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Hitler RAW novel - Chapter (326)
326
1948년 7월 26일
한국 인천
한때 유럽을 넘어 세계를 호령한 유구한 역사를 가진 두 나라가 사이좋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동안, 극동의 한국에는 히틀러가 약속한 독일제 장비들이 도착했다.
독일에선 구식으로 전락해 치장물자로 전환된 장비들일지라도, 갓 독립한 신생 국가들, 돈이 없어 미국의 원조로 먹고사는 한국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무기들이었다.
“저게 바로 유럽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는 무기들이군.”
“히야. 척 보기에도 크기가 장난이 아닙니다.”
일본군이 남기고 간 전차만 굴리던 한국군에게 독일제 전차들은 크기부터가 달랐다. 성능 면에선 그 격차가 더욱 커졌고.
비단 전차 외에도 장갑차, 하프트랙, 야포, 트럭, 대공포 및 대전차포, 판처파우스트까지 한국군에는 없거나 부족한 장비들을 독일은 아낌없이 퍼주었다.
독일에서는 구식이라 해도 세계 전체를 기준으로 삼았을 때는 결코 구식이 아니었다.
“히틀러가 정말로 지원을 해주리라곤 몰랐네만.”
화물선에서 하역 중인 중장비들을 지켜보며 이승만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가 히틀러에게 무기를 지원해달라고 한 건 미국을 자극해 더 많은 지원을 받아내기 위함이 목적이었다.
히틀러가 손에 꼽을 정도의 분량만 보내줘도 그는 만족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히틀러는 당초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많은 장비를 한국에 보냈다.
히틀러에게 무기 지원 건을 꺼낸 이승만이 놀랄 정도로. 물론 장비 지원의 대가로 한국은 독일에 텅스텐 같은 광물들을 넘기기로 했으니, 공짜로 퍼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걸 감안해도 히틀러의 지원은 사람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장비들만 들려줘선 굴릴 수 없기에 독일은 한국에 기술자들과 교관들까지 보내주었다.
“정말로 히틀러 총통은 대한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 많은 걸…….”
이범석은 감격에 겨운 나머지 말도 끝맺음 짓지 못했다.
“창고에 자리가 별로 없었던 모양이지.”
그런 이범석의 감격이 못마땅했던 이승만은 평가절하했지만, 그 또한 속으로 히틀러가 이렇게나 많은 지원을 해준 것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한과 오래도록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나 봅니다.”
김구의 말에 이승만은 못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히틀러에 대한 의심과 선입견을 지우지 못한 이승만은 히틀러의 행보가 순수한 선의에서 나온 것이 아닌 독일의 극동 진출을 위해 한국을 이용하려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여겼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오래도록 꿈꿔오던 자주국방의 문이 열리는 경사스러운 자리에서 분위기를 망칠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이걸로 미국이 뭐라고 할지 벌써부터 걱정되는군.”
“그건 그래요.”
한국이 독일에 무기 지원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알고 불편한 반응을 보인 미국이다. 두 나라 사이의 거래까지 막지는 않았지만, 미국은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아마도 미국은 독일이 한국에 얼마나 대단한 지원을 해주겠냐는 생각이었겠지만, 지금, 이 모습을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더운데 화채나 한 그릇씩 하지 않겠나?”
“아, 좋지요.”
발길을 돌리면서 이승만은 생각에 잠겼다. 무초 대사에게 뭐라고 말할지부터 미리 생각해둬야겠군.
***
1948년 7월 29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이승만에게 약속한 장비 지원은 예정대로 이뤄졌다.
장제스가 요청한 무기 판매도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중이다.
지금 중국의 경제 사정은 좋은 편이 아닌데도 있는 거 없는 거 다 털어서 무기를 사고 탄약공장을 만드는 걸 보니 장제스가 얼마나 영토 확장을 진심으로 대하는지 느껴졌다.
만약 티베트가 수교 요청을 조금만 늦게 했다면 필시 국민혁명군이 먼저 티베트 국경을 넘었으리라.
