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Hitler RAW novel - Chapter (324)
324
1948년 6월 9일
이탈리아 로마
“나라를 좀먹는 파시스트 패거리들은 당장 꺼져라!”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
“독재 타도! 자유 만세!”
로마에는 무려 60만 명에 육박하는 대규모 시위대가 모여 시위를 벌였다.
로마의 인구가 180만여 명임을 감안하면 도시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모인 것이었다.
시위대의 요구는 하나였다. 국가 파시스트당의 퇴진.
그것은 자유를 의미했고, 이탈리아의 변화를 의미했다.
한때 진심으로 무솔리니와 파시스트당을 따랐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지했던 세력의 추한 본모습을 본 뒤 등을 돌렸다.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권력을 쥐었으니, 이제는 국민의 뜻에 따라 자리에서 물러나야 마땅한 도리일 터.
“물러나라! 물러나라고 했다!”
시위대를 막기 위해 투입된 경찰과 카라비니에리, 검은 셔츠단은 시위대에게 강력한 으름장을 놓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한 번 터져 나온 국민의 불만은 봇물마냥 쏟아졌고 이를 막을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너희나 물러나라! 이 더러운 파시스트의 개들아!”
“우리가 국민이다! 우리가 이탈리아의 주인이란 말이다!”
“독일의 충견 노릇을 하는 파시스트들은 물러가라!”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
“국민에게 빵을! 국민에게 자유를!”
그간 파시스트당의 독재에 억눌려 숨죽여 지내왔던 사람들은 지금이 아니면 이 나라를 바꿀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랬기에 국민들은 절박했다. 절박한 만큼, 그들은 용기를 냈다.
“여러분! 바로 오늘이! 오늘만이 이 나라를 개혁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 될 것입니다!”
“물러나면 안 됩니다. 여기서 물러나면 우리는 영원히 파쇼들의 노예로 살게 될 것입니다!”
“자유를 위해 투쟁합시다! 위대한 이탈리아 국민, 만세!”
“우와아아아!!!”
바람잡이 역할을 맡은 자들이 앞장서서 로마 시민들을 이끌었고, 사람들은 열렬한 환호성을 지르며 피켓과 현수막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하나의 공통된 구호를 외쳤다.
독재 타도.
자유 만세.
로마에서 시작된 시위는 즉각 전 세계로 보도되었다.
이윽고 나폴리, 베네치아, 피렌체, 볼로냐, 제노바 등지에서도 시위가 열렸다.
이탈리아 일대에 비상이 걸렸다.
***
1948년 6월 12일
이탈리아 로마 키지 궁전
로마에서 최초 시위 발생 사흘째.
국가 파시스트당은 연일 비상이었다.
이전에도 시위는 여러 번 있었지만, 임금 인상이나 물가 통제 등 ‘자잘한 요구’에 불과한 데다 지금처럼 규모도 크지 않았기에 쉽게 진압할 수 있었다.
허나 이번에는 규모가 달랐다. 거기다 전국 각지에서도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대의 요구는 복잡하지 않았다. 국가 파시스트당의 해체. 그것이 그들의 요구조건이었고,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시위대는 해산할 것이었다.
하지만 국가 파시스트당은 시위의 요구를 수락할 수 없었다.
국가 파시스트당을 해체하고 다당제를 실시하면 틀림없이 그간 파시스트당이 탄압해왔던 공화파와 공산당이 권력을 쥐게 될 것이었고, 권력을 손에 잡은 그들이 그간 자신들을 탄압해왔던 파시스트당을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그들 자신의 목숨을 내다 버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제 손으로 제 목을 치는 얼간이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다고 시민들의 요구를 무시로 일관하기에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폐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시던가?”
고령으로 은퇴한 바돌리오의 후임으로 총리가 된 디노 그란디가 더듬거리며 묻자, 치아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국민의 요구 일부를 수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허어…….”
대규모 시위에 놀란 국왕은 즉각 대책 마련을 지시하며 강경 대응도 불사할 것임을 알렸지만, 막상 시위대의 요구사항 중 국왕 자신에 대한 퇴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소극적으로 변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가장 관심이 있는 건 자신의 직위였지 국가 파시스트당의 안위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는 시민들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제시해왔다. 그란디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자기 자리만 지키면 끝이라는 말인가?
자기 자리 지키기에 급급한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지만, 명색이 국왕이라는 자가 자신에게 충성을 바쳐온 신하들조차 쉽게 내치려는 모습에 그란디는 울분이 터졌다.
“이를 어쩌면 좋겠소?”
“…….”
파시스트당 간부들은 서로 눈치만 살필 뿐 어느 하나 나서서 의견을 개진하지 못했다.
침묵 끝에 누구 한 명이 손을 들었다. 국가 파시스트당 서기를 맡은 카를로 스코르차였다.
“말씀하시오.”
“우선은 시위대가 진정할 미끼를 던져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는다면 시위대는 결코 해산하지 않을 겁니다.”
“미끼라면 무엇을 말하는 거요?”
