 욕이란 욕은 다 처먹고, 불명예스러운 수식어도 더 따라붙을 게 뻔하니까.
그는 독일군이 모스크바를 향해 진군하는 모습을 보며 속이 타들어 갔다.
저 빌어먹을 빨갱이들이 망하건 말건 내 알 바 아니다. 오히려 스탈린이 교수대 위에서 춤추는 건 대환영이다.
하지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적어도 히틀러 놈이 살아 숨쉬고 있는 동안에, 소련은 망하면 안 된다.
빌어처먹을 빨갱이들이지만, 소련이 영국을 제외하고 독일을 억제할 수 있는 유럽에서 유일한 국가였기에.
소련의 멸망은 곧 드넓은 러시아 대륙이 독일의 수중에 넘어간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는 유럽에 영국을 도와 독일을 견제할 국가가 하나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겉으론 신사인 척하면서, 뒤로는 사람 죽이는 게 취미인 연쇄살인마가 이웃인 것보다 툭하면 술 처먹고 고성방가나 해대는 망나니가 이웃인 게 차라리 낫다.
그것이 처칠의 지론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케임브리지 사건이 터지고 소련 대사를 불러 면전에 쌍욕을 박는 와중에도 참전이라는 욕망을 포기하지 못했다.
병사들에겐 독일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훈련을 지속시켰다.
상륙작전이 독일의 침공으로부터 본토를 방어하는 것과 어울리지는 않지만, 아무튼 병사들은 매일같이 훈련에 매진했다.
언젠가 있을 독일과의 전쟁을 기다리면서.
그런데 우연치 않게 기회가 찾아왔다.
벨파스트에서 폭탄 테러를 기획하던 IRA 대원들을 영국군이 사살했다.
그들이 테러에 사용할 예정이었던 폭탄과 무기는 모두 독일제였다.
이것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는 6살짜리 아이도 알아맞힐 수 있을 정도로 쉽고 명확했다.
-실패로 끝난 IRA의 폭탄 테러
-테러의 배후는 독일?
-히틀러는 영국 정복의 꿈을 꾸는가?
폭탄 테러를 계획하던 IRA 대원들이 사살당하고, 이들이 사용하려던 폭탄과 무기가 독일제라는 사실은 영국의 모든 언론사에서 발간하는 모든 신문에 실려 사람들에게 읽혔다.
여론은 다시 뒤집혔다.
“독일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자!”
“히틀러 놈의 불알을 걷어차 줘야 해! 빌어먹을 새끼!”
“잠깐, 잠깐.”
“?”
“갑자기 사건이 터지다니, 뭔가 이상하지 않아? 어쩌면 정부의 자작-”
“뭐? 너 이 새끼, 지금 누구 편을 드는 거야?”
“나치의 스파이냐?”
“반역자 놈! 죽어!”
소련을 욕하던 영국인들은 다시 나치를 욕하기 시작했고 소련을 규탄하던 시위대의 팻말은 독일을 규탄하는 팻말로 바뀌었다.
독일과의 전쟁을 꿈꾸는 처칠에겐 그야말로 최고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히틀러, 네놈도 이건 예상 못 했을 거다.
“지금까지 실컷 웃었으니, 이제는 이쪽이 웃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