이탈리아와 그리스 내전은 현재 진행 중이었다. 반란군이 숫자로는 정부군에 밀리지만, 정부군의 사정도 사정인지라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반란군의 공격을 막아내기에 바빴다.
이탈리아는 아직은 우리에게 개입을 요청할 생각이 없는지 독일 국경에 배치한 병력을 후방으로 돌리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이번 기회를 틈타 이탈리아 북부를 통째로 합병하려 들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중일 수도 있다.
진짜 히틀러라면 그랬겠지만, 나는 이탈리아 북부까지 합병할 생각이 없다.
이탈리아인들이 순순히 독일 땅에 독일인으로 사는 것을 받아들일 리도 없고, 독일인들도 이탈리아인들이 이웃이 되는 걸 반기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독일 영토는 지금만으로도 충분해서 여기서 굳이 더 늘릴 필요가 없다.
이탈리아군 대부분은 현 정부군의 편에 섰지만, 일부는 국민해방위원회에 충성을 맹세하고 반란에 가담했다.
국왕과 파시스트당의 엄중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러 도시에선 파업과 시위가 끊이질 않았고, 가뜩이나 오를 대로 오른 물가는 더더욱 폭등해 이제는 한 달 월급을 통째로 쏟아부어도 일주일 치 식량을 사는 것도 힘겨운 상태라고 한다.
여기에 식민지 리비아에서도 독립운동 열풍이 아주 강하게 불고 있다지.
내전이 끝나더라도 이탈리아가 오랫동안 내전의 후유증에 시달리리란 사실은 명백해 보였다.
그리스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그나마 이탈리아 남부와 북부의 일부는 내전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덕에 평화와 질서가 유지되는 상태지만 그리스는 전 국토에서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터라 안전지대라고 할 만한 곳이 크레타와 작은 섬 몇 개를 빼면 없었다.
인구도 얼마 없는 시골 마을에서도 빨갱이냐 우익이냐로 나뉘어 서로 죽고 죽이는 개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에 나는 통탄의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진짜 걱정거리는 따로 있었다.
꼴이 말이 아니긴 해도 나름대로 체급이 있는 이탈리아와 달리 그리스는 체급도 작은 데다 주변에 적이 너무 많았다.
알바니아, 불가리아, 터키. 세 나라 모두 그리스와 전쟁한 적 있는 국가들.
철천지원수인 그리스에서 내전이 일어나기 무섭게 세 나라는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그리스에서 내전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조구 1세랑 보리스 3세, 이뇌뉘가 축배를 들었다는데 이 몸의 유일한 고환을 걸 수 있다.
“알바니아군과 불가리아군, 터키군 모두 그리스 국경일대로 이동 중입니다.”
카이텔은 지도판에 알바니아, 불가리아, 터키 군대의 이동 현황을 말판으로 표시하며 한 달 안으로 세 나라가 그리스 내전에 개입할 것으로 보인다는 사견을 덧붙였다.
“이거 자칫하면 그리스라는 나라 자체가 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르겠군요.”
“그러게, 쓸데없이 주변에 적은 왜 그리 많이 만들었는지…… 마치 폴란드를 보는 것 같군.”
폴란드도 영토 욕심에 주변국들을 건드리고 다니다가 업보를 그대로 처맞아 지도에서 삭제되는 엔딩을 맞이했다.
유고와 손만 안 잡았어도 최소한 알바니아는 중립으로 묶어둘 수 있었을 텐데 쯧쯧.
“우리 해군과 공군은 피해가 없나?”
“없습니다, 총통 각하.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해군도 멀쩡합니다.”
알바니아와 불가리아를 진정시키는 조건으로 독일은 그리스의 항구와 공군 기지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고, 내전이 진행 중인 지금도 그리스에는 우리 해공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하기야 제아무리 빨갱이들이라고 해도 미치지 않고서야 우리에게 먼저 선빵을 칠 리가 없지.