“그간 불법으로 규정했던 공산당을 비롯해 각기 정당들을 합법화시키는 겁니다.”
국가 파시스트당의 해체는 파시스트당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랬기에 국가 파시스트당을 존속시키면서 다른 정당들의 활동을 허가한다면 국민도 만족하지 않겠냐는 것이 스코르차의 추측이었다.
“비록 파시스트당의 기세가 예전만 못하다지만, 아직 파시스트당을 지지하는 충실한 국민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의 지지를 이용해 당 해체를 막으면서 저들과 협상한다면 타협의 여지가 생길 겁니다.”
“나쁘지 않은 방안입니다.”
치아노도 스코르차의 방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시위대가 그걸로 만족할련지…….”
“다른 방법이 없지 않소? 당을 해체하고 빨갱이들에게 목숨을 맡길 거요?”
그란디가 머뭇거리자 보다 못한 국가 파시스트당 원로 에밀리오 데 보노가 일갈했다.
스코르차의 말대로 아직 적지 않은 국민들이 파시스트당을 지지하고 있다.
우선 다당제 허용으로 시위대의 분노를 잠재운 후 뒤에서 분열을 일으키도록 유도한 뒤 파시스트당의 지지층을 앞세운다면 지금과 같은 집권도 불가능하진 않으리라.
그러나,
하늘은 이들의 바람을 순순히 이뤄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
“독재 타도!”
“독일의 졸개들은 물러가라!!”
“자유 만세! 이탈리아 만세!”
피오라 키르시에나는 갓 16살 생일을 넘긴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그녀는 다른 학생들과 다르지 않았다. 공부보다는 노는 것이 더 좋았고 시험을 질색했으며 연예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소녀였다. 그녀의 다른 친구들처럼.
“피오라! 어디 가니?”
“안젤라랑 놀기로 했어요!”
“저녁 먹기 전에는 들어와라. 참, 어디 이상한 데 가지 말고.”
“안 가요, 안 가.”
피오라의 어머니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덧붙였다.
“딸, 혹시 시위 구경하러 가는 건 아니지?”
“설마요. 안젤라 친척동생들이 올라왔다길래 걔네랑 놀 거에요.”
“알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고.”
피오라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지만, 시위하러 간다는 흥분에 거짓말했다는 죄책감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피오라의 부모는 딸을 너무 걱정한 나머지 이것저것 간섭하는 다른 부모들과 달리 놀랄 정도의 관용성을 가졌지만, 유일하게 단 하나, 정치에는 관심을 일절 가지지 않았다.
그들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을 넘어 정치를 혐오했다.
정치에 관심 가져봤자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되려 난감한 일만 생길 뿐이야. 피오라의 아버지가 저녁 식사자리에서 한 말이었다.
사람들이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당에 열광할 때도 피오라의 부모는 무관심했다.
반대로 무솔리니가 실각하고, 사람들이 무솔리니를 욕할 때도 피오라의 부모는 약속한 것마냥 침묵을 지켰다.
그 정도로 피오라의 가족은 정치에 일절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피오라는 달랐다.
그녀는 정치에 무관심한 부모와 달리 정치에 관심이 무척 많았다. 부모님은 정치에 관심 가져봤자 인생에서 달라지는 게 없다고 딱 잘라 말했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으니,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피오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치에 무관심했기에 무솔리니와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잡은 것이고 그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으며, 이탈리아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다.
피오라는 어릴 적에 독일 공군 폭격기들이 로마에 맹폭격을 퍼부을 당시 부모의 손을 잡고 방공호로 뛰어가던 경험을 전쟁이 끝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로마 역사상 최초로 가해진 폭격으로 이탈리아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제야 사람들은 무솔리니를 지지한 것이 썩 훌륭한 결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무솔리니는 권좌에서 쫓겨났고 이탈리아는 독일과 강화했지만, 전쟁에 책임이 있는 자들은 무솔리니를 제외하고 모두 자리를 보존했다.
나라를 말아먹은 작자들이 아직도 권력을 쥐고 이탈리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니! 이래서야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겠는가!
들끓는 혈기를 주체할 수 없었던 피오라는 친구들과 함께 자신들도 시위에 참여하기로 했다. 나라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때일수록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서서 나라가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야 하는 법.
“안젤라!”
“피오라! 언제 오나 기다렸어.”
피오라는 안젤라가 만든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가 적힌 피켓을 들고 준비한 구호를 외쳤다.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
“파시스트 돼지들은 이탈리아에서 꺼져라!”
“자유 만세! 이탈리아에도 민주주의를!”
주변을 둘러보니 피오라 또래의 소년, 소녀들도 많이 보였다.
그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이 훨씬 많았지만 피오라는 자기 또래의 학생들도 당당하게 시위에 참여해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
“무솔리니와 붙어먹은 쓰레기들은 꺼져라!”
“독일의 개들은 이탈리아에 필요 없다!!!”
“모든 권력을 인민에게!”
파시스트당 치하에서 금기시되었던 공산당의 심볼도 시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적기부터 제법 정교하게 그린 레닌과 마르크스 깃발까지. 아나키즘을 상징하는 깃발과 문구들도 보였다.