암만 우리가 미워도 상대는 봐가면서 건드려야 살 수 있다는 것을 빨갱이들도 모르지 않을 터.
“총통 각하, 터키에서 전보가 왔습니다.”
“뭐라고 왔던가?”
“영토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그리스 내전에 개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리벤트로프는 자기가 말하고도 말이 안 되는지 헛웃음을 흘렸다.
말이야 영토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지, 그리스의 영토가 탐난다는 것을 우리가 모를 줄 아나.
물론 이뇌뉘도 우리가 자기가 한 말을 온전히 믿으리라곤 생각 안 할 거다. 그런데도 전보를 보낸 건, 우리 의중을 떠보기 위해서겠지.
“곧 알바니아와 불가리아에서도 같은 전보가 오겠구만.”
“아마도 그럴 겁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영토를 늘릴 기회가 왔는데 이걸 참을 국가가 어디 있을까? 특히 전쟁까지 한 국가라면 더더욱.
“뭐라고 답장할까요?”
“기다려보게. 일단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니.”
터키, 알바니아, 불가리아가 그리스를 갈라먹는 것을 방관하는 게 가장 편한 선택지겠지만 이 경우 그리스 지역이 향후 수십 년간 유럽의 뜨거운 감자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스인들이 순순히 세 나라의 통치를 받아들일 리 없는 데다, 세 나라 역시 그리스인들을 온건히 대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고로 그리스가 멸망하도록 방치한다는 선택지는 기각이다.
“그리스를 살려서 괴뢰국으로 만드는 게 최선의 방안이라 생각되네. 이뇌뉘가 섭섭해하겠지만 훗날 유럽의 평화를 위해선 이게 최선일세.”
고심을 거듭한 끝에 나는 그리스를 살리기로 했다.
그리스인들은 틀림없이 조국을 되살리기 위해 침략자들에게 끝없이 저항할 것이고 터키, 알바니아, 불가리아도 그리스인들의 저항을 잠재우기 위해 폭압적인 통치를 이어갈 것이다.
당연히 그리스인들의 저항이 줄기는커녕 더 늘어나기만 할 테고.
나아가 그리스인들과 같은 처지인 마케도니아인들과 키프로스인들도 그리스인들처럼 저항할 것이고 곧 발칸 전체로 번질 우려가 있다.
작은 불씨가 산 전체를 태우는 커다란 산불이 되듯이.
그런 일은 미리미리 방지해야지.
“이뇌뉘에게 전하게. 터키의 개입은 그리스인들의 반터키 감정을 자극할 뿐이며 터키 내부의 혼란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독일이 나서서 그리스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리스 정부에 전하게. 그리스 정부가 요청하면 독일이 내전 종식을 위해 필요한 조력을 해주겠다고.”
리벤트로프가 방을 나서려고 할 때 바이츠제커가 들어왔다.
“그리스 정부로부터 전보가 왔습니다.”
“빨갱이들을 때려잡는데 손을 좀 빌려달라고 하던가?”
바이츠제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한결 수월해지겠군.
***
“독일에 지원을 요청한다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요?”
“당신들은 독일에 나라를 팔아먹으려고 하는가!”
“달리 방법이 없지 않소이까!”
“누군 좋아서 이러는 줄 아시오? 현실적으로 대안이 따로 없잖소!”
“이 매국노들!”
“말 다 했어?!”
독일에 지원을 요청하는 건을 두고 그리스 정부 내에서도 많은 격론이 오갔다.
반대파는 독일이 지원을 빌미로 어떤 요구를 할지 모른다며 반대했고, 찬성파는 독일의 손을 빌려서라도 내전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왕 파블로스는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 몰라 우왕좌왕했고.
“급보입니다!”
“불가리아군과 터키군이 국경을 따라 이동 중?!”
“알바니아도?”
“이, 이 개새끼들이……!”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팽팽히 맞서던 반대파와 찬성파의 대결은 찬성파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스와 원한이 깊은 세 나라 군대가 그리스 국경에서 알짱거리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반대파 전원이 찬성파로 돌아서는 기적이 일어났다.
터키, 불가리아, 알바니아에 삼갈죽당해 나라가 지도에서 사라지는 것보다 독일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낫다.
독일의 꼭두각시가 되더라도 그리스라는 국가는 남을 테니까. 최소한 독일은 그리스인을 사람 취급해주지 않겠나.
“총통 각하. 부디 그리스를 도와주십시오.”
“독일의 도움이 없으면 그리스는 끝입니다!”
베를린의 그리스 대사는 본국의 지시에 따라 히틀러와 만나 지원을 요청했다.
왕비 프리데리케 루이제도 같은 독일인의 정으로 그리스를 도와달라고 히틀러에게 편지를 썼다.
“어찌 되었나?”
-안심하소서, 폐하. 히틀러 총통이 원군을 보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히틀러가 지원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대사의 말에 파블로스는 참았던 숨을 토했다.
이걸로 그리스는 살았다. 저승 문턱에서 겨우 기어 나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히틀러 총통에게…… 그리스인들은 독일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전하게.”
-예, 폐하.
***
히틀러는 그리스 정부군을 돕기 위해 산악사단 2개, 공수사단 1개, 항공군단 1개, 지중해 함대를 파견했다.
그리스 주재 독일 군사지원군 사령관으론 독일 최고의 산악전 전문가로 손꼽히는 에두아르트 디틀 원수가 임명되었다.
독일 그리스 파견군은 육로와 해로, 2개의 길을 이용해 그리스에 당도했다.
풀라 항구에서 출발한 독일 지중해 함대는 아드리아 해를 통과해 그리스에 도착했고, 지상군은 크로아티아-몬테네그로-알바니아를 지나 그리스 국경에 닿았다.
“디틀 원수. 독일군의, 아니 원수의 계획은 무엇이오?”
“좋은 질문이십니다, 폐하. 우선 여길 주목해주시지요.”
국왕과 정부 고위 각료들, 그리스군 수뇌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디틀은 자신이 세운 작전계획에 관해 설명했다.
반군의 주 무대는 그리스 북부 산악지대와 스포라데스 제도, 키클라데스 제도의 자잘한 섬들. 해군 전력을 동원해 해로를 봉쇄하고 징검다리를 넘듯이 반군이 점령한 섬들을 하나씩 탈환한다.
“반군의 저항이 거셀 경우, 아예 섬을 고립시켜서 적을 말려 죽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아군의 피해는 없으니 이 방법도 특기할 만합니다.”
“그…… 반군과 함께 섬에 고립된 민간인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리스군 장성 한 명이 손을 들어 질문하자 디틀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반군에게 협력하지 않는 자들이라면 진작에 섬에서 탈출했을 겁니다. 이해했습니까?”
“……이해했습니다.”
섬과 해안지대를 모두 탈환한 다음에는 알바니아, 불가리아 국경에서 밀고 들어온 지상군과 연합해 북부 산악지대에 진을 친 반군을 앞뒤로 포위, 공격한다.
어차피 그리스 주변 국가들은 그리스에 적대적인 알바니아, 불가리아, 터키뿐이라 반군이 도망칠 구석이 없다.
세 나라 군대 모두 그리스 빨갱이들이 자국 국경을 넘지 않을까 철통경계 중이니, 반군은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없다.
“빨갱이들이 제아무리 악착같이 굴어도, 길어도 1년은 버티지 못할 겁니다.”
2차대전 중 알프스 산맥에서 이탈리아군과 싸우고, 바다사자 작전 당시에는 영국군과 싸우고, 카프카스 산맥으로 숨어든 소련군 잔당을 소탕하는 일을 맡았던 디틀에게 반군 토벌은 식은 죽 먹기였다.
휘하 장교들도 산악전에 도가 튼 전문가들뿐이니 뭐가 두려울까?
디틀은 손바닥을 비비며 미소를 지었다. 신나는 빨갱이 사냥을 시작할 시간이다.