시위가 한창 무르익었을 무렵, 사람들은 인터내셔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부르는 것을 지켜보던 피오라도 곧 사람들을 따라 인터내셔널가를 따라 불렀다. 노래를 직접 불러본 적은 없지만, 가사는 알고 있었다.
“투쟁하자, 대지는 모두에게 평등한 소유물이 되리니
밭의 그 어떠한 이도 게으른 타인들을 위해 일하지 않으리
그리고 기계들은 연합하리라
적들이 아닌 노동자들을 위해,
따라서 새로 시작되는 인생은
인류에게 평화와 갑옷을 가져다줄 것이다!”
인터내셔널가 3절이 끝나고 4절이 막 시작되려는 때에 시위대 맨 앞줄에서 소란이 일었다.
코앞에서 시위대를 막던 검은 셔츠단과 시비가 붙은 것이다.
노래는 계속되었지만, 소란 역시 커졌다. 캄피돌리오 광장에 울려 퍼지는 인터내셔널가 사이로 거칠고 저속한 욕설이 사람들의 귓가에 닿았다.
“역겨운 돼지 새끼들!”
“죽어! 쓰레기 같은 놈들아!”
“파쇼 개새끼들은 처맞아야 정신 차린다니까!”
피오라는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을 통해 시위대 앞줄에서 검은 셔츠단 몇 명을 두들겨 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꼴 좋다. 나쁜 놈들. 무솔리니의 사냥개 노릇을 하는 검은 셔츠단에게 피오라는 좋은 감정이 하나도 없었다.
검은 셔츠단 똘마니 몇 놈이 개 맞듯이 두들겨 맞든 무슨 상관이람.
오히려 이번 기회에 그놈들이 다시는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하도록 혼쭐이 났으면 싶었다.
총성이 울리기 전까지.
-타타타타탕!!
“꺄아아악!”
총성이 울리고, 여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인터내셔널가는 뚝 끊어지고 혼란이 퍼져나갔다.
“저놈들, 미쳤어! 총을 쏘고 있어!”
“도망쳐! 어서!!”
검은 셔츠단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한 것이었다.
총성이 이어지자 바로 직전까지 기세등등하게 깃발을 흔들고 인터내셔널가를 불러대던 사람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피오라, 도망치자!”
안젤라는 피오라의 손을 잡아끌고 뛰었다. 피오라는 이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검은 셔츠단이 비무장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고, 사람들은 도망쳤다. 간단한 사실이지만, 시위의 현장에 있는 피오라에겐 너무 갑작스러운 사태였다.
광장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기에 도망치는 속도가 붙지 않았다. 검은 셔츠단의 발포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이 지르는 비명은 커져만 갔다.
사람들의 비명과 고함에 조금 전까지 느꼈던 고양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덜컥 겁이 났다. 자신도 총에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피오라는 걸음을 빨리했다.
“아앗!”
급한 마음에 정신없이 달리던 피오라는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안젤라는 그녀가 넘어진 사실을 모르는지 도망치는 어른들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피오라는 일어서서 뛰기 위해 몸을 일으켰지만, 구두가 그녀의 손을 찍어 눌렀다. 손가락뼈가 으스러지는 통증에 피오라는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손을 짓누른 자의 정체는 검은 셔츠단원이 아니었다. 그녀처럼 시위에 참여한 어느 대학생이었다.
총성에 놀라 도망치다가 바닥에 넘어진 피오라를 발견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손을 밟고 만 것이었다.
“잠깐만요! 저 지금 일어나려고-”
피오라가 외치는 말은 사람들의 귀에 닿지 않았다. 진흙탕에 떨어진 한 방울의 이슬처럼 그녀의 외침은 총성과 비명에 파묻혔다.
피오라가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수십 명의 발바닥이 그녀의 몸을 짓밟고 지나갔다.
“잠깐! 잠깐만!!!”
피오라는 몸을 일으키기 위해 사람들에게 멈추라고 외쳤지만, 겁에 질려 이성을 잃은 사람들은 그녀가 외치는 비명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작정 달렸다. 그녀의 몸을 짓밟아가면서.
쓰러진 지 30초도 되지 않았지만 벌써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녀의 몸을 밟고 지나간 것 같았다. 피오라는 거대한 바위가 온몸을 짓누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의 구둣발에 짓밟히고 짓눌린 탓에 전신에서 안 아픈 부위가 없었다. 손의 뼈들은 모두 조각조각 부서졌고, 허리 아래로 감각이 없었다.
“제발, 제발…….”
피오라는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 아파서 이러다간 죽겠다 싶었다. 제발 자기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가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마다 사람들의 발이 그녀의 등이나 허리, 손을 밟고 지나갔다.
피오라의 입에서 아침에 먹은, 소화되다 만 흑빵과 토마토가 게워져 나왔다. 토사물 다음은 피가 나왔다.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피오라는 그녀의 부모가 그녀에게 한 말을 떠올렸다.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을 듣는 